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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41화


눈을 떴다.

그러나 보이는 건 없다.

손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은 없다.

나는 고정되어 있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하여 깨닫는다.

왜 이 정원찬양사의 상자 속에 갇힌 무수한 지성체들이, 그 어떤 생전의 능력도 물건도 사용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을 때까지 수십 년간 고문당했는지.

‘삼켜졌어.’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다.

지금 내 몸은 무언가에 꽉 잡혀 밀봉되어 있었다.

참선을 위하여.

소화액이 분비된다.

-지옥이다, 지옥, 지옥이다. 어떻게 이렇게 아플 수 있지? 나는 깨달았다 원초적인 고통이라는 것의 끔찍함을. 살면서 가장 슬펐던 기억이 반복된다, 깊은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따위의 묘사는 미적지근하고 복잡할 뿐 몸 편안한 자들의 속 편한 전시다 부럽다 진정한 고통은 육체에서 나온다 이 정신이 망가지는 고통.

-바늘로 피막과 신경을 한 겹씩 긁어내는 이 통증! 전신의 통증! 어디 있는지 모르는 내 오장육부의 위 뒤틀린 피부가 불타오른다. 끝없이 불타는 지옥에 갇힌 것 같다. 입, 내 입을 벌리고 그 안에 소화액을 쏟아 넣는 건가? 안 돼! 식도가 없어서 다행이다, 아니, 식도가 뚫리는 것 같….

내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

내가 느끼는 고통을, 그 번뇌와 분석과 구걸과 절규를 그대로 읊어주는 구도자의 목소리.

그리고….

-죽기싫어죽을래죽기싫어죽을래죽기싫어죽을래그만!그만!그만!왜지?왜이렇게됐지너무아파아파!아파!!이름님저는가치 있는일을했습니다아프다고!가치 있는일을했어요살려줘죽여줘살려줘죽여줘

-숨이 막혀온다. 통증을 참을 수 없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것을 수십 년간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들어온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이 생각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예상하는 것조차 섬뜩하게 만드는 고통, 정신이 흐려지지조차 않는다. 이런 초자연 재난은….

다른 두 지성체의 목소리.

고문당하는 타인의 목소리가 내 바로 옆에서 함께 울리며, 서로에게 전시되는 것이 바로 이 ‘상자 속 구도자’의 완성이었다.

이대로 우리는 소화액 속에서 무력하게 구도자의 일부로 연결되어, 서로의 고통이 조성하는 미칠 것 같은 속삭임 속에서 수십 년간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소화액은 일종의 보존제 역할을 하여 우리를 죽지도 못하고 맑은 정신으로 고통을 느끼도록 만든다.

광기, 공포.

하지만 광기로 도망치지도 못하게 만드는 이 미친 고통!

‘해피메이커…!’

지금은 손에 없는 그 아이템의 존재가 미친 듯이 그리워졌으나, 나는, 나는….

‘참아.’

연기를 피워올리려 한다.

아니, 아예 내가 연기로 변환된다.

연기는 내 구성요소이기에 움직임이 없이도 가능하다. 연기는 나를 밀봉해 놓은 구도자의 보육 주머니 같은 것을 빠듯하게 채운다.

연기가 되어도 통증은 가시지 않으며 모든 면과 닿는 모든 곳에서 통증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딱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연기는 기체다.’

나는 연기 속에서, 가장 안쪽에서 단 한 부위만 다시 구현했다.

뿔.

그리고 간신히 흔들었다.

딸랑.

뿔 안에 달려 있던 방울 소리가 청명하게 울린다.

‘…하!’

고통은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사고력과 의지력이 회복된다.

‘할, 일.’

할 수 있는 일!

나는 꼼짝달싹도 할 수 없도록 나를 묶어놓은 이 주머니의 옆에 다른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처, 천천히.’

통곡하고 싶어도 성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에 처음으로 감사한다.

‘이번에는….’

연기의 거의 표면에 해당하는 곳으로 유니폼 안 피부 한 점을 꺼낸다.

내 문신.

‘인벤토리…!’

나를 밀봉해 놓은 이 기이한 피막에 접촉된 문신, 그 안으로 이 피막 자체를 집어넣으려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

집어넣으려는 모든 시도는 주머니를 더 좁게 만들 뿐이다. 문신 속에 집어넣은 것만큼 부피가 좁아진다. 연기로 변한 몸에도 과부하가 올 만큼.

‘안 통해.’

그리고 마치 윤활유를 분비하듯 소화액만 더 많이 분비될 뿐!

-고통! 고통! 검은 연기로 변해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도리어 거세진다.

모든 물리적 반항이 통하지 않는다. 상자 안에서 희생자는 구도자의 위장 속에 든 부속품이기에 구도자에게 상해를 입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물리적 고통을 고스란히 받는다. 이렇게 불합리하고 지옥 같은 괴담이라니.

-안 돼, 그만, 소화액이, 죽을 것, 아니, 죽는 것 같은 고통, 백일몽에서도, 탐라행 열차에서도 겪어본 적 없던 이 미친 고통은 대체

그때.

-포도 요원?

…….

…!

-이럴 리가 없다. 왜지? 왜 악인이 아니라 포도 요원이? 나를 밀친 건 재난관리국에 대한 반감일 거라 추측, 아니, 고통 때문에 더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아진다. 안 돼.

-이 고통을 느끼면서 몇십 년 동안 여기 있어야 한다고? 저 사람도?

구도자는 정신적 고통도 전시했다.

청동 요원의, 정신적 고통을.

그리고 내 것 역시.

-나는 고통에 익숙하다, 견딜 수 있다. 나는, 고통에 익숙하다,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어서 조금 낫다. 연기 안에서 방울을 흔드는, 아니, 고통스럽다! 고통! 아니, 참을 수 있….

그 순간.

-알았다! 고통과 연관 짓는 생각은 상대에게 들린다. 고통과 연관, 고통과….

청동 요원이 깨닫는다.

그리고 고통을 전시하던 구도자의 속삭임이 변했다.

대상의 상태를 반영한 듯이 더 빠르고 불안정하게.

-나는 고통스럽다. 그러니 내가 연기로 일부 변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거동이 가능하다면 당장 오방색 신발 끈을 사용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다.

…!!

-당장. 이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다. 신발끈을 묶어서 걷자. 걷는다는 행위만 충족하면 된다! 빨리!

…….

그리고 다시 떠올린다.

‘청동 요원은 신발 끈이 있어도 나갈 수 없다.’

룩키 마트에서 두 다리가 잘려 오방색 신발끈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처럼, 밀봉된 지금의 저 사람은 나가지 못한다.

오로지 나만이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나가고 나면.

다른 남은 자들은 절대 나갈 수 없는 이곳에서 계속 전시되어 고통당할 것이다.

나 대신 상자가 삼킨 새로운 자와 함께.

…….

…….

-포도 요원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혹시 나간 걸까? 나만 이 고통을 받는 것인가. 희망적이지만 결국 혼자 나갔다고 욕을 퍼붓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이 지독한 고통이….

나는 연기의 일부를 손의 형태로 돌렸다.

맨살을 노출해,

피막에 닿는다.

‘상자 속 구도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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