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53화
이자헌은 눈을 떴다.
정갈한 침대보, 회색 벽돌이 드러난 고풍스럽고 정결한 분위기의 2인용 기숙사 침실이 보인다.
창문 밖은 회색 구름이 침침히 드리워 흐리고 가라앉은 농도를 유지한다.
그가 이곳에서 깨어난 보름의 나날 중 햇빛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의 특성이리라.
♩- ♩-
낮고 울림이 강한 종소리가 울렸다. 이자헌은 침대에서 일어나서 환복했다.
성 안티쿠스 기숙학교는 침실 외의 장소에서는 항상 정복을 착용하는 것이 학칙이다.
침대 위에 잠옷을 정리한다.
전 교습생에게 동일한 규격의 회색 리넨 천으로 재단된 잠옷이 주어지며, 치수는 다섯 구간으로 나뉜다. 이자헌은 자신이 받은 가장 큰 치수의 잠옷을 완전히 개었다.
그리고 정리해야 하는 잠옷은 그것만이 아니다.
교습생의 잠옷 옆에는 반드시 하얀 신부의 옷을 나란히 정리해야 한다.
이것은 신랑으로서의 연습이며, 이 학교에서 교육하는 ‘성공적인 결혼식을 위한 교습’ 커리큘럼의 일종이다.
이자헌은 순식간에 정리를 마치고, 정해진 시간에 침실을 나섰다.
♩- ♩-
그리고 아침 식사.
식사 시간에는 늦지 않아야 하며, 바른 자세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카트러리를 잡고 식사해야 한다.
식단은 그때그때 다르나, 오늘은 아몬드, 구운 심장, 산수유즙이다.
식사 중에는 반드시 신부의 잔이 비지 않도록 채우는 것을 교습받는다.
신랑의 맞은편은 비어 있으며, 그곳에 차려진 신부용 정찬의 잔은 때때로 이유 없이 음료가 사라졌다.
불합격자가 나왔다. 벌점이 누적된다.
♩- ♩-
오전 시간에는 신랑의 교양을 익힌다.
결혼식과 관련된 시와 관용구를 학습하여 낭송하고, 신부가 선호하는 현악기의 연주를 배우고, 손님을 맞이하는 예법을 배운다.
이자헌은 우리의 결정하에 모든 것에서 지적받지 않고 완수한다.
불합격자가 나왔다. 벌점이 누적된다.
♩- ♩-
점심 식사는 가벼운 샌드위치나 핑거푸드로 진행되며, 함께 서빙되는 손가락을 통해 신부의 외양에 익숙해진다.
결혼식에서 반지를 끼울 때 능숙하기 위하여.
식사를 마무리한 오후에는 함께 주방으로 가서 저녁의 코스 요리를 준비한다.
신선한 식료품을 고르고, 신부의 입맛에 맞게 조리하는 법을….
“흡, 우웩!”
“…….”
“…….”
“자, 잠깐만, 아니, 안…!!”
불합격자가 나왔다. 벌점이 누적된다.
♩- ♩-
저녁 코스 요리는 길고 우아하게 이어지며, 신랑 교습생들은 품위를 유지하며 고요한 중에 깨끗하게 식사한다.
신부의 식습관을 배려하여 자신의 접시에 담긴 음식 중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여 남긴다.
디저트까지 모든 서빙이 끝나면, 자리를 정리하고 교육 사감에게 오늘의 교습에 대한 감사 인사를 올린 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
♩- ♩-
그럼 그때부터 짧은 휴식 시간이다.
이자헌은 복도를 정해진 속도로 걸었다.
이 기숙학교에서는 정결함을 위해 교습생을 위한 구역이 아닌 불결한 곳에는 발을 디디지 않을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휴식의 방식도 제안한다.
그리하여 ‘신부와의 결혼식에서 어떤 맹세의 말을 할 것인지’ 공상하며 오늘의 휴식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권장된다.
가끔 다음 날 아침 식사 중에 물어보기도 하니, 답변을 준비해 놓은 상태로….
누군가 복도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야, 야…!”
이자헌은 발걸음을 멈췄다.
절박한 속삭임이 따라붙는다.
“너, 너는 사람 맞지? 맞잖아…!”
“예.”
창백한 얼굴, 공포에 질린 표정.
민간인.
“여기… 대체 뭐야? 뭐냐고!”
“성 안티쿠스의 판단하에 좋은 신랑이 되기 위한 교습을 진행하는 기숙학교입니다.”
“그러니까 X발 그런 게 어딨냐고, 21세기 한국에!”
이자헌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어, 어어어?”
이자헌은 발을 옮겼….
“자, 잠깐! 그러니까… 한국이 아니라고? 뭐 사이비 종교냐? 납치됐나? 무슨 X발 공포 게임도 아니고… 괴담도 아니고.”
“맞습니다.”
“……어?”
“당신은 현재 괴담이라 명명할 수 있는 괴현상 속에 갇혀 있습니다.”
이자헌은 응답을 마쳤다.
그리고 계획된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발을 옮겼….
“야.”
…….
“근데 너는 X발 왜 이렇게 태연하지? 나가는 법 알아서 태연한 거네. 맞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X발.”
속삭이는 목소리에서 갈 곳을 잃은 음습한 분노가 눈이 뒤집힌 채 절박함과 뒤섞여 뒤틀린다.
듣는 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싸한 느낌이 들었을 상태.
이자헌은 그 복잡미묘한 분위기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다음 말은 명료히 이해했다.
“어차피 죽을 거 너 같이 죽을래?”
“아닙….”
“아니긴 X발. 내가 너랑 여기서 싸우면 벌점이야, X발 새끼야. 둘 다 벌점 받을래? 아니면 나가는 방법 공유할래?”
협박이다.
-휴식 시간에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 교육을 인지하고 있던 자였나 보다.
아니, 그렇기에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었던 것일 터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공포 때문인지 관찰력이 부족하다는 것.
“야, 대답…….”
“발에 힘을 주며 걷지 마십시오.”
“…어?”
이미 늦었다.
이자헌을 붙잡은 남성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교육 사감.
“…자, 잠시만요. 저희는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사담을 나누려고요. 휴식 시간이니까요. 하하하….”
교육 사감은 긍정한다.
하지만 학교의 교육 목표와 어긋나는 행동을 했으니, 벌점이 누적된다고 고지한다.
물론 쫓아내는 것은 아니며, 지극히 격려와 보조의 의미로.
“…네?”
왜냐하면, 복도에서 발을 구르며 소란스럽게 걸었기 때문에.
결혼식에서 신랑이 그런 품위 없는 행동을 하면 얼마나 부끄러울 텐가. 그렇기에 지금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당신은 성 안티쿠스 기숙학교에서 교습받고 있으니까.
“저, 저기.”
남자가 잡힌다.
“흡!”
교육 사감은 벌점자를 돕기 위해 움직인다.
벌점 사항에 맞게.
“~!!!”
남자의 발바닥 표면이 잘려 개방된다.
교육 사감은 친절히 그의 손에 부드러운 고무와 찰흙을 쥐어준다. 발 모양에 맞게 만들어 덧댈 소음 완충재다.
직접 완성하여, 발바닥 안에 넣어야만 벌점이 끝난다.
목에는 솜과 살점으로 만든 개구기가 삽입되어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만든다.
고통과 공포로 몸부림치는 자의 피가 복도를 물들인다.
그 역시 벌점 사항이다.
-교육 중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교육 사감의 고뇌 속에 추가 조치가 시행된다.
해당 교습생은 발 시술을 끝마치는 대로 직접 소리를 내지 않고 걸어야 한다.
어떤 소음도 없이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 !!!”
이 모든 광경 앞에서, 이자헌은 잠시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한다.
도와야 하는지의 당위성.
도움이 유용한가의 상황성.
…….
각각 결론이 나왔다.
모호.
부정.
지난 보름간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응한 교습생 세 명 중 두 명은 벌점 누적 중 즉사, 한 명은 합병증으로 교습 도중 사망했다.
그중 울면서 스스로에게 직접 벌점을 줘야 했던 두 사람에 비하면, 교육 사감이 보조하는 형태의 벌점은 차라리 정신적 고통의 측면에서 양호할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고문하는 것과 다름없는 기상천외한 행위를, 어떻게든 살아서 시행하려 공포와 체념 속에서 애쓰는 것보다는.
“~~!!, !, …….”
복도의 소란이 잦아든다.
이자헌은 우리의 판단하에 벌점이 누적되지 않기 위하여, 소리를 내지 않고 고요히 복도를 걸어 침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보았다.
맞은편 침상에는 저녁 식재료가 맞지 않아 내장이 터진 교습생이 누워서 사망해 있었다.
스스로 음식물을 소장에서 꺼내려 한 듯하다.
“…….”
♩- ♫- ♩-
종소리가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통행이 금지되는 시간으로, 신부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하여 신랑은 침실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자헌은 환복을 위해 하얀 정복에 손을 올렸….
-과장님.
“…….”
이자헌은 눈을 깜박였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우리’가 아니다.
타자의 것.
그러나….
인지할 수 있는, 아는 사람의 인격.
-괜찮으십니까?
“예.”
김솔음.
몇 개월 만에 만나는, 한때 그의 조원이었던 지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로 인지된다고 하여 정말로 소리인 것은 아니다. 이자헌은 알고 있다.
이것은 김솔음의 정신이다.
마치 우리가 서로 연결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김솔음은 이자헌 개체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과장님, 잘 들어주십시오.
-저는 환청이나 가짜가 아니라, 과장님의 머릿속에 정말로 들어와 있는 겁니다.
사실 그것도 알고 있다.
이자헌은 ‘우리’의 일부이기에, 우리 중 하나가 김솔음과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김솔음이 어떤 방식을 통해서 지금 아예 이자헌의 머릿속에 들어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저는 지금… ‘우리가 도움’ 버튼을 역으로 사용해서 과장님의 몸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렇다.
‘괴담이 막혔다면 이미 들어간 사람을 이용하면 된다!’
…김솔음은 그 발상으로 우주 쇼핑몰의 외계 파충류를 찾아가, 아예 괴담에 갇힌 이자헌의 몸에 자신이 들어가서 탈출해보겠다고 의사를 전달했던 것이다.
‘우리가 도움!’ 같은 아이템이 있으니 분명 유사한 매커니즘이라면 통할 것이란 추리를 통해서.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통했다.
-신체의 주도권을 주시면, 제가 알아서 그 어둠을 클리어하고 탈출하겠습니다.
이자헌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김솔음의 뿌듯함을 느꼈다.
유사한 감정의 화학 반응이 자신에게도 있었다.
반가움.
-그럼… 주도권을 넘겨주십시오.
다만.
“거절합니다.”
-…!?
* * *
‘아니, 왜!’
나는 비명을 참고 싶은 기분으로 도마뱀의 머리를 쥐어뜯는… 아니, 도마뱀의 시야를 보았다.
지금 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면서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라운드로 다 경험한 탓에 실랑이고 나발이고 빨리 탈출하고 싶었단 말이다!
‘이거 완전 미친 고어류 괴담이라고!’
미친 기숙학교 괴담.
…이라고 백사헌에게 불리는, 현재 이자헌 과장이 실종된 이 어둠은 나도 충분히 위키로 접해본 적 있던 괴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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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이제 신부에게 키스하세요]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C-5012.
성 안티쿠스 기숙학교라는 명칭의 교육기관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일들에 관한 서술.
‘결혼식을 준비하는 신랑을 위한 학교’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 교육기관은 항시 교습 지원자들을 모집 중이며, 이를 위해 체험 교습기간을 운영한다.
탐사기록 대다수는 이 체험 교습기간을 수료하며 겪은 일에 대한 것.
이곳에서의 경험담은 반드시 수필의 형태로 작성되며, 일종의 자전적 후기처럼 읽힌다.
상류층의 결혼식에 필요할 것 같은 각종 교양으로 시작해 점점 의식적이고 기이한 디테일로 교육이 구체화 되며, 이 과정에서 결혼식의 정체를 추측하는 섬뜩함이 묘미.
담담한 수필 문체로 적히는 벌점 누적 경험담의 끔찍한 디테일이 숨을 조이는 고어한 괴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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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이때는 글로 적혀 있어서 괜찮았는데.
‘직접 보니까 이렇게 소름 끼칠 수가 없다.’
모든 자극과 감정에 둔한 130666의 몸으로도 그 끔찍함에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그 몸은 잠든 상태로 정신만 이자헌 과장의 신체에 접속한 상태니 좀 더 생생히 느끼는 걸 수도 있고.
‘아무튼, 이 방법 고안하고 나서 정보 끌어모으겠다고 기를 썼는데….’
곽제강도 탈탈 털고, 심지어 그 자식이 가진 C등급으로 꿈결 용액 꽉 채워 탈출 경험이 있는 사람 목록 중에서 인터뷰도 진행했다.
…경비반장님과 박민성 주임님 말이다.
현장탐사팀일 당시, 두 사람 다 결혼하지 않은 남성이라 대상자로 적합했던 모양이다.
-그걸… 알려달라고……?
…잠수 탔던 팀원이 갑자기 나타나서 회포도 제대로 못 풀고 꺼낸 말이라기엔 상당히 민망했다.
물론 그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또 곽제강에게 청 이사와 관련된 소식을 듣기도 했다만, 이건 나중에 다시 정리하는 걸로 하고.
일단 결국 급한 건 이거다.
이자헌의 탈출.
-절 믿어주십시오. 과장님.
-그냥 주도권만 넘겨주시면, 교습을 성공적으로 수료할 수 있도록 빠르게 조치해 보겠습니다.
<어둠탐사기록>를 토대로 탐사자 인터뷰까지 거쳐서 기준점과 변칙 요소, 약점까지 파악했다.
통과 기준도 알겠고, 약간 변칙적으로 합격할 수 있는 방식도 구상해 왔다.
‘그대로 해주시기만 하면 돼…!’
이자헌 과장님이 체험 교습에 낙제해서 교습을 반복 중이더라도 구제할 수 있다!
새로운 교습기간이 열리지 않고 이자헌 과장이 일종의 낙제 수업을 받고 있는 상태라도, 충분히 돌파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왔다는 뜻이다.
-과장님께서 반드시 합격하실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렇군요.”
예!
“필요 없습니다.”
…….
-예?
“예.”
아니, 이 외계 파충류는 절대로 일부러 시비를 걸려는 게 아니다.
정말로 필요가 없다는 거다.
…잠깐.
그렇다는 건 설마…….
-왜…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합격했기 때문입니다.”
…….
“체험 교습 기간 중 따로 선발되었습니다. 이곳의 하얀 신부와 결혼식을 치를 신랑 후보 중 하나로 정식 교습생이 되어, 결혼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잠깐만.
“이를 회피하기 위해 성화 포격 등의 방식을 고려했으나, 민간인 피해가 극심할 것을 고려해 보류 중입니다.”
…….
“노루 씨?”
-그러니까, 지금 과장님께서 곧 결혼하신다는 말입니까?
“이대로 변동 없이 진행된다면, 그렇습니다.”
미치겠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예. 신랑 후보는 결혼식에 어울리는 외양을 갖추기 위하여 매일 취침 전에 채혈을 진행합니다. 신부의 의상 색상과 유사한 창백한 얼굴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자헌 과장은 침대 협탁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근현대적 형태의, 피를 뽑는 주사 도구.
그런데 크기가….
잠깐만, 저렇게 크다고?
“해당 상태로 나흘 이상 경과 시, 이자헌은 빈혈 및 합병증으로 사망 고위험군이 될 예정입니다.”
…….
……과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