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57화
사건 현장 같은 결혼식장의 흔적을 둘러봤다.
정신이 혼미하다.
‘몇 명이나 죽은 거지?’
아직 하객석에는 불행하게도 이 미친 신랑 수업 괴담에 휘말린 ‘체험 교습생’들이 앉아 있다.
모두 정신이 나간 듯 표정이 없다.
…자리의 공백을 세어보았다.
열다섯 중 열하나, 사망.
삼분의 일도 안 남은 상태.
‘3할의 생존율….’
물론 외계 파충류들의 성화 포격보다야 낫겠지.
어차피 다른 사람들까지 구하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무슨 짓을 해도 분명 사망자가 나올 거라고생각했으나… TV 쇼에서 분위기 잡기 용으로, 죽는 건.
…….
[대답이 늦는군요. 친구. 아무래도 생방송의 여운에 젖어 있나 봅니다!]
하지만 동시에 확실히 인지한다.
‘이걸 브라운에게 ‘꼭 그럴 필요가 있었느냐’ 따위의 말로 떠들어봤자 소용없다….’
성공적인 방송을 위해서라면 더한 짓도 할 수 있는 괴담 속 사회자에게 주도권을 넘긴다는 건, 이런 상황을 예측했어야 했단 뜻이다.
직전에 경고를 받았다면 더더욱.
‘…그나마 전멸이 아니라 몇 명이라도 살아남아서 결과적으로는 다행인가.’
더 입이 쓴 건 뭔지 아는가?
나는 더 이상 죽은 사람을 보고도 큰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단순히 익숙해진 게 아니었다.
현재 나는 방울로 간신히 이지를 유지하는 부정형의 몸에 잡혀 있는 정신이기에.
지금 이렇게, 죽은 사람에 대해서 씁쓸함이라도 느끼는 수준의 감성을 유지하고 있는 게 차라리 다행인 상황이다.
…….
‘살아남은 사람들이 잘 돌아가는지를 신경 쓰자.’
그리고.
-브라운.
[흠.]
‘어떻게 생각하냐’는 브라운에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는 게 옳다.
-역시 전설적인 사회자다웠어.
[…!]
-결혼식을 망쳐주길 기대했는데, 아예 더 성공적으로 뜯어 고쳐줄 줄은 몰랐거든.
-덕분에 신부도 만족한 것 같고 말이야.
직전에 벌어진 일로 깨달았다.
‘그냥 결혼식 파투 내고 튀었으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신부’라는 존재가 만족했기에 상황이 생각보다 평온하게, 무사히 정리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혹시 계속… 시리즈로 만들 생각이야?
브라운이 생방송 시청률에 만족해했다는 것.
그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이걸 심야토크쇼의 새로운 시리즈로 편입하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이 신랑 수업 괴담이 도리어 더 고등급 괴담으로 변이하면….
[노루 씨.]
브라운의 유쾌한 목소리가 다정하게 말한다.
[당연한 말을 너무 조심스럽게 하는군요!]
…!!
[물론 다음 시즌까지는 조건만 된다면 제작해 볼 생각이 있지요. 제작자란 시청자의 반응이 좋은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되는 법입니다. 이걸 눈치채다니, 역시 내 친구는 방송 감각이 있습니다.]
-브라운.
[왜 그러지요, 친구?]
-그래도 심야토크쇼가 훨씬 재밌는 건 알지?
잠시 침묵.
[오, 그럼요. 당연한 소리를 합니다. 노루 씨!]
[내가 심야토크쇼를 소홀히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디까지나 조건이 된다는 가정하에 제작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입니다.]
[일단은 후일담을 방영하는 걸로 마무리하지요.]
후우.
[자, 크루도 이제 철수할 겁니다.]
짝짝.
허공에서 울린 소리에, 결혼식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밴드가 얼굴 없는 스탭들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해체되고 정리된다.
그들에게는 이목구비가 없음에도 그 중 몇몇은 왠지 낯이 익은 것 같… 아니, 떠올리지 말자.
‘너무 깊이 들어가면 또 끌려가는 수가 있다.’
가뜩이나 언급까지 해서 좀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단 말이지.
스탭에게 집중하려 하지 않자 자연스럽게, 공유받는 시야 끝에 걸리는 무언가로 시선이 간다.
하얀 벨벳으로 된 긴 카펫의 맨 끝에 있는 목적지. 결혼 맹세를 하는 장소.
주례대.
‘…….’
그것은 섬뜩할 정도로 박살 난 채 사방으로 터지듯 날아간 돌조각만 남아 있었다. 바닥에 남은 상흔, 찢어진 융단.
그리고 주례대가 있던 장소 그 아래로 뚫린….
검은 구멍.
깊은 곳.
아래가 보이지 않는 어둠.
‘…….’
직전.
‘신부’가 저곳에서 나왔다.
그 충격, 이자헌 과장의 검열된 시야로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엉망진창으로 뭉개지던 감각. 저 아래에서 잠들어 있던, 결혼식이라는 틀에 간신히 묶어 해석하던 무언가가….
“노루 씨.”
…….
“노루 씨. 시야를 돌리려 시도하지 마십시오.”
……!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나는 이자헌 과장의 육체 주도권을 빼앗아 시야를 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던 것 같다.
-…감사합니다.
“예.”
방송을 진행하는 내내 침묵하던 이자헌 과장은 생방송이 끝나자마자 몸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결혼식장의 풍경을 얌전히 둘러보고 있었다.
자기 몸으로 윙크를 날리고 생방송을 진행하는 미친 기행을 의외로 묵묵히 보기만 해줘서 고마운데, 역시 판단력이 훌륭한 베테랑 현장탐사팀답다.
지금도 브라운의 말을 막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
“노루 씨. 조언이 필요합니까?”
…….
-…만약에 필요하다고 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 겁니까?
“예. 브라운이라는 명칭의 토크쇼 괴담 속 사회자를 당신의 정신 체계에서 제거하십시오.”
으아악!
[오, 생방송이 없었다면 두 발로 걸어 나가는 대신 웨딩케이크나 장식했을 비루한 칼잡이가 뻔뻔한 소리를 하는군.]
자, 잠깐만.
-과장님. 그래도 지금 상황이 성화 포격 없이 탈출이 가능해졌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렇죠?
“예.”
후우.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든 게 누구인가! 바로 심야토크쇼의 진행자, 단 하루 만에 생방송 프로그램을 짜낸 엔터테이너입니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자라면 감사 인사를 해야 마땅한 상황입니다만.]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
“이제 제거하십시오.”
나는 드물게도 토크쇼 사회자 괴담의 말문이 막히는 상황을 목격했다….
-그, 그래도 보람은 있었지…?
[사라지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
그래…….
어, 어쨌든, 대략적으로 긴장감이 해소된 듯싶긴 했다.
‘…얼른 나가자.’
당장 둘을 떼어놔야겠다.
여러 의미로 피곤했다….
-일단. 이대로 정문으로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과장님.
기숙학교의 정문은 마치 생방송에 대한 항복을 선언하듯, 다시 자리에 나타나 촬영팀이 드나들 수 있도록 우악스럽게 개방되어 있었다.
나는 이자헌 과장이 생존자들을 먼저 문밖으로 보내는 것을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윤리적인 선택을 해주시는군.’
다행이다.
그러고 나서 이자헌 과장도, 문을 나선다.
활짝.
공유받은 시야로 열린 문 너머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항상 우중충한 날씨인 기숙학교 괴담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
햇빛.
그 속으로 발걸음을 디뎠다…….
…….
“고객님.”
나는 눈을 떴다.
하얀 공간. 빛과 입체로 이루어진 기이한 장소에 어느새 나는 앉아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건….
“우주 쇼핑몰에서 ‘이자헌’ 개체의 구출 시도 및 성공을 확인했습니다.”
우주 쇼핑몰의 도마뱀.
이번에는 회녹색이다.
아무래도 나는 VIP 퍼스널 쇼핑 때와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다시 이 외계 파충류들을 대면한 듯하다.
“이자헌 과장님은 무사히 돌아간 겁니까?”
“예.”
“직접 대화하고 싶습니다.”
“예.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잠시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파악했다.
이 외계 파충류들은 ‘우리’와 대화하는 게 이자헌과 직접 대화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로 판정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자헌이 우리이기 때문에.
모든 경험과 판단을 공유하는 하나의 거대한 정신 체계를 가졌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실감한다.
‘딱히 이자헌이라는 구성원을 손절했다는 감각 자체가 없을 것 같은데.’
그냥… 나의 일부분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부서진 손톱을 빼는 것, 화상 입은 상처를 긁어내는 것, 곯은 살을 절단하는 것.
스스로 안타까움을 느끼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니까.
정말 기이한 느낌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자헌 과장님’이라는 특정 개체와 대화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경험과 판단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 침묵.
“확인했습니다. 이자헌 개체가 현실에서 고객님께 연락을 취할 예정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일단 무사히 돌아간 건 확실한 모양이다.
“그럼 저도 이만 제 몸으로 돌아가면 되는 겁니까?”
이자헌 과장님을 구출하러 갈 때, 우주 쇼핑몰에서 그걸 ‘우리가 도움!’ 물건의 마지막 작동 단계로 설명해 줬기도 하고 말이다.
-호출자의 구출에 성공할 시, 호출에 응답했던 개체의 정신은 본래의 좌표로 돌아갑니다.
“예.”
역시 접객 도마뱀은 수긍했다.
그럼 얼른 돌아가서….
“보답은 차후에 수령하실 겁니까?”
“보답이라고 한다면….”
“이자헌 개체 구출에 대한 우리의 보답입니다.”
…!
“우주 쇼핑몰에서 제게 보상을 주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도마뱀이 어쩐지 우호적인 시선을 내게 보냈다.
좀 더 의미심장한.
“‘우리’가 보답할 겁니다.”
…….
‘우주 쇼핑몰’보다 더 포괄적인 지칭.
“무엇을 원합니까?”
정신이 퍼뜩 맑아진다.
‘이거.’
보통 기회가 아니다.
“…혹시 세광특별시에서 누군가를 구출하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건 예상했다.
‘그때 ‘우리가 도움!’ 버튼도 추천하지 않았지….’
당장 급한 그걸 제외한다면.
‘…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섣불리 대답하지 말자.
나는 치밀하게 고민하다가, 이윽고 하나를 골라냈다.
…….
…….
내가 백일몽 지하 격리실에서 세웠던 목표 중, 가장 명료한 것.
“저는… 사람의 몸을 되찾고 싶습니다.”
사람이 되고 싶다.
육체를 되찾고 싶다.
“지칭하시는 ‘사람의 몸’이란 21세기 현생 지구 인류의 몸을 의미합니까?”
“예. …가능합니까?”
즉답이 돌아온다.
“가능합니다.”
…!
“어떤 방식입니까??”
“자아가 소실된 인간의 육체를 이용하십시오.”
잠깐만, 그 말뜻은….
‘몸을 갈아타 버리라고?’
정말 외계인다운 발상이었다. 나는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더더욱.
…뉘앙스를 바꿔보자.
“혹시 지금의 제 몸을 사람처럼 쓰는 건 가능합니까? 제가 전에 백일몽 주식회사의 주임이었을 때처럼 말입니다.”
나는 침을 삼키며 도마뱀의 주둥이를 주시했다.
천천히 그 입이 열리며, 발음한다….
“예.”
…!
“그럼 그걸로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예.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보답을 전달하겠습니다.”
됐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싶은 기분으로 드디어 자리를 뜨겠다고 말하려다가….
어떤 추가 발상을 하나 떠올렸다.
혹시?
“저, 제 구출 도움이 ‘우리’의 성화 포격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던 게 맞습니까?”
“예.”
“그렇다면. 혹시 제 도움에도 성화 포격처럼 비용을 매겨서… 우주 쇼핑몰 구매 실적으로 잡아주시는 겁니까?”
도마뱀이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고객님의 발언을 합리적 추론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회원 승급을 축하드립니다.”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VIP 감사 카드?’
그런 생김새다. 그렇다면 혹시 VIP 다음 단계로 승급된 건가?
‘그거보다 높은 단계도 있었다니.’
과연 쇼핑몰이다. 나는 제법 휘황찬란한 금빛의 카드를 개봉했….
나는 우주 쇼핑몰VVIP!
놀라운 상승!
~감사 세포 동봉~
“…….”
“…….”
“……그, 쇼핑몰 디자인, 말입니다만.”
“예.”
“여러분이 직접 하십니까?”
“예.”
음.
많은 것을 이해한 기분이다….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예.”
나는 감사 카드를 조심스럽게 챙겨 들었다.
“또 뵙겠습니다.”
그리고 쇼핑 공간에서 아득히 밀려 나왔다.
* * *
부드러운 감각.
“포도야.”
눈을 떴다. 어느새 나는….
“정신 차렸어?”
대청마루에 누워 있었다.
재난관리국에서 마련해 준 내 거처.
그리고 아예 창호지를 열어젖힌 채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요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현무 1팀.
‘아.’
잘 돌아왔구나.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체온계와 심박 측정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지퍼를 살짝 열어서 꽂아뒀던 듯하다.
맥이 뛰는 부위를 찾느라 고생하셨을 것이다.
‘많이 준비해 주셨구나.’
약간 뭉클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얼른 알렸다.
감사 및 보고 :
▶ 무사 귀환
▶ 도마뱀 과장 구출 성공
아주 뿌듯한 결과였다.
“오~ 대단한데?”
최 요원이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뭐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긍정
“오케이! 이거 볼래?”
최 요원이 무언가를 들어 올린다.
그건 내가 주머니에 넣어놨던 작은 토끼 인형이다.
“네 친구 브라운 말이야.”
그래.
‘그러고 보니 요원님들이 전달해 줬다고 했지.’
한 번쯤은 감사 인사를 하려고 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품에서 흘러내려서 챙겨주신….
“토크쇼 사회자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