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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69화


세광특별시 2차 탐사의 결과.

“구출… 성공.”

재난관리국에서 이성해 대리가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세광특별시 지하철에서 사망 시 현실에서 깨어난다’라는 기믹도 성공적으로 통했다.

“다들 총 맞은 머리가 더럽게 아프다는 점만 제외하면 비교적 괜찮지. 공무원 양반은 아예 웃으면서 깼어.”

일행들은 러시안룰렛에서 ‘당첨’된 순서대로 사망 후 현실에서 깨어났다.

“근데 깰 때는 웃었는데 상황 파악하니까 웃음이 안 나오게 되더라고.”

나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후, 한 시간 남짓 하는 시간 동안 나는 계속 의식불명이었다.

일행들은 별별 고민을 다 하면서 결국 호유원을 반쯤 협박하려 드는 상황까지 치달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곧장 특별시 도로 들어갈 계획을 진짜로 짤 뻔했지. 다행히 네가 그전에 깼다만….”

…후우.

나는 다시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돌아온, 검은 보안팀 특수제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은 햇살이 드는 듯, 따스하고 부드러운 전경의 실내를 보았다.

여우상담실.

호유원은 약속대로 우물을 통해 재난관리국에 전송되는 통로를 ‘가로채서’ 다른 곳에 연결한 것이다.

입원용

휴식 공간입니다 ^^

새롭게 지어진 듯, 대기실 옆의 캐비닛 구석에서 연결된 밀실이 바로 이 공간이었다.

일종의 입원실처럼 보이는 이곳의 침대에서 사람들은 하나씩 깨어났고, 마치 차트표처럼 각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참고로 바로 옆에서는 깨어난 나를 보고 안도하던 요원들이 이제야 이 상황에 대해서 호유원과 굳은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겨우 대화를 하시네요! 아까는 순 협박뿐이라 정말이지 무서웠답니다….”

재난관리국 요원에게 대답해 줄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럴 줄 알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호유원이 세광특별시 탐사와 관련해서는 집착적으로 ‘어떻게든’ 지원할 수 있는 건 다 할 거란 거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어쨌든, 요원들은 내가 적당히 진정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려 했….

“또 무슨 무모한 짓을 한 겁니까.”

[오. 저건 질문이라기보단 확신이군요, 친구!]

아, 아니.

나는 다급히 상황을 설명했다.

연기와 필담을 동원한 나의 설명에 요원들은 내가 뿔 달린 방독면 괴물만 아니면 머리를 쥐어박고 싶다는 표정이 되었으나, 고영은 씨가 나를 데리고 도망쳤다는 말에는 점점 기세가 가라앉았다.

그런 류의 참담한 경험을 이미 겪어온 자들의 공감이었다.

“…박하 요원이 널 도와줬다는 거지.”

긍정

나는 고영은 씨가 없었다면 그 안에서 신체 다 털리고 딜러로 일하고 있었을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그리고….

“박하 요원이 왜 그 재난에 있던 건지는, 혹시 들었고?”

…….

“노루 님? 왜 저를 보시나요?”

내 시선에 따라 모두의 시선이 호유원으로 향했다.

질문 : 스파이 인력의 선정 기준

“제가 왜 알려드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스파이 인력의 선정 기준

추측 : 세광특별시 관련 인물 선정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안타깝다는 듯이 짐짓 눈썹을 내린다.

“하지만 정말 안 됐네요…. 그분은 세광특별시에 아예 갇혀 있는 모양이에요. 죽음으로도 도망칠 수가 없게.”

…….

“하지만 걱정 마세요. 여러분께서 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분을 도와드려도 괜찮답니다.”

개자식.

은하제 대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와 이자헌 과장만 모아서 작게 말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유인책 같은데 말이다…. 자기 프로젝트에 사람 계속 묶어두려고 큰 그림 그려놓은 것 같지 않냐.”

나는 차갑게 식은 기분으로 연기를 움직였다.

동의

언제부터 어떻게 그려놓은 그림인지는 몰라도, 고영은 씨가 세광특별시 출신이라는 것을 호유원이 몰랐을 것 같진 않다.

‘그렇게 세광특별시에 집착하는 자식이 그럴 리가.’

내가 깨어나자마자 했던 말도 그렇고.

-다시 들어갈 이유가, 생기셨나요?

…고영은 씨가 그 도시 안에 갇혀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말이다.

‘유쾌연구소와 관련된 장허운 씨를 뽑은 것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나를 고른 것까지.

단순히 재난관리국에 통과될 만한 성격의 직원들을 고른 게 아닐 거란 확실한 예감이 든다.

은하제 대리님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저 자식이 이번 탐사 목표는 더럽게 대충 잡아주더라니. 도로 처넣으려고 했나.”

“하제 씨, 다 들리는데요.”

“예. 들으십쇼. 저희 집 고양이 이야기입니다.”

이제 상사고 나발이고 지긋지긋하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게 시원한 것과는 별개로,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어디까지 봐둔 거지.’

물론 내 결정에 영향을 주는 일은 아니다.

애초에 이 괴담 세계관에 대해, 그리고 내가 소환된 정황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세광특별시의 탐사는 계속하기로 했으니까.

다만 이 기이한 불길함과 찝찝함은 계속 껄끄럽게 입맛에 남는다.

“주의하십시오.”

동의

그나마 이 상황에서 안도하고 위안이 되는 건 하나였다.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

“이성해 대리가 온댄다.”

이성해 대리님을 제대로 구출했다는 점. 그리고 놀랍도록 온전한 정신 상태였다.

“안녕하세여. 노루 님!”

바로 다음 날.

이성해 대리는 호유원에 의해 여우상담실에 등장했다.

재난관리국의 ‘검사’를 통과하고, 정보를 충분히 서술한 후에야 풀려났다고 하는데, 놀라운 점은 그 눈빛은 이전과 똑같았다는 점이다.

초록빛으로 번뜩이는 맑은 눈.

“모두 정말 감사해여!”

게다가 말투의 변화나 PTSD 증상, 괴로움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딜러의 말투를 쓰려고 하거나, 카지노에 해박한 지식을 무심코 흘리는 정도.

“음, 아마 신체 카지노에서 당한 오염도 봉쇄에 막혀서 빠져나오지 못한 게 아닐까 싶은데여.”

“아니, 오염은 둘째 치고 전신이 조각조각 분해됐던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입니다만.”

“엥? 고통은 순간인걸요. 이젠 안 아픈데 왜 힘들겠어여.”

심지어 태연했다.

우리가 첫 역에서 올가미에 걸렸다가 몇 주나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기이할 정도였다.

[아, 마치 양 떼 속 늑대 같군요. 태생적인 차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게 더 기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긴 했으나 다른 것 때문에 막혔다.

더없이 분명한 후유증.

“근데, 이게 안 움직이네여.”

다리.

…카지노에서 되찾지 못한 이성해 대리님의 신체 부위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여우상담소까지도 휠체어에 탑승해서 이동한 것이다.

“감각은 있습니까?”

“미약하게여? 근데 이상한 환상통도 있구, 정말 ‘저당 잡혔다’라는 말이 딱 맞네여. 제 의지가 안 통하는 느낌이에여.”

다리는 외관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아마 검사해도 이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뚜렷했다.

“눈도 교환한 쪽은 거의 안 보이네여. 흠.”

‘만약에 내가, 양팔이랑 골반을 레일에서 못 훔쳤으면….’

…오싹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에,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포도야.”

최 요원이 나를 쳐다보았다.

“박하 요원이 널 업고 뛰었댔지? 150대 신장으로?”

아.

“그러고 보니 계속 앉아 있는 것도 찌뿌둥할 텐데. 우리 포도도 한번 일어나서 걸어볼까?”

…….

후우.

다리 사용 불가능

사유 : 카지노에서 청구당함

“…!”

그래.

사실 나도 다리가 말을 안 들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말이다.

“노루 씨,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입니까?”

부정 :

이동 가능

그렇지는 않다.

“보여주십시오.”

이렇게.

나는 다리를 움직이지 않은 채로 다른 의자로 ‘이동’ 했다.

“…!”

검은 연기가 휩싸여서 녹아들 듯이 다른 자리에 나타나는 것.

정말 사람 같지 않은 몰골이었으나 일단은 운신의 자유가 있긴 했다.

나는 귀신처럼 여기저기에 연기로 연결해 가며 몸을 드러냈다.

짠.

허허, 하다 보니 뭐, 인간 같지 않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쁘지 않…….

…….

…아니, 잠깐만.

내가 방금… ‘짠’ 같은 의성어를 썼나?

‘…!’

방금 지인이 멸형급 재난에 방치된 걸 보고도.

평온하게?

섬뜩함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또다.’

세광특별시에서 느낀 심각성과 강렬한 감정이 흐려지는 것.

이성해 대리님이 깨어나지 않았을 때와 똑같은 증상이었다.

‘고영은 씨가 어떤 상황일지 걱정한 게 바로 직전인데.’

…앞으로도, 의식적으로 신경 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머리에서 잊히진 않는다는 것이다. 계산하고 계획은 세울 수 있다.

‘그래도 조심하자.’

어쨌든, 나는 선보이던 것을 멈추고 다시 원래 앉아 있던 의자로 복귀했다.

그리고 내 묘기 대행진에 박수를 쳐주던 이성해 대리님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씀부터 드려야 했는데 제가 늦었어요.”

이성해 대리가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닷. 덕분에 살았어요. 특히 노루 님은 다리도 못 쓰시게 됐구….”

그리고 우리를 빤히 쳐다보듯 응시한다.

“그런데 누구도 원망도 안 하시구요. 음.”

확인한 듯이.

“여러분은… 정말로 착한 사람들이시네여.”

눈이 마주쳤다.

“제가 꼭 잊지 않고 갚아야겠어여.”

“에이, 뭘 또 갚겠대요. 하지만 꼭 갚아야겠다면 그 간악한 사이비 회사를 퇴사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앗, 그건 안 되구요.”

“힝. 아쉬워라.”

“뭐, 언제 도움받을 수 있으면 거절할 생각은 없지. 그보다….”

은하제 대리가 자신의 결손 부위를 툭툭 쳤다.

“돌고래 대리도 나 같은 물건이 하나 필요하지 않겠나 싶은데.”

정확히는 빈 왼손을 대체하는 장비를.

그렇다.

추천 : 보조 장비 구하기

사용 기한 : 카지노에서 신체를 되찾을 때까지

이 세계관에서는 결손 신체를 보조하는 방법이 많다.

당장 지금 입 한 번 열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무슨 말을 해야 제일 안전하면서 이득일지 고민하는 백사헌의 왼쪽 눈처럼.

사실 나도 필요하기도 했고 말이다.

‘세광특별시에 다시 들어가면 다리가 없는 모습일 테니까.’

게다가 약속도 있다.

‘우리’.

이자헌 과장님이 소속된 파충류 외계인 집단이 나에게 사람의 모습을 취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사람 모습으로 돌아갈 때 걷는 것도 불가능하니, 어느 쪽이든 나도 장비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져?”

이성해 대리님이 방긋 웃었다.

“산양 씨도 구하러 가야하구여.”

…!

“그렇게 착한 사람은 도와드려야죠. 저도 큰 도움을 받기도 했구요!”

그리고 계산하듯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한다.

“역시 회사에 복귀해서 장비를 좀 만들어야겠네여.”

“만든다면….”

“별관 가는 거져.”

나는 오랜만에 기억에 떠올려냈다.

백일몽 직원들이 장비를 챙길 수 있는, 별관에 보관 중인 황혼 등급 어둠들을.

[유쾌연구소의 장난감 메이커 / Qterw-E-07]

[친절한 씨앗 키트 / Qterw-E-99]

[제사를 드리오니 / Qterw-E-404]

이 중 현장탐사팀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 ‘친절한 씨앗 키트’였으나, 이번에는… 좀 더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다른 쪽들이 더 유용할 듯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회사는 별관의 어둠을 이용한 장비 제작을 지원하지 않는답니다….”

“그럼 몰래 하면 되겠네여.”

순간 호유원이 말문이 막혔다.

“장비 제작의 지원이 중단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별관에서 일이 터졌다는데, 자세히 알아보진 않아서 모르겠네요.”

“그렇군요. 알아봐 주십시오.”

“큽.”

뒤에서 최 요원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청동 요원이 등을 치는 것 같다.

“…그럼 제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저도 도움을 드려야겠네요. 장비가 필요하시댔죠?”

“넵. 이사님이 특별 허가라도 내주시게여?”

“음. 공식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호유원이 빙긋 웃었다.

“몰래 쓰게 도와드릴 수는 있지 않을까요?”

“…!”

“그러기 위해선….”

호유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내부 협력이 필요할 수도 있겠네요….”

정확히는, 내가 입고 있는 보안팀 제복을.

“보안 관계자 같은?”

그리고 나는 호유원이 말하려는 게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 * *

“후우.”

박민성은 지난한 하루를 끝내고 제복의 목 지퍼를 내렸다.

최근 별관에서 일어난 소동으로 업무가 가중되고 있었다.

130666이 호 이사의 개인 업무에 차출된 이후, 다소 방치 상태이던 그들도 계속 동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으려나.’

딱 한 번 소식을 전해 듣긴 했지만, 하루아침에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는 환경에 익숙한 그는 최악의 예상과 최선의 기대를 번갈아 하는 중이었다….

경비반장, J3는 보고를 위해 아직 자리에 없었기에, 그는 보안팀의 생활 구역의 낡은 소파에 표정 없이 앉았다.

피로에 눈을 감으려는 순간.

“민성아.”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대리님…!”

익숙한 얼굴이 뒤에 서 있었다.

순간 어둠에 의한 환각인가 했으나, 머리를 휘젓는 손은 확실한 감각이 있었다.

“오랜만이다.”

그리고 은하제의 뒤로 보이는 두 인영.

“노루야, 과장님….”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비록 상황과 외관은 완전히 달라졌기에 전과 같진 않았지만, 그 익숙한 구도에 박민성은 순간 현장탐사팀 D조로 돌아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질문 : 130666 담당 보안팀의 안부

“우리야 잘 지내지….”

박민성은 약간 울컥한 상태로, 그 옛날 현장탐사팀 D조의 인원들이 소파에 다가와 앉는 것을 보았다.

“자, 우리가 긴히 할 말이 있다.”

은하제 대리가 자신의 어깨에 툭 팔을 걸쳤다. 그때처럼.

‘일할 때 이런 말을 많이 썼는데….’

약간 감상에 젖은 박민성은 무심코 요 며칠 중 가장 크게 미소 지으며 그들을 보았다.

“네, 어떤….”

“회사에서 훔칠 게 있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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