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70화
우리의 계획은 간단했다.
“보안팀을 섭외한다, 별관에 잠입한다, 그리고….”
은하제 대리님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장비를 제작한다!”
참고로 요원님들의 반응은 이렇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
“청동아 쉿, 즐겁잖아.”
“하….”
그 모습을 본 은하제 대리가 씩 웃으며
“일단 재난관리국 요원님들은 빠지십쇼. 이건 우리 간악한 자본주의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끼리 해볼 테니까.”
“어이쿠, 아쉽네요.”
그리고 세부 계획 설계에 들어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이거다.
이성해 대리의 출입.
“흠, 제가 들어가는 방법이 문제인가여?”
“아무래도 휠체어 처음 타보면 시행착오가 있을 것 같긴 하지.”
하지만 놀랍게도 제법 현란하게 휠체어를 움직이는 이성해 대리를 보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평지에서 도주 속도에는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여차하면 휠체어째로 우리 과장님이 들고 뛰실 테니까. 그렇죠?”
“예.”
“좋았어. 그럼 이걸 기반으로 생각해 보고….”
백사헌이 여기서 회심의 각을 보았다.
“저도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
“콩고물 노리는 거 다 안다. 뭐, 멀쩡한 팔 잘라서 교체라도 하게?”
그리고 침몰했다.
과연 사택 2층에 아무렇지 않게 진입하던 전직 기자, 은하제 대리님의 감은 놀라웠다….
하지만.
동행 권유 : 염소
“…!”
“오.”
‘콩고물 줘야 계속 써먹을 수 있지.’
백사헌의 눈은 확실히 세광특별시에서 유용했기 때문에,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좋았다.
‘자기 목숨 아까워하다 보니 잠입에서 트롤짓할 것 같지도 않고.’
호유원의 프로젝트가 건재한 한, 돌발행동에 대한 우려도 깊게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무작정 편들어줘도 뻗댈 테니….
사유 : 감시
“오케이.”
“…?”
백사헌은 왠지 대단히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으나 무시했다.
다행히 시원한 승낙이 떨어진다.
“그리고….”
은하제 대리님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노루는 지금 보안팀 특수부서 소속이니까 할 수 있는 역할이 무궁무진하겠구만.”
긍정
“그럼 인원은 다 확정되신 걸까요?”
“옙.”
백일몽 주식회사 인원으로 구성된 장비 괴도단 모든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그리하여….
“…노, 노루야. 이게 무슨 소리야?”
몹시 당혹스러워하는 박민성 주임님을 만나기에 이른 것이다…….
‘주임님….’
멀쩡한 이자헌 과장님을 놔두고 뿔 달리고 연기로 소통하는 비인간 직원(130666)에게 설명을 요청할 정도면 얼마나 당황하신 겁니까….
아니 이 경우에는 과장님 쪽도 파충류 외계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연기를 최대한 섬세하게 다루려 애쓰며 전했다.
목적 : 신체를 대체할 전용 장비 제작
“신체를 대체해?”
그때.
“음.”
보안팀 휴게실의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인영이 들어선다.
만사가 귀찮은 듯, 어깨를 늘어트린 마른 체구의 경비 직원.
J3.
이미 다른 사람이 휴게실에 몰래 들어온 것을 문밖에서도 알아차린 듯,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는 전혀 동요가 없었다.
다만 나를 보자 고개를 들어준다.
“…아.”
오랜만입니다. 반장님….
“저기, 아예… 돌아온 건가…?”
부정
“그렇구나….”
질문 : 안부
“나야… 똑같은데…….”
하지만 빛바랜 듯한 동공이 순간 날카롭게 내 다리를 본다.
“다리가… 왜 그래요?”
임무 중 부상
“…….”
괜찮습니다. 그것 때문에 온 거거든요.
나는 연기로, 그리고 은하제 대리님은 말로 한 번 더 경비반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별관에서 장비 도둑질 좀 해볼 건데 협조 가능하냐고.
그리고 물론 이 사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죠, 뭐…….”
“…끝입니까?”
“네…….”
“아, 이거 불법이 아니라 호 이사가 은밀히 진행하는 일입니다.”
“상관없는데… 음.”
“…….”
은하제 대리가 ‘이 사람 원래 이런 사람이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렇게 보셔도 저는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으로 대답을 못 해 드립니다….
어쨌든 경비반장의 화끈한 협조에 기초가 마련되었다.
‘좋아.’
다만. 경비반장은 조용히 내게 다가와서 이런 말을 하긴 했다.
“있잖아요…. 부탁했던 거, 했는데… 좀 나중에 말하면 되나….”
아.
긍정
맞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경비반장님….
그리고 우리는 각자 소파와 바닥에 자리를 잡고, 드디어 별관에 관한 이야기로 자세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별관의 현재 상황에 관해 진술해 주십시오. 개인적인 판단일 경우, 의견이라는 것을 명시해야 합니다.”
“예옙, 그러니까….”
그리고 상당히 섬뜩한 설명이 이어졌다.
“격리 실패했습니다.”
“…!”
별관에서 어둠이 탈출한 것이다.
물론 놀라울 만큼 드문 일은 아니긴 했다.
“당연히 그거 제압하라고 보안팀이 있는 거니까, 연례행사긴 하죠. 그런데 문제는….”
박민성 주임님의 한숨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 어둠이 다시 완전히 격리하기가 까다로워서, 아예 그 지하 2층 전체 보관 구역을 통째로 격리해서 통제 중이거든요.”
그리고.
“지하 2층에 우리가 장비 제작에 쓰려는 황혼 등급 어둠이 몰려 있지.”
“예….”
박민성 주임이 한숨을 참는 것 같더니 우리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요. 저보단 역시… 저, 반장님?”
경비반장이 눈을 느리게 꿈벅이며 말한다.
“두 달 이상은… 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나…?”
“두 달이나 걸린답니까?”
“응…. 그 층에서…… 실종된 직원도 있을걸….”
침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보안팀 인력도 교대로 매일 밤 투입될 만큼, 상당히 까다로운 상황이라고 한다.
“후우. 그래도 이 정도 인원이면… 들어가서 장비 뽑는 것 정도까진 당연히 버틸 것 같긴 한데.”
경비반장은 은하제 대리님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근데… 그 층에서…… 움직이는 것보다도… 별관 자체에 어떻게 들어갈 건지…… 정했어요?”
맞다.
애초에 별관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문제긴 했다.
우리가 들어갔다고 기록이 남는 건 좋지 않고, 은하제 대리님은 심지어 퇴사처리된 상태니까.
결국….
“다른 신원으로 들어갈 겁니다.”
“다른 신원이요?”
“예.”
별관의 1층이든 3층이든 접근 권한을 달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신원.
그리고….
무서워서라도 어디서든 시비가 안 걸리고 자연스럽게 통과할 만한 조합.
“민성아.”
“네.”
“우리 정예팀 A조인 척할 거야.”
“…!!”
* * *
백일몽 주식회사 별관.
새벽으로 넘어가는 어두운 밤 시간대.
“휴우.”
현장탐사팀 올해의 신입사원은 겨우 오늘 받은 어둠의 관리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손에는 F등급 꿈결이 들려 있었으나, 지치고 피로했다….
‘빨리 가서 자자.’
겨우 진정된 공포와 풀린 긴장 때문에 더 나른했다.
하지만 현관에서 드디어 바깥으로 나서려던 순간, 그는 문으로 들어오는 세 인영을 보고 벼락처럼 발을 멈췄다.
맨 앞 직원의 인상이 지나치게 아이코닉 했기 때문이다.
검은 포니테일, 훤칠하고 호리호리한 신장, 날카롭고 화려한 네일, 그리고… 살벌하게 번뜩이는 두 동공.
바로 진나솔 대리였다.
‘정예팀…!’
신입사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처럼 ‘보충 합격’한 인원 중 두 명이, A조의 탐사에 따라갔다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이미 보충 합격자들 사이에 널리 퍼진 상태였다….
그중 한 명은 아직도 혼수상태로 회사 연계 병원에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쪽입니다. 조장님.”
그리고 그 뒤로는 청둥오리 가면으로 알려진 A조의 조장과, 다소 굳은 얼굴이나 침착해 보이는 주임이 뒤따랐다.
저 주임은 최근에 A조에 발령 났다고 하던가.
‘…부럽다.’
소원권에 가까운 자들.
특히 이미 소원권을 타봤다는 A조의 조장을 보며, 신입사원은 침을 삼켰다.
뭐라도 말을 한번 붙여보고 싶기도 했다.
‘끈을 만들어두면 도움이 되는 거 아니야?’
아직 현장탐사팀 정예들의 잔인할 정도로 능력지상주의적 면모를 피부로 경험하지 못한 자의 착각이었다.
그래서 그 신입사원은 헛기침을 하며 현관 앞으로 슬그머니 접근했으나….
세 사람이 뒤에서 ‘옮기는 중’인 물건을 보는 순간 멈췄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것.
휠체어 위에 구속된 그것은 방독면을 쓰고 있었으며, 노란 눈이 사방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저거…!’
입사 오리엔테이션에서 봤던 괴물이다.
별관 지하 13층에 서식하던, 기이하고 압도적인 존재.
이제는 그것이 보안팀 특수직원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그럼에도 반사적으로 신입사원은 얼어붙었다.
드르르륵….
그 특수부서 직원은, 휠체어 같은 무언가에 결박된 채, 끌려서 이동되고 있었다….
“…….”
침을 삼킨 신입사원은 순간 도망갈까 주저했으나, 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다가가서 A조에게 말을 붙였다.
‘좋은 화젯거리도 있는 거잖아!’
물론 가장 상급자에게!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
“저, 저는 Q조의 신입사원, 이승조입니다.”
“…….”
“과장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무시도 아니었다.
왠지 A조 조장은 자신을 그냥 멀뚱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 어어??’
“비켜.”
“…!”
그때, 자신을 툭 민 진나솔 대리가 거침없이 현관으로 들어갔다.
“과장님, 들어가시죠.”
“예.”
그제야 자신을 보던 A조 과장도 시선을 떼고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임은 자신을 보지도 않고 휙 지나갔다.
‘……??’
아니….
그, 무시당했다고 슬퍼하거나 가슴 서늘해하기에는, 뭔가 반응이 좀 이상하지 않았나…?
“지하 3층 통행증 부탁드립니다.”
“예. 어느 어둠에 접근하시려는 건가요?”
“코드 1575, 뻐꾸기 괴담입니다.”
“잠시만요.”
카운터의 갈색 머리 보안팀의 응대가 끝나자, 신입사원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말을 붙였다.
“저기, 혹시 별관 13층에 보내시는 겁니까?”
“……뭐?”
“사실 제가 오리엔테이션 때 저 직원을 만났었거든요. 거의 죽을 뻔했는데, 살아남았죠.”
‘엘리베이터도 같이 탔는데 기지를 발휘했다’ 등, 아닌 척 그런 식의 무용담으로 흥미를 끌어보려던 찰나….
“그렇군요.”
A조 조장이 그렇게 대답했다.
“…….”
“…….”
…??
그 순간.
“그래서?”
“…예?”
“그래서 어쩌라고.”
짜증을 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비켜. 일 못 하는 새끼들일수록 이렇게 방해만… 하.”
짜증스럽게 자신을 힐끗 본 진나솔 대리는 휙, 보안팀 카운터에서 내미는 출입증을 낚아채더니 뚜벅뚜벅 걸어서 별관 복도로 사라졌다.
다른 A조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
신입사원은 멍하니 굳어서 그 광경을 보았다.
물론 등 뒤에서 보안팀 카운터에 앉아 있던 박민성이 안도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였다….
‘으아아악!’
그리고 ‘A조’가 별관의 지하 3층 복도로 진입한 뒤.
“후우.”
세 사람은 환각을 풀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김솔음에겐 익숙할 인영들이 드러났다.
세광특별시 탐사팀.
-사용하면 A조로 인식될 거예요.
호유원에게 받은, 변장용 백일몽 물약을 사용한 그들은 무사히 입구를 통과해 별관에 진입한 것이다.
진나솔 대리 역할이던 은하제 대리는 팔목을 돌렸다.
“아니 과장님, 왜 대답을 하셔가지고…! 외부인이 말 걸면 대답하지 말라고 합의했잖습니까! 간 떨어질 뻔했네.”
“그렇군요. ‘그래. 정보 캐낼 만한 대화면 슬쩍 들으면서 맞장구는 쳐보자고’라는 사흘 전 송골매 대리의 발언을 따랐습니다.”
“……그건 과장님은 제외입니다.”
“? 예.”
은하제 대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립다, 민성아….’
이럴 때 맞장구 끝내주게 쳐주는 후배가 있어야 즐거운데, 지금 막내는 필담만 가능하고 기껏 데려온 놈은 싹수 노란 염소 자식이다. 에휴.
그래도 휠체어에 앉아 있는 막내는 꼼꼼히 도둑질 진행사항을 체크 중이다.
CCTV 확인 완료 : 작동 중지
지하 3층의 CCTV는 호 이사의 수작에 의해 ‘마침 고장이 나서 꺼져 있었다’ 상황이었으며, 카운터의 박민성 주임은 ‘어쩐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증언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분장한 A조의 경우….
“오늘 어둠에 들어갔다는 거지.”
그렇다.
A조는 호유원의 지시에 따라 ‘비밀리에 몰래’ 프로젝트성 괴담에 투입되었으며, 이것은 회사 사람들에게 고지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별관에 A조의 모습으로 와도 누군가 ‘왜 여기 있냐’라고 질문할 위험을 성공적으로 방지한 상태.
“A조가 호 이사 라인이라 딱 적당했지. 아니면 그 조장님이 절대 우리 과장님 좋을 일을 할 리가 없는데 말이야.”
진나솔이라는 엄청난 인물을 덕분에 흉내 내보게 되었다며, 은하제 대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대단히 믿음직스러워질, 그녀의 이전 소속 조장을 돌아보았다.
“이제부터 인원 점검 후 위층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옙. 그럼… 노루야?”
그때.
휠체어에 앉은 130666의 형상을 한 김솔음에게서,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연기가 흔들린다.
“괜찮냐?”
…….
긍정
“…그래.”
은하제 대리는 그녀의 후배가 이 별관의 지하 13층에 처박힌 채 이것과 똑같은 형태의 복도에서 반년간 맴돌기만 하며 갇혀 있었다는,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거의 모든 현장탐사팀의 증상이었기에, 눈여겨 체크 후 넘어갔다.
“좋아. J3라는 그 양반이 오늘 지하 3층 관리자라니까, 들어가면 보겠구만.”
긍정
그럼 체크할 건 다 끝났다.
남은 건 실행뿐.
권유 : 돌고래 대리와의 소통
“예. 시행하십시오.”
그러자.
휠체어에 결박되어 있던 듯한 130666은 아무렇지 않게 휠체어의 뒤편에 녹아들 듯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만여.”
삐걱.
130666의 앉아 있는 척하던 육중한 휠체어의 안쪽 공간에서, 이성해 대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130666의 어두운 제복 차림새와 검은 연기 덕에 성공적으로 가려진 채 반입된 것이다.
“후우. 감사합니닷.”
“별말씀을.”
그리고.
“자, 그럼 골라봅시다.”
유쾌연구소의 장난감 메이커 / Qterw-E-07
친절한 씨앗 키트 / Qterw-E-99
제사를 드리오니 / Qterw-E-404
“이제부터 우리는 지하 2층에서 격리 실패한 어둠을 피해서 탐색을 다녀야 할 텐데, 이중 어떤 곳은 아예 접근이 불가능할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순서를 정해야 한다.
질문 :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장비 제작용 어둠
“흐음….”
이성해 대리는 곧 한 군데를 가리켰다.
“여기로 가져.”
유쾌연구소의 장난감 메이커 / Qterw-E-07
“…!”
일명, 버려진 토이스토어.
연구팀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장비 제작용 어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