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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03화


세광특별시의 지하철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를 기억한다.

사람 몸으로 깨어난 안도, 혼란, 그리고 소름 끼치는 공포.

마지막에 올가미에 목이 걸려 죽을 때의 처참함까지.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감각은 무뎌지고 둔해졌다.

‘어차피 살아나니까.’

마치 게임처럼 말이다.

이 세광특별시에서 경험하는 일들이 끔찍하다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본래 어둠에서처럼 살얼음판을 걷는 듯, 생존의 공포를 느끼며 다니지는 않았다.

안락사 약을 먹고 죽는 것도 어느새 마치 외부로의 이동 수단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도 사망자가 나오진 않을 것 같다는 그 무의식중의 안일함.

그리하여 결과를 마주한다.

사망한 몸에 의식이 그대로 남은 채 괴담에 갇힌 탐사 인원들을.

…은하제 대리님과, 청동 요원님을.

[오, 죽은 몸이라도 이곳에서는 생전처럼 사고하며 움직이긴 할 겁니다.]

[전신이 썩어 문드러지고 뼈만 남게 되어도 그 뼈를 달각거리며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신경과 근육이 썩으면서 움직일 수 없을까요? 그러고 보니 뇌와 뼈가 분리되면 과연 어느 쪽에 의식이 남을지도 확인할 수 있겠군요!]

[오 친구, 마음 아프지만 흥미로운 탐구가 아니겠습니까….]

“…….”

아니.

아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끝나는 건….

‘사실 이 세상에서 흔한 일이지.’

나는 얼어붙었다.

사람이 괴담에서 실종 당하고, 죽고, 죽느니만 못한 꼴을 당하고, 죽은 이후에도 영원히 고통 속에서 서서히 자아가 붕괴되는 것.

혹은 제정신으로 그 모든 것을 견디는 것.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그 모든 것들이, 애초에 이 세상의 존재 의미가 아닌가.

<어둠탐사기록>의 짜릿함은 그런 의미니까.

‘탐사 기록’ 속에서, 그 누구라도 상상도 하지 못할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아무 맥락도 거창한 의의도 없이.

그리고 이게 그 결말이라면….

‘아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건 탐사 기록이고, 이건 현실이다. 아니, 탐사 기록이라도 개연성 있는 설명을 덧붙인다면 바꿀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

내가,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일….

-노루 씨. 당신은 스튜디오가 아닙니다. 당신이 운영하는 장소가 이 고립된 곳에 없는데, 어떻게 그들을 ‘이곳에서 풀어줄’ 겁니까?

고개를 들었다.

망상홈쇼핑이 ‘압류’를 당하며 텅 빈 공간에 붙은, 단 하나의 설명문을.

임대 문의

■■■■-■■■-■■■■■

“…내가 여기를 임대한다면?”

[오!]

이 오후역의 빈 공간을 내가 차지한다면.

“내가 망상홈쇼핑처럼 여길 운영하면, 세광특별시에 내가 ‘운영하는 장소’가 생기는 거잖아. 그러면 이 ‘운영하는 장소’에서 두 사람을 풀어줄 수 있어. 그렇지?”

[설득력 있는 추론입니다. 노루 씨!]

나는 당장 임대 문의 아래에 적혀 있는 연락처를 읽으려 애썼다.

■■■■-■■■-■■■■■

…잘 읽히지 않는다. 머리가 이상하게도 혼란스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올라왔다.

하지만 내 손은 무의식중에 스마트폰에서 검열된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화면 위에도 검열되어 읽을 수 없는 번호가 표기되고,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상하고 단조로운 기계 연결음이 들린다.

뚜우우우-

달칵.

-혈액방송국입니다공간대여를원하시면■번을피값변제를원하시면■번을방송출연을원하시면■번을누르세요

나는 공간대여를 위해 ■번을 눌렀다.

-확인했습니다당신이위치한임대용공간의비용을문자로안내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

뚝.

전화가 끊기고 문자가 온다.

스마트폰 화면은 기이하게도 치직거리며 단어가 깜박인다….

대여공간 : 상업용

(점포 및 오피스)

납부 품목 : 신선한 혈액(지성체)

보증 담보 : 7999L

월간 납부금 : 59L

“…!”

나는 이 역의 이름이 왜 ‘혈액방송국’인지 알았다.

‘비용이… 피야.’

악의인지 뒤틀림인지 모를 그 비정상성에 등이 오싹해진다.

[흠, 제법 괜찮군요. 금을 혈액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약간 손해를 보겠지만… 입지가 안 좋은 만큼 인상적으로 저렴합니다!]

저렴하다고?

저게?

사람 몸에 대략 4L 정도의 혈액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건 15명 정도의 사람 피를 남김없이 짜낸 정도의 금액인 것이다….

“…내가 일용직 계약서 두 장을 제외하고, 남은 서바이벌 상금을 전부 사용하면… 저 보증금만큼 혈액을 살 수 있을까.”

[어렵겠지요. 2할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또 이 브라운에게 빌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친절한 권유를 하는 자가 따스하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

나는 고개를 들었다.

“…우선은 다시 임대 문의를 해보려고 하는데.”

[좋습니다. 얼마를 빌리고 싶습니까, 친구?]

“…그보다, 혹시 내 말을 상대에게 전달해 줄 수 있을까, 브라운. 네가 나보다 비즈니스 전문가잖아.”

[이런, 그토록 적절한 부탁은 거절하기 어렵지요!]

“…고마워.”

나는 어둠 속에서 내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하는 사회자의 장갑 낀 손을 보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리조트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안 돼.’

리조트의 주화를 더 천문학적 금액으로 써서 쏟아붓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리조트 운영에 악영향이니까.’

그리고 대놓고 악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마스코트로서 할 수 없다.

주화, 선물을 어느 정도 뿌리는 건 홍보의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간 무리 없이 해왔으나, 그게 ‘보증금’ 수준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여긴 테마파크 홍보에 거의 실익이 없을, 고립된 도시 지하철역일 뿐이니까.

‘그 정도 금액을 투자하는 건 마스코트의 정체성을 가지곤 불가능해.’

그리고 그쯤 스마트폰에서 아까 들었던 무감하고 이상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연결됐습니다.]

“고마워. 그럼 이렇게 질문해 줬으면 해.”

나는 침을 삼켰다.

“…임대 공간의 일부만 빌리는 건 가능합니까? 전체 면적의 1/10, 아니, 1/20 정도만.”

[호오!]

그래.

‘다 빌릴 수 없다면 일부만이라도 괜찮잖아.’

중요한 건 장소가 있다는 거고, 그럼 일용직 계약서의 내용도 자연스럽게 승계받을 수 있다…!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보증금과 렌트 비용을 안내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대여공간 : 상업용 (1-20)

(점포 및 오피스)

납부 품목 : 신선한 혈액(인간)

보증 담보 : 499L

월간 납부금 : 3L

[흠, 소박한 금액이 됐군요.]

됐다.

정확히 1/20 금액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분명 상금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상금에서 차감해 주면 되겠습니까, 친구?]

“…그래. 보증금은 그걸로 부탁할게.”

그리고 그 순간.

임대문의 공지문이 이동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공간’이 나타난다.

“…!”

계단 바로 옆에 있던 공지문은 어느새 반대편 벽으로 옮겨갔고, 공지문이 부착되어 있던 유리문 안으로 검붉은 선이 생긴 것이다.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작은 평수의 공간.

내가 임대하겠다고 이야기한 넓이로, 망상홈쇼핑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공간이다.

그리고 구석에는 어느새 빨간색 우체통이 놓여 있다.

우체통은 특유의 편지 로고 대신 검붉은 역십자가가 마치 말라붙은 피처럼 손가락으로 쓱 그린 듯 덮여 있다.

그리고 문구까지.

혈액방송국

월간 납부금 : 미지불

아무래도 여기로 임대료를 지불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자, 그럼 렌트 비용도 상금에서 차감할 겁니까?]

“잠깐.”

나는 임대료를 직접 지불하기 시작했다.

[…노루 씨?]

우체통 입구에 팔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챙겨온 물자 중 군용나이프를 꺼내, 그 팔을 긋는다.

통증과 함께 우체통 안으로 내 혈액이 쏟아진다.

“…!”

하지만 절박함과 긴장으로 통증조차 그리 강력하지 않다.

‘혈욕조에서 했던 일이 떠오르네.’

입구에 집어넣은 손안에서 액체가 흘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친구!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상금 아끼기.”

나는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 즈음에 천천히 저등급 재생 물약을 들이켰다.

서서히 회복되도록.

그리고 피가 멎고 나서야 통에서 손을 꺼냈다.

…절반 정도는, 지불한 듯하다.

“브라운, 임대료로 아직 지불하지 못한 양만큼만 상금에서 차감해 줄 수 있을까.”

이걸로 망상홈쇼핑에서 물건을 좀 더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했다.

더는 안일하게 굴면 안 된다.

[오 맙소사….]

[시청자들이 기절초풍했겠군요. 정말 충격적인 섬네일 컷이 나왔겠습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브라운이 한숨과 함께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월간 납부금 : 지불

역십자 우체통이 표식과 함께 사라지는 동시에, 내가 임대한 작은 공간에 전등이 들어왔다.

“…!”

그리고 동시에 어둠 속에서 내 옆에 있던, 거대한 사회자의 검은 실루엣은 어느새 사라졌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착한 친구’로 내 옆에 남아, 밝은 공간에서도 대화를 계속한다.

방금 내가 저지른 일에 여전히 탄식하면서.

[그래요. 어쨌든 노루 씨가 운영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생기긴 했군요.]

[하지만 과연 어떤 가게를 운영할 겁니까? 무엇보다… 누구에게 운영을 맡길 겁니까? 이 지역에서 할 일이 많은 내 친구는 작은 가게에 처박혀 장사를 할 순 없을 텐데요!]

[하지만 그렇다고 리조트에서 그 촌스러운 산장지기를 빼돌리면, 당신의 아름답고 소박한 리조트는 지배인이 없어지겠지요. 결국 당신을 부를 겁니다….]

“…….”

거기에 대해서는 딱 하나.

생각나는 방법이 있긴 했다….

나는 문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직도 처분하지 못했던 동강 난 시체를 그 속에서 꺼냈다.

바로 김허운.

서걱

…본관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명찬란교 간부에게 두 동강 나며 죽었던 신입사원.

장허운과 같은 시설에서 자랐다가, 소원권으로 장허운의 소원이 이루어지며 살아났던 자.

그리고.

-장허운을 거둬주신 것처럼, 저희도 전부 거둬주실 수 있을까요?

내게 고용되고 싶다고 간청했던 사람.

[오, 하지만 이건… 시체가 아닙니까? 시체는 고용계약서에 사인할 수 없을 텐데요!]

그렇다.

“하지만 이 사람은 구두로 이미 입사 의사를 밝혔었거든.”

그렇다면, 지금도 그 의지가 변함없는지 물어보는 ‘면접’을 진행할 수 있다.

만일 내가 이곳에 만드는 것이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일부라면.

그 마법 같은 공간이라면 말이다.

[인상적이군요! 그럼… 지금 시작할 겁니까?]

“…….”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내가 임대한 ‘공간’ 안에서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오염을 불러냈다.

노란 마스코트.

두툼한 인형탈이 나를 감싸고, 그 두꺼운 솜덩이 같은 부드러움이 자리 잡는다.

시 작 할 게

마스코트답게 보기 좋게 가슴을 두드렸다.

하지만 탈 속에서 손이 떨린다.

‘이게 맞는 걸까?’

일행을 되살리려고, 비참하게 죽었던 사람을 괴담 속 무언가로 다시 살려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심지어 나는 장허운 씨도 죽은 후로 오염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상태인 것을 뻔히 봤으면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정말 맞나?

차라리 장허운 씨를 부르는 게 맞나 싶기도 했으나, 장허운 씨를 부르면 그 사람이 사람으로 회복될 가능성을 아예 포기한다는 뜻이다.

여기 박아두면 재난관리국의 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거니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오늘 내로 일용직 계약서를 받아서 두 사람을 지옥 같은 결말에서 풀어줘야 했다.

‘해야 해, 해야 해….’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리조트는 좋은 공간이다. 나는 직원들에게 매우 인도적으로 잘해줄 것이다. 매우, 매우….

그러니까 하자.

여 기

나는 앞발을 들고 선언했다.

리 조 트

기 념 품 가 게

작은 공간이 반짝인다.

리조트의 구역으로 선포된 곳에 유쾌 테마파크의 마법이 깃들기 시작한다.

끔찍하고 즐겁고 유쾌한 아름다운 리조트의 일부.

아직 인테리어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일단 선언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불러낸다.

리조트 사용인 고용계약서를.

‘…….’

나는 두 동강 난 시체를 들여다보며, 그의 의사를 물었다.

일 할 거 야 ?

그러자 시체가 붙기 시작한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붙어서 그 사이로 마치 면접자처럼 말끔한 벨트가 채워지고, 유쾌 테마파크의 로고가 새겨진다.

곧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며, 리조트 업무 지원자에 알맞은 머리 모양과 옷이 테이프가 감기듯이 마법처럼 몸을 감싼다.

그리고 눈을 뜬다.

안 녕

나는 예상한다.

유쾌 테마파크 리조트에 완전히 오염된 이 사람의 죽은 자아는 양산형 마스코트처럼 내게 반응할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죽은 사람을 직원으로 사용해 이 공간을 운영하게 될….

“직원님?”

…….

……!!

“직원님? 여기는… 아니, 대체 제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저를… 고용하신 건가요?”

당황한 얼굴.

유순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혼란스러운 몸짓과 표현.

깨닫는다.

저자는 제정신이다.

오염된, 종속된 정신이 아니다.

“저는 분명, 허리가… 어, 어?”

자신이 동강 났던 것을 기억해낸 듯 창백해진 얼굴로 허리춤을 더듬던 김허운은 곧 깨달았다는 듯이, 기대와 긴장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고쳐주신… 겁니까?”

비 슷 해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 사람은 130666의 모습으로만 나를 봤음에도 골든 마스코트 상태인 나를 한 번에 알아봤다.

분명 평범한 인간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토록… 이성적이고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가.

오염되지 않은 것처럼….

‘…잠깐만.’

머릿속에 번개가 지나간 것 같다.

민성 주임님도, 극도의 오염 상태에서 여기 들어오자마자 자아가 회복됐었다.

그게… 살아 있는 사람만의 조건이 아니라면.

‘설마.’

설마…….

‘…….’

나는 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이곳에 리조트 구역이 생겼기에, ‘연결’되어 호출할 수 있게 된 내 직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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