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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15화


나는 침을 삼켰다.

어두운 재판장 양쪽에 놓인 수십 개의 배심원석에서 세광특별시의 재난관리국 요원들이 죽을 당시의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오른다.

요원들에게 흔히 보이는 ‘신념에 찬, 단단한, 온화한’ 등의 수식어가 어울리는 눈빛이 아니다.

‘…괴담이다.’

오염된 것.

실제 요원들은… 구조작업을 하는 도중에 세광특별시 각지에서 이미 전멸했을 것이다.

이미 죽었지만, 모종의 힘으로 이 법원에 붙들려 있는 저 형체들.

이 의미 없는 구조자 선별 작업을 위하여….

나를 응시한다.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에 대해 증언할 자, 손을 들고 발언하세요.

당연히 일행들이 재빨리 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다른 자들도 손을 든 것을.

어두운 배심원석 곳곳에서 기이하게 죽은 형체들이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

5번 배심원, 발언하세요.

번호 적힌 배심원석에만 핀포인트 조명이 남는다.

신체가 조각난 자.

어둠 속에서 장기와 사지가 기하학적으로 남은 요원이 나를 보고 속삭인다.

저자는 카지노에 수배된 상태예요.

…!!

현재 수배 중인 범죄자예요 그곳에서 많은 코인을 벌었는데도 카지노에 있던 수많은 중독자 중 누구도 돕지 않았어요

나는 뒷걸음질 쳤다.

도박중독자들구조해서문제가생기면누가책임질건데?정신차려구조안하는게맞아나는어쩔수없이고개를돌려다른곳으로

이상한 죄책감이 가슴속을 누른다.

이게 뭐지?

17번 배심원, 발언하세요.

배심원석에서 다른 자가 일어난다.

창백한 얼굴이 부풀어 있다.

희끄무레한 눈에 초점이 없어서 나를 쳐다보는데도 이상한 곳을 보는 것 같다.

그는 이미 자살을 시도한 사람입니다.

침을 삼켰다.

시청 근처 숲에서 목을 맸습니다. 스스로 생명을 포기한 적이 있기에 구조보다는 인도적 처형이 맞습니다.

…이거.

‘내가 세광특별시 역들에서 한 일이다.’

자살하는사람들을말리거나시신수습할시간은없어움직여야했…… 조용히 해!!

나는 발에 힘을 주고, 침을 삼키며, 이상한 정신적 충격을 견뎌냈다….

그리고 가슴 서늘한 깨달음을 되뇐다.

‘내 죄악을 증언하고 있는 거다.’

역마다 내가 했던 선택들을.

사회적, 도덕적으로 그르다고 판단될 수 있는 모든 행동들을.

‘반박,’

반박해야 하는데.

이상한 죄책감이 입을 떨어지지 못하게 만든다. 뭐지 이 감정은? 이상한 상념들은? 이 울분과 애통함은 대체 어디서…….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에 대해 증언할 자, 손을 들고 발언하세요.

그 와중에 새로운 배심원이 선정된다. 손을 들고 있다. 아….

32번 배심원, 발언하세요.

저 먼 배심원석에서 요원복을 입은 죽은 자가 일어난다. 그자는….

새카맣게 탔다.

이미 다 타버려 이목구비도 으스러졌다. 요원 복도 이미 검게 부스러지듯 그 윤곽만 구분할 수 있다….

…….

‘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불길한 예감이 질식하듯 올라온다.

발언합니다.

잠깐, 잠깐만….

방화범!!!

나는 비틀거렸다.

저 자는 주택가에 불을 질렀습니다 구조받고 싶던 수많은 시민이 타죽었습니다죽었어죽었너때문에죽었어책임을감당해죽어죽어죽어

“욱.”

엄청난 압박감이 심장을 짓누르고 이상할 정도의 부담과 죄책감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토할 것 같다.

나는 거의 무너지듯이 단상을 잡고 버텼다. 주택가에서죽은수많은사람을떠올리자마음이미어지는것같아흐느낌원망이머릿속을찌르는듯울린다나는죽기전까지그광경을보고 있었다우우욱이

이건 누구의 기억이지?

“흡!”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에 대해 증언할 자, 손을 들고 발언하세요.

“힉.”

압박이 순간 약간 가셨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눈에서 뜨거운 것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닦아내니 눈물이 아니라 피였다.

간신히 고개를 들자, 배심원석에서 다른 자가 손을 들고 있다.

청동 요원.

37번 배심원, 발언하세요.

“앞선 증언들의 주관성이 의심됩니다.”

배심원석의 시선이 청동 요원을 향한다. 하지만 청동 요원은 죽은 자의 창백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증언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그 시선이 나를 본다.

“악의 저울에 달아볼 것을 제안합니다. …본래 규정대로, 죄악의 추로 ‘무동기 살인’을 걸어서.”

…!

“지금 증언대로라면 무동기 살인보다 더한 악행을 이 사람이 저질렀다는 뜻인데, 그럼 저울이 가려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재판장에 청동 요원의 목소리가 울린다.

“본래 사용되었던 대로 악의 저울을 사용해 주십시오.”

원래의 용도.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 것보다 더 큰 죄를 저지른 사람만을 악인으로.

그 악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 선량한 시민으로.

괴담에 희생양으로 징발되지 않는, 정상적인 자로.

구조할 자격이 있는 자로.

…….

아.

“지금의 방식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오염되었으며 왜곡된 방식이니까, 본래 관리국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아뇨.”

나는 코피와 침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포도 요원?”

“그게 아닙니다. 요원님….”

나는 배심원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 망가진 형체들을.

“‘왜곡되었다’라고 판단하신 지금 방법도, 사실 재난관리국의 결정이 맞았을 겁니다.”

“…예?”

“원래 ‘악의 저울 사용법’ 규정대로는 도저히 구조 우선순위를 가릴 수 없었을 테니까요.”

“……!”

“도시는 멸형급 재난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인력은 한정되어 있고… 결국 선택해야 했던 거죠.”

누굴 구할지.

도박중독자들구조해서문제가생기면누가책임질건데?정신차려구조안하는게맞아나는어쩔수없이고개를돌려다른곳으로

자살하는사람들을말리거나시신수습할시간은없어움직여야했

주택가에서죽은수많은사람을떠올리자마음이미어지는것같아흐느낌원망이머릿속을찌르는듯울린다나는죽기전까지그광경을보고 있었다

내게 쏟아진 그 트라우마적 압도감들.

…그건 분명 죽기 전에 요원들이 느낀 엄청난 부담감과 죄책감일 것이다.

“가장 선한 자를 고를지, 가장 유용한 사람을 고를지, 가장 약한 자를 고를지…. 아마 각종 방안이 나왔을 겁니다.”

“그럼.”

은하제 대리님이 묻는다.

“누굴 구조 대상으로 골랐을까.”

…….

“가장 덜 위험한 사람이요.”

“…!”

“그게 그나마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고 봤을 겁니다.”

선을 넘지 않을 자.

더 적나라하게 비유하자면, 이 초유의 재난에서 원칙을 저버려 ‘트롤짓’ 하지 않을 사람을 골라냈을 것이다.

이 위기 상황에서 괜히 돌발행동을 해서 주변을 위험하게 만들지 않을 만한 사람.

……윤리 기준보다 자신의 사랑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저울 반대편에 ‘사랑하는 것’이 올라가는 것 아닙니까?”

시간이 멈춘 듯 침묵이 흐른다.

“그래… 말 되네.”

은하제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예 이 재판을 무효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아무도 못 구했으니 말이야. 이 원칙은 쓸모가 없던 거지.”

침묵 속에서 재판장이 흔들린다.

수십 개의 핀포인트 조명이 흔들리고, 어둠 속에서 요원들의 모습이 깜박거린다….

“애초에 무슨 권한으로 구조 우선순위를 마음대로 판단하냔 말이야. 악의 저울? 나쁜 놈보다 착한 사람 구조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그걸 원칙으로 정하는 건 국가기관이 하면 안 되는 짓이지.”

저울의 천칭이 흔들린다.

법단에 맞닿은 금속 바닥에서 마찰음이 울린다.

“공무원 양반들이 알아서 내심 마음 가는 쪽을 구조하고 이러는 거야 그럴 수 있다만, 이런 식으로 아예 규칙 정해놓고 선별하는 작업 자체가 잘못된….”

발언을 중지하세요.

은하제 대리님의 핀 조명이 꺼졌다.

“…!”

37번 배심원의 진술 순서로 38번 배심원에게는 발언권이 없습니다.

37번 배심원, 계속 발언하세요.

청동 요원에게 조명이 돌아온다.

그가 피로감에 짓눌린 듯한 눈으로 다시 입을 연다.

은하제 대리님이 옆자리에서 뭔가 부추기듯이 손짓하는 게 희미하게 조명 끝자락에 걸린다.

하지만.

“…제 발언에 수정 사항은 없습니다. 악의 저울에서 증언을 검증해 주십시오.”

“…!”

“‘요원 개인이 판단하게 둬라’…, 시민님의 발언은 저 역시 자주 들어본 이야기고, 최근 많이 생각해 본 주제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둠 속, 은하제의 배심원 자리를 돌아보는 청동 요원이 덤덤하게 말한다.

“그렇게 되면 요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게 됩니다.”

“…….”

“죄책감도, 사망도.”

청동 요원이 나를 쳐다본다.

“일견 불합리해 보여도 필요한 것이라면 더더욱 원칙인 편이,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개개인에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

청동 요원은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보다 훨씬 깊은 의미로 들렸다.

많은 것을 겪고 고민한 사람의 언어로.

“그런 의미에서 왜 악의 저울 규칙이 변형되었는지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현 상황에서는 왜곡되어 효용이 없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본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을 관계자로서 정식으로 건의합니다.”

그리고 청동 요원은 자신의 말이 관철될 때까지 앉지 않을 듯,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재판은 그저 흘러간다.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에 대해 증언할 자, 손을 들고 발언하세요.

그래서.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손을 들었다.

“…!”

지금까지 겪은 일을 토대로 떠올린 방법이 있다. 머릿속에 불꽃이 튀는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 증언해도 되지 않습니까?”

본래 형법 재판에서는 안 된다.

증인은 위증죄를 감당하는 제3자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니, 재판받는 장본인에겐 증인이 될 자격이 없다.

‘하지만 이건 진짜 형법 재판이 아니지.’

선별 과정이며, 재난관리국의 악의 저울이 오염된 형태다.

‘재판 형태도 은하제 대리님이 요구한 정도야.’

그러니 이 저울 재판소 괴담을 설득할 수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내 말에 동요할 만큼의 감정과 자아가 있다면 더더욱.

“저는 선별을 받는 당사자 아닙니까? 그 당사자로서 진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

발언 허가합니다.

“예.”

나는 심호흡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까부터 떠올린 문장을.

“절 구조하지 마세요.”

“……!”

“아니, 저뿐만 아니라 여기서 선별을 기다리는 모든 시민을 구조하지 마십시오. 그게 맞습니다.”

배심원석에서 엄청난 술렁거림이 나온다. 조명이 치지직거리고 분노 죄책감 절망울분희망연민이타심증오가 들끓듯 쏟아지는 것 같다.

울컥, 심장께서 코와 입까지 뜨겁게 맺힌 것이 끓어오른다.

“왜냐하면!”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문 후, 다음 말을 했다.

“세광특별시 재난관리국 지부는 이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

재판장의 소란이 멎었다.

“…이 도시가 봉쇄된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이미 이곳은 인지도 접근도 불가능한 상태이며, 당연히 세광특별시 지부는 공식적으로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힘겹게 말했다.

“이건, 제가 증명하지 않아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누구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

“더는 누군가를 구조할 업무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 지부에서 특수 지정한 것이 아닌, 본래 재난관리국의 원칙에만 입각해!”

나는 외쳤다.

“악의 저울을 통해, 제가 악인이 아니라는 것만, 증명하면….”

힘겹게 마무리했다.

“처형도 구조도 없이, 그냥 보내주십시오.”

…….

…….

시선이 사라졌다.

달칵.

모든 핀 조명이 정상적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하나가 더 생겼다.

거대한 잿빛 악의 저울이 올라간 법대의 바로 앞으로.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

악의 저울에 죄악의 추를 올리십시오.

됐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단상을 벗어나, 앞으로 향했다.

이게 맞을까.

‘왠지, 이 모든 요원들의 처절한 노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 같….’

아냐, 계속해야 한다. 참아.

걸어가며 일행들의 얼굴이 보였다.

청동 요원의 살짝 안도한 듯 긴장한 얼굴, 은하제 대리님의 착잡한 듯 생각에 잠긴 얼굴, 이상하게도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최 요원의 옆얼굴….

그 모든 것을 지나쳐서 나는 저울 앞에 섰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난 검은색 추를 보았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양각으로 새겨진, 이상한 추.

저울의 추는 ‘무동기 살인’으로 걸며, 그보다 무거울 시 징발 대상자로 분류.

그 묘사의 물건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는 이상한 불안감이 들도록 만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법대 위로 올라가, 내 은빛 심장의 반대편 저울에 올렸다.

“…….”

한쪽 저울이 내려온다.

‘무동기 살인’ 추가 올려진 저울이.

“…!”

부드럽게 내려오면서, 천칭이 매끄럽게 무너진다.

퉁.

추가 올려진 저울이 바닥에 닿으며 가벼운 소리를 낸다.

내 은빛 심장은 반대편 저울에 놓여, 저 위 허공에 부드럽게 잘 떠 있었다….

…….

통과.

무지막지한 안도감에 다리가 풀릴 뻔했다.

‘진짜 됐어.’

좀 이상한 상태로도 해냈다. 나는 괜찮다. 이제 해결했다!

‘이대로 나가면 돼.’

그럼 클리어 취급을 받고, 정보도 모으고, 꿈결 물약을….

“…….”

그 순간.

나는 목격했다.

단 하나의 손.

배심원석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손을 들고 있었다.

저울 바로 앞에 앉은 자가.

1번 배심원, 발언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상할 정도로 외양이 멀쩡한 자였다.

익숙한 요원복을 입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나, 핀 조명이 떨어지는데도 이상하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실루엣이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그자의 입이 열린다.

반대합니다.

“…!”

저자의 죄악은 악의 저울로 가려낼 수 없습니다.

뭐라고?

배심원석에 앉은 요원의 보이지 않는 시선이 나를 향한다.

자신의 죄를 다른 것에 떠넘기고 있기 때문에.

……뭐?

자신의 그릇된 욕망, 그릇된 생각, 극단적 감정, 비정상적인 모든 판단을, 자기 안에서 분리하고 격리한 다른 인격들에게 넘겼습니다.

“…….”

저자는 빈껍데기입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아니,

진짜는 저 속에 있습니다.

내 문신을.

나는 가슴팍의 ‘오염 정리용’ 문신을 허옇게 질린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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