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18화


평범한 차림의 30대 초반 남성은 자신의 자취방에서 신나게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어어, 그래, 나 백일몽 붙었다니까? 어, 시험 삼아 넣은 건데 말야.”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갑자기 나온 추가채용공고에 지원했는데, 결국 최종까지 가서 붙은 것이다.

그리고 아닌 척 온갖 사람에게 전화해서 자랑하는 중이었다.

특히 자신보다 학벌이 나쁘고 아직 취직하지 못한 친구에게 더 은근히.

‘뭐? 내가 눈빛이 별로라서 면접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하지만 결과를 봐라!

“아니 뭐, 어쩌다 보니 이렇게 취직했는데, 좀 아쉽기도 하고 말이야. 어? 다양한 곳 넣어볼 기회가 없었잖아. 너처럼.”

나보다 못한 경쟁자를 깎아내릴 때의 짜릿한 쾌감.

나중에 이 대화를 곱씹으며 자존감이 낮아질 상대를 떠올리면 설렐 정도였다.

백일몽 신입 연구원은 속으로 전율 같은 쾌감을 느끼며 입을 놀렸다.

“너도 넣어보지 그랬어? 어, 넣었다고? 몰랐네. 미안하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수우우우악!!”

갑자기.

쿵.

허공에서 검은 것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연구원의 목을 잡아챘다.

“…!!”

검은 실루엣이었다.

‘어, 어디서?’

분명 천장에 저런 게 있을 만한 통로도 공간도 없다. 눈을 굴려서 천장을 봐도 어떤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쉿.”

검은 실루엣이, 검은 마스크를 쓴 자신의 얼굴 위로 장갑 낀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아주 조용하고 느릿하게 속삭였다.

‘전화 끊어.’

꿀꺽.

“나, 끄, 끊는다… 다음에 봐!”

뚝.

다급히 전화를 끊은 신입 연구원의 얼굴에서 아주 천천히 손이 내려간다.

하지만 목을 잡고 있는 손은 그대로였다.

그 압박감.

‘X, X발….’

강도인가?

온갖 추측과 비관적인 미래 관측으로 얼어붙은 머릿속과 식은땀을 흘리는 관자놀이에, 느긋한 목소리가 파고든다.

“안녕.”

“…….”

“내가 인사를 했는데 대답이 없네.”

“아, 안녕하세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던 신입 연구원이 침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제, 제가 돈이 별로 없긴 한데, 놔주시면, 바로, 지금 바로 대출받아서 계좌로 이체 드리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강도로 보여?”

그렇게 보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여기 들어오신 이유가 뭔지….”

“나는… 글쎄.”

웃음소리가 들린다.

“네 일일 수호천사라고 할까.”

“…….”

미친놈이다.

진짜 미친 새끼였다. 이거 잘못 걸렸다.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인게 분명하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단어는 다음에 나왔다.

“응? 박경환 씨.”

“…!!”

“생물정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번에 대학원을 나왔지. 그 과정에서 같은 랩실의 친구 논문 주제를 훔쳐서 먼저 발표했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폭로.

“그, 그….”

“걱정하지 마. 그걸 추궁하러 온 건 아니고.”

툭.

침입자는 연구원의 얼굴을 눌렀던 손을 다시 들어 올렸다.

거기서 은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한 소리야.”

곧 억눌린 비명이 자취방을 울렸다.

* * *

[제법 짜릿한 심문이었습니다. 친구! 그 가난한 공무원들 틈에 들어갔을 때보다 더 첩보원 같은 장면이라 아주 흥미롭군요!]

첩보…보다는 강도 협박에 가깝지 않나….

‘무단침입에 위협….’

순조롭게 범죄로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히 그다지 미안하지 않았다.

저 인간이 입사해서 할 일들을 알기 때문이겠지.

박경환 연구원

뭐랄까, 곽제강이 호기심에 기반해 미친 짓을 저지르는 타입이라면, 저건 사무직의 우월감을 기반으로 현장탐사팀이나 민간인에게 가혹한 짓을 시키는 타입이다.

마무리팀이 당하는 일이 비슷하게 일어난다고 할까.

약자에게 잔인하게 굴어서 기분 더러워지고 심장 뛰는 그런 기록 말이다.

‘백일몽 연구원 인성이 그렇지 뭐….’

별로 안 미안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고맙긴 했다.

나는 내가 잘 잘라 온 ‘박경환 연구원’의 일부를 보았다.

바로… 손톱이다.

‘으으….’

남의 손톱 잘라주는 취미는 당연하지만 나도 없다. 하지만 필요해서 잘라 온 것이다.

박경환을 대체해서 일일 연구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부위거든.

‘그리고 박경환이 신입이라는 건 오히려 좋아.’

짬이 없다는 것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안면 튼 사람이 별로 없다.

2. 윗사람을 만날 일이 적다.

내가 일일 연구원으로 바꿔치기했을 때도 누군가 의심하거나… 내 정체를 꿰뚫어 볼 특수팀이나 윗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뜻이다.

가령, 청 이사.

‘신입이 이사 만날 일이 입사 후 첫인사 빼면 어딨어.’

나야 복지몰 포인트 모으겠다고 하도 곡예를 하다 보니 눈에 너무 띄어서 불렸던 거고 말이다.

…이후로도 본의 아니게 만났지만.

그리고 결국 보안팀에서 영구적으로 근무하는 미친 계약서까지 서명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는 청 이사가 가져간, 내 보안팀 근로 계약서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 계약서.’

이제 필요 없다.

그건 약간 상쾌한 기분까지 드는 사실이다.

이제 나는 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보안팀이라는 정체성이 아니어도 육체와 정신 모두 붕괴하지 않고 잘 존재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의 손을 꽉 쥐었다.

‘문제는 ‘그러니까 퇴사할게요’가 통하지 않을 거란 점이지.‘

영구적인 계약이니까.

‘사실 계약이라기보다는 구속에 가까운 것 같은데….’

[흠, 이 브라운이 조언을 하나 들려줘도 괜찮겠습니까?]

음?

‘…좋지. 뭔데?’

[본래 법과 규칙이란 더 강력한 우선순위에 의해 밀려나기도 하지요.]

쓱.

고급스러운 하얀 천 장갑의 손가락 부위가 문질러지는 듯한 소리가 봉제인형으로부터 들려왔다.

검지를 치켜들 듯이.

[당신의 무례한 상사의 계약보다 더 강력한 규정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계약서는 무효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다른 규칙으로 계약을 밀어내라고?’

[그렇지요! 가령, 다른 고용계약서를 작성하는 겁니다. 오, 더 강력하고 멋진 근무처와, 고용주와 함께 말이지요.]

‘…마치 브라운의 심야토크쇼와 위대한 사회자님처럼?’

[이런! 그 예시를 사양하진 않지요!]

예. 왠지 그 말 나올 것 같았습니다, 사회자님….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좀 다른 발상이 떠올랐다.

‘다른 규칙이라.’

반짝, 전구에 불이 켜지듯이 발상이 떠올랐지만… 이건 그 순간이 와야 쓸 수 있는 방법 같다.

‘일단은 킵.’

좋아.

당장은 ‘백일몽 꿈결 기계 절도’ 작업부터.

‘준비물은 다 구했다.’

나는 팽팽 돌아가는 머리로 일일 연구원 잠입 계획을 완성했다.

그리하여 일주일 후.

나는 마치 이전처럼 아침 8시 10분에 백일몽 주식회사 본관 문 앞에 서 있게 된다.

“…….”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착장.

‘후우.’

나는 흰 가운을 입고 있다.

-가운 같은 건 보통 들어가서 갈아입지 않나?

-다들 좀 뽕 차서… 예, 아무튼 입사동기 절반 이상이 아예 입고 출근하더라고요. 수습 동안에는!

연구원과의 정다운 문답을 떠올리며, 나는 본관으로 들어갔다.

뿔테 안경을 쓴 밋밋한 생김새의 연구원 모습.

“안녕하세요, 박 연구원님.”

바로 박경환 연구원의 외양 그대로.

“안녕하세요.”

프론트 직원에게 여상스럽게 대답하는 내 가운 안, 주머니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작은 도구가 들어 있다.

그 머리는 설치류의 주둥이처럼 조형되어 있다.

들쥐 손톱깎이

‘사람이 버린 손발톱을 먹은 들쥐가 그 사람으로 둔갑해 나타난다’라는 설화에서 유래된 물건.

해당 손톱깎이를 사용 시 그 안에 ‘잘라낸 손톱’이 들어 있을 경우, 손톱이 해당 손톱 주인의 외양으로 육신이 변이한다.

손톱 하나당 반나절 정도 변이가 지속.

이 상태로 손톱의 본래 주인을 만날 시 서로 강렬한 살의를 느끼게 되며, 이로 인해 각종 살인 및 상해 사건이 발생.

한마디로 연구원 손톱을 사용해서 내가 연구원 모습으로 둔갑한 상태라는 뜻이다.

‘망상홈쇼핑에서 상당히 저가로 팔렸었을 것 같아서 냉큼 잡았는데.’

상황을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남의 손톱이 내 손톱 끝에 달려 있다는 게 찝찝하긴 하지만.

‘후우.’

그리고….

-예. 직진 후 전자 패드가 부착된 시설을 확인하십시오.

-그거… 음. 본 적은 있는데….

나는 백일몽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에게 본관 및 별관의 구조와 꿈결 기기의 위치를 모조리 들어둬서 파악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연구팀의 업무와 동선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당연히 같은 연구팀이지.’

그리고 그중 두 명은 현재 생존 상태로 세광특별시에 있다.

나와 연이 있는 채로 말이다.

-노루님. 여기여!

나는 이성해 대리님이 전달해 주신 연구원들의 편지를 떠올렸다.

그렇다. 이번 세광특별시 진입은 나 없이 백일몽 직원들 3인 1조로 이루어졌다.

혹시라도 세광특별시에 진입해서 또 다른 충격을 받을 시, 회복한 내 형태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을 배려해 준 처사였다.

‘그리고 이 빈틈에 나는 기계를 터는 거지.’

그 3인 중 한 명이던 이성해 대리님은 기꺼이 내 정보 운반자가 되어주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상태와 역의 상태도 알려주셨고.

-은하제 대리님이랑 요원님은 열차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하세여! 그리고….

-아침역에 저울 재판소라는 곳은 없구요. 거기 그냥 오래된 대합실 있던데여?

‘…….’

재난관리국의 재판소는, 종결된 듯하다.

‘그럼, 그 역의 유쾌연구소에 가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재난관리국 지부의 다른 흔적들도 어쩌면 볼 수 있을지 모르지.

나는 다음 진입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리고 연구원들이 보내준 편지 내용을 다시 떠올리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탑승했다.

‘어쨌든 ‘내 뜻’이라고 공고해 뒀으니, 곽제강도 이 답변에 헛소리를 적거나 은근히 나를 함정에 빠트리는 짓은 못 하지.’

그리고 내가 오늘을 고른 이유에 해당하는 편지 내용을 회상한다.

-연구팀 신입들은 오리엔테이션 대신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수습 기간을 가집니다. 뭐, 예상과는 좀 다른 업무를 주지 않습니까? 적응 기간이 필요한 거죠!

현장탐사팀도 예상과 전혀 다른 업무를 하게 되지만 적응이고 나발이고 괴담에 처넣는데 말이다.

‘왠지 열받네….’

어쨌든 본인들의 전공 주제와 상당히 연관성이 없을 ‘괴담’을 연구하게 된 그들은 연구팀이 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하나씩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오늘은 바로….

물약 생산을 보는 날이다.

무조건 백일몽 물약 제조 기기에 접근하는 날.

-이, 일단 20층에서 집합한 후에 이동한다고 했습니다!

연구원들의 증언 내용을 상호 교차 검증한 결과 확실했다.

‘일부러 일찍 오길 잘했어.’

나는 한적한 로비를 한번 둘러본 후, 홀로 엘리베이터에 탄 채로 닫힘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잠시만요!”

엘리베이터 앞으로 누군가 뛰어왔다.

나는 순순히 열림 버튼을 눌러주었다. 미친 듯이 닫힘 버튼을 연타하는 식으로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에 입장하는 사람을 보자 약간 당황했다.

“…감사합니다.”

백사헌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내 가운과 목에 건 사원증으로 직급을 확인한 후, 사회생활용 미소를 띠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층수 버튼을 누른다.

‘이 자식 진짜 회사생활 열심히 하네.’

출근 시간보다 이렇게 일찍 나오고 있었다니. 괜히 과장으로 승진한 게 아닌가 싶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고요히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백사헌을 보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날 알아보겠지.’

저 안대.

아직 의료용 안대를 끼고 있는 눈 아래의 역안 아이템으로 내 정체를 알아차린 게 어디 한두 번인가.

‘흠.’

나중에 알아보고 야단법석을 떨어서 괜히 일 망치느니, 지금 살짝 언질을 줘서 처신 잘하게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결국 백사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사헌 씨.”

“……네?”

어떻게 자기 이름을 아냐는 정도의 가벼운 놀라움만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 신입 주제에 연구팀이라고 윗 직급 이름으로 짝짝 부른다며 속으로 욕하고 있겠지. 네 인성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분위기를 잡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더 은근하지만 충격적으로.

‘어디 보자.’

토크쇼 이야기는 너무 직접적이겠지.

여긴 백일몽이니, 혹시 도청 장치가 있어도 ‘김솔음’이라고 짐작하지 못하면서, 백사헌에게는 충격적일 만한 게… 그래.

이거다.

“마을이 그렇게 된 건 안타깝지만, 사헌 씨에게는 큰 영향이 없이 무사히 회사 생활을 하시는 듯 해 다행입니다.”

“…!!”

이 정도면 알았겠지.

네 출신 알고 이렇게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고, 갑자기 이런저런 모습으로 출몰하는 게 누구뿐이겠냐.

‘자, 지금 슬쩍 안대 들어서 확인하고 빨리 파하자.’

나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힐끗거리며 상대를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백사헌은 반사적으로 안대로 손을 올려 천을 들고 있었는데….

‘…어?’

안대 아래의 눈은 감겨 있었다.

‘아이템을 두고 왔나?’

왜지? 저 성격에 저럴 리가 없는데.

아니, 이러면 괜히 의미 없이 정체만 토로했지 않은가. 입이 썼다.

“그럼 이만.”

나는 내릴 준비나 했다.

‘대충 내 정체를 짐작하면 입 다물고 있을 눈치는 있을 테니까.’

그럼 이대로 끝….

“…요원?”

어?

“맞잖아.”

내 반응을 보고 무슨 오해를 한 건지 백사헌의 얼굴에 자신감이 깃들었다.

“그쪽이 맞지 않습니까.”

잠깐만.

나는 백사헌의 얼굴에 이상한 생기가 도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소통 오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뭘 어떻게 하면 재난관리국 요원으로 도출되는 거지?’

그건….

“우리 회사 관련해서 자꾸 캐묻더니, 이런 일 하고 있었나 보네.”

…….

“종이배, 왜 요샌 안 쓰나 했더니 말입니다.”

아.

아아아…!

나는, ‘지산마을에서 자신이 두고 간 종이배를 통해 소통하던 요원’을 포착한 백사헌이 다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내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잠입한 채로 말까지 걸고 말이야.”

응, 아니야.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