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36화
“방금 재난 문자 맞지?”
“테러래, 테러!”
5월 4일, 세광특별시 재난의 날.
과거의 한때.
내가 뛰쳐나온 아침의 한빛백화점 근처, 세광시 변화가인 그 거리는 아직 아비규환은 아니었다.
다만 불온했다.
무언가 엄청난 일이 발발하기 직전, 그 시작점에서 나는 공포의 냄새, 이상한 느낌.
긴장감.
‘시청 인근에서 생화학 테러 발생’이란 재난문자가 조성한 분위기.
“근처에 대피소 검색해 놔.”
“준성아 그거 그만 보고 집 가자. 얼른!”
“우리 그냥 지하철 타러 갈 거야? 어떡해.”
“저쪽에서 계속 소리 나는 것 같지 않아요? 누가 소리 지르잖아. 저기, 저쪽….”
나는 마지막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리 저편으로 멀리, 윗부분만 보이는 사각형 유리 건물이 있다.
세광특별시에서 평온한 5월 4일을 반복해서 살았던 613일의 경험이 머릿속에서 그 정체를 알려준다.
세광시청.
-1교시 시작하는데 갑자기 재난 문자가 왔어. 시청에서 테러가 일어났다고.
하지만 시청 건물은 멀쩡했다.
테러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은 듯 깨끗하고 온전한 모습이다. 유리 표면이 햇빛에 반짝였다.
행인들도 그래서 힐끔힐끔 시청 쪽을 보고 있다. 헷갈리는 듯했다.
“재난 문자 그냥 오류 아냐?”
“야, 그래도 생화학 테러라잖아. 일단 가까이 가진 말고….”
하지만.
쿵.
“…어?”
나는 느꼈다.
이상한 진동이 바닥에서부터 온다.
쿵.
짧은 간격으로, 마치 빗방울이 따다다다닥 때리는 것처럼 울리는 타격음 같은 소리.
“뭐야?”
사람들도 눈치챈 듯 웅성거림이 커진다.
그러나 소리도 커진다.
쿵.
다음 순간.
“어어어?”
“야, 저거….”
행인들은 소리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의 발소리였다.
수많은 사람이 걸어오는 소리.
쿵.
[오, 저길 보십시오. 친구! 클로즈업이 필요하겠군요.]
고개를 돌렸다.
시청 방향에서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건널목을 돌아 걸어오고 있었다.
무언가를 피해 달려오거나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은 그 자체로도 눈길을 끄는 법이라, 행인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수군거리며 추측한다.
“뭐야?”
“거리 통제하나 봐.”
테러 때문 아니냐, 당연히 경찰이 왔을 거다. SNS 보니까 소방차도 와 있다 등등의 소리가 거리 곳곳에서 울렸다.
나는 침을 삼키며 가까워지는 사람 무리를 주시했다.
그리고….
“어?”
위화감이 깃든다.
사람들은 모두 평온한 표정으로, 묵묵히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길을 걸어오고 있다.
“…이상한데?”
복장도 각양각색이었다. 식당 직원, 회사원, 트레이닝복, 카페 유니폼… 그 모든 사람이 불안도 초조함도 머뭇거림도 없이 인도를 나란히 걷고 있는 것이다.
“야, 야, 저거.”
“왜 저래 다들?”
하지만 위화감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도로 쏟아지듯 걸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계속되며, 뒤따라 걷는 새로운 옷차림들이 드러난다….
“…….”
“…소방관?”
소방관들.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그들은 주홍색 출동복 차림이다.
심지어 경찰들도 그 행렬 뒤에 있다.
그 뒤로 구급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다.
그 뒤로 부상자가 보인다.
구급차에 실려야 할 것 같은 모양의 사람들이 평범한 행인 사이에 섞여서 걷고 있었다….
테러 현장에 출동하고 모였던 사람들이, 그 위급상황의 모습 그대로 행진하고 있다.
“…….”
“야, 이상해.”
인간은 위화감에서도 공포를 느낀다.
백화점 근처 번화가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주춤거리며 물러서거나, 재빨리 폰을 들어서 카메라로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한다.
‘망할.’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삐이이이이!
사방에서 재난 문자 알림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등골에 소름이 쭉 돋아났다.
[세광특별시]
경계경보 취소 테러아님 무기아님 폭발아님 안심하세요
같이 가자
그리고.
“어, 어어어?”
문자 알림음이 잦아든 사이로… 다른 소리가 들린다.
허밍.
작은 허밍의 멜로디가 은은하게 공기 중에 울리고 있었다.
‘어디서 들리는 거지?’
그리고 다음 순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의 입.
재난 문자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이 허밍을 하고 있었다.
내 입에서도 허밍이 나오고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는 뭉개진 희미한 소리에서 점점 구체적인 음율로….
‘X발!’
나는 스마트폰으로 스스로 얼굴을 후려쳤다.
“…!”
둔탁한 통증에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아아악!”
나는 당장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등 뒤에선 비명에 이어 기이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너, 너 뭐해?? 어, 으어으….”
“왜 가!”
“엄마야!”
저 멀리서 들리던 희미한 고함들은 이제 바로 등 뒤에서 들리고 있다.
살점이 뭉치는 소리와 으드득거리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와 걷는 소리….
“부, 부풀었… 히이이익!”
뒤통수가 쭈뼛 선다.
‘돌아보지 마.’
멀어져야 한다. 멀어져야 한다…!!
생존본능이 등을 민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뛰었다.
순간 스쳐 지나간 내 왼편 백화점 유리 안에서 부모님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힌다.
삐이이이이!
[세광특별시]
재난문자 아님 사사산산책 이벤트에 참여하세요 같이 걷자
낙원까지
사방에서 알림음이 울린다. 나는 더 읽지 않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아니, 애초에 왜 필사적으로 뛰면서 이걸 굳이 꺼내서 읽었… 잠깐만.
……왜 백화점 문이 또 보이지?
그리고 깨달았다.
반대로 뛰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다시 뒤돌아 시청을 향해 뛰고 있었던 것이다.
…백화점 유리문이 내 오른편에 있다.
“어어어?”
“앞으로 가자.”
“윤진아! 윤진….”
발을 멈췄다. 넘어질 뻔한 몸을 일으키며 뒷걸음질 쳤다.
절대로 전방을 응시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려 했으나, 얼핏 보았다.
…시청에서 걸어온 무리에 합류한 사람의 다리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내 입에서 느긋하고 확실한 허밍이 나오고 있….
‘안 돼.’
누군가가 나를 밀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흡.”
내 입에서 나오던 허밍이 순간 멈췄다. 공포와 혼란, 패닉이 사방에 감염처럼 퍼진다. 나는 순식간에 판단했다.
‘멀어져야 해.’
하지만 무작정 저 행렬의 반대로 뛰는 게 안 된다면….
‘길가를 벗어나야 한다!’
나는 방향을 휙 꺾어, 백화점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으아아악!”
“악!”
“문 닫아!”
내 뒤로 유리문이 닫히는 소리와, 유리에 무언가 철퍽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백화점 1층 구역을 미친 듯이 뛰어 완전히 가로질러서 반대편 출입구를 향해 질주했다.
“악!”
“뭐야?”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다가, 곧 로비의 소란을 눈치채고 비명을 지른다.
재난 문자 알림음이 로비에서 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뒤로하고 나는 계속 달렸다.
곧 화물용 야외주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푸른 하늘, 햇빛 아래 야외주차장은 평온했으나 비명과 파열음이 저 너머에서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잠잠해진 스마트폰을 보았다.
‘…저, 저 현상에… 특정 반경 이상 가까워지면 소리가 들리는 건가?’
젠장, 젠장!
갑자기 왜 재난의 날 아침에 떨어졌지?
머리가 아찔해진다.
‘뭘 해야 하는 거지?’
이 세광특별시는 이제 망하는데, 어떻게 살아남지? 아니, 이자헌 과장님과, 문신 속에 들어 있던 두 사람의 행방부터 찾아야 하는데….
[이런, 친구. 본래 서두를수록 낭비하게 되는 법입니다. 당신의 귀중한 아이디어와 생각을 낭비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선 노루 씨가 아는 것부터 정리해 볼까요?]
…내가 아는 것?
‘그래!’
머릿속에 불꽃이 튀는 것 같다.
나는 이 세광특별시에 대해 안다.
평온한 5월 4일을 육백 번 이상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이곳의 지리, 위치, 교통….
그리고 멸형급 재난이 된 세광특별시 지하를 탐사한 지난 몇 개월까지.
이 세광특별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재난의 날 이후에 이 특별시의 각종 랜드마크가 어떻게 변이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역으로 추론해 보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전부 알고 있다……!’
…그럼, 그걸 바탕으로 뭐든 시도는 해볼 수 있다.
“후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일단….
‘사람들을 찾아낸다.’
열차 밖으로 나와 함께 이 세광특별시 한복판으로 떨어졌던 사람들을 찾아낸다.
‘그 사람들도 이 과거에 갇혀 있을 확률이 높아.’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여긴 이미 재난이었다.
세광특별시에서 이 미친 5월 4일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알아내야 했다.
탐색과 탈출.
“…가자.”
결정했다.
나는 심호흡하며 발을 옮겼다.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은 꺼두지 않았다. ‘재난 현상’이 가까워졌다는 알림이기도 하니까.
‘일단은 재난의 발생지로 보이는 세광시청에서 떨어져야 해.’
그리고 나는 최소한 이 재난이 시간적으로 유예된 장소를 확실히 하나 알고 있다.
‘…세광공업고등학교.’
-교사들이 급하게 우리 폰을 다 걷어갔어. TV 선을 다 끊고.
-그리고 우리한테 눈 감고, 귀 막고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하던데.
최소한 그걸 다 할 때까지는 학생들이 멀쩡했다는 뜻이다.
‘…클래식을 틀어뒀다고 했지.’
그리고 눈을 감고 귀를 막으라고 했다….
나는 이제 와서 그게 대체 무슨 의미였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 중에 누가 나가려고 했어.
상담 교사.
호유원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목적지를 정했군요, 친구.]
‘버스는 안 된다.’
길가를 따라다니는 건 바보 같은 짓일 것 같고, 지금쯤 도로는 아비규환일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은 언제 입구를 틀어막을지 모르는데….
‘잠깐만.’
나는 백화점 화물 주차장과 연결된, 공용 야외주차장의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자전거 보관대
한구석에 있는 그곳에는 일고여덟 대의 자전거가 묶여 있었다….
* * *
그리하여 잠시 후.
‘죄송합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걔 중에 제일 낡고 먼지가 쌓여서 주인이 안 찾아가고 있던 걸 골랐으니 최소한 자전거 주인이 도망가려다 도둑맞아서 망연자실한 일은 없겠지!
‘골목 위주로 가야 해.’
나는 사람들을 피해서, 큰 길이 아닌 작은 길이나 상가 사이를 통해 고등학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야, 카페 도로 들어가!”
“저 사람들 뭐….”
능수능란하게 자전거가 좁은 길목을 비비며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피해 달린다.
재난관리국에서 단련한 자전거라이딩 실력이 이상한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초자연 재난에서 사람 찾으러 가는 거니까 딱 맞는 상황일지도 모르겠….
“아아악!”
나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바로 앞, 골목 편의점 옆길에서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우르르 자전거 앞으로 넘어졌다.
젠장!
걸려 넘어질 뻔한 것을 간신히 뛰어넘었다.
넘어진 건 대여섯 명은 되어 보였다. 자전거 균형을 다잡으며 외쳤다.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골목에서 뛰다가 누군가 모퉁이를 돌며 넘어지며 밀쳐서 같이 엉켜 넘어진 모양이었다.
넘어졌던 사람 중 하나가 대답 없이 황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로 외쳤다.
“시청 반대 방향으로 가십시오! 큰길을 피하세요!”
“일어나!”
“힉!”
다른 사람들도 서로를 밀치거나 부축하며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했으나, 한 중년이 일어나질 못했다.
“으으….”
제일 아래에 깔렸던 고등학생이 도리어 그 중년을 부축해서 일으키고 있었다.
‘망할, 망할.’
진짜 의미 없는 짓일 수도 있으나, 나는 결국 자전거를 세우고 같이 부축하려고 했다. 그래서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옆길에 누군가 서 있었다.
“…….”
휴대폰을 잡고 있는 사람의 형상.
그 손에 든 폰에서는 쉴 새 없이 재난문자 알림이 오고 있었다.
꽃무늬 패턴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일상적인 차림새의 세광특별시의 시민.
그런데….
‘아.’
부풀어 오르고 있다.
허밍이 들린다.
멜로디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그것은 부드러운 허밍음을 내며, 비틀거리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재난 문자가 내 폰에서도 울린다.
‘하.’
정수리가 쭈뼛 섰다. 나는 안장에서 내리며 그것이 있는 골목 앞으로 자전거를 밀쳤다.
“가세요!”
마침내 고등학생의 부축으로 일어선 중년인이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다.
나도 괴성을 지르며 따라서 도망치고 싶었다.
‘벌써 골목까지 침투하고 있어.’
그나마 숫자가 적어서 다행이었다.
‘빨리 벗어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뛰려고 했다. 일단 두 발을 쓰다가 자전거를 찾으면 갈아타든가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봤다.
중년인을 부축했던 고등학생이 자전거를 밀쳐놓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나는 당장 고등학생을 잡아끌며 자전거를 발로 다시 찼다.
입에서 다시 허밍이 나오려는 것을 틀어막고, 그대로 돌아서 뛴다.
고등학생은 반쯤 끌려오다가 자기 발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난 문자가 울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쯤.
“허억.”
나는 공유자전거 몇 대가 있는 거치대를 발견하고서야 발을 멈췄다. 그리고 아직도 나를 따라오고 있는 고등학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습….”
그리고 멈칫했다.
“…….”
이 고등학생이 입은 옷이, 아는 학생복이다.
‘세광고…?’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예 멈췄다.
“후욱, 예, 감사합니다….”
류재관.
청동 요원이,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