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51화
나는 더 이상 ‘방금 세광특별시 지상에서 293일 만에 탈출해 놓고 다시 거기 지하로 들어가겠다고요?’ 같은 만류를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여유가 없었다.
“이 오르골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일단 가겠습니다.”
그 길로 즉각 다시 여우상담실의 문패를 걸어 상담실로 넘어간 나는, 장기 입원실을 통해서 세광특별시 지하철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들어가겠다고? …포도야, 잠깐!”
호 이사를 계속 경계하던 최 요원이 결국 동행했으나, 나는 상담실에서 마주친 호유원과 최 요원의 갈등을 관찰하거나 중재할 겨를도 없었다.
피가 식은 듯이 초조할 뿐.
‘어떻게 된 거지?’
왜… 재난의 날을 일으킨 오르골이, 백일몽의 물약 제조기 안에도 들어 있는 거지?
“일단 안내해 드릴게요. 노루님.”
장기입원실로 들어가서 ‘진입’하는 과정에서도 의문이 끊이질 않았다.
딱 하나 다행인 것은, 눈을 뜬 순간 내가 정상적으로 세광특별시 지하철에 진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일 뿐.
익숙한 현대적 승강장의 모습이 보였다.
…세광역.
-당신도 숨이 끊어지며 제물 굿판에 올라가기 전에, 이 5월 4월에 갇히기 전에… 당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상담사의 말대로였다.
재난의 날, 5월 4일에 죽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로 끌려 들어가지 않을 거란 직감은 맞았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길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 들어왔는지 잊지 않았으니까.
“음, 이쪽….”
나는 언질받은 대로 열차를 타고 황혼역으로 이동했고, 경비반장은 나를 망상홈쇼핑이 있던 그 역의 승강장으로 안내했다.
삐걱.
그리고 한 구석의 소화전을 열자….
놀라울 정도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
본래도 소화전 내부는 왜곡되어 나와 영은 씨가 함께 들어갈 정도로 커져 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거주용 공간만큼의 넓이가 나왔다.
성인 일곱 명은 너끈히 누울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한쪽은 거대한 기계가 차지하고 있었다….
물약 제조기.
“아이템으로… 넓혔다는데….”
열차 쉘터가 사라진 후에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건가.
몇 개월이 흘렀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생활감이 묻어나는 허름한 공간은 지하철에서 끌어모은 듯한 물건으로 구색이 맞춰져 있었다. 그걸로 보아선 아무래도 바깥에서 생활용품을 그리 많이 조달하진 못한 듯했다.
그리고 구석의 매트리스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나를 보는 순간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직원님!”
연구팀 직원 두 사람.
이연화 대리와 곽제강 과장이다.
“이야, 복귀하셨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죠! 바로 오셨군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둘 다 상당히 낡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말쑥하기 그지 없던 회사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특히 곽제강의 경우, 새끼손가락이 한 마디가 없어서인지 더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 눈은 광채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드디어 새로운 지식을 탐미할 수 있다는 흥분.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그 오르골 말이죠!”
그리고 기계로 가더니 당장 그 옆에 둔 서랍을 휙 열기 시작했다. 같이 달려가던 이연화 대리가 기겁했다.
“과장님, 안전 수칙…!”
탁.
곽제강이 서랍을 잡기 전에, 경비반장이 서랍을 막아서듯 쳤다.
“물러서. 돌발 행동은… 하지 말고….”
“…….”
곽제강의 눈빛이 꿈틀거렸으나, 곧 입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과장되게 뒤로 물러났다.
“아무렴! 그래야지. 자네가 십수 년만에 연구원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는 재미를 누리는 걸 방해할 순 없지, 안 그러나?”
경비반장은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하더니, 서랍에서 물건을 꺼내 이쪽으로 왔다.
이연화 대리가 침음했다.
“곽 과장님…. 매번 저러시네요. 프로젝트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나을 거라고 했는데도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렇긴 한데, 다 죽은 사람들에 비하면 어둠에서 실종된 것치곤 형편 나은 편이죠. 물약 제조기 뜯어보는 것도 나름 재밌고요….”
바짝 긴장하고 있던 이전의 모습 대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체념한 말투였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에 위로를 건네기에는 완전히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저것.
경비반장이 가져오고 있는 은으로 만든 상자.
그 옆에서 곽제강이 따라붙어 중얼거리고 있다.
“아니, 지금까지 실컷 마음대로 연구하게 두고서 이제 와서 이래도 말이야, 자네 참 쓸모없는 짓을 하는군!”
그 모습을 보던 이연화 대리가 내게 아주 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제조기를 왜 고치는지에 대해서는, 새로 나타났던 직원들에겐 말한 적이 없죠….”
“…감사합니다.”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었다는 뜻인 듯했다.
그리고 곧 내 눈앞에 은 상자가 도착한다.
“…….”
“내가… 열까…?”
“괜찮습니다.”
나는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는, 고영은 씨가 보내준 사진 속의 모습과 똑같은 검은 오르골이 있다.
마치 은이 녹슨 것 같이 새카만 상자형 오르골은 정교한 양각 무늬가 있고, 위아래가 맞물리는 부분에 황금빛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천사의 한숨.
정말로, 정말로 그거였다.
“…혹시 이 오르골을 열어보셨습니까?”
“그것 참, 잠금이 안 풀리더군요!”
후우.
“그래서 억지로 열었죠.”
…!!
“하지만 소리는 나지 않더군요. 분해해 보고 싶었지만 태엽 자체가 안 돌아가더랍니다. 윤활제라도 뿌려야 하나. 뭐, 이런저런 다른 방법을 고안해 보고 있었죠!”
“…….”
윤활제….
액체.
“혹시, 이 오르골을 꿈결 용액에 닿게 해보았습니까?”
“…!”
연구원들의 표정이 변했다.
“없지만… 잠시만!”
곽제강이 물약 제조기로 가더니 뭔가를 열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그 오르골이 여기, 그러니까 꿈결 용액이 내려와서 장치와 만나 물약을 제조하는 보관소 구간에 추가로 숨겨져 있었단 말입디다.”
“…….”
“그러니까 만일 이 제조기가 실제로 전력을 공급받아서 운행됐다면, 결국 이 오르골은 꿈결 용액에 닿긴 했겠습니다.”
맙소사.
“그러면 이 오르골이 연주될 거라 생각…… 음?”
나는 오르골을 다시 은 상자 안에 넣었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로 흘렀다.
‘함정이었어.’
내가 이 물약 제조기를 세광시청 옥상에 설치하는 순간,
또다시 재난이 터졌을 것이다.
만약에 연구원들이 재난에 표류한 채 293일이나 이 제조기를 뜯어보며 시간을 쏟지 않았다면.
오르골을 발견하지 못한 채, 통상적 수준의 작동 수리만 했었다면….
‘파멸이다.’
아찔함에 심장이 차가워진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유도됐어.’
내가, 일부러 폐기 제조기를 훔쳐 갈 수 있도록 방치한 거였다.
내가 백일몽에 잠입했을 때, 일부러 물약 제조기가 없어지는 소동을 벌여서 ‘폐기 제조기를 훔쳐 가는 게 더 쉽도록’ 상황을 몰아갔다.
폐기 제조기 안에 오르골을 설치해둔 채로.
누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실 하나뿐이었다.
‘…청 이사다.’
소름이 쭉 돋았다.
‘잠깐만.’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내 심리를 읽고 있는 건가? 근로 계약서의 위력은 어디까지 발휘되는 거지?
설마 지금 이 순간에도….
‘아냐.’
침착해야 한다.
‘굳이 함정을 팠다는 건, 청 이사에겐 이 시도가 성공해선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다.’
도리어 이강헌의 쪽지에 적혀 있던 이 방법의 신뢰성이 강화되는 상황이다.
청 이사도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니까.
‘그래. 맞아.’
머리가 맑아졌다.
나는 고민하다가, 오르골이 든 은 상자를 인벤토리 문신에 은 상자째로 넣었다.
“아니, 그걸…!”
곽제강이 뒤에서 뭐라고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달랠 방법은 알았으니까.
“일주일 안으로, 두 사람 모두 이 어둠에서 탈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오늘은 그 시도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 방문한 겁니다. …제게 저 물약 제조기를 설치하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두 연구원에게, 물약 제조기를 전력원에 설치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걸로 옥상에 가서 꿈 배양기 대신 이 제조기를 설치할 수 있어.’
하지만 착실한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섬뜩한 예감은 가시질 않았다.
설치 방법을 다 배우고, 불길한 초조함에 물약 제조기 자체를 인벤토리 문신 속에 챙기고서야 소화전 밖으로 나온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하하! 그럼 손꼽아서 기다리고 있겠습니….”
쿵.
나는 곽제강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닫힌 소화전을 보며 침묵했다.
“이제… 돌아갈 거예요…?”
“…잠시만요.”
아직 확인할 것이 남아 있었다.
나는 승강장에서 계단 위로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 플라워 골든 리조트 ]
기념품 팝업 스토어
“마스코트님…!”
안으로 들어가자, 두 ‘허운’이 벌떡 일어나서 나를 보았다.
“다른 일이 생겨서 못 오신다고 직원분들에게 들었는데, 일은 끝나신 건가요?”
“다행입니다, 마스코트님!”
반가움과 안도로 가득해서 나도 담소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임대료는 괜찮습니까?”
혈액으로 지불하는 이 팝업 스토어 공간의 임대료!
납부 품목 : 신선한 혈액(인간)
보증 담보 : 499L
월간 납부금 : 3L
그거 괜찮….
“저, 재촉 우편이 가끔 왔는데… 그래서 저희끼리 차출해서 내고 있었습니다. 안심하세요…!”
“……예?”
“두 사람이니까요. 번갈아 가면서 주마다 조금씩 내면 견딜 만한 용량이라서….”
“…….”
말문이 턱 막혔다.
“피를… 무서워하시잖습니까.”
“괜찮습니다. 우편함에 넣고 그어서 보이지 않았고, 저… 상처가 나면, 곧바로 리조트에서 치료해 주시니까요.”
장허운 씨의 팔에는 노란 마스코트의 캐릭터 얼굴이 그려진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
착잡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다음에 비슷하게 제가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있다면, 혈액은 보증금에서 제하라고 해주십시오.”
“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하면서 나도 알았다.
다음이… 과연 있을까.
‘만일 멸형급 재난 종결에 성공하면… 이 지하철역은 어떻게 되는 거지?’
지하철역이 봉쇄와 재난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오염자도 제정신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속성도 사라질 것이다.
그럼 이 사람들은…….
…….
거기에 박민성 주임님의 사례까지 떠올리자 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시간제한 때문에 초조한 나머지, 확인하지 못한 게 있는 것 아닐까.
제조기 안의 오르골도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기에 발견한 함정이었다. 혹시 다른 곳에도 그런 함정이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알아보면 다른 힌트를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
“저, 제이 씨.”
팝업스토어를 나오며, 나는 물었다.
“청 이사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음, 회사에서, 다른 직원들이 아는 것만큼은… 다 아는데….”
그건 나도 대충 알았다.
연구원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청 이사에 대해서 외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건 알아봤으니까.
‘대외적으로는 거의 나서지 않아.’
공식석상이나 기자회견 같은 자리에 나서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백일몽 홈페이지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사로 이름이 등재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상장 전부터 이 백일몽에 있던 존재라는 뜻이다.
함께 있던 재난관리국의 두 요원에게 물어봐서 들은 것들도 비슷했다.
-백일몽에 오래 있던, 백일몽 그 자체 같은 이사.
결국 이 문장으로 수렴했다.
전형적인 백일몽의 이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더 알아보려면….
‘…인트라넷 접속해야 하는데.’
호유원 프로젝트 일원 중 누군가의 인트라넷을 사용하는 건 너무 노골적이었다….
“혹시 프로젝트팀에서 일을 그만둔 사람은 없습니까?”
“퇴사… 말이에요…?”
“그보다, 호 이사 직속으로 일하는 걸 그만두고 회사 통상업무로 복귀한 사람 말입니다.”
“음…….”
경비반장이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 있어…. 그… 검은 염소.”
…!
백사헌.
* * *
그날 저녁.
백일몽 사택 건물.
“안녕하십니까, 시민님.”
“와아아악!”
백사헌이 현관문을 닫고 고개를 돌리다가 창문을 넘어오는 나를 보며 기겁했다.
얼굴에 탈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랭이탈이라고 하던가?
어쨌든 나는 녀석이 당장 현관문을 열고 도망치기 전에 황급히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십니까? …놀라지 마세요. 접니다.”
왠지 ‘나야 나’ 사기 같지만, 나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종이배.
“…….”
내가 들고 있는 종이를 보던 백사헌의 얼굴에 확 표정이 돌았다.
“…요원?”
“네.”
이편이 더 대화를 하기 수월할 것 같아서 이쪽으로 왔으나, 사실 백사헌이 안대를 들어서 나를 ‘확인’하는 순간 태세를 전환할 생각이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시민님. 오랜만에 뵙네요.”
“…알긴 아네.”
그러나 백사헌은 이번에도 안대를 드는 대신, 그저 나를 보고 열받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쳐냈다.
“왜 연락이 이렇게 안 됐던 건데요…! 내 아이템 떼먹고 도망갈 생각이었나?”
“초자연 재난에 갇혀 있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지난번에는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것도 갚아야 했는데.”
나는 백사헌이 다시 짜증을 터트릴 줄 알았다.
그런데….
“저기요.”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그 일은 왜 계속하는 겁니까?”
“…….”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잖아요. 솔직히 박봉에 목숨만 위험한 것 같은데.”
“그러게요.”
나는 쓰게 웃었다.
“아마 마음 편히 그만둘 타이밍을 놓쳤나 봅니다.”
“…….”
백사헌이 입을 꽉 다문 듯한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쉬더니 턱짓했다.
“좀 앉던가요.”
“감사합니다.”
나는 한때 나도 살았던 사택의 식탁에 약간 반가운 마음으로 앉았다.
그리고 무심코 물었다.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시민님께서는 왜 백일몽에 계속 다니시는 겁니까?”
백사헌이 반대편에 앉다가 순간 멈췄다.
“이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간절한 소원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소원이 있는 건가요?”
“…….”
“모르겠는데요.”
“원래 다니던 이유가 있긴 했는데, 지금은 상관없어졌고.”
“…….”
“포인트 계속 모으다 보면… 뭐, 소원권을 타서 쓰고 싶은 데가 생기겠죠.”
그 말투는 왠지 스스로 내면을 직시하는 대신 얼버무리려는 듯 느껴졌다.
어쩌면, 백사헌은 자신이 왜 소원권을 타고 싶은 건지 분명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가, 경험자로서 저절로 입이 열렸다.
“소원권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 예.”
…마치 내가 이전에 청동 요원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을 때처럼 반응하는데. 아니….
“효력이 없다는 게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
“백일몽의 소원권은… 사용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정한 소망을 들어주는 식의 형편 좋은 물건이 아닙니다.”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문장에 맞춰서, 자기가 들어줄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소원을 들어주긴 했다’에 가깝게 이루어지는 거라고 봅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기회가 있어서 사용자의 증언을 들었었습니다. 분명 그 물약은 사용자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소원을 들어줍니….”
…잠깐만.
자기중심적.
‘……청 이사 같지 않나?’
-고마워할 일이지. 자네들의 표어를 내가 대신 이루어줬으니 말이야.
나는 순간, 내가 왜 이 자리에 찾아온 건지 다시 상기하는 동시에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물약 제조기의 오르골.
청 이사의 조작.
거기서 나오는 소원권의, 변이된 상태….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튼… 알았습니다.”
“시민님.”
“또 왜요.”
“청달래 이사를 압니까?”
“…회사 다니면서 자기 부서 이사를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당연히 알죠.”
…….
“혹시 인트라넷에 접속해 줄 수 있습니까? 그 이사에 대해서 좀 조사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
“사택에서는 PC로 인트라넷을 이용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시민님에게 폐가 될 만한 기록은 남기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청 이사가 의심하지 않을 만한 방식으로 내부 정보를 알아내려고 여기 온 거기도 하니까.
“반드시 필요한 정보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리고 뭔가 조건을 걸려고 했다.
백사헌이 혹할 만한 이야기를.
그런데….
“…내 계정으로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뺏을 겁니다.”
…!
“감사합니다.”
“됐습니다. 소원권에 대해서 알려준 값이라고 생각하시든가요.”
백사헌이 자신의 PC로 나를 안내했다.
…따라가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도 작은 호의는 베풀 줄 알게 된 건가…?’
어둠탐사기록의 독사와는 확실히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입사 오리엔테이션 당시와도 말이다.
…내 영향도 있을까?
묘한 감흥이 들었으나, 길게 느낄 수는 없었다.
“여기요.”
나는 얼른 백사헌의 PC를 잡고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거기서 상단에 로고…….”
설명하려던 백사헌의 젠체하는 목소리가 멈췄다.
내가 이미 능숙하게 인트라넷의 개인 페이지를 조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 사내 공지 탭으로 들어가서, 가장 오래된 순부터 차근히 내용을 보기 시작했다….
‘청달래’를 직접 검색하는 대신, 상무 이사라는 직위로 검색한 후, 관련 프로젝트가 나오면 그걸로 더 상세히 문서를 검색해 들어가는 방식으로.
“……!”
그러면서 무언가 깨달았다.
‘이상할 정도로… 용과 관련된 어둠이 많아.’
용머리 해안 괴담.
드래곤 사냥 게임 괴담.
황룡사 석탑 괴담.
한강의 용 괴담….
용과 관련된 온갖 어둠들이, 청 이사의 소관에서 개발되거나 연구되었다.
물론 개발부이니만큼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청 이사 소관으로 보유 중인 어둠은 그 외에도 몹시 다양했다.
하지만.
‘호 이사가 들어온 뒤에도… 유독 용 관련 어둠은 청 이사 소관이다.’
청 이사 라인의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듯했다….
나는 문득 떠올렸다.
세광특별시에서 만났던 청룡팀, 초개 요원의 발언을.
-제가 여기서 그 악랄한 꽝철이 냄새를 맡았단 말입니다.
-백일몽 이사 말입니다. 그 사이비!
꽝철이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괴담이다.
혹시….
‘청 이사가 그 존재인가?’
그리고 세광특별시의 요원은 말하는 이 꽝철이를, 지금 요원들이 말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
무언가 힌트를 잡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연달아 깨달았다.
저 ‘용과 관련된 청 이사 소관의 괴담’ 속 존재 중, 당장 만날 수 있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내게 우호적이며, 대화가 되는 존재.
착 한 아 이
“…….”
그날 새벽.
나는 인벤토리 문신을 통해, 유쾌 테마파크로 진입했다.
블루드림 워터파크의 푸른 용 마스코트를 만나기 위해서.
재난의 날 도래까지 D-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