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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70화


덩어리는 반짝거리는 꿈 배양기를 본다.

그 안에 든 액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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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만을 넘긴 꿈결 포인트가 오색찬란하게 물결친다.

덩어리는 계속 보았다.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데도.

“솔음아. 잠시만 기다려, 알았지?”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서듯이 공간을 지키고 있을 때도,

바깥의 마스코트들이 오류가 난 듯이 간헐적으로 움직임을 멈출 때도.

어느새 홀로 남겨졌을 때도.

그는 어두운 연구시설, 오색찬란하게 물결치는 꿈결 용액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

김솔음이 했던 일의 결과로 모인, 천문학적인 꿈의 정수와 함께.

그리고.

“안녕하세요.”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색찬란한 꿈결 빛이 그 얼굴에 반짝이는 빛과 그림자를 드리운다.

“…솔음 씨.”

고영은.

김솔음의 동기인 그 사람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려다가, 따라 들어오는 해금 요원을 인지하고 살짝 열어놓은 채로 걸어 들어온다.

그리고 수조 속 덩어리를 본다.

그림자가 진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가족을 무사히 구조했어요.”

빛이 물결친다.

“감사해요.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집까지 갈 수 있었어요.”

덩어리는 고영은의 손에 들린 스케치북 종이를 인지한다.

마스코트가 주었던 지도다.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지도.

“절 도와주셨죠.”

…….

“그래서… 저도 도울 수 있는 건 뭐든 돕고 싶어서 왔어요. 제가, 필요하시다고 해서요.”

고영은이 심호흡하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어 좀 더 일상적인 톤을 내려고 노력한다.

“오는 길에 리조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봤어요. 그리고 사람뿐만 아니라….”

약간 머뭇거린다.

“리조트에서… 노루 씨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TV를 머리 대신 달고 있는 기이한 개체를 봤는데요.”

…….

“이름이 브라운이라고 하더라고요.”

고영은의 시선이 덩어리가 든 수조 옆에 놓인 물건들을 본다.

김솔음의 소지품.

특히 잘 개켜진 정장 위에 놓인 분홍색 토끼 인형을.

하지만 곧 시선이 돌아온다.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힌트를 주고 싶다고.”

사회자는 말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소원을 비는 데에 구체적인 문장이 필요 없을 거라고요. 그냥,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

“그건 솔음 씨가 확인한 진실이라고 했어요.”

김솔음이 알아낸 진실.

유쾌연구소에 남은 흔적.

제약회사에서 생산하는 물약 중 어린이용 낙원 시럽의 유사품 확인.

명칭은 소원권.

덩어리는 당시에 삭제되어 읽히지 않던 단어도 인지한다.

그런 존재니까.

“확인해 보니, 정말로 요원님들이 그런 서류를 보관 중이시더라고요.”

배양기의 배양 기능 삭제 및 제작에 필요한 용액 농도의 설정을 임의로 하향 조정하여 열화된 버전으로 추정됨.

열화 사례 :

언어화된 문장 표현 필요.

세계선 변경 기능의 악화.

낙원의 도래가 아닌 타협적 소원 성취.

백일몽의 ‘소원권’은 열화판이다.

그리고 열화판이라서 ‘언어화된 문장 표현’이 필요하다면, 원본에서는 필요 없다는 뜻이다.

복용자가 떠올리는 소원을 왜곡되지 않은 그대로 이루어준다는 의미.

그리고 심야토크쇼의 사회자가 고영은에게 해당 힌트를 준 이유는….

“솔음 씨가, 지금 소원을 빌지 못하는 상태니까… 제가, 솔음 씨 대신 소원을 빌 거예요.”

소원을 빌 기회를 탈취하지 않을 사람.

김솔음과 충분한 친분이 있는 사람.

그리고 ‘김솔음’이 아는 사람 중 소원권을 가장 합리적으로, 현명하게 사용했던 경험자가 굳은 얼굴로 덩어리를 본다.

“솔음 씨.”

고영은의 손이 수조 옆을 잡는다.

덩어리는 고영은의 손가락이 창백하게 질려서 떨리는 것을 본다.

“솔직히… 저 솔음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합리적인 사람 아니에요.”

절박한 목소리가 들린다.

“천재도 아니고요.”

…….

“이 상황도… 제가 정말로 솔음 씨의 소원을 그대로 빌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떨리는 목소리가 진실을 말한다.

그건…….

“사실 엄마만 찾았어요.”

“아빠는 외출 중이었는데,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고요….”

…….

“제가, 저도 모르게 아빠가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은데요.”

목소리가 떨린다.

“근데 그 말씀을 최 요원님께 드리니까,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서 신점 의식으로 확인해 주셨거든요. 그러더니… 그러시더라고요.”

떨림이 잦아든다.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다고.”

…….

“단지… 누군가에게 정성 어린 상담을 받고 계시다고요.”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든 고영은의 눈이 단단하다.

“그러니까, 저는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

“아니, 할 겁니다. 물론 과정에서 흔들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해금 요원님이 절 붙잡아주실 거예요. 제 결심과 진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덩어리는 이쪽으로 접근하는 요원의 그림자를 본다.

“다른 분들은, 이 과정에서 다른 문제가 없도록… 리조트를 지키고 계세요. …마스코트가 멈춰서요. 혹시 궁금하실까 봐 말씀드려 봐요.”

덩어리는 반응하지 않는다.

살점 무더기를 보면서, 고영은은 숨을 골랐다.

“그럼… 시작할게요.”

고영은은 손에 장갑을 낀다.

그것은 류재관의 것으로, 파형 이하의 초자연 현상에서 삿된 침투를 막아주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등급에서도 순간은 견딜 수 있다고, 류재관은 차분하고 빠르게 설명했었다….

“영은아. 이건 의식이니, 복용할 자가 처음부터 주관해야 한다.”

“…예.”

해금 요원의 말에 고영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황룡의 살점 더미 속에 장갑 낀 손을 집어넣는다.

철퍽.

덩어리는 안다.

장갑은 턱도 없는 찰나의 방어구이다.

저 손은 녹아내리는 중이다.

이것은 유독하다.

하지만 고영은은 이를 악물고 그 속을, 장기와 살점과 뼛속을 헤집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찾, 았다.”

반쯤 녹아내린 손을 꺼냈다.

손아귀에는 거무튀튀한 황금빛 액체와 살점이 떨어지는, 작은 원반형 물체가 들려 있다.

그립톡.

고영은이 해금 요원이 내미는 재생 물약을 다급히 입에 머금는다.

그리고 지체 없이 그립톡의 액체를 닦아낸 후, 꿈 배양기 맨 아래 패널로 향한다.

버튼을 뜯어낸 흔적.

그곳에… 그립톡을 부착한다.

김솔음이 어느 날에 최 요원이 보는 앞에서 했던 대로.

…달칵.

김솔음의 목적이 이루어진다.

“……됐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간다.”

사인참사검을 패검한 요원의 목소리가 울린다.

“의식의 대상이 될 자가 직접 의식에 참여하는 게 안정적일 테니, 가장 적절한 지금… 김솔음이 참여한다.”

끼익.

덩어리는 인지한다.

수조가 옮겨진다.

덩어리는 자신이 담긴 수조를 미는 누군가의 힘을 느낀다….

어느새 조용히 방에 들어와 몸을 일으킨 J3가 수조를 옮기고 있다.

수조 속 뭉개진 살점 더미가 흔들리며 벽에서 넘실거린다.

그리고 꿈 배양기의 앞에 도착하자….

“…여기.”

J3는 수조를 들어서 앞으로 반쯤 쏟는다.

철퍽.

수조에서 흘러넘친 덩어리의 형체가 흐느적거리며 배양기의 앞판에 부딪힌다.

액체가 지저분하게 패널 하단에 묻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한 동작이기도 했다.

살점의 무게가 실리며…….

달칵.

덩어리는, 꿈 배양기의 버튼을 눌렀으니.

‘어린이용 낙원 물약’의 제작 버튼을.

위이이잉-

기계가 가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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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의 숫자가 요동치더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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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배양기의 수조 안이 휘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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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찬란한 홀로그램 같던 빛들이 응축되고, 황금빛이 사이사이 새어 나온다.

거대한 액체 속에서 점점이 응축된 빛이 번뜩인다.

사람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본다….

은하수 같은 빛의 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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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다.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

저 먼 별에 낙원이 있으리라 상상하는 사람들.

인지와 상징.

그 모든, 소원과 낙원의 꿈이 전부 쏟아지듯 한 점으로 모인다.

검은 우주에 찬란히 빛나는 별이 반짝인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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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아래로 빨려든다.

위이이잉-

넘치는 황홀한 액체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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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다.

“…….”

달칵.

기계가 작동을 멈췄다.

그리고 하단에서 무언가 튕겨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

고영은은 떨리는 손으로 꿈 배양기 밑 사출구에 떨어진 것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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