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71화
“…….”
나는 숨을 멈춘 채로 저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본다.
돌아가는 길이다.
상자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어두운 계단의 끝에는….
내가 돌아갈 곳이 있었다.
[오, 드디어 오랜 목표를 달성했군요. 축하합니다. 친구!]
…!
“브라운!”
나는 수조의 옆, 엉망이 된 정장 위에 놓인 토끼 인형을 주워 들었다.
[그래요, 노루 씨. 길을 찾아냈군요. 그리고 다행히 수신 상태도 양호해진 모양입니다!]
고요하던 머릿속에 박수 소리와 TV 화면 위 안테나를 톡톡 두드리는 마찰음이 들린다.
‘또 저 목소리를 못 듣고 있던 건가….’
청 이사와 계약한 직후에 130666일 때처럼 말이다.
사고능력만 남은 덩어리는 착한 친구를 인지하지 못했다. 아마… 친구를 사귈 수 없는 상태라서 그런 게 아닐까.
그 뭉개진 형태가 된 내 상태를 떠올리면 매슥거렸지만, 그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혼자가 아닌 것은 언제나 안심이 된다.
비록 곁에 있는 것이 나를 토크쇼 스탭으로 만들려는 TV 머리의 위대한 사회자라고 할지라도… 오래 함께 있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말이 나온다.
지금 날 둘러싸고 있는 막에 대한 궁금증부터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혹시 내가… 꿈 배양기 수조 속에 있던 알에 들어온 건가?”
[흐음. 흥미롭고 영리한 추측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쨌든 여긴 그 배양기에서 나온 시럽 한 병이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니겠습니까?]
…내 소원.
나는 반사적으로 상자 속 계단을 다시 보았다.
‘돌아가는 길, <어둠탐사기록> 팝업스토어’라고 적힌 종이 안내문까지도.
그때였다.
-포도 요원?
…!
알 막 밖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해금 요원님!”
나는 반사적으로 막에 대고 외쳤다.
“저는 무사합니다. 저 괜찮습니다!”
-그래!
막의 바깥이 약간 소란스러운 듯했으나, 완전히 가로막혀 있어서 답답하도록 작은 음성만이 내 귀에 들린다.
-변한 게 있나?
“예? 저…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길?
“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
잠시 침묵 후,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안전해 보이나?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황을 봤을 때….”
소원권의 원형. 500만 꿈결이 들어간 완전한 ‘소원을 들어주는 시럽’이 제대로 작동했으니.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잠긴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네가 그 길로 가고 싶은 거겠지.
나는 숨을 고른다.
“…예.”
-그래. 알겠다.
그리고 다시 주변이 살짝 소란스러워진 듯하다.
혹시 영은 씨나 경비반장님이 뭔가 말을 꺼내려고 하는 걸까? 제대로 들을 수 없으니 답답했다.
‘대화하고 싶은데.’
나는 막을 밀면서 이야기했다.
“저기, 다른 분들 계십니까? 인사라도….”
하지만.
-아니,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
“…예?”
-알이 점점 작아지고 있어.
아.
나는 눈치챘다.
나를 둘러싼 막은 점점 줄어든다.
점점 작아지다가 무너질 것처럼, 혹은 내가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대화를 시작하고서부터다.
-아무래도 외부와의 교류가 영향을 주는 모양이야. 최소화하는 편이 안전할 게다.
“…….”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어린이용 낙원 시럽’은, 나에게 선택할 유예까지 준 것이다.
저 껍질을 뚫고 나가든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든가.
“…….”
나는 계단을 본다.
-포도 요원. 갈 길을 정했나?
“……예.”
말한다.
계속 되뇌었던 목표를.
이 사람들이 들어주려고 했던 내 소원을.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래. 알겠다.
해금 요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괜히 뒤돌아보지 말고, 쭉 걸어가거라.
-돌아보면 길을 잃게 되는 법이니까.
“……예.”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에 막이 더 작아진다.
‘아.’
시간이 얼마 없다.
나는 다급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제가 정말 많이 감사했다고…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난 이 리조트에서 끝장날 수도 있었다.
괴담 속 실종자 하나를 갱신하면서, 위키에 으스스한 탐사기록 엔딩을 하나 남기면서 말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줘서 감사했다.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뜬금없이 나타나고 실종되는 신입사원을 도와준 같은 조 상사들에게.
동기들에게.
보안팀 반장에게.
중고 거래로 만난 007 요원에게.
그리고… 나를 끝까지 의심하면서도 구조 요청을 들어준, 어떤 요원에게.
“덕분에, 초자연 재난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고요.”
-…….
-그래. 반드시 전해주마.
“……예.”
울컥, 목까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그런 내게 해금 요원님이 천천히 읊조리듯 말한다.
마치, 아까부터 방에 들어와 있었지만 내게 고지하지 않은, 옆에 서 있는 누군가의 말을 전해주듯이.
-무사히 돌아가십시오. 시민님.
그리고 끝이었다.
막 너머에서는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나는 일어나서 몸을 점검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다.
마치….
[시작할 때와 같은 모습이군요, 노루 씨!]
“…….”
[오, 이 브라운과의 작별 인사도 고민하고 있습니까?]
“…!”
[흠. 멋진 엔딩 멘트는 모든 엔터테이너의 고민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친구이니, 그런 사소한 일로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불쑥 목소리가 나온다.
“…이렇게 끝나도 괜찮겠어?”
[음?]
착한 친구는 어디든 따라온다더니.
일거수일투족 내가 뭘 하는지 보면서 중계하듯이 말하더니, 거액을 빌려주더니, 결정적인 순간에만 조언을 툭 던지더니….
이런 말을 굳이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런, 노루 씨.]
엔터테이너가 말한다.
[모든 방송은 끝이 있기에 더 즐겁고 기다려지는 법입니다.]
[다만 이후에 언제 다시 스튜디오에 찾아와서 또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줄지는, 게스트 본인의 의사에 달려 있겠지요.]
“…….”
[즐거웠습니까?]
객관적으로 끔찍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왠지 그렇게 대답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향상심이 돋보이는 대답이군요. 만족하지 않지만 즐거웠다,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래도 이번 촬영이 마무리될 시점 같군요.]
토끼 인형에게서 유쾌한 사회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프로그램에 당신의 착한 친구, 재기 넘치는 진행자로 동행해서 대단히 영광이었습니다.]
“…나도.”
숨을 삼켰다.
“나도, 고마웠어.”
[내 기쁨이지요.]
[자, 그럼 오늘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
[컷!]
나는 토끼 인형을 조심스럽게 품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검은 상자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저벅.
어두운 계단이 내 발걸음을 지탱한다.
상자 속으로 몸이 들어간다.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좁은 듯 답답하다.
다만 저 아래에 희끄무레한 광원이 있는 듯했다.
계속 걷는다.
저벅.
어두운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새로운 상념이 떠오른다.
내가 남겨두고 가는 것들.
진행 중인 이야기들.
저벅.
이제 세광특별시는 어떻게 될까.
재난관리국의 문제는 요원들이 해결할 수 있을까?
나도 함께 수습했어야 할 것 같은데.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저벅.
청 이사의 계약서가 무효가 됐는데, 이 틈에 보안팀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제이 씨는 괜찮을까.
민성 주임님은 오염에서 회복할 방법이 필요할 텐데.
내가 도울 방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저벅.
초개 요원은 또 어떻게 됐을까.
사자탈을 쓴 모습은 사라지고, 도깨비 공방의 요원만이 남았던 걸까? 아니면 합쳐졌을까.
세광고의 학생들은, 교사들은, 요원들은 무사히 탈출했을까.
…호유원은 아직도 상담을 하고 있을까.
거기에 아직, 내가 남아 있을까.
저벅.
계단을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돌아보고 싶은 충동은 점점 커진다.
한때 나를 포함해서 진행되던 이야기에서 점점 멀어지고, 떨어진다.
좀 더 대화하고 싶었던, 미래를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저벅.
다음 이야기를 알고 싶다.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은 것 같다.
궁금하다.
보고 싶다.
지금이라도 뒤를 돌아서 계단 위로 뛰어가, 막을 찢고 나가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한다….
…….
하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저벅.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저벅.
희끄무레한 광원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바라보며 걷는다.
좁은 계단을 계속 올곧게 걷는다.
저벅.
다른 기척은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
나는, 광원의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건 문이었다.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바로 희끄무레한 광원이었다….
나는 계단의 끝에 도착한 것이다.
달칵.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