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7화
세인트유의 까꿍.
중학생들의 설명에 따르면, 몇 년 전 공백기를 깨고 화려하게 컴백한 유명 여자 아이돌의 마지막 그룹 활동 앨범이라고 한다.
중독성 있고 밝고 유쾌한 선공개 곡은 음원차트에 오래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곡이 음산하고 어두운 안개 낀 숲속에서 발맞춘 박수와 함께 울려 퍼지고 있다.
짝.
“쨍한 내 눈빛은 단번에 널 포착해, 그래도 먼저 접근할 생각은 없지….”
“네가 다가올 때까지 난 아닌 척 기다려, 아주 편안히.”
Cuz Predators never move first…. 어른들도 어설프게나마 그 노래를 안간힘을 다해 따라 불렀다.
짝.
“그래, 어서 준비해. 나는 우아한 호랑이 네가 다가온 순간 까꿍!”
발랄하고 신나는 멜로디가 계속된다.
여럿이 함께 부른다는 것 때문인지, 아이들의 표정이 점차 편안해지고 목소리도 힘이 생긴다.
“까꿍! 이 몸 나오신다, 긴장해! 나는 호랑이. 어둠 속에도 반짝반짝해 내 눈!”
-‘가락을 올리는 길을 따라 걸으며, 제물로 삼을 희생양을 맨 뒤에 세워라.’
하지만 대열의 맨 끝에는 사람 대신 손바닥만 한 보랏빛 산삼이 봇짐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경비반장이 쓰레기봉투를 들 듯이 산삼이 매달린 막대기를 어깨에 걸치고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
고선하가 옆에서 자꾸 그것을 의심스럽게 힐끗거리고 있지만, 당사자는 노래를 꽤 즐겁게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까꿍! 너를 홀려 정신 못 차리게 해. 까꿍. 그래, 긴장해.”
짝.
나는 손짓으로 사람들을 멈추게 했다.
‘서른 번째.’
사람들이 엉거주춤하면서도 넙죽 세배하듯 절하고 일어난다.
그리고 곡이 계속된다.
“까꿍!”
오솔길이 점차 평탄하고 걷기 편해진다.
-‘가락이 끝날 때 길이 끝난다. 풀 없는 곳에 난 작은 뱀굴을 발견하면 산군의 자비에 감사하며 손을 넣어라.’
-‘손에는 소금 탄 우물물을 덧바른 채여야 한다.’
2절이 끝나고 마지막 후렴구를 부를 무렵엔 주변의 정경도 변했다.
얼굴을 칠 정도로 빽빽하던 나무가 좀 더 줄어들며, 희뿌연 안개가 더 짙어진 것이다.
본능적으로 다들 깨달았다.
‘거의 다 왔다…!’
사람들의 얼굴이 긴장과 기대, 경각심으로 얼룩졌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노래를 끝까지 부른다.
“까꿍, 그래 긴장해….”
짝.
마지막 소절까지.
“이제 다가갈게.”
발걸음이 멈췄다.
“…….”
“…….”
길이 끝났다.
막힌 오솔길의 앞은 확 트인 공터다.
“나, 나무가 없어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게 짙은 안개 속에서 마침내 의식의 결과가 눈앞에 드러났다.
“이제 뱀굴이…!”
거대한 저수지가.
“…….”
“…….”
‘이게 뭐지.’
안개가 끝없이 밀려 나오는, 검고 거대한 물가.
사람들이 당혹과 공포의 표정으로 멈춰 섰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들.
“왜, 왜…….”
“어, 뱀굴이 나와야 하는데, 어어….”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나는 경비반장이 들고 있던 산삼을 보았다.
…멀쩡했다.
‘사라졌어야 했는데…?’
고선하가 퍼렇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물귀신.”
“…!”
몇 시간 전에 들었던 말이 즉각 떠올랐다.
‘그리고… 물을 조심하세요. 창귀라는 건, 원래 예전엔 물귀신을 의미하는 거기도 했거든요….’
“함정이었어! 의식, 의식 자체가 함정이었어!! 물귀신에게 홀려서…!”
“아아아!!”
“우린 다 끌려온 거야, 저수지로…!!”
이병진 과장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도망가려 하다가 자빠졌다. 아이들이 울먹거리다가 비명을 지르고 서로를 잡았다.
나도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에 주저앉을 뻔했다.
등장인물이 모두 죽기 직전인 공포영화 장면에 들어온 느낌이다.
“…….”
‘이대로 죽…….’
…아니.
아니!!
최소한 이유라도 알아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어진 정보 내에서 실수한 건 없다. 내가 읽었던 <어둠탐사기록>의 모든 탐사 기록을 포함해도!
공포보다 납득할 수 없다는 불합리함이 머리를 지배했다.
공포에 질린 고선하가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윙윙댔다.
“뒤, 뒤돌아서 도망가요. 폐가로…!”
…어?
잠깐만.
나는 고선하를 돌아보았다.
“…그거 아십니까?”
“예?”
“폐가도 속임수입니다.”
“……예?”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는 천천히 말했다.
이 괴담의 의도된 모순점을.
“창귀에게 홀려서 들어온 공간인데, 창귀가 못 들어오도록 부적이 붙은 폐가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다는 게.”
“…….”
“그리고 그 폐가에 친절하게 여길 탈출하는 의식까지 적혀 있는 게 말입니다.”
그래서 <어둠탐사기록> 위키의 코멘트란에서도 이 페가에 대하여서 해석이 갈렸으나, 나는 거의 확신했다.
‘이건 애초부터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괴담이다.’
그렇다면 의도한 개연성은 이거다.
“일부러 폐가에 보름간 가두면서 심신을 쥐어 짜내 약화시키는 겁니다.”
의식이라는 희망을 쥐어준 채로, 극한 상태로 사람을 몰아넣은 채 버티게 만들어서 심리적 장벽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그럼 꾀어내기가 쉽죠.”
결정적으로….
“그 상태에서 의식을 치르면서 실수를 유도하면 최고일 것이고,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산삼을 바라보았다.
“희생양을 정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갈등이 생기고 낙오자가 나올 테니까. 한 명의 희생양은 반드시 ‘데려갈’ 수 있고요.”
“…….”
“물론 의식은 진짜일 겁니다. 그래야 더 절박하게 매달릴 테니까.”
그리고 이건 <어둠탐사기록>이니까 말이다.
이야기에는 편리한 거짓 설정을 너무 많이 넣으면 안 된다. 몰입이 흐트러지고 긴장감이 빠질 테니, 의식은 분명 진짜다.
그렇기에 나도 거의 확신을 가지고 의식을 진행했지만….
“그래서 더 의문입니다.”
나는 괴담을 꽤 많이 읽었다.
적어도 <어둠탐사기록>에 올라왔던 괴담들은 전부.
읽기 좀 힘든 것도 회사에서 루틴에 포함되니 몇 번이고 읽게 되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그간 몰랐던 잡지식 몇 가지도 알게 되었는데….
이런 거다.
“복숭아 나뭇가지는, 흔히 귀신을 쫓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리고 매실은 창귀가 좋아하는 과일이죠. 아마 그래서 이 두 준비물이 필요했을 겁니다.”
“…아.”
“창귀를 사당으로 유혹하고, 그사이에 의식을 진행하는 사람은 귀신 쫓는 향을 들고 도망가는 거죠.”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하필, 이 자리에 복숭아 나뭇가지로 만든 향 타는 냄새를 불편해하고, 매실에 혹한 듯이 반응한 분이 계시는군요.”
“…….”
사람이 일곱 명이나 되는데 굳이 맨 뒤에 있는 경비반장 옆에서 걸었던 사람.
마치 복숭아 나뭇가지로 만든 향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걷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고선하 씨.”
나는 당사자를 쳐다보았다.
“지금 자신의 의사로 말하고 계신 게 맞습니까?”
“……그게 무슨,”
어쩌면 말이다.
진짜 고선하 씨는 우리를 만나기도 전에 사당에서 의식에 실패하고 이미….
“지금, 고선하 씨가 아니라 창귀가 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우뚝.
발이 멈췄다.
“들켰네.”
고선하의 입이 찢어졌다.
근데 늦었다! 늦었다!
양팔이 기묘하게 길어지며 쭉 뻗어와, 나를 붙잡아 당기려고….
‘악!’
나는 바닥을 굴러 팔을 피했다.
뒤에서 과장과 아이들의 비명이 메아리치듯 울렸다.
“아아아악!!”
“귀, 귀신!”
반사적으로 앞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저건 완전히 창귀는 아니다! 창귀가 들린 인간이니까 어떻게든 제압을 하면….
하지만 깨달았다.
‘내, 내가 저거에 못 달려들어!’
이 리치 짧은 무기 쓰려면 귀신 들린 사람 코앞까지 가야 한단 말이야! 나 지금도 기절할 것 같다고!
그래도 불타는 뇌가 즉각 적임자를 찾았다!
“반장님!”
나는 등 뒤에 선 인영에게 무기를 던졌다.
“진압 부탁드립니다!”
훅.
흡혈 나이프가 허공을 가른다.
“…아.”
경비반장은 내가 던진 흡혈 나이프를 잡아채 한번 훑어보더니 즉각 창귀에게 달려들었다.
히히힉!!
고선하 씨의 얼굴과 팔이 뒤틀려 이상하고 괴이한 형상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수많은 남녀노소의 팔, 얼굴, 머리카락, 눈이 사방을 본다.
저기요! 저기요!
“히이익!”
“뒤로 물러나서 눈을 감으십시오!”
이병진 과장이 애들과 함께 구르듯 산길로 물러나 몸을 웅크렸다.
제 말 들리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그 순간, 경비반장의 모습도 뒤틀리기 시작했다.
기괴한 형상.
호리호리해 보이던 상반신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거대해지고, 입이 주둥이처럼 길게 찢어지며 혀가 튀어나온다.
그 혀가 창귀의 긴 팔을 무자비하게 잡아 꺾는다.
아아아악!
아니, 환각이다. 경비반장은 멀쩡한 인간의 모양새다.
아니, 역시 괴물 같은 형체로 변해…….
‘와, 미치겠네.’
나는 간신히 시선의 초점을 옮겼다.
경비팀이 그토록 괴담을 잘 제압하는 이유.
그런데도 현장탐사팀이 아닌 이유.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
[경비팀]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거대 세력, 백일몽 주식회사의 보안부 산하 세팀 중 하나.
특정 괴이에 잠식되어 더 이상 사람으로 판정받지 못하는 관계자들이 근무하는 팀.
종신직이며, 퇴사가 불가능하다.
———————=
그거 아는가?
인간으로 판정받지 못하면 괴담을 클리어해도 수집기에 원액이 차지 않는다.
현장탐사의 가치가 없다.
그래서 괴담과 동화되어 거의 괴물이 된 사람들은 보안팀으로 배치된다.
특히… 폭력적이고 영역 심리가 강한 모 괴담에 오염된 사람들은,
아파! 아파!
경비팀으로.
사내에서 관리하는 괴담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진압하는 용도로.
‘…그리고 거기서 반장까지 할 정도면, 저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괴담 속 괴물과 대치하는 것에 특화된 직원.
캬아아아악!
창귀의 수많은 팔이 경비반장의 주둥이에서 뻗어 나온 혀와 발톱, 이빨에 터져 나간다.
흡혈 나이프를 입에 문 경비반장의 얼굴엔 여전히 이상한 형체 같은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늑대?’
수많은 이빨이 보이게 쭉 찢어진 주둥이에서 침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 환각이 겹쳤다 사라졌다.
어지러움과 토기가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는 황급히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악몽 꾸는 것 같네.’
<어둠탐사기록>에서 경비팀이 괴담을 제압할 때 사람을 다 빼는 이유를, 현실적으로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모험수를 둔 것치고는 성공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눈 계속 감고 계십시오!”
나도 바닥을 보며 묵묵히 버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오, 노루 씨. 당신이 데려온 괴상한 게스트가 이겼군요!
상황이 종료되었다.
고개를 들자, 흡혈 나이프가 오른손 아귀에 꽂힌 채로 누워 있는 창귀.
그리고 그 대가리를 꽉 쥐고 있는 경비반장의 왜곡되고 변이된 모습이 보였다….
-윽, 갈 때까지 간 저질 같군요. 내 쇼에 게스트로 왔으면 감히 출연하지 못했을 겁니다!
브라운이 하는 소리가 나한테만 들리는 게 이렇게 다행이라고 느껴졌을 때가 또 없다.
나는 고선하 씨의 머리통을 꽉 누르고 있는 경비반장에게 필사적으로 태연한 목소리를 꺼냈다.
“반장님, 감사합니다.”
“으어어….”
-피곤하다는군요. 저렇게 무례할 수가!
저 괴성이 통역이 되는 네가 더 무섭다….
그때였다.
웬 짓눌린 소리가 경비반장의 손 아래에서 나온다.
사람의 목소리다.
“자, 잠깐만….”
“…!”
어느새 멀쩡한 얼굴의 고선하 씨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필사적으로 신음하며 끄윽거렸다.
“저, 저 살려주세요! 사, 살려주….”
얘 두고 가요….
“어, 어어억….”
눈이 뒤집히며 창귀의 소리가 들린다.
너만 죽자…… 응? 너는 죽어도 돼. 너 사람 죽였잖아. 애들 죽이려고 했잖아. 나 다 안다? 너 죽어도 돼.
고선하가 발버둥쳤다.
“안 돼, 안…….”
얘만 두고 가. 얘만 두고 가. 응? 으으으응?!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아악!”
그 순간.
“지금.”
경비반장이 인간의 목소리로 물었다.
“<백일몽 주식회사>로 긴급 구조를 요청한 거지……?”
괴물의 형체에 의해 그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또렷한 목소리는 고선하 씨에게 분명 직접 질문하고 있었다.
“이건 계약서를 작성할 수준의 공식적인 요청…, 맞…나?”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고선하 씨가 얼빠진 얼굴로 올려다보다가, 곧 정신을 차린 듯 절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
잠깐.
“아닙니다.”
나는 이 악물고 끼어들었다.
“이곳은 회사 소유 어둠도 아니고, 저희도 민간인의 구조를 위해 진입한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쌍방으로 도움을 주고받았습니다.”
“어…? 이상한데…….”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위험하게 낮아진다.
“얘는 우리 나가는 걸 방해하려고 한 거, 아닌가…?”
허어어억.
“…상관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으니까.”
나는 단언했다.
“그럼 이건 협력입니다.”
“…….”
경비반장이 나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고선하를 쳐다보더니….
“아… 그런가…….”
“…….”
“맞는 것 같기도 하구요….”
스르륵.
경비반장의 목소리에 힘이 빠지더니, 원래대로 만사가 귀찮은 듯한 투가 됐다.
‘후우.’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끼어들었는데, 역시 이게 맞는 것 같다.
‘백일몽 주식회사랑은 안 엮이는 게 상책이야….’
심지어 그 회사에 빚을 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감이 영 안 좋아서 말이다.
“음…… 그럼 어떡하지….”
“잠시만.”
나는 애들을 잡고 눈을 감은 채 뒤로 물러나 있던 이병진 과장에게 다가갔다.
과장이 내 발소리에 기겁했다.
“히이익! 설마 절 대신…!”
“향로.”
“헛…?”
“주십시오.”
나는 이병진 과장이 아직도 들고 있던 향로를 빼앗았다.
복숭아 나뭇가지로 만든 향은 이미 다 탔으나, 그 재는 온전히 향로 속에 남아 있었다.
‘복숭아 나뭇가지를 싫어했지.’
그렇다면….
나는 그 향로를 그대로 고선하의 어깨 부근에 부었다.
캬아아아아아악!!
치이익.
분명 그렇게 고온이 아닐 텐데도 어깨에서 탄내와 소금 짠내가 올라왔다.
나 안 가! 안 가! 또 매달리면 되지! 또 매달리면 되…… 아아아아악!
머리에 모조리 쏟았다.
창귀 들린 몸이 경련하더니, 미친 듯이 펄쩍거리다가…….
“허억,”
눈을 번쩍 떴다.
총기와 안도감이 도는 눈.
고선하 씨다.
“저, 저 괜찮아요! 괜찮아진 것 같….”
“아닙니다.”
“예?”
“여긴 애초에 창귀에 홀려서 들어온 공간이니,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그렇다면….”
“그러니까, 일단 고선하 씨에게 아예 못 들어오게 하죠.”
“…?”
사과즙 한 봉 더 챙겨왔거든.
나는 밀봉 팩을 고선하 씨에게 내밀었다.
“어, 어어어….”
“쭉 삼키시면 됩니다.”
강권하자, 고선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으나 결국 누워 제압된 채 꿀꺽꿀꺽 사과즙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털썩.
산삼처럼 잠에 빠져들었다.
후.
‘일단 해결…….’
“이제 손 떼셔도 됩니다.”
“…….”
경비반장은 얌전히 손을 떼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부서 변경…….”
“안 합니다.”
제발 좀.
나는 어쨌든 사람 형상으로 잘 돌아온 경비반장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후, 여전히 눈을 꽉 감고 있는 이병진 과장과 애들을 챙겼다.
“이제 눈 뜨셔도 괜찮습니다.”
“아…!”
이병진 과장의 얼굴에서 안도가 스쳤다.
하지만 곧 애들 눈치를 보며 내게 절망적인 표정으로 숙덕거렸다.
“하, 하지만 이제 어쩐답니까?? 나갈 길은 대체 어떻게 찾아낼지……!”
“…….”
“곧 해가 뜰 것 같은데!”
나는 하늘을 보았다.
뿌연 안개 너머로, 어딘가 어슴푸레한 빛이 비쳐오는 것도 같았다…….
…보름밤이 끝나간다.
‘의식을 다시 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예?”
“아마도 의식의 반은 성공했을 테니까.”
나는 노래를 부르며 걸을 때마다 길이 바뀌던 것과, 향이 제대로 타던 것을 떠올렸다.
‘준비한 건 다 맞았어.’
이 의식은 엄밀히 말하자면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창귀를 피하는 것.
산군에게 간청해 탈출로를 찾는 것.
“그리고 둘 중에 후자는 제대로 된 것 같다는 거죠.”
창귀 들린 사람이 우리 중에 섞여 있는 바람에 전자가 실패해서 물가 코앞까지 오긴 했지만….
“어쩌면, 탈출구도 이 주변에 있을지 모릅니다.”
“…!”
우리는 짙은 안개 속에서 뭉쳐 다니며, 물가에서 좀 떨어져 산과 가까운 공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의식 중에 걸어온 오솔길이 끝나는 그 지점 주변을 말이다.
-‘풀 없는 곳에 난 작은 뱀굴을 발견하면 산군의 자비에 감사하며 손을 넣어라. 손에는 소금 탄 우물물을 덧바른 채여야 한다.’
‘풀 없는 곳…, 풀 없는 곳.’
그리고 잠시 후.
“차, 찾았어요!”
“…!!”
중학생 중 하나가 나무 밑에 난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안개를 뚫어내듯이 달빛이 그 아래로 비추고 있었다.
마치 먹물이 고인 것처럼 시커먼 구멍을.
“…….”
뱀굴.
사람들이 소금물에 얼른 손을 집어넣게 했다. 마음이 급해서 공포고 뭐고 먼저 움직였다.
‘빨리, 빨리.’
그렇게 해가 뜨기 직전.
우리는 뱀굴에 손을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