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43화
“여기에 지하층까지 있었다니….”
지하 계단 앞에선 고영은의 얼굴에 두려움과 기대가 반쯤 서렸다.
백사헌이 빈정거렸다.
“그러니까요. 그리고 내 옆에 계신 분은 어떻게 지하층이 있다는 걸 알았는지, 왜 지하로 가는 건지 말도 없이 무조건 지하 1층 가야 한다고 하던데.”
“가기 싫으면 여기서 흩어지지.”
“…….”
백사헌은 조용해졌다.
지하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김솔음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 같은 상황’을 놓치진 않을 모양이었다.
나는 고영은에게 ‘엘리베이터 앞에 붙은 안내문을 특수 장비의 도움을 받아 도움이 될 공간을 찾았다’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하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발걸음을 옮길수록 알게 된다.
‘양식이 바뀌었어.’
황동색이던 저택은 청동빛 정도로 어두워지고, 좀 더 전위적인 장식이 나타났다.
어쩐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올 때보다 훨씬 더 깊게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
“…….”
이윽고 고풍스러운 대문이 계단 옆에 나타났다.
-지하 1층.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도착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대문의 한쪽 문손잡이를 잡고, 문밖에서 기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야 열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시홀이나 복도가 아니었다.
고영은 씨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긴…….”
“관람객용 라운지일 겁니다.”
거긴 일종의 휴식 공간이었다.
제법 안락하게 꾸며진 거대한 홀에는 고급스러운 안락의자와 빈티지 테이블, 그리고 한 구석엔 청동빛으로 타는 벽난로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이, 이게 있다고 엘리베이터에서 읽으신 거예요?”
“예.”
“아, 보통 로비에 이런 장소가 있으니까, 여기 주변에 근처에 출구가 있어서…?”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매뉴얼에 보면 전시홀에서 할 수 없는 몇 가지 있었는데, ‘휴식 공간’이라면 제약이 덜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 전시회에서 금지된 행위가 몇 가지 허용된다는 걸 노리고 왔다.
“할 수 없는 거… 아, 취식 같은!”
“예.”
2. 전시홀에서의 취식은 금지되어 있음.
“…근데 지금 딱히 뭘 챙겨 먹진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그렇겠지.
“정확히는, 취식에 포함되어서 금지된 어떤 행위를 하려고 온 겁니다.”
“…그게 뭘까요?”
나는 가방에서 준비해 온 아이템을 꺼냈다.
[쉽고 빠른 양초 제작 키트]
“화기 엄금 말입니다.”
지금부터 탈출용 아이템을 제작해 보겠다.
* * *
고영은은 침을 삼켰다.
눈앞에서는 말도 안 되게 유능한 동기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인가.”
김솔음은 서류가방에서 기묘한 상자를 꺼내 들더니, 동봉된 안내문을 빠르게 읽어내리고 있다.
그런데 그 박스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양초 제작 키트 같은 걸 대체 왜 챙겨 온 걸까?
‘저런 상표는 본 적이 없는데.’
‘유쾌 연구소’라는 이름의 로고가 스마일 마크와 함께 촌스럽도록 빤딱거렸으나, 김솔음이 든 안내문은 검붉은 잉크로 엉망진창 적어낸 손글씨였다.
…몹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괴담에서 마주칠 법한 소품 같은…….
그때, 백사헌이 중얼거렸다.
“…아이템?”
아이템?
반사적으로 김솔음을 돌아보자 꽤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예.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는 물건입니다.”
…!
“그, 그럼 어둠 아닌가요?”
“분류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둠이라고 보기엔 변칙성이 안정적이며 휴대가 가능하고 영역이 없는 물건을 아이템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
그걸 솔음 씨는 어떻게 아시는지…?
‘저희… 같은 신입 아닌가요?’
왜 정보력이 이렇게 차이가 나죠?
그리고 대체 어디서 그걸 구하신…?
나름대로 신입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회사 생활 잘했던 고영은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 심지어 다루는 게 엄청 능숙해 보이는데…?!’
김솔음이 시선을 느꼈는지 자신을 돌아보더니 약간 변명하듯 말했다.
“저도 처음 만들어 봅니다.”
진실이다!
안내문을 몇 번 읽으며 사용방식을 고민해 본 적은 있지만, 제작은 김솔음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유사 의식을 이미 한 세 번쯤 진행해 봤다는 것을 알 리 없는 동기 입장에서는 그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이다….
아니, 저런 사람은… 취직이 아니라 창업을 해야 사회적 이득 아닐까?
이딴 공포물 같은 회사에 엮여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
하지만 곧 차가운 현실감이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소원권 때문이겠지.’
포기할 수 없는 소원 때문에.
고영은은 서로의 처지에 대한 연민으로 살짝 우울감에 젖을 뻔했으나, 곧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탈출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자.
…괴물 기계가 접근하자마자 자신을 버리고 튄 R조 조장을 향한 개빡침도 전부 동력으로 쓰자!
조에 텃세가 없다고, 이 정도면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없겠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발언을 취소하고 싶을 뿐이다.
‘죽어라 조장!’
하지만 이대로라면 R조 상사들이 진짜 비참하게 눈코입 다 뜯긴 채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좀 이상하긴 했다….
“됐습니다.”
“…!”
생각에 잠길뻔한 고영은은 김솔음의 목소리에 퍼뜩 다시 시선을 들었다.
어느새 김솔음은 바닥에 검은 종이 한 장을 깔고, 동봉된 크레용으로 작은 그림을 그려두었다.
그건…… 음.
‘…양초?’
그래. 양초처럼 보였다…. 정확히는, 양초의 외곽선을 묘사한 평면 그림일 뿐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김솔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기에게 그림 근처에 둔 카드들을 한 손으로 가리켜 표시했다.
“카드가 보이시죠.”
“네, 네.”
“그중에 한 장을 뽑아주십시오.”
“…….”
“아이템의 속성을 정하는 겁니다.”
혹시 이용당하거나 휘말려 드는 거 아닐까?
고영은은 잠깐 고민했으나 곧 손을 뻗었다.
그간 김솔음의 언행에 기분 나쁜 수상쩍음이 있던 적도 없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봐도 항상 선의로 자신을 대했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해보자.’
이 사람은 머리 좋은 자신의 뇌 내 빅데이터를 꽤 신뢰했다.
그래서 바닥에 흩어진 카드 중 하나를 꽤 거침없이 뒤집었다.
카드의 앞면에는 한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기운찬 푸른 그림이 있었다.
최상단에 하얀 별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명예]
김솔음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잘 뽑으셨습니다.”
그런가?
‘지금 딱히 명예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안내문 읽은 본인이 잘 됐다니 다행이긴 했다.
이윽고 김솔음은 고개를 돌리더니, 별로 안 내킨다는 목소리로 백사헌을 불렀다.
“카드 하나 뽑아.”
“…….”
백사헌은 머리를 굴리며 상황을 계산하는 것 같았으나, 곧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뻗었다.
그가 뒤집은 카드 앞면에는 비뚤게 웃고 있는 사람의 입과 붉은 철장이 그려져 있었다.
[방해]
“어울린다.”
“뭐?”
김솔음은 무시하고 제작을 계속 진행했다!
“남은 카드를 모두 뒤집겠습니다.”
“예, 예.”
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시죠!
고영은은 김솔음이 단정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카드를 뒤집는 것을 보았다.
남은 카드는 총 열 장.
혼란, 치유, 명상, 상처, 거짓, 꿈, 분노, 보호, 일격, 응시…… 열 가지의 카드가 공개된 채로 바닥에 나열되었다.
‘대체 뭐지?’
무슨 타로점을 치듯이 카드를 뽑게 하더니, 마지막엔 다 공개하는 이유가 뭘까.
김솔음의 다음 행동을 보고 깨달았다.
마지막 카드는 직접 원하는 걸 고르는 거였구나.
[거짓]
검은 심장 옆에 황금빛 톱니바퀴가 그려진 그 카드를 뽑아낸 김솔음은, 라이터로 그들의 뽑은 세 장의 카드를 모두 태웠다.
불꽃이 색색으로 튀며 카드가 반짝이는 재로 변했다.
“…!”
그리고 그 카드에서 나온 재를 잘 모아서, 자신이 만든 크레용 양초 외곽선 안에 덧칠하듯 바르고는 종이를 접었다.
“이제 30분 정도 굳히면 됩니다.”
김솔음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바닥에 놓은 종이를 들어 올려 접어서 정장 앞주머니에 넣었다.
“지금 만드신 게….”
“이 양초가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
“…!”
“안 되면 몇 번 더 반복할 생각이었는데, 한 번에 키워드가 괜찮게 나왔…….”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익
“…….”
“…….”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저편에서 청동빛 불빛 아래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미 다리를 닮은 여덟 개의 직선.
그리고….
끼이이익
가스등 불빛이 새어 나오는 기계의 눈.
“…….”
“…….”
“뛰어!”
셋은 즉시 반대 방향으로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 * *
알고 있었다.
휴게공간이라고 해도 기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전시홀보다는 느슨하게 돌 것이라 추측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거긴 환풍구처럼 숨을 곳도 없어서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그래도 하필!’
나는 이를 악물고 복도를 가로질렀다.
이미 포착당한 이상 어디 다른 환풍구에 숨어도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정도의 성능을 갖춘 기계니까!
“직진할까요?!”
“일단은!”
쭉 가면 메인 전시홀이었다.
거기로 가서 더 우선순위가 높은 문제 상황 어그로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만….
‘지하로 내려와서 전시도 얼마나 위험해졌을지 모르는데…!’
그때였다.
휙.
“…!”
백사헌이 내 정장을 잡아채려고 했다.
‘또 뭔데 미친놈아!’
놈이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템! 양초! 만든 양초를 바치자! 그거 귀한 거 맞잖아!”
나는 손을 쳐내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지 이 멍청아!”
“뭐?!”
“전시 주제를 보라고!”
+++
이번 전시는 예술을 흠모하는 열린 마음하에 한 시간 무료로 진행됩니다.
+++
“예술!!”
“…!”
“그중에서도 생명체, 문명, 역사!!”
나는 악을 썼다.
“이 아이템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요금으로 받아주겠어!”
애초에 아이템에 가치 있었으면 우리 회사 직원들은 자기 장비부터 주고 눈을 안 뜯겼겠지!
게다가, 애초에 양초는 아직 완성도 안 됐단 말이다!
그러나 백사헌은 또 손을 뻗어 내 가방을 낚아채려고 했으며, 고영은이 열받은 듯 탄식을 뱉었다.
“시도는 해보자고! 이렇게 죽을 거!”
“악! 저기요! 그만 좀 하고 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우리의 발이….
메인 전시홀의 대문을 넘어갔다.
“…….”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온 사 방 에 별 빛 이 반 짝 였 다
아 니 조 약 돌 인 가 ? 무 수 히 많 은 쌍 쌍 히 빛 나 는 같 은 색 상 의 동 그 라 미 들 이
사각벽면을빼곡히덮고나를응시하고 있다인간의시선….
안내 기계가 뽑아간 눈들.
“허억.”
나는 발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백사헌이 하나 남은 자신의 눈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탕된 머릿속이 천천히, 진정된다….
-아. 마치 우주의 별처럼 배열해두었군요. ‘빛나는 시선’이라. 꽤 전형적이지만 대중적인 작명입니다! 작품 재료의 제공자들을 의식했나 보군요.
“…….”
거대한 검은 전시홀 3면은 안구로 가득 차 있으며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출입구는 우리가 지금 들어온 문 하나뿐.
그리고 그 출입구로, 안내 기계가 쉬지 않고 다가오는 중이다…….
갇혔다.
-노루 씨의 선택이 궁금하군요! 이제 막다른 길입니다. 도망칠 곳은… 흠, 없어 보이는군요. 과연!
-하지만 내 친구, 당신은 언제든 어디서든 빠져나갈 수 있어요. 이 브라운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것도…… 알고 있다.
‘나 혼자만이라면.’
언제든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다는 것을.
브라운은 기꺼이 나에게 ‘조명 끄기’라고 부르는, 존재감을 사라지게 해주는 능력을 써줄 것이다.
그럼 나는 다른 일행이 어그로를 끌어서 눈과 귀를 적출당하는 동안 조심스럽게 여길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사헌이라는 분이 요금을 지불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그의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 권장 인원이 3인이던 양초도 성공적으로 제작했으니 이제 백사헌은 필요 없다.
‘멘탈 문제 생길까 봐 동행했던 것뿐이지.’
솔직히 저 자식이 죽어도 별문제 없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죽는 편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 틈에 운이 좋다면 고영은 씨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어?
잠깐만.
“저희 흩어지죠! 그래서 한 명이라도 빠져나가면….”
“산양 씨!”
“예?”
“당신은 안전합니다.”
“…?!”
“요금을 최근에 징수당했지 않습니까?아직 다음 텀까지 남은 시간이 있을 겁니다.”
“아!!”
비교적 최근에 귀를 적출당한 고영은은 분명 아직 ‘이용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고영은의 눈에 희망이 번뜩였다.
“그럼 제가 가서 방해해 보겠….”
기이이이이이이익
“…….”
“…….”
들어왔다.
안내 기계가.
드르르륵.
청동빛 촛불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 기계를 정면으로 보았다.
무자비하도록 날카롭고 정교하다.
거미를 토대로 철을 살점 삼아 덧붙인 듯, 기묘하게 머리-가슴이 연결되어 있고 그 아래에 배와 하체가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 이족보행을 하는 지성체를 닮은 형상이라 불쾌한 골짜기를 건드린다. 삐걱거리는 기괴한 움직임이 사람을 섬뜩하게 만든다.
제멋대로 관절을 움직이는 날카로운 바늘 같은 다리들.
그리고 머리에서는 가스등 여덟 개가 희끄무레한 그림자를 뚫고 노랗게 빛났다.
“…….”
다가가던 고영은은 그대로 굳었다.
직전에 귀를 뜯겼을 때의 트라우마가 뇌를 뚫고 올라온 것 같았다.
그럴 만했다.
끼이이익.
기계는 고영은을 그대로 지나쳤다.
‘역시.’
그렇다면 기계가 쫓아온 것은….
나와 백사헌.
기이이이이이익.
나는 아주 짧게 고민했다.
백사헌에게 시선이 쏠렸을 때 재빨리 존재감을 지우고 도망가는 것이다.
기계가 나만을 주목하고 있을 때는 어렵겠지만, 아직은 타겟이 둘이니 브라운의 능력이 통하지 않을까.
-오, 지금 쓰면 됩니까?
그리고 결정했다.
‘아니.’
대신 백사헌을 옆으로 밀쳤다.
“…!”
“뛰어.”
백사헌은 이미 눈이 하나 없다.
즉, 눈 이상의 것을 함께 적출당할지도 모른다는 걸 본인이 안다.
‘어떤 수준의 돌발행동을 할지 몰라.’
만일 귀를 대신 ‘징수’하게 한다고 해도, 이미 눈 하나를 적출당해 본 사람의 거부반응은 더 격렬할 것이다.
얼마나 극단적인 미친 짓을 할지 가늠도 잘 안됐다.
차라리 도망가게 두는 편이 나았다.
“뛰라고.”
백사헌은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곧 기계에서 뒷걸음질 치며 멀어진 후, 기계가 내 앞에 서자 전속력으로 문을 향해 뛰어 사라졌다.
동시에 고영은도 내 눈짓을 보고 눈을 질끈 감더니 문에서 뛰어나갔다.
“…….”
그럼 이제.
-안내원에게 질문할 게 생겼습니까? 노루 씨.
나는 고개를 들었다.
마치 거미와 여인을 반쯤 모자이크로 합친 것처럼 생긴 기계가 가스등 빛을 비추며 나와 마주하고 있다.
그로테스크하고 전율이 이는 생김새였다.
안내 기계는 이윽고 사방에 달린 여덟 개의 다리와 팔 바늘을 들어 올려 내게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들어왔습니다.”
안 통할 걸 안다.
아니나 다를까, 기계는 알 수 없는 소음을 내며 거대한 바늘 하나의 관절을 까닥거린다.
-들어온 지 1시간 54분이 경과되어, 추가 요금이 정산된다고 하는군요.
심호흡했다.
“잠시만요. 요금을 내기 전에 질문 먼저 드려도 괜찮습니까?”
-물론 괜찮답니다!
“혹시 게스트룸 예약은 프론트에서 진행합니까? …제 질문에 동의하시면 머리를 한번 끄덕이시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옆으로 가로저어주십시오.”
…….
끄덕.
“안내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한숨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이걸 물어보기 위해 앞의 질문을 한 거였다.
탈출을 위한 핵심 질문.
‘이 기계들은 자기 구역에 대한 정보만 기억하니까, 어느 층에 출입구가 있는지 모른다.’
아마 내가 프론트의 위치를 물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자기가 있는 층에 대한 정보로 바꿔서 묻는다면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관람을 끝마치고 귀가하시려는 손님들은, 이 지하 1층에서 아래층으로 가셨습니까?”
…….
“아니면 위층으로 가셨습니까?”
끄덕.
“위층으로 가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래.
이렇게 층에서 마주치는 안내원 기계마다 알맞은 질문을 하다 보면, 결국 출입구의 위치를 좁힐 수 있는 것이다…….
그 전에 눈코입과 사지가 다 뽑히지 않는다면.
‘지하 1층보다 위라면… 지상층에 있구나.’
그걸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지상층은 7층뿐인데 그 안에 있다는 거니까.
‘좋은 조건이야.’
하지만 기쁨은 촛불처럼 사라졌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왔으니까.
끼이이이익.
-이제 요금을 받겠다고 합니다.
요금 징수.
“…….”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큰 문제는 없다.
‘대여품을 대신 눈구멍에 꽂아주니까 이 어둠에서 탈출할 때까진 시각이 있겠지.’
그리고 난 이 세계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잃어버린 신체 부위를 복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몇 가지나 알고 있고, 다른 사람보다 쉽게 쓸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거기도 하고 말이다.
‘다 계산해서 납득한 상황이라고.’
문제는… 이 미칠 것 같은 거부감!
누가 이걸 순순히 아무렇지 않게 받을 수 있겠냔 말이다.
양 눈이 생으로 괴물한테 적출당하는데!
심지어 뽑힌 남들의 눈이 사방에 진열되어 있는 이 공간에서!
식은땀이 턱을 타고 흘렀다.
‘그래도 확인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눈이 뽑혀도 아프진 않을 것이다.
‘이 조건으로도 못 버티면 여기서 살아남는 건 포기해야 한다고.’
정말로, 지금보다 좋은 조건은 없었다. 내가 쫄보의 심장으로 괴담의 상해를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복구할 수 있는 결손은 한 번쯤 견뎌서 내성을 기르는 경험도 필요한 거다.
그래도 꽉 쥔 손이 떨린다.
‘X발….’
지이잉.
눈앞으로 거미 다리 같은 얇고 날카로운 금속 재질의 거대한 바늘이 다가왔다.
나는 숨을 참았다.
훅.
바늘이 눈가를 파고들어 온…….
지이이이익.
“…….”
나는 눈알만 굴려서 옆을 보았다.
어둠 너머에서, 거대하고 거미를 닮은 기묘한 형체가 접근하고 있었다….
지이이이이익, 끼이이이이익.
또 다른 안내 기계였다.
“…….”
이게 뭐지.
‘기계에 입력된 동선이 있을 텐데.’
동선이 겹치는 경우는 없는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내 눈을 적출하려던 기계는 잠깐 작동 오류를 일으키는 것 같더니… 곧 내게서 떨어져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체적으로 동선을 수정하는 것처럼.
끼이이이이이익…
“…….”
안도의 한숨은 나오지 않았다.
새로 온 기계가 내 안구를 적출할 테니까.
나는 그냥 숨을 참고 새롭게 나타난 기계를 응시했다.
내 코앞까지 안내 기계는 거미 다리 같은 자신의 부속품을 치켜들었다.
그러더니…….
“휴우.”
…?!
“괜찮아, 노루야?”
거미 형상이 무너지듯 사라지며 거기에 오소리 가면 쓴 인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임님!”
모습을 드러낸 박민성 주임이 식은땀에 젖은 얼굴로 씩 웃었다.
“어후… 아슬아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