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49화
고영은 씨의 입안으로 연두빛 마법의 약이 넘어간다.
꿀꺽. 꿀꺽.
물은 사라지고, 유리병이 다 비었을 때.
“…!”
고영은 씨는 병을 내려놓았다.
눈을 부릅뜬 채로, 양손을 귀로 향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안에서.
마치 상처에서 새살이 돋듯이, 고영은 씨의 귀가 뜯겨나간 자리에 둥그런 모양의 살덩어리가 자라난다.
그리고 순식간에 형상을 갖춘다.
귓바퀴, 귀구슬, 귓불이 연골을 토대로 뚜렷한 형체를 드러내고, 그리고…….
완전해진다.
“…….”
“와, 와아앗…!!”
맙소사.
“고영은 씨?”
“예!! 아! 들려요! 이게, 이게 되다니….”
고영은 씨가 새로 생긴 귀를 만지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외치더니, 스마트폰을 켜서 카메라 어플로 자기 귀를 살피기 시작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원래 자기 귀와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아프거나 하진 않습니까?”
“전혀요! 그냥 좀 가렵다가 괜찮아졌는데… 와,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잘 들리는 것 같은데요?!”
아주 좋은 일이었다.
정말, 정말 놀랍고 경이롭게까지 느껴지며,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더 무모한 선택을 할 수도 있겠는데.’
이 회사는 어떤 고등급 어둠 클리어에 치명적 신체 결손이 무조건 전제된 것으로 매뉴얼상 판명 나면, 재생 물약 저등급을 비품으로 지급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짓에 익숙해지면?
직원은 점차 신체를 잃는 게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이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부턴 쉽다.
‘그게 좋은 걸까?’
나는 묘한 기분으로 옆을 보았다.
백사헌이 어딘가 어두운 기색으로 자신의 재생 물약이 담긴 화려한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쪽 눈으로 말이다.
“…저기. 백사헌 씨.”
“…….”
고영은이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눈 한쪽이 불편하면 생각보다 영향이 커요. 거리감, 시야각, 거기에 균형감각까지 영향을 주니까, 아까워도 쓰셔서 재생시키는 쪽이 나을지도 몰라요.”
“신경 끄세요.”
고영은이 ‘뭐 이런 새끼가’하는 표정을 지을 뻔했으나, 귀가 도로 생긴 것이 안심되어서 그런지 무시를 택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근무가 위험하다 보니 신체 결손이 또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을 위해 아껴두는 것도 나쁜 판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 그렇기도 하네요.”
“……!”
백사헌이 갑자기 동공을 떨더니 심각하게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야.’
왜 내가 편들어주니까 ‘그냥 지금 쓸까’하는 표정이 됐냐고.
아무튼 나도 무시하고 상자를 잘 챙겼다.
약간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이렇게 유명하면서도 강력하고, 무섭지 않은 상징적 아이템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백일몽 주식회사의 심볼.
마법의 약.
‘잘 보관해두자.’
그때였다.
“저, 솔음 씨.”
“예?”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정식으로 꼭 인사드리고 싶어서요.”
고영은이 나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였다.
“진짜, 진짜… 감사합니다.”
예?
“그때, 혼자 기계 상대하면서 저희 도망치게 해주셨잖아요.”
“…고영은 씨는 원래도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귀를 징수당해서 요금 낼 필요가 없었지 않은가. 내가 살려준 건 사실상 백사헌뿐 아닌가?
‘그리고 저 싹바가지 없는 놈은 감사 인사 한번 안 했지….’
역시 인성 터진 자식이다.
그러나 고영은 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후에 또 저흴 살리려고 돌아오셨잖아요. 양초가 저희 거라는 거짓말까지 하면서요.”
“…….”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거든요. D조 분들이랑 가면 되니까.”
“음.”
있었는데요….
‘그 강심장들한테 양초를 쥐어준다고?’
어? 이걸로 안전 확보됐다고? 오케이. 그럼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 매뉴얼 심사에 넣어서 포인트 뽑아보게.
같은 발언을 하면서 온갖 짓을 하고 뒤에서 쫓아가던 내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광경만 상상되는데.
내가 괜히 혼자 그 미친 전시회를 돌아다녀야 하는 공포를 무릅쓰고 둘을 찾은 게 아니다.
더 큰 공포가 뒤에 있어서 그랬지…!
‘그리고…… 누굴 살릴 수 있다면 살리는 게 맞기도 하고.’
난 그냥 할 수 있을 만큼만 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건 누구나 할 만한 일이었고요.”
“진심이세요? 아닌 것 같은데….”
“전 오히려 기여도만 생각하면 두 분도 승진하시는 게 맞는데, 저만 승진해서 좀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고영은이 정색했다.
“아, 아뇨. 저는… 벌써 승진하고 싶진 않아서요.”
“…….”
“아, 물론 솔음 씨는 잘하시겠지만요!”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하네…….
“저, 근데 왜 저희가 승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전시회에서 아이템이고 뭐고 다 김솔음 씨 주머니에서 나온 건… 기억하시죠?”
고영은이 어쩐지 딱한 사람 보는 눈으로 날 보았다.
“음. 회사 생활하면서 너무 사람 좋아 보여도 사람들이 얕보니까, 남한테 너무 좋게 말씀 안 해주셔도 괜찮지 않을까요….”
예?
아무리 봐도 생명의 은인 효과로 너무 좋게만 봐주시는 것 같지만… 은심장을 떠올리며 나는 그냥 고개를 숙였다.
착하게 굴자!
“……충고 감사합니다.”
백사헌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고영은과 나를 번갈아 보았으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음. 냅두자.
나는 고영은과 정중히 인사를 다시 주고받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은심장, 언제부터 착용할까.’
임무에 들어갔을 때만 할까.
나는 주머니 속의 배지를 손가락으로 굴리며, 이리저리 계획을 세웠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이제 익숙해진 인영이 걸어온다….
하얀 도마뱀 머리.
“조장님.”
“김솔음 씨.”
내가 부상을 수여받는 사이에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 것 같았다.
이젠 저 세로 동공도 약간 친근하게까지 느껴진다.
‘이것도 생명의 은인 효과인가.’
나는 안내 기계의 바늘을 두 동강 내던 도마뱀의 무지막지한 너클질을 떠올리며 잠깐 침묵했다.
그때, 도마뱀의 세로 동공이 빈 재생 물약병과 상자로 향했다.
“사용했습니까?”
“예? 아. 제 것은 아닙니다. 여기 동기… 고영은 사원님이 사용하셨습니다.”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고영은이라고 합니다!”
고영은이 낯선 도마뱀… 아니, 다른 조 과장을 향해 고개를 꾸벅거린다.
도마뱀이 눈꺼풀 없는 눈으로 고영은을 보았다.
“질문이 있습니다.”
“네, 네.”
“당신이 탈출용 아이템의 주인입니까?”
“…예?”
“사흘 전 전시회 형태의 B등급 어둠에서 양초 형상의 인지교란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었습니까?”
아.
“아… 음. 비슷합니다….”
“예. 맞습니다.”
고영은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 상황을 파악하고서 말끝을 흐렸으나, 눈치껏 부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나 보다.
“넵.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예의 바른 인사말을 던지고 먼저 복도 반대 방향으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좋은 판단력이십니다…….’
나는 안도하며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김솔음 씨.”
“예?”
“반복적인 거짓말은 자제하십시오.”
코로 뿜을 뻔했다.
“자주 언급할수록 효력이 떨어집니다.”
“…….”
언제 눈치챈 거지?
하지만 일단 머리부터 박았다.
“죄송합니다.”
“예.”
“동기가 탈출용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면, 귀중한 탈출 시간을 소모하는 일을 설득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예.”
개빡쳐서 단답으로 대답한다고 하기엔….
‘목소리가 평온한데.’
원래 이런 인간, 아니 도마뱀이란 말이지.
나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놀랍게도 도마뱀은… 살짝 웃고 있었다!
“인간은 모두 거짓말을 합니다.”
“…….”
“중요한 건 행위의 목적과 결과입니다.”
철학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내가 좋은 의도로 거짓말을 했고, 또 결과도 좋았으니 별로 상관없다는 건가?’
“…….”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예.”
그걸로 대화는 끝났다.
도마뱀 조장은 다시 무덤덤한 세로 동공의 파충류로 돌아갔다.
‘성격도 어딘가 평범한 사람과는 괴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좀 더 깊게 실감한 느낌이다. 좋은 의미로도 말이다.
나는 부상으로 받은 재생 물약 상자를 의자에서 챙겨 들었다.
–친구, 일은 다 끝났습니까?
그때 마침 주머니 속 브라운이 말을 걸어왔다.
회사에서 내근할 때는 내가 ‘착한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게 서로 잡담을 삼가기로 했지만… 타이밍이 맞았으니 한번 물어볼까.
나는 살짝, 봉제 인형을 주머니 밖으로 걸치듯 꺼냈다.
‘브라운.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직원 말인데.’
-아, 노루 씨의 훤칠한 상사 말이지요?
‘그래. 어떻게 생긴 걸로 보여?’
-호오.
마치 뜯어보듯이 짧은 침묵이 흐른 후.
-눈, 코, 입, 청각 기관까지 고루고루 다 멀쩡하게 생겼군요!
‘…도마뱀으로서?’
-도마뱀? 하하, 노루 씨, 짓궂은 비유도 할 줄 아는군요. 누구를 놀리고 싶은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도마뱀이라니!
“…….”
브라운도 도마뱀으로 안 보인다고?
설마… 진짜로 나만 도마뱀으로 보는 건가?
“김솔음 씨.”
“예, 조장님.”
다시 결심했다. 앞으로도 도마뱀의 ‘도’자도 입 밖에 꺼내지 말자.
“이동하겠습니다.”
이자헌 과장이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태연한 척 도마뱀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사무실로 복귀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음?
“…그럼 어디로 가는 겁니까?”
“주임부터 접근 권한이 개방되는 제한 구역입니다.”
“…!”
“이용 방식을 설명하겠습니다.”
왔다.
* * *
이 회사에서는 직원의 직급이 높아질수록 다양한 권한이 생긴다.
그건 복지이기도 하고 능력이기도 하고 장소이기도 했다.
“김솔음 씨가 주임으로 진급하며 세 가지 시설 이용이 추가로 허가되었습니다.”
별관 앞, 나는 이자헌 과장에게 서류철을 받아들었다.
1. 보안팀 대여창고
2. 별관 (연 2회 장비 제작 무료)
3. 여우 상담실
“이제부터 김솔음 씨는 보안팀 대여창고에서 무구를 반출할 수 있습니다.”
“…….”
“별관에서 상급자의 동행 없이도 황혼등급 어둠을 이용해 전용 장비를 커스텀할 수 있고, 필요 시 여우 상담실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혜택.
그리고 몰랐지만 <어둠탐사기록>을 통해 정보는 있던 몇 가지 공간들이 개방된다.
약간의 성취감과 짜릿함.
그리고 기대.
‘이 미친 세계관에서 살아남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이 더 늘었다…!’
하지만 모든 건 양면성이 있는 법이다.
대우가 좋아지는 건 그만큼 직원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이 회사로 따지자면….
‘위험.’
괴담을 다루는 회사답게, 높은 직급만 접근이 가능한 것은 대부분 민간인이 다룰 수 없을 만큼 위험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또한 현장탐사팀의 주임에겐 담당 어둠이 한 점 배정됩니다.”
“…….”
그렇다.
팀과 별개로 내가 직속 관리해야 하는 괴담이 하나 생기는 것이다!
“보통 개인이 담당을 맡아도 조에서 공동으로 관리하지만, 일차적 책임소재는 직원 본인입니다.”
현장직에게 책임 분산하기.
정말 기업 같은 처사다. 여기서 친숙한 21세기 사회인의 맛을 보는군….
이자헌 조장의 말에 따르면,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배정되는 어둠은 더 많아지고 위험해진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신입이라는 거다.
“김솔음 씨는 근속연수가 1년 미만에 주임이니, F등급이 배정될 겁니다.”
후우.
“일정에 따라 관리한 후, 특이사항 유무를 점검표로 등록하십시오.”
“예.”
아무튼 까라면 까야 하는 상황, 나는 의미 없이 징징거려 체력을 소모하는 대신 의미 있는 기도나 하기로 했다.
‘제발! 제발! 일반적인 저등급 어둠이 배정되게 해주십쇼!’
화요퀴즈쇼 꼴 나게 생기면 차라리 그냥 퇴사하고 재난관리국 시험이나 준비하는 게 낫다고!
그런데 놀라운 말을 들었다.
“고를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겁니까?”
“예.”
이자헌 과장이 후보군을 몇 개 보여줄 테니 그 안에 고를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원래 그런 겁니까?”
“아닙니다.”
도마뱀이 나를 빤히 보았다.
“제 권한입니다.”
…?!
그러니까, 지금 직권을 이용해서 유도리 있게 나한테 선택지를 만들어준… 건가?
저 도마뱀이?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주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사례입니다.”
“예?”
“B등급 괴담에서 올바른 탈출로를 찾아 D조 전원이 상해 없이 복귀하게 인도한 행동에 대한 사례입니다.”
“…조장님도 안내 기계한테서 제 목숨을 살려주셨습니다만.”
“그건 책임의 문제입니다.”
도마뱀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조장에겐 구성원을 자신의 역량 안에서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
야 좋은 상사… 맞잖아.
‘약간 감동할 뻔했다.’
진짜 내가 사회초년생이었다면 퇴사 결심을 한 달은 보류했을 것이다.
이래서 은하제 대리와 박민성 주임이 조장 일이라면 허허거리면서 좋게 보려고 애쓰는 거였나.
나마저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예.”
나는 고개를 꾸벅거린 후, 도마뱀이 안내하는 F등급 어둠 격리실로 향했다.
예상 못 했지만 아주 좋은 상황이다.
‘잘하면 오히려 이득을 볼 수도 있어.’
<어둠탐사기록>은 위키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여러 창작자가 자유롭게 룰만 지키며 만들었기에 각자 등급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F등급이라도 활용 폭이 아주 좋을 수 있단 의미지.’
제대로 다루는 방법만 알고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어둠탐사기록>을 통해, 나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다.
거기 기록되어 있는 어둠이라면.
“이렇게 3점의 F등급 어둠입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물건 세 점이 보였다….
낡은 테디베어.
검은 카드 두 장.
비행기 모형.
“…!”
‘셋 다 알아.’
잭팟이었다.
-아, 참 낡고 못난 인형입니다.
그 와중에 브라운이 어딘가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를 냈다. ‘착한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 인형을 견제하는 건가.
-아무튼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군요, 노루 씨!
나는 고민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이 어둠을 담당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