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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59화


괴담이 내게 새겨 놓은 문신은 다 문자였다.

하나는 라틴어 문자.

: Socius :

테마파크 마스코트였던 푸른 용이 줬던 회원권이 불타며 새겨졌다. 브라운에게 듣기로는 ‘특별 자격’ 같은 통행증의 권한이 부여된 문자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자.

: 恩主 :

연쇄살인마 괴담 속 산장지기의 계약 문서가 불타며 새겨진 문신이다.

그러나 내게 ‘자격’이 없기에 실제로는 아무 기능이 없는 문자에 불과한 것이다.

이 중에 ‘강화’할 것을 고르자면….

‘역시 이거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가리킨 문신을 타투이스트가 들여다보았다.

: 恩主 :

이 선택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능력의 가짓수를 늘리는 편이 나아.’

나는 앞으로도 다양한 괴담에 들어갈 게 (눈물 나지만) 거의 확정적이다.

무슨 초능력 하나로 만능 해결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도마뱀 과장이 그 힘을 가지고도 거의 죽을 뻔한 적도 있는데, 택도 없어.’

각종 상황에서 쓸 각종 패를 늘리는 편이 낫지, 하나의 능력을 어중간하게 강화하는 건 효용이 크지 않았다.

‘그러니까 못 쓰는 문자를 쓰게 되는 편이 나아.’

이 달빛 타투샵이라면 혹시라도 ‘지뢰 밟을’ 염려도 없다.

사람에게 아주 우호적이라서 해가 될 만한 능력은 잘 주지 않으니까, 갑자기 산장지기가 튀어나와서 내 목을 치진 않을 거란 뜻이다.

게다가….

나는 힐끔, 라틴어 문자를 보았다.

-착한 아이.

…묘하게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한 것 같았던 그 마스코트를 떠올리자면, 이 문신은 ‘커버업’하는 게 왠지 훼손처럼 느껴졌다.

‘위험 신호가 울린단 말이지.’

<어둠탐사기록> 애독자로서의 감이 말하는데, 이런 건 피하는 편이 나았다.

-아, 드디어 시작하는군요!

그렇게 나는 선택했고, 타투이스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게 여러 시안을 보여주려는 상대를 말렸다.

“아, 그냥 보시기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부탁드립니다.”

효과 극대화를 노린다면 역시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나는 씩 웃었다.

“타투이스트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

가게 주인장의 눈이 순간 반짝인 것 같더니, 곧 기세 있게 내게 의자에 편안히 눕기를 촉구했다.

브라운을 손에 꽉 쥐여주면서 말이다.

-나를 무슨 통증 달래기용 인형으로 오해했나 보군요! 무례하면서도 재밌는 오해란!

그러나 통증은 없었다.

타투이스트는 어딘가 스팀펑크 양식이 떠오르는 정교한 고글을 쓰더니, 거대한 타투머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머신이 저렇게 큰 건가?’

거의 수술용 의료 기계만큼 거대한 머신을 보며 약간 당혹할 찰나.

달빛이 기계에 깃들었다.

지이이잉-

LED 천장에서 쏟아지던 빛이 기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극점으로 모인다.

타투 기계의 바늘 끝.

마치 빛나는 보석 같은 촉이, 내 팔에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나는 지시대로 눈을 감았다.

“…….”

왼팔에서 기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아픔이나 간지러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압박감도 아니다.

마치 묵은 때가 벗겨지고 피부가 재배치되어 알맞게 조립되는 듯한, 시원하고 편안한 감각이 지속되는가 싶더니.

툭툭.

끝났다.

눈앞의 빛이 사라지고, 타투이스트의 손짓에 따라 나는 눈을 떴다.

“…!”

‘맙소사.’

문신에 배경이 생겼다.

검푸른 밤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는 것이 마치 한 붓으로 칠한 듯 표현되었고, 그 위에 달그림자처럼 문자가 새겨져 있다.

별들이 문자 근처에 흩뿌려진 듯 진주빛으로 반짝였다.

툭툭.

타투이스트가 마음에 드냐는 듯이 허리에 손을 대고 나를 보았다.

“아주 멋집니다.”

뿌듯한 얼굴이 된 타투이스트가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카운터로 달려갔다.

“…?”

돌아온 타투이스트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진주 한 알이다. 내가 가져온 목걸이에서 풀어낸 것처럼 보였다.

‘뭐지?’

주인장은 진주 알갱이를 내 문신 위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쑥 들어갔다.

“…?!”

-호오, 아 이것 참. 흐음….

-노루 씨, 아주 재밌군요. ‘통로’가 열렸습니다.

통로?

-부드럽게 문신을 문질러 보겠습니까? 뭔가 느껴질 겁니다.

나는 손을 들어서, 거짓말처럼 붓기도 통증도 없는 문신에 살짝 가져다 댔다.

“…!”

느껴졌다.

맞닿은 피부 사이로 뭔가의 ‘틈’이.

“…….”

나는 조심스럽게 그 안에 손을 ‘넣었다’.

다시 나온 내 손에는 아까 타투이스트가 집어넣었던 진주 한 알이 들려 있었다….

‘…공간?’

-그렇지요. 아무래도 그 비루한 산장 노동자의 계약서 안에는 ‘공간 제공’까지 포함되었나 봅니다!

-하기야 여객에게 방을 제공하는 건 하인에게 당연한 의무이지 않습니까? 아마도 아티스트는 그 계약서의 빈틈을 찾아내서, 당신에게도 작은 공간을 제공하도록 만든 듯하군요!

잠깐만.

그럼 나한테 지금… 나만의 작은 인벤토리 같은 게 생겼다는 말인가?

‘이게 된다고?’

괴담에서 기대해 본 적 없는 웹툰식 기프트에 심장이 뛰었다.

-어디 보자… 한 면이 2피트쯤 되는 정육면체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군요. 그 정도 공간이 당신에게 ‘연결’된 듯합니다!

2피트면 대충 60㎝쯤 될 것이다.

누가 미국 토크쇼 괴담 출신 아니랄까 봐 간악한 단위법을 쓰긴 했다만 진심으로 고마운 정보였다.

그런데 말이다.

‘그럼, 이게 그 산장으로 연결된 건가?’

그 미친 살인 산장은 분명 없어졌을 텐데.

-글쎄요. 어디로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산장지기가 정확히 어떤 종류의 공간을 제공하기로 했는지는, 본래 계약을 체결했던 자만 아는 사실이겠지요.

“…….”

-이것 참 흥미롭습니다. 내기 주제로도 괜찮군요! 우리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뭘 걸어볼까요?

정중히 사양하겠다….

그래도 이 달빛 타투샵이 상대에게 해가 되는 방식으로 능력을 발현시키진 않았을 테니, 너무 경계하느라 쓸 수 있는 능력을 못 쓰진 말자.

‘앞으로는 아이템 몰래 숨겨갈 때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그것만으로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신기하고 멋지네요.”

나는 꺼낸 진주 한 알을 다시 반납했고, 받아 드는 타투이스트의 눈에 기쁨과 만족감이 반짝였다.

“이대로 가면 될까요?”

끄덕.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입구로 나서려는 때였다.

타투이스트가 뭔가 깨달은 듯, 잠깐 멈추라는 듯 손짓했다.

‘뭐지?’

그리고 카운터 아래를 맹렬히 뒤지더니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투명한 포장지에 정성껏 싸더니, 내게 내밀었다.

‘……타투 도안?’

상대가 내미는 것을 받아 드는 순간 깨달았다.

그건 타투 스티커였다.

심지어 내가 추천받아 골랐던 도안, 토마토 나무가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그것도 3장이나!

“…!”

잠깐만.

“혹시 이걸 붙이고 있는 동안은… ‘용감’해지는 겁니까? 타투를 받은 것처럼.”

타투이스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생각지도 못했던 부수입이었다.

“감사합니다.”

주인장이 미소를 띤 채 내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정말로 배웅할 시간이 온 듯했다.

나는 스티커까지 주머니, 그러니까 새로 생긴 ‘공간’에 잘 챙겨 넣은 후, 이번에야말로 나가기 위해 문을 잡았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예의 바른 인사와 함께 내 뒤로 문이 닫혔다.

딸랑.

그리고 내가 다시 고개를 돌아봤을 때.

“…….”

거긴 공실이었다.

괴담답게 뒤틀린 부동산 연락처가 붙어 있는 유리창 안은 공허하게 비어 있었다.

‘…원래 이렇다고 하긴 했지.’

달빛 타투샵은 이 ‘공실입니다’ 괴담을 통해서는 딱 한 번만 진입이 가능했다.

‘다음엔 다른 괴담을 이용할 기회가 있겠지.’

-아, 독특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동의한다.

“노루야, 탐사는 괜찮았냐?”

“예.”

나는 그날, 다른 문제 없이 무사히 ‘공실입니다’ 탐사를 마치고 포인트를 잘 적립했다.

브라운이 받은 아로마 마사지의 좋은 향은 며칠 갔다.

하지만 커버업 받은 타투는 다음날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기존의 문자만 팔목에 남았다.

그래도 얻은 능력은 그대로였다.

‘잘 쓰자.’

인벤토리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나는 실험을 반복했다.

***

그리고 3주.

거짓말처럼 이 능력이 활약하는 일은 없었다….

“…….”

아니 뭐… 보통은 이게 정상이긴 하지.

매뉴얼이 있는 괴담에 들어갈 때는 클리어에 필요한 물건을 이미 회사에서 제공해 줬기 때문에 굳이 뭘 숨겨갈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매뉴얼이 없는 괴담에 투입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든 상태.

‘외계인 상점에도 딱히 미친 듯이 휴대해 다니고 싶으면서 쓸만해 보이는 것도 없어 가지고….’

결국 기존 아이템들을 좀 더 편리하게 넣어 다니는 정도의 효용으로 전락했다는 말이다.

‘일단 저 안이 진공 상태라도 되는 건지 음식물이 부패하지 않는 건 알아냈는데 말이지.’

아날로그 시계를 넣었더니 초침이 그대로였는데 또 전자시계를 넣어놓으면 방전된다.

법칙을 알 수 없는 상황.

그런데 사용이 급하지도 않은 타이밍.

결국 특별히 치열하게 아이템이나 능력 쓸 필요 없이 그럭저럭 포인트 잘 모으면서 시간이 흘러갔다는 거다….

‘좋은 거긴 해.’

“정기인사까지 3주 남았다.”

“후하후하.”

“넌 여기 남을 거라고, 알았어 노루야!?”

“예.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D조에서 가장 핫한 잡담 화제가 내가 정기인사 발령에서 무사히 이 조에 남을 수 있는지였다면 말 다 했지.

괴담 회사답게 다치거나 무서운 일이야 틈틈이 발생했지만 이젠 그것도 제법 익숙해졌다.

부적처럼 타투 스티커를 부여잡고 견딜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이건 진짜 급할 때 써야지.’

나는 슬슬 익숙해진 회사에 다니며, 이 성격 괜찮은 팀원들과 함께 업무를 처리하는 것에 안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도 당연하다만.

그 안심도 오래가진 못했다.

3주하고도 이틀이 지난 시점.

월요일 출근날.

“노루 왔어?”

“…….”

분위기가 변했다.

‘…뭐지?’

기묘한 차분함.

사무실의 공기는 마치 재난 상황에서 가족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길 때 같았다.

비극의 수용을 앞둔 사람들 특유의 평온함.

절대로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음, 이런 일도 해보게 되는 거지.”

“괜찮을 거예요. 또 우리 조원들이 다 악운이 강하니까!”

박민성 주임의 말에 은하제 대리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정말 심상치 않았다.

“앉아봐라 노루야.”

나는 내 자리 대신 소파에 앉게 됐다. 맞은편에 앉은 은하제 대리가 평온한 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사흘 뒤에 투입될 어둠이야.”

“…….”

사흘?

‘시간을 왜 이렇게 많이 주는 거지.’

사흘 뒤 스케줄이면 보통 ‘들어갈 수도 있으니 준비해 둬라’ 같은 말을 한다.

이렇게 확정적으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열두 명이 투입되는 어둠이고… B등급이야.”

“…….”

“너무 놀라지 마. 생존율은 말도 안 되게 높거든. 그리고 추가 포인트도 넉넉하게 책정되어서… 인당 2000포인트나 챙겨갈 수 있고.”

“…그리고요?”

은하제 대리의 얼굴에 ‘이 눈치 빠른 자식’ 같은 쓴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문제가 있지 뭐. 없는 어둠을 찾는 게 더 빠르다만… 이 어둠은 좀 독특해서 말이야.”

“…어떤 의미로 독특한 겁니까?”

“제일 쉽게 설명하자면… 그래.”

은하제 대리가 팔짱을 꼈다.

“운빨 X망 게임.”

“…!?”

“이건 진입하자마자 무조건 한 명이 죽어. …완전히 랜덤. 오로지 운으로.”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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