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60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어쩌면 괴담의 본질이다.

심지어 최근에 나는 누군가 죽어야만 이론적으로 클리어가 가능한 정부 관리 재난까지 경험해 봤었다.

그러니까 ‘괴담에서 사람은 보통 죽는다’라는 설명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뜻이고, 좀 무뎌지기도 했다는 거다.

나는 어떻게든 바늘구멍을 뚫고 나왔으니까.

-미치겠지만 빠져나갈 구석부터 찾아보자.

이게 내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되기에 지난 몇 달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원래는 전원 실종이었어. 목 떨어진 시체 하나만 돌아왔지.”

“…….”

“그런데 몇 번 반복하니까 누구 하나가 운 좋게 살아서 돌아왔네? 그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매뉴얼을 완성해 나간 거지.”

정석적인 고등급 어둠 탐사 매뉴얼 완성 과정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단 하나는 바꿀 수가 없는 거야.”

바로….

“한 명의 죽음.”

“…….”

“누가 걸리는지 매커니즘? 없어. 논리도 없고. 정말 말 그대로 랜덤이지. 지금까지 서른일곱 번이나 진행했는데, 무슨 장비를 차든 아이템을 들든 아무 영향력도 없더라.”

“…….”

“심지어 들어가자마자 지정되니 준비나 대응도 불가능하지.”

이딴 상황이 오다니.

말 그대로 운빨로, 나는 1/12 확률로 즉사하는 것이다.

…조원까지 포함하면 1/3이란 터무니 없는 확률로.

누군가 그냥 죽는다.

“죽어도 싼 자식들 넣어도 될 텐데 왜 유능한 나까지 넣냐, 뭐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만….”

“아닙니다.”

“그러냐? 난 들었어.”

“…….”

“안 할 수가 없지…. 근데 이 망할 도시전설께서 똑똑한 머리를 가진 도전자가 있어야 클리어 시켜주시겠다잖냐.”

그러니까 버리는 패를 넣을 수도 없다.

은하제 대리가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B등급에서 8.3%의 확률로 죽는 거면 사실 꽤 괜찮은 평균 수치지.”

“…….”

진실이다.

전시회 괴담을 떠올려봐라.

그건 매뉴얼이 없어서 더한 케이스였으나, 완비된 경우에도 심상치 않게 사망자는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말이다.

“내가 어떻게 해도 그 확률에 잡혀 있는 게, 이상하지만 되게 부조리하게 느껴진단 말이야.”

“…….”

이상하지 않았다.

죽기 전에 발악도 못 해보고 ‘아무튼 그냥’ 죽는 것과, 뭐라도 해볼 가능성이 있는 건 분명 느낌이 다르다.

후자는 도전이고 전자는 도살이니까.

“…사흘을 주는 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입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아마 사흘쯤 지나면 머리도 식고, 이성적이고 희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설마 1/12에 걸리겠어?’ 하는….

“노루야, 이런 어둠은 처음이지?”

“……예.”

“나가서 커피나 마시고 와라. 내 것도 좀 사다주고.”

나는 ‘천천히 있다가 와도 괜찮다’라는 말을 들으며, 은하제 대리의 카드를 받아서 밖으로 나왔다.

커피 심부름이라는 핑계로 보냈지만 사실상 신입 멘탈 관리였겠지.

‘미치겠네.’

덕분에 나는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카페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중이다.

두려움… 글쎄. 여기 떨어진 후로 안 무서웠던 적이 없어서 그건 문제가 아니고.

그냥 심란하다.

‘이 상황에서는 정보고 뭐고 의미가 없어.’

내가 지금까지 다른 직원들보다 더 ‘확신’할 수 있는 조건에서 다녔다는 걸 실감해서 그런가. 이상한 자괴감 같은 것도 든다.

그리고 강렬한 위기의식.

“…….”

‘차라리 퇴사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퇴사하고 다른 방법을 알아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둠탐사기록>을 기반으로 자체적으로 괴담을 조사해 나가는 건….

-아, 친구!

-그렇다면 이제부턴 쇼 비즈니스 업계에 종사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예??

-아 그럼요. 내 친구에게라면 언제나 좋은 일자리가 준비되어 있지요…. 옛말에 따라, 친구 좋다는 게 뭡니까? 하하!

기겁하다 소파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사양할게.’

정신이 번쩍 드네.

-아쉽군요….

그래. 이 동네에선 저렇게 죽느니만 못한 꼴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혼자 조사? 스스로가 쫄보라는 걸 잊어버린 바보나 할 선택이지.

역시 1/12 확률 때문에 퇴사하는 건 바보짓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는 것도 바보짓이고.’

-아, 들어가는 겁니까?

‘그래.’

일단 이 괴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나는 조원들의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사무실로 복귀해서 태블릿 PC를 쭉 읽어내렸다.

그리고….

‘…하.’

맞네. 랜덤.

내가 이미 <어둠탐사기록>을 통해 아는 괴담이야 맞았는데, 문제는 내가 읽었던 게 이미 거의 다 매뉴얼에 적혀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정보가 없어.’

내가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를 더 알고 있지 않다.

‘빈틈이 없네.’

<어둠탐사기록>에도 그 설명이 ‘탐사자 진입 시 무작위’라고 대놓고 적혀 있었다.

예외나 수상쩍은 부분도 없었다. 애초에 이게 딱히 중요하게 다뤄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적는 입장에선 그냥 전제 설정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어차피 매번 괴담마다 사람 죽어 나가는 판에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싶었겠지.

그리고….

“이번 투입에 조장들은 제외야. 여긴 무조건 대리 이하 직급만 투입된다.”

“…….”

도마뱀 조장은 이번 탐사에 동행하지 않는다.

만일 조장이 희생양으로 지정되면 직위 차이로 인해 직원들이 ‘얼결에 우선순위를 혼동’할 수 있다고 감안해서다.

“마무리팀이나 정예팀도 없어. 걔네 들어갔다가 한번 난리 난 적이 있어서.”

정예팀, 그러니까 A, B, C조 중 하나가 희생양으로 지정됐는데 어떻게든 안 죽겠다고 발악하다가 다른 직원까지 꽤 죽는 ‘불필요한 손실’이 났다고 한다.

A조에 갔어야 했다고 후회하진 않다만, 이놈의 회사 진짜 한결같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대리는 해탈과 짜증 사이 어딘가에서 흡연으로 위안을 받는 듯했다. 주임이 뭐라뭐라 말을 붙이며 둘은 담배를 들고 위로 향했다.

“명단 보셨어요? 같이 들어가는 직원들….”

“어 솔직히 걔네 중에 한 명 죽으면 조문도 안 갈 것 같더라. 설마 인성 보고 최하위권만 뽑아놓은 건 아니겠지?”

“에이 우린 아니잖아요!”

나는 계속 <어둠탐사기록>과 매뉴얼을 비교하면서 찾아내려고 애썼다.

비집고 들어갈 틈을.

룰의 작은 공백을.

그런데 말이다.

그날 오후, 갑자기 룰을 회피할 수 있는 통로가 드러났다.

좀 다른 의미이긴 했지만.

“김 주임!”

“과장님.”

이병진 과장이 나를 찾아왔다. 매뉴얼 심사 담당자면서 굳이 여기까지 온 건 절대 ‘지나가다가 들러서’는 아니었다.

“나도 들었어! 아니, 주임님 그 미친 러시안룰렛 어둠에 들어간다며!”

“…….”

전에도 생각했지만 약간 사람을 열받게 말하는 재주가 있으신걸….

하지만 이병진 과장은 단순히 호들갑을 떨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과장이 목소리를 낮춰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 작게 숙덕였다.

“호 이사님한테 말해보는 게 어때.”

“……!”

“김 주임 활약상을 눈여겨 보고 계신다니까?”

“지금 하시는 말씀이….”

나는 과장을 보았다.

“이사님께 말씀드리면 절 빼주실 거란 의미입니까?”

“그래!”

“…….”

“이런 거 원래 공평이니 뭐니 하면서 그냥 선정하는데… 나는 반대야 반대. 어? 솔음 씨처럼 대단히 앞날 창창한 청년은 좀 빼주고 그래야지. 수석인데!”

진정한 회피법이 나왔다.

윗사람이 봐줘서 빠지기.

나는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어, 어?”

이거 절대 고르면 안 된다.

‘눈에 너무 띈다.’

그거 고르는 순간 사실상 나는 사내에서 라인을 정하는 거다.

괴담 회사라면 임원들도 보통 인물들이 아닐 텐데, 이런 ‘절박한 상황에 매달려서 구명 입는 방식’으로 줄을 타면 안 된다.

게다가 이건 생존이 걸린 문제다.

‘열외 처리되는 순간 무조건 사내에 소문 돌아.’

그걸 곱게 봐줄 리가 있나?

일종의 얌체짓이다.

원래 공동체에서 제대로 된 인원으로 인정받으려면 고통 분담은 필수인데, 그걸 회피하려고 했다간….

‘완전히 찍히는 거야.’

3인 1조로 계속 움직여야 하는 현장탐사팀 특성상, 회사 생활 제대로 꼬이게 만드는 짓이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이사가 나서서 날 쥐도 새도 모르게 빼주고 조용히 날 불러서 생색내는 거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라는 건, 애초에 날 여기서 따로 빼내 줄 정도로 ‘주목’하고 있진 않단 뜻이다.

아니면….

‘운도 실력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러니까 이건 함정이다.

속이 쓰려도 이렇게 말하는 게 정답이라는 거지.

나는 일부러 원리원칙주의자인 것처럼 덤덤히 말했다.

“저만 예외적으로 편의를 보면 특혜입니다. 회사에서 이런 방식으로 업무를 할당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테니, 저도 책임을 다해보겠습니다.”

“어어…….”

이병진 과장은 어버버거렸으나, 결국 몇 번 ‘정말이냐’라고 물은 끝에 수긍하고 돌아서 버렸다.

정말…….

바짓가랑이 붙잡고 예스를 외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캐릭터를 빌드업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그거 외에는 낙이 없으니까.

나는 씁쓸히 과장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매뉴얼이나 다시 보자고.’

하지만 <어둠탐사기록>을 봐도, 매뉴얼을 다시 봐도 빈틈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탐사자들 전원에게 예외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진입한 탐사자들은 모두 이 희생자 뽑기에…….’

“…….”

잠시만.

‘이거….’

나는 몇 번 다시 읽었다.

‘…빈틈이 될 수 있나?’

확신은 못 하겠다.

‘가능성이긴 한데.’

하지만 이 상황에선 무슨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시도해 보는 게 맞다.

-무슨 재미난 발상이라도 떠올렸습니까, 노루 씨?

재미는 아니지만 발상이 하나 떠오르긴 했지.

‘예외 만들기야.’

-흠?

이 괴담에 진입한 탐사자들은 모두 예외 없이 1/12 확률의 즉사자 뽑기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혹시 이 탐사자들만 공유하는 공통 조건이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까지 한 번도 예외가 발생한 적이 없는 조건 말이다.

-어떤 공통 조건이지요?

…….

‘인간이라는 거.’

매뉴얼과 어둠탐사기록 모두 탐사자는 인간이다. 다른 생명체에 관한 사례 서술 자체가 없다.

하지만 이 세계관에서 지성체는 인간뿐만이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동식물까지 포함하면 무궁무진해진다.

‘혹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라면, 판정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읽었던 <어둠탐사기록> 이레귤러 기록들의 경향성들을 고려하자면, 지금 현 상황에서 그게 가장 가능성 있는 예외일 것 같다.

-노루 씨, 인간을 벗어나고 싶습니까?

‘그, 그건 아니고.’

함정인 것처럼 순수한 질문 던지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잠시만 인간을 벗어난 것처럼 취급받았으면 좋겠다는 거지.’

나는 의도적으로 단어를 골랐다.

‘쇼에서 다른 사람으로 분장하는 것처럼.’

-호오.

‘…혹시 브라운한테도 가능한 일인가?’

-아, 물론 가능하지요!

브라운의 목소리에 힘과 활력이 더해진다.

마치 쇼를 진행할 때처럼.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엔터테이너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나는 수많은 가면을 가지고 있으며…… 아. 지금도 노루 씨에게 하나 정도는 빌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잭팟이었다.

‘이걸 시도해 보자.’

“휴우.”

나는 겨우 매뉴얼에서 시선을 떼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자 마침 담배 타임을 끝냈는지 대리와 주임이 사무실로 들어오다가 날 보고 손을 흔들었다.

“…….”

아, 젠장.

‘브라운, 그 ‘가면’ 능력 말인데… 혹시 그것도 여러 명에게 써줄 수 있을까?’

-여러 명? 친구가 아닌 자에게?

‘음,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내가 전성기의 기량을 좀 더 되찾는다면 가능하겠지요. 그때는 수십 명을 스튜디오에 세우기도 했으니! 아니, 수백 명이던가요?

…좋다.

‘브라운.’

-내 친구가 또 날 부르는군요!

나는 정중하게 주머니를 토닥거렸다.

‘목욕하자.’

-…!?

* * *

-노루 씨, 이것 참 고맙지만 내가 친구의 피로 목욕을 즐길 정도로 오컬트에 매료된 연예인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알아.”

비록 게스트 머리 터트리는 퀴즈쇼 진행자였지만, ‘착한 친구’로서의 브라운은 확실히 그런 존재겠지.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병원에서 수혈팩을 어떻게든 구한다고 쳐도 신선도가 떨어져서 효율이 낮을 테고, 다른 사람의 피를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난번처럼 괴담 속 괴물을 데려올 수도 없지 않은가.

‘남은 산삼은 어차피 그 속에 들었던 뭔가가 빠져나가면서 지성체 조건 충족이 안 되고.’

남은 건 뭐 뻔하지.

내 피다.

나는 우아한 체크무늬의 작은 욕조를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깔끔하고 좋은 향기가 나는 이것은, 내가 외계인 상점에서 산 혈욕조다.

이제 여기에 내 피를 쏟아야 한다.

“아마 나도 많이는 못 줄 거야. 반 컵 정도겠지.”

양으로 따지자면 180㎖ 정도 아닐까.

-반 컵이라! 빠듯하겠지만 솜이 든 작은 몸의 입욕제는 그걸로도 나쁘지 않겠지요. 물에 희석… 아니, 이게 아니지. 정말 괜찮겠습니까?

괜찮았다.

‘할 수 있어.’

나는 숨을 크게 내쉬며 식칼을 잡았다.

옆에는 회사 의료실에서 내가 쓰고 남아 가져온 상처 회복용 물약도 있다.

“후.”

나는 식칼 윗부분으로 팔의 살점을 찔렀다.

-맙소사!

피가 쏟아져 내렸다.

제대로 동맥을 찾았는지 왈칵 터지며 흥건히 넘친다.

하….

‘기억하자. 난 오싹한 상황이 무서운 거지, 피 나는 것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다….’

이건 오싹한 상황이 아니다…!

몇 번 되뇌며 진정하고 있자니, 곧 예고했던 양의 혈액이 충분히 욕조 안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면 반 컵은 되겠지.’

하지만 나는 지혈하지 않았다.

-노루 씨?

좀 더.

-충분한 것 같습니다만, 친구!

좀 더.

-친구?

이 정도면.

‘됐다.’

나는 황급히 회사의 약품으로 팔을 지혈했다. 마법 같은 효과의 약은 동맥 출혈을 훌륭하게 잡아냈다.

출혈량 탓에 머리가 살짝 어지러울 뻔했으나 문제는 없다.

‘이것도 포션 마시면 돼.’

모레 괴담 투입될 때쯤이면 정상이 될 테니까 괜찮다.

중요한 건….

저 욕조 가득 향기로운 향이 올라오고 있다는 거 아닐까?

“후….”

나는 욕조 안을 들여다보았다. 훅, 향기로운 냄새가 제대로 코끝을 찔렀다.

아무래도 내 피는 성공적으로 역할을 다한 것 같다.

‘거의 500㎖쯤 뺀 것 같은데.’

제대로 입욕제로 변한 듯했고….

‘…나무 냄새?’

향을 맡자 왠지 그놈의 창귀 괴담 숲이 생각나서 약간 찝찝했지만, 아무튼 고약하거나 이상한 향보다는 낫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브라운에게 말했다.

“이제 들어가면 돼. 향은 괜찮아?”

-아, 그럼요. 재밌는 향입니다. 마치 노루 씨의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런 결정처럼 말이죠!

나는 미소 지었다.

“빈정대는 거야? 내가 예고보다 피를 많이 쏟았다고?”

-사카즘은 대중 토크쇼 진행자의 필수 덕목이죠! 하지만 내가 아무 때나 그 덕목을 발휘하는 건 아닙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

“치료는 제대로 할 거니까 괜찮아. 그래도 앞으로는 안 할게.”

-이제야 현명한 말을 하십니다, 친구.

그런가?

솔직히 말하자면, 일부러 이런 식으로 한 건데 말이다.

여기서 ‘착한 친구’에게 충격을 좀 주면 앞으로도 내 피로 목욕하겠다는 생각에 거부감을 느껴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건 통한 것 같았다.

‘이 양을 예고했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지도 몰라.’

그건 안 된다.

‘이런 건 이번 한 번으로 끝내야 해.’

나는 브라운을 집어 들어 욕조에 넣으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브라운이 사양했다.

-나는 내 두 발로 당당히 걸어가겠습니다.

어이구, 그래라.

나는 욕조를 등지고 뒤로 돌았다. 곧 욕조로 들어가는 발소리와 찰랑이는 물소리가 들렸다.

입욕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잠시 후.

-노루 씨, 당신이 만든 이 입욕제….

-음, 조금 독특하군요!

예?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