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61화
갑자기 내 피 500㎖ 짜내서 만든 입욕제를 브라운에게 감평당했다.
‘…독특하다고?’
당황스럽다.
‘하마터면 욕조 돌아볼 뻔했네.’
나는 머리를 고정하며 물었다.
“독특하다는 게 무슨 뜻인데?”
-말 그대로입니다! 음, 입욕제에도 종류가 있지 않습니까? 소금, 오일, 거품…. 노루 씨의 것은 그 산삼과 꽤 많은 차이점이 있군요. 공통점도 있고요.
그,
아무래도 걔는 괴담 산삼이고, 나는 사람이잖냐….
‘당연히 다르지 않을까?’
-다르지요. 그런데 왜 노루 씨가 그 산삼과 공통점이 있는 거랍니까?
“…!”
-음… 아. 이유를 알겠군.
브라운이 마치 와인이라도 시음하는 것처럼 입을 다시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노루 씨. 당신 입욕제는 블렌딩되어 있군요.
블렌딩.
직역하자면 혼합.
주로 커피나 칵테일에서 다양한 원료를 배합하여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어딘가 산삼과 비슷한 계열의 원료가 섞여 있습니다….
“…….”
이거 설마 괴담 오염에 대해서 말하는 건가?
나는 경비반장을 떠올렸다.
인간 형상을 찢고 뒤틀린 늑대 같은 것이 나타나던 그 모습 말이다.
그렇게 괴현상에 오염되고 잠식되는 현상이, 나한테도 일어나고 있다고?
-오염이라니! 너무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이군요. 삶은 원래 변화의 과정 아니겠습니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그게 즐거움이죠!
젠장.
나는 반사적으로 내 몸을 들여다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괴현상’의 영향이라면….
“그 ‘영향’이 원인이 문신이라고 생각해?”
-흐음. 이미 섞인 것의 원산지를 추측하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호사가는 와인에 혀끝만 대도 농원을 맞출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부류의 젠체를 좋아하는 사회자는 아니라서 말이죠!
“…….”
-어쨌든 뭐, 당장 다음 주쯤 노루 씨가 새로운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건 아니니 두려워할 건 없다는 말입니다!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다.
‘어차피 여기서 살고 일하는 이상, 어느 정도 괴담에 오염되는 건 피할 수 없겠지.’
괜히 호들갑 떠는 건 의미 없는 짓이었다.
본래 쓸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강해질수록, 그리고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잠식되는 힘도 커지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으면서 가야 하는 거지.
아직 그 밸런스를 신경 써야 할 정도로 나한테 능력이 있는 것 같진 않았는데 말이다.
‘…앞으로는 이것도 관리해야겠네.’
주임이 되면서 개방된 시설 중에 마침 이걸 관리받는 곳도 있었다.
이번 괴담을 무사히 넘기고 나면 한번 방문해 봐야겠다.
-음. 그 외에도 아주 독특한 게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아, 다 녹았군요.
입욕제를 좀 더 감별해 보려는 듯이 향을 맡던 브라운이 길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충분히 즐겼습니다!
너라도 즐겼다니 거참 다행이다.
욕조 안에서 마치 TV 채널을 바꾸듯이 네온의 불빛이 몇 번 번득였다.
그리고 편안하게 욕조 벽에 몸을 붙이고 누운 봉제 인형의 그림자가 활기차게 교차하는 것이다.
-이제 나가볼까요?
나는 걸어가서 브라운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도 그 봉제 인형은 묘하게 더 고급스러워 보였지만, 크기의 차이는 없었다.
그래도 브라운의 목소리가 어딘가 좀 더 또렷하고 이지적으로 들렸다.
나는 수건으로 인형을 덮어 시야에서 가리며 물었다.
“힘이 넘쳐?”
-더할 나위 없이!
-으음, 분주했던 시절의 각성 상태까지 돌아오는 느낌이군요….
아무래도 그 오염된 산삼을 썼을 때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던 듯했지만, ‘회춘’을 하긴 한 모양이다.
그리고 브라운을 덮고 있던 수건을 걷어 올리는 순간, 아까 보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
‘…택?’
봉제 인형 목덜미에 택을 잘라낸 것 같은 천 쪼가리가 보였다.
‘원래는 이 자리에 온전한 택이 달려 있었던 건가?’
회춘 과정에서 잘린 일부를 되찾은 듯 보였다.
‘묘한 느낌인데.’
기억해 두자.
-아, 편안하군요.
“다행이네.”
나는 봉제 인형의 물기를 제거한 후, 평소 두던 탁자의 수건 위에 잘 두었다.
준비는 끝났다.
“부탁이 있는데.”
-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요!
-이렇게 친구가 목욕 시중까지 들어줬는데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아마도 내 가면을 다른 사람에게 더 빌려주고 싶다는 부탁이겠지요?
“맞아.”
회춘한 브라운은 더 강력한 능력을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좋습니다. 몇 명입니까?
“두 명.”
* * *
이틀 후.
나는 전달 받은 공문에 따라 회사가 아닌 다른 장소로 출근했다.
이미 폐쇄된 민영 유치원 건물이었는데, 그 안은 이미 회사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노루 일찍 왔네!”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유치원의 현관 부근에 서 있으려니, 곧 조원들이 도착했다.
“제발 우리 말고 저 새끼들이 죽길.”
“제발… 꼭….”
“…….”
작은 목소리로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사실 들렸더라도 별 상관없을 것 같긴 한 게, 다들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루야, 노루야! 저기 토끼 발 엮어온 사람 보이지? 저거 행운이 좋아진다는 아이템이야.”
“정말 좋아지는 건가요?”
“겠냐? 지지난 탐사에서 비슷한 아이템 차고 온 자식이 걸려서 한방에 저승 갔지.”
“…….”
“대리님 말이 맞아. 여기선 그런 아이템들이 다 무효고… ‘공정’하게 선정된다고 하더라.”
나는 어설프게 웃고 있는 주임을 돌아보았다.
얼굴이 창백한 게 각오는 했어도 많이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주임님.”
“응?”
“혹시 저도 그런 시도를 해봐도 회사에서 문제 삼지는 않을까요?”
“아, 희생양에 안 걸리게 대비책을 강구해 보는 거?”
“음, 비슷합니다.”
주임이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아이고 노루야, 당연하지! 다들 하는 거잖아!”
“여기 인간들 다 어떻게든 자기만 빠져나가 보려고 사흘간 별 지랄을 다 했다에 내 월급을 건다.”
거참 화끈하십니다, 대리님….
은하제 대리가 피식 웃었다.
“애초에 안 통한다는 걸 어떻게 알아냈겠냐? 별거 다 해본 새끼들도 희생양으로 걸려서 안 거지.”
“…….”
“왜. 노루도 뭐 해보려고?”
“예.”
나는 고민하다가 주머니에서 브라운을 꺼냈다.
“아, 네가 달고 다니는 키링.”
“제 행운의 친구인데, 혹시 두 분에게도 이 친구의 능력을 빌려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비밀로요.”
둘 다 약간 맥 빠진 표정으로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고맙지.”
“행운이 있으면 좋겠다, 정말!”
오케이.
‘혹시라도 뒷말이 나오지 않게 사전 처리도 했고.’
“후우.”
-자, 준비해 봅시다.
“곧 진입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현관의 딱 하나 걸린 낡은 괘종시계를 보았다.
째깍.
시곗바늘이 오전 8시 59분 56초를 지난다.
-이제 여러분은 스튜디오에 들어갑니다.
-카메라가 보여도 긴장하지 마시고, 별빛이라고 생각해 봐요. 아주 편안할 겁니다.
째깍.
57초.
기묘하게도 마음이 고요했다.
정체성에 대한 확신.
-마침 당신은 가면을 쓰고 있군요! 오, 좋습니다.
-그 가면은 이제부터 당신입니다.
째깍.
58초.
나는 머리를 들었다.
뿔이 간지러웠다. 나무 같은 질감이지만, 사실 나무가 아니고 ■■라는 것을 나만이 알고 있다….
-다른 동물 친구들이 있군요! 두 마리입니다.
째깍.
59초.
고개를 돌리자 오소리와 송골매가 보였다. 둘은 주변의 인간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의 누구도 당신보다 강력하진 않은 것 같군요.
알고 있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온도를 감지하는 시야가 주변의 변온 동물들을 확인했다.
긴장으로 달아오른 인간의 체온들을.
그리고….
째깍.
9시.
괘종시계가 요란히 알람을 울렸다.
땡……!!
“…!”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폐가 같던 유치원 건물은 어느새 새 건물 냄새가 나는 깔끔한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운영되기 직전의 새 건물 같다.
그리고 나는 장난감이 정리된 방 안에 송골매… 아니, 은하제 대리와 함께 서 있었다.
…괴담에 진입한 것이다.
“…….”
나는 천천히, 내 목을 내려다보았다.
깨끗하다.
“하.”
몸에 긴장을 풀었다.
‘피했다.’
인형탈을 쓴 것처럼 기묘한 온몸의 두께감도, 뿔의 촉감도 서서히 사라진다.
이상한 정체성의 확신도.
-음, 여러분의 짧은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고맙다.
‘이게 가면인 건가.’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기에 짧게 쓰고 끝난 게 다행이었다.
셋이나 지정해서 대단히 정교하게 한계까지 아슬아슬하게 썼기 때문인지, 브라운의 목소리에도 힘이 빠져 있다.
이 몇 초를 버텨준 게 대단한 거긴 했다.
‘고생했어.’
나는 주머니 안의 브라운을 부드럽게 두드리려고 했….
-이제…… 잠깐만. 이런, 대체 뭡니까?
“…?”
왜 이 녀석이 당황하는 거지?
당장 주머니에서 브라운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봉제 인형의 목에 전에 없던 것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검은 밧줄 홀로그램.
희생자의 징표다.
“…?!”
지금 브라운이 희생자로 당첨된 건가?
‘괴담 주민이?’
가능성이 완전히 어긋난 건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지 미치게 혼란스럽기 직전.
브라운이 떠들기 시작했다.
-예? 교육 시범에 참가하라니 대체 무슨 말인지… 난 교사를 인터뷰하는 직종이지 내가 애들을 가르치는 직종은 아니란 말입니다. 세상에!
-쇼 비즈니스 맙소사! 당신네들은 너무 지루합니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융통성 없고, 대중이 좋아할 매력도 없고.
-난 빠지겠습니다.
그리고 솜뭉치 손을 튕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봉제 인형 목에서 밧줄이 사라졌다!
“…!!”
-적합한 참가자가 아닌데도 굳이 규칙 운운하며 끌어들이려고 하다니! 정말 직업의식이라곤 없는 유치원이군요.
“…….”
‘인간이 아닌 것으로 판정받는 거… 효과가 있던 게 맞았네.’
좀 예상과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다.
브라운이 걸렸는데 상대가 참가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괴담이 밧줄을 다른 타자로 넘긴 것을 보면 확실하지.
“…….”
잠깐.
‘넘어갔다고?’
나는 황급히 목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깨끗했다.
‘누구한테 간 거지?’
일단 내가 아닌 건 다행이긴 하지만, 괴담 주민이 바통 받는 걸 거절해서 무작위로 다른 사람이 죽는 이 상황이 맞는 건가?
“노루야.”
나는 당황한 채로 은하제 대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대리님, 제가 방금…….”
“…….”
“…….”
고개를 돌린 내 눈앞에.
“당황하지 말고 심호흡해라, 천천히.”
대리가 씩 웃었다.
“이제 내가 부탁을 하나 할 건데… 안 될 것 같으면 거절해라.”
“대리님.”
“내가 직접하고 싶지만 안 되겠다.”
대리가 씩 웃으며 툭툭 쳤다.
“확정이라서 말이야.”
검은 밧줄이 걸린 자기 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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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헝그리 행맨]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B-191.
단어 맞히는 놀이를 모티브로 하는 어둠으로 탐사자에게 그 어떤 규칙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
주어진 역할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과 공포가 일품.
행맨으로 지정된 희생양은 다른 탐사자들이 자신에 대하여 맞힐 때마다 사형대에 올라가며, 결국 교수형 당한다.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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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유언 남길 시간은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안 돼.
“잠깐, 잠깐만 기다려 주십….”
“됐어.”
대리의 웃음이 쓴웃음으로 변했다.
“야… 난 어차피 죽어.”
“…!”
“너희 살고 죽냐, 아니면 다 같이 죽냐 그 차이지.”
…사실이다.
게임의 끝까지 정답 단어를 맞히지 못할 시, 참가자들은 처분된다.
행맨도 함께 처분된다.
예외는 없다.
망할.
“자,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 내가 산재로 사망하면 포인트몰에서 자동 구매되게 걸어놓은 것들이 있거든.”
“…….”
“조장님이 제대로 확인하는지만 좀 봐줘라. 그 양반도 은근히 허당이라서 말이야.”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사람, 완전히 상황을 수용했다.
치지지직-
“…!”
“정신 차려. 이제 시작한다.”
놀이방 한구석.
구식 TV에 지지직거리며 불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 영어 유치원 보육교사 여러분! 오늘은 원생들과 진행할 수 있는 재밌는 놀이를 익혀볼 거예요!]
[바로… 행맨!]
대리의 목에 걸린 밧줄이 세차게 움직였다.
“…!”
형체를 갖춘 밧줄이, 대리의 팔다리에 하나씩 감기며 허공으로 떠올린다.
[오늘의 선생님, 은하제 신규가 놀이를 진행해요!]
그리고 TV에 거대한 빈칸들이 뜬다.
_ _ _ _ _ _ _ _
[행맨! 우리 함께 단어를 맞춰봐요!]
교수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