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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76화


나와 공무원은 벽에 등을 대고 복도 전방을 보았다.

우리가 탈출한 저 복도 끝, 1학년 5반을.

드디어 나도 보게 된 그때.

깜박.

복도 저편에서 마네킹 같은 인영이 나타났다.

‘…3명?’

한 명이 더 늘어났다.

남학생 둘, 여학생 하나.

교실에서 나온 두 사람은 피범벅이 된 채 이쪽을 보고 웃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 깨끗한 교복을 입고 가만히 서 있다.

불이 켜지면 그냥 기괴하고 실감 나는 밀랍 인형, 혹은 사진 속에 박제된 사람 같다.

하지만 불이 꺼질 때마다.

깜박.

더 앞에서 나타난다.

계속.

우리가 더 뒤로 움직여도.

깜박.

딱 비상용 손전등 불빛이 닿는 만큼만.

다시 가까워진 채, 멈춘 모습이 불빛 아래 드러난다.

멀어지지 않는다.

깜박.

“…….”

손전등 배터리가 닳기만 하면.

이 대치도 끝이라는 게… 상상된다.

‘하.’

신중히, 천천히 발을 옮기면서도 상상이 뒷덜미를 잡았다.

결국 우리는 복도의 끝, 막다른 곳에 이르러서야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때.

[띵- 동- 댕- 동]

“…….”

[3학년 2반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났습니다.]

X발.

[죽은 학생은 3학년 박채아입니다.]

[모두 5초간 묵념합시다.]

“준비하십시오.”

나는 손전등을 꽉 잡고 등 뒤 벽에 붙었다.

[5]

손전등을 빠르게 흔들어서 세 명을 모두 비추었다.

불빛이 스치고 다시 돌아올 때마다 점점 가까워진다.

[4]

나와 공무원이 동시에 두 개체를 비추었다.

…다른 하나는?

[3]

다른 하나,

어디 갔지?

아무리 손전등을 양옆으로 돌려도 사각까지 비춰도 없다.

[2]

초조함에 시간이 가속한다.

어디, 대체 어디에, 어디…….

아.

휙.

나는 손전등을 내렸다.

[1]

빛이 환하게 내 발과….

발목을 잡기 직전인 피 묻은 하얀 손을 비춘다.

교복을 입은 손.

“…….”

바닥에 엎드린 세광공업고등학교 학생이 나를 올려다보며 씩 웃고 있었다.

[묵념을 마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천천히, 발을 빼냈다.

‘하.’

미친, 미친!!

반사신경이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다.

‘살면서 VR 공포게임 한 번 해본 적 없는데…!’

이딴 걸 실제로 경험해 볼 줄은 몰랐다.

나는 절대로 양 눈을 동시에 깜박이지 않기 위해 아주 천천히 번갈아 뜨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사지가 후들거렸다.

나머지 두 학생 개체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공무원이 말했다.

“층을 벗어나면, 보통 그 학년의 학생은 적극적으로 쫓아오지 않는 것 같더군요.”

안다.

아직 그 층에 먹잇감이 남아 있다면 그쪽으로 갈 확률이 높다….

“계단으로 올라갑시다.”

“…1층이 아니라 위로 가나요?”

“네. 이번 임무는 5층, 되도록 강당에 진입하는 겁니다.”

곧바로 떠오르는 건, 맨 처음 들었던 교내 방송이다.

-세광공업고등학교 학생 여러분! 졸업식이 곧 시작합니다.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강당에는 뭐가 있습니까?”

“아직 정보가 전무합니다. 그래서 조사해야 하는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현시점까지 쌓인 탐사기록이 아직 <어둠탐사기록> 기준으로 초중반이야.’

악몽 속 학교에서 ‘여기로 모여주세요’라고 방송한 곳에 곧이곧대로 찾아간 사람이 많았을 리가 있나.

올라가려던 몇 명도 학생들에게 걸려서 다 죽었을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학생들은 더 과감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지능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사냥하려 들 테니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절대 5층에 올라오지마!! 차라리 그 밑에서 죽어 절대 올라오

-12번째 탐사기록 마지막 녹음

…그걸 다 피해서 5층까지 갔을 때 발생한다.

‘하, 진짜 가기 싫은데….’

근데 어차피 나도 가야 하긴 했다는 게 제일 눈물 나는 지점이다.

그래도 차라리 동행인이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다만 이대로 가면 안 되니 철저한 준비를 위해 살짝 틀어보자.

“괜찮으시다면, 3층과 4층에서도 잠깐 멈춰서 살펴봐도 될까요?”

“이유가 있습니까?”

“이거, 어쩐지 호러 게임 같은 구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

“게임에서는 진행을 위해 중요한 아이템들을 얻는 과정이 필수죠.”

나는 천천히 계단을 거꾸로 올라가며 말했다.

“잘 모르겠지만, 저라면 특수한 교실… 가령 음악실이나 과학실, 교무실 같은 곳들을 먼저 한번 뒤져볼 겁니다. 졸업앨범이나 학생부도 확인하고요.”

“…….”

“소품, 물건에 힌트나 열쇠가 있을 것 같아서요.”

계단을 계속 올랐다.

우리를 포위하듯 감싸고 있던 ‘학생들’과 거리가 멀어지자, 손전등 불빛 하나만으로 그들을 포착하는 시야가 커버되는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야 공무원이 입을 열었다.

“저희 분석반에서도 유사한 대답을 내놨었습니다. …게임 기반의 괴담 같다고.”

오.

“가상의 고등학교 명칭에, 이렇게 괴물을 피해 도망 다니는 구조가 꼭 닮았다고 하더군요.”

“아,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권유는 처음입니다. 괴물이나 사람이 아니라 물건 위주의 조사라….”

어쩐지 공무원의 눈이 초롱초롱해진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모습이라 다크서클이 없어서 괴상해 보이진 않았다.

“좋습니다. 되도록 공간들을 살펴봅시다. 요원들이 더 합류하는 대로 전달도 하고….”

더 많은 요원… 사양하고 싶다.

하지만 공무원은 흥이 나기라도 한 것처럼 한술 더 떠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임시 요원이 되셨으니 코드네임으로 서로 부르는 편이 좋겠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코드네임 있습니까?”

맙소사.

“아, 저희는 주로 역사적 물질을 쓰는 편입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용어를 써야 구분이 편하니까요.”

‘코드네임도 쓰게 해주겠다고?’

무슨 로망이란 로망은 다 하게 해주는 것 같다.

……아. 내가 <어둠탐사기록>에서 재난관리국 네임드 요원을 만든다면 쓰고 싶던 코드네임이 있었냐고?

있다.

하지만 그걸 지금 들먹이지 않을 정도로 수치심을 알긴 한다….

“…포도로 하겠습니다.”

“과일이군요. 깔끔하고 좋습니다.”

브라운이 뭐라고 코멘트했을지 잠깐 상상하게 되었다.

‘좀 그립기도 하고.’

나는 ‘착한 친구’의 빈자리를 떨치며 대화를 계속했다.

“요원님은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제 코드네임은 청동입니다.”

“네. 청동 요원님.”

흐리게 웃은 요원, 코드네임 청동이 제법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인턴이라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신입 환영 비슷한 걸 자주 받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어쨌든 우리는 완전히 계단을 벗어나기까지 끈질기게 계단 아래로 몸을 숙여서 학생들이 쫓아오지 않는지 체크했다.

물론 그동안에도 한 사람은 계속 위층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3F]

3층.

2학년이 생활하는 층.

“……조용하군요.”

아래층의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났으나, 계단 위에서 나타나진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간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계속 계단 쪽을 힐끗거리며, 들어선 3층 복도.

밝은 조명등 아래 놀라울 만큼 깔끔했다.

피도 오물도 시체도, 딱 굳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학생을 필사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없다.

“…….”

학생 개체 자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문을 다 봉쇄해 놨어.’

누군가 벌써 모든 교실 문을 다 걸어 잠가둔 것이다.

앞에 쇠사슬 자물쇠까지 걸어두었다.

‘…! 이건 무조건 백일몽 직원들이다.’

우리 매뉴얼에 있는 내용이었다.

세광공업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은 학교 시설물 파손에 일정 거부감을 보임.

자극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을 조용히 닫고 잠글 시, 책상에 앉아 비활성화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 관측됨.

게다가 문을 저렇게 해놓으면 안에서 나올 때 필연적으로 소리가 난다.

소리로 인지하고 바로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1차적 안전 대책이지.’

아직 사람들이 꽤 많아서 인형의 움직임에 제약이 많을 때, 몰래 움직이며 한다면 제법 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

하지만 복도가 조용한 만큼 우리도 조용해야 했다.

저 학생들은 소리로 어그로가 끌리니까.

‘2학년 교무실은 모퉁이를 돌아서 있습니다.’

‘거기까지 엎드려서 갈까요?’

끄덕.

아주 작은 속삭임과 고갯짓으로 대화를 마친 우리는 조용히, 벽에 붙어 엎드려서 눈에 띄지 않게 이동했다.

그 와중에도 복도 끝이나 계단처럼, 소리 없이 누군가 나타날 수 있는 코너들은 계속 응시하는 건 멈추지 않았다.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조금만, 조금만 더.’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지나가면 된다.

그렇게 절반 이상을 왔을 때,

아아악!

…….

저 복도 너머에서,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안 돼.’

소리가 나면….

달칵.

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물쇠 달린 문마다 문고리를 당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학생들도, 소리를 들은 것이다.

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

나와 공무원은 엎드린 그대로 미친 듯이 기어서 복도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달칵…….

“…….”

“…….”

후.

다행히 들렸던 고함이 한 번으로 끝나서인지, 문고리를 당기는 소리는 사라졌다.

다만, 문밖을 쳐다보는 그림자 진 인영이 몇몇 보였다…….

“…….”

미치게 무섭네.

이쪽을 보고 있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뿐이다.

나는 침을 삼켰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은, 어쨌든 1차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점이다.

[2학년 교무실]

모퉁이를 돌자 바로 나타났다.

다만 이 교무실에도 모든 문에 자물쇠가 걸려 있었으며, 창은 신문지 같은 것으로 안에서 덧대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묘하게 오싹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잠시 사주경계 부탁드립니다.”

요원은 손가락에 골무 같은 아이템을 장착하더니, 교무실 자물쇠의 열쇠 구멍을 쑤셨다.

그러자 크기도 맞지 않던 구멍에 골무가 들어가며, 자물쇠가 스르륵 풀렸다.

‘와.’

재난관리국 지급템은 역시 로망이 있다니까.

“교무실 안에도 학생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면서 들어갑시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

“…?!”

전혀 예상외의 풍경이 펼쳐졌다.

“조용히 문 닫으십시오.”

“….”

“어서.”

나는 등 뒤의 문을 닫았다.

안에는 학생이 없었다.

대신 일곱 명쯤 되는 사람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 중이었다.

동물 가면을 쓴 수상한 고등학생들과 투명 피스톨을 들고 있는 수상한 고등학생들.

재난관리국 요원들과 백일몽 주식회사 직원들이다.

‘싸우고 있잖아!’

그리고 대치 중인 양 세력의 가운데 테이블에는 만년필 하나가 올라가 있었다.

‘…아이템이다.’

나도 아는 것이었다.

2학년 ■■■의 만년필

아무래도 저걸 차지하기 위해 서로 물러나라고 견제 중인 것 같았다.

‘아니 하라는 괴담 탐사는 안 하고 쓸데없이 인력 낭비를…!’

심지어 우리가 들어온 것도 한발 늦게 눈치챈 것 같았다.

“청동 요원님.”

요원들로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그제야 반색하며 내 옆의 코드네임 청동을 보았다.

하지만 내 옆의 요원처럼 이성적인 사람은 아마 공감하지 못할 상황….

“가세합시다.”

“…??”

잠시만요.

하지만 요원은 이미 다가가서 요원 무리의 앞에 섰다.

그리고 나는….

“…….”

동물 가면 쓴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열렬한 시선을 받고 있다.

특히 내 얼굴을 알고 있는 두 동기에게.

“??”

“??!”

백사헌과 장허운이 똑같은 표정을 짓는 걸 보는 날이 오다니.

내가 찬 재난관리국의 철뱃지와 반투명 피스톨을 번갈아 보는 그 눈들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그 와중에 공무원은 또 나를 부른다.

“포도 요원.”

“포, 포도?”

공무원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코드네임을 비웃는 인성까지 그 회사답군.”

“……??”

미치겠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문에서 떨어지시는 게 낫겠습니다.”

“…….”

‘어쩌냐.’

나는 치열하게 상황을 저울에 달아보았다.

그리고 판단했다.

‘배신할 수는 없지.’

나는 결국 걸어 나가서 지인의 옆에 섰다.

“예. 요원님.”

바로 청동 요원의 옆에.

“이게 뭐, 무슨…!”

“…….”

그래. 배신할 순 없다.

‘내 안위를 배신할 수는 없지…!’

그렇게 됐다 동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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