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82화
끔찍한 호러 게임 속 고등학교 괴담을 클리어한 아침.
그래도 회사는 가야 한다는 더 괴담 같은 사실 때문에, 나는 열심히 출근 준비를 하는 중이다.
다만 이번엔 출근길이 그렇게 고되진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꿈결 수집기에 가득 찬 A등급 용액.
‘든든한걸.’
나는 황금빛 용액이 가득 찬 꿈결 수집기를 서류 가방에 잘 챙겼다.
간밤의 노동으로 얻은 수확이었다.
게다가 침대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키는 순간, 상당히 독특한 ‘추가 수확’도 확인했다.
후두두둑.
내 몸을 덮고 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쏟아진 것이다.
수십 개의… 구슬?
마치 유리손포에 장전할 수 있을 것같이 생긴 투명한 구슬이었다.
나는 하나를 들어 올려서 생김새를 살피다가, 그 안에 적혀 있는 한자 하나를 읽었다.
護
도울 호…인가?
-아하, 누군가를 지키거나 보호한다는 의미로 자주 등장하는 한자로군요. 제법 뻔하고 직관적입니다.
아.
뭔지 바로 깨달았다.
‘이거 그 게임 최종장 클리어 보상이구나!’
졸업식 거행 성공 (사망 2, 생존 1)
학생으로서 사망한 현장탐사 직원들은 무사히 아침에 기상하는 것을 확인.
마지막까지 생존한 1인의 잠자리에서 다량의 보상 아이템 발견. (퇴마와 수호에 다소 효과가 있는 수호부의 일종으로 분석됨)
그러니까, 나는 꿈속 게임의 아이템들을 현실로 들고나온 것이다.
마치 교무실에서 만년필 아이템을 들고 튀었던 백사헌처럼 말이다.
“…흐음.”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걸.
현관으로 나가자, 백사헌의 구두는 이미 없었다.
‘빠르게 출근해서 튀었구만.’
나중에 보자.
어쨌든 이 수십 개의 유리구슬들이 ‘수호부’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한다는 뜻이지.
‘쓸 곳이 있을 것 같은걸.’
나는 그 ‘수호부’라는 것들을 싹 문신에 넣어두고 한두 개만 주머니에 챙긴 후, 출근 준비를 이어갔다.
그런데.
-…….
-…….
이상할 정도로 침묵이 흐르는 것 같은걸.
‘…브라운.’
-오, 나를 부르는군요, 친구?
혹시 말이다.
‘간밤에… 많이 불편했어?’
내가 베고 자는 바람에 솜이 납작해질 뻔한 화요퀴즈쇼 진행자….
-하하, 생애 최고의 기분은 아니긴 하지요!
-내 친구가 간밤에 홀로 아주 재밌는 경험을 한 것 같은데, 그 자리에 나만 초대받지 못했을 때는 누구든 썩 좋은 기분은 아닐 겁니다….
헙.
-아,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 브라운이 와플의 기분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할 동안, 최소한 내 친구도 특별한 기분을 느끼긴 했나 보니 말입니다!
“…….”
음….
‘특별한 기분을 느끼긴 했어.’
-과연!
‘화끈하게 졸업식을 진행했지.’
-졸업식이라, 축사라도 한 겁니까?
아니.
‘내 진행이 마음에 안 든 선생님이 공격했거든. 팔다리가 하나씩 터지면서 무사히 끝날 때까지 버텼어.’
-맙소사!
다소 감정이 상한 듯했던 브라운은 꿈속에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자 금방 흥분했다.
저녁에 타투이스트가 해줬던 그… 아로마 경락 같은 거라도 해주도록 하자.
-아주 훌륭한 자세입니다, 노루 씨! 자세히 듣고 싶군요.
그래그래.
나는 회사에 가는 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마저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쫓기던 일과, 내가 직접 그 학생이 됐던 것까지 전부.
-호오!
그리고 마침내 건물에 도착해 내 사무실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솔음 씨!”
아는 얼굴을 만났다.
“아, 이병진 과장님.”
내가 창귀 괴담에서 구출했던 실종자, 매뉴얼 심사 담당자인 이병진 과장이 나를 보고 반색했다.
“이번에 수율 괜찮은 괴담에 현장 탐사팀 다 진입 시도했다며!”
아, 이미 고등학교 괴담에 투입된 걸 아는군.
하긴, 현장탐사팀은 전원 진입 시도하라고 공문도 올라왔으니까.
“솔음 씨 조는 어떻게 됐어?”
“아, 저는 들어갔다 오긴 했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모르겠습니다.”
아마 도마뱀 과장은 들어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그 사람이 들어왔었다면 <어둠탐사기록>에 무조건 기록됐다….’
아니, 애초에 기록에 쓰지도 않았을 거다. 이 괴담의 카운터가 바로 이자헌이니까.
‘물리 공격으로 다 때려잡을 수 있는 사람한테 그런 추격전이 의미가 있을 리가 없지….’
괴담 망칠 일 있나.
혹시 내가 탐사에 끼어들어서 나비효과가 일어났다고 해도, 최소한 이번 탐사에 도마뱀 과장이 있었다면 그 존재를 눈치챘을 것이다.
‘없었을 거야.’
……그리고.
다른 D조 한 사람은…….
사망, 했고.
‘후.’
내가 그 말을 하려 입을 열 때였다.
“아, D조는 아직 조장이랑 솔음 주임 둘뿐이었지? 서로 안 만났나 보구만.”
“…예?”
“그래도 개인전이라 어? 괜히 우리 회사의 미래! 유능한 솔음 주임한테 방해는 안 됐겠어, 하하!”
…….
뭐라고?
“잠시만요. D조가 둘뿐…이라고 하심은,”
“어? 아니, 인사 발령에서 잠깐 보류됐잖아?”
과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거, D조는 그, 오염된 사람이 회복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이번 시즌은 넘기고 지원근무 위주로 가라고 따로 연락도 갔지… 않았나?”
“……!”
아.
나는 다음 순간 깨달았다.
윤조훈 주임.
새로 발령 난 그 사람은 꿈속에서 ‘선생님’에게 오류로서 제거당해서….
현실에서도 제거된다.
말 그대로 삭제된 것이다.
아예 현실에서 원래부터 없던 사람처럼.
“…….”
맞아.
‘그래서 이 괴담에 사망자가 없다고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던 거였지.’
최악의 경우에도 그믐날 그 학교로 다시 끌려간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모두가!
왜냐하면….
명찰을 많이 모으고 꾸역꾸역 리타이어 되지 않은 채 고층에서 버틴 사람들은, 다 ‘삭제’되었으니까.
애초에 없던 사람이 되었으니까.
……무서운 현실 조작 능력이었다.
‘……괜히 용액이 A등급으로 나온 게 아닌가.’
무언가 더 깊은 어둠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등 뒤로 소름이 쭉 올랐다.
사실 나에겐 객관적으로 나쁠 게 없는 상황일지 모른다.
누가 봐도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준 거니까.
하지만…….
‘기록말살형 당한 거나 다름없잖아.’
위가 울렁인다. 게다가 나만 기억하고 있다는 이 느낌은, 정말 이상했다.
아니, 잠깐만.
‘애초에 왜 나만 기억하고 있는 거지?’
다 같이 잊어버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죽는 모습을 직접 목격해서 그런 건가.
아!
아니면 그 당시에 내가 노스텔지어 캔디를 먹고 있어서 영향이 비껴갔나?
그러고 보니, 노스텔지어 캔디를 먹었을 때 나는…….
…….
…….
“소, 솔음 씨?”
“…아. 제가 뭔가 착각했나 봅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아니니 일단은 대화에 집중하자.
다른 팀이라도 어쨌든 상사는 상사니까.
마침 이병진 과장이 약간 기대하는 얼굴로 내게 묻고 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솔음 씨는 그 어떻게, 어떤 등급으로 클리어했대? 수집기 보여주면 내가 대충 용액 농도 보고 등급 알려줄 수 있는데 말이야….”
“아.”
나는 서류 가방에서 흔쾌히 수집기를 꺼내 보여주었다.
황금빛 액체가 찰랑였다.
“이겁니다.”
“…….”
침묵이 흐른 후.
“…?!”
쓱쓱, 이병진 과장이 자신의 안경을 닦았다.
“하하, 나도 나이를 먹어가지고, 눈이 침침해졌나, 빛이 과반사되는 것 같…?!?”
“아.”
나는 반가운 목소리를 냈다.
“과장님께서 보시기에도 A등급이 맞는 것 같습니까?”
“…….”
이병진이 안경을 도로 썼다.
“……당장,”
“…?”
“당장 보고하러 가야지 뭐 하고 있어! 얼른!”
* * *
나는 순식간에 호출 및 소환되었다.
D조 사무실로 출근하기도 전에 담당자들한테 수집기를 뺏겼다는 뜻이다.
“맙소사!”
‘또 너야?’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담당자들의 시선은, 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그리고 측정 등급은…….
“김솔음 씨.”
“예, 조장님.”
“김솔음 씨가 지난밤 어둠에서 수집한 용액의 등급이 A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사무실에 앉아서 탐사 보고서를 쓰던 나에게 도마뱀 과장이 덤덤히 전달했다.
거기까지는 짐작했다.
다만 다음 말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번 탐사와 관련하여 김솔음 씨에게 단독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뭐, 이번 거는 피할 수 없는 거긴 했다….
두 번째 A.
심지어 이번에도 전례 없던 괴담에서 툭 튀어나온 거였으니까.
‘저 괴담에서 A등급은 거의 그냥 명목상 존재만 하는 거였을 거 아니냐.’
대부분이 D 아니면 F.
오래 버티며 아이템과 명찰을 쓸어모은 사람이 한 번인가 두 번 정도 C등급 용액을 뽑긴 했지만 그게 끝일 것이다.
그냥 아이템 파밍용으로 쓰던 괴담에서 잭팟이 터졌다며 또 윗선에서 이래저래 말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근데 말이다.
‘사실 이번이 끝인데.’
최초 클리어만 쳐줘 그거….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클리어를 시도했으나, 같은 등급의 엔딩(B)에서 한 단계, 또는 두 단계 낮은 등급의 용액이 추출됨.
‘게임 형식이 그렇지 뭐.’
최초가 아니면 반복이라 업적으로 안 쳐주는 거야….
물론 여기까지 다 말할 생각은 없지만, 어느 정도 단서는 흘려야 ‘너 믿고 투자했는데 A 또 안 나왔잖아!’하는 기가 막힌 책임 떠넘기기를 안 당하겠지.
‘오후 종일 뺑이치겠구만….’
슬픈 마음으로 예상하던 그때였다.
“김솔음 씨.”
“예?”
“인터뷰를 하기 싫습니까?”
빼, 빼주시게요??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해야죠.”
‘네가 상황보고서로 쫑치려고 해서 A등급 클리어 못 했잖아!’ 같은 개황당한 책임 떠넘기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크흡.
“예.”
이자헌 과장은 두 번 권유하진 않았다. 정말 도마뱀다웠다.
그리고 잠시 후 약속된 시간.
나는 인터뷰를 위해 D조 사무실을 나왔다.
‘높은 층으로도 불렀네.’
지정 호출받은 31층에서 내려, 회의실을 찾아갔다.
똑똑.
“들어와요.”
문 안에서 들리는 허락에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장엄한 분위기에 회의실.
그리고 검고 거대한 원탁형 데스크.
그런데….
“흐음.”
인터뷰를 위한 연구팀 인원들은 거기 없었다.
대신 그 거대한 데스크의 가장 상석에, 오로지 한 사람만이 홀로 앉아 있었다.
딱 떨어지는 쓰리버튼 정장을 입은 검푸른 머리의 여성은 인자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노쇠한 인상은 아니었으나, 어딘가 연령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데스크에 놓인, 눈에 확 들어오는 검은 자개 명패.
상무이사 청달래
“…?!”
이, 이사??
잠깐만, 지금 내가 호출받은 회의실에… 이사 혼자 앉아 있다고?
심지어 이병진 과장이나 A조와 연관이 있던 그 호 이사도 아니었다.
다만 저 이름의 성 자체는…….
‘들어본 적이 있다….’
호 이사 라인이었던 이병진 과장이 실종됐을 때.
그 사무실 직원들이 과연 누가 후임으로 올지 추측하면서 하던 잡담에서.
-새로 오는 사람이 어떨지는 솔직히 미지수인데… 같은 라인이 꽂힐 확률은 낮지. 청 이사님 쪽 사람이 올걸?
청 이사.
지금까지 연관된 적도 없던 까마득한 상사, 이 회사 개발부 임원진 중 하나가 나를 부른 것이다…!
‘이런 미친….’
물론 경악하는 동시에 나는 대가리를 오지게 박고 있었다.
놀랐다고 사회생활을 잊어선 안 되니까!
“…!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상무님.”
“그래. 반갑습니다.”
내 악수를 받아준 청 이사는 팔을 휘휘 저으며 원탁 책상에 쭉 놓인 의자들을 가리켰다.
“일단 앉아봅시다.”
“예.”
대체 어디에 앉지?
나는 고민하다가, 적당히 상석이 아니면서 이사와 대화를 나누기엔 무리가 없을 지점에 앉았다.
그러자 비서실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회의실에 들어오더니 이사의 앞에 뭔지 모를 서류를 두고 나갔다.
식은땀이 날 것 같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맥락 파악부터가 안 되니 우선 그것부터 하자.
“그래… 솔음 주임? 아직 20대인가?”
“XX년생입니다.”
“젊네. 말 편하게 할 테니 주임도 편하게 있으면 되네. 좋은 일로 부른 거니까.”
“좋은 일이라 하심은…?”
“그간 내가 주임 소문을 많이 들었다는 거지.”
청 이사가 빙긋 웃었다.
“아주 인상적이었어. 자네 같은 신입만 들어왔으면 원료 수급에 문제가 없을 텐데 말이야.”
“감사합니다.”
높으신 분이 저럴 때는 그냥 예의 바르게 앉아서 경청하는 자세만 취하도록 하자.
괜히 당신의 니즈를 내가 정확히 맞춰보겠다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말 붙이다가 나대는 걸로 끝날 수도 있다….
‘오늘은 이렇게 치하할 겸 A등급 매뉴얼 잘 작성하라고 생색내려고 친히 회의실에 오신 건가?’
눈도장 찍기 말이다.
“그래서 솔음 주임.”
하지만 본론은 거기부터였다.
예고도 없이.
“혹시 정예팀 관심 없나?”
침으로 사레들릴 뻔했다.
“그게….”
“아, 지난번에 A조 석 과장에게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한 건 알고 있네.”
“…!”
“‘기초부터 쌓겠다’…. 좋은 핑계지. 잘 대응했어.”
아, 맙소사.
“그 팀은… 흠, 위계를 지키려는 건 좋지만, 가끔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탐사보다 위계를 중요시 여긴단 말이야.”
“…….”
“보기 좋진 않지만 뭐, 줄을 잘 타는 것도 능력 아니겠나. 하하!”
아주 노골적으로 A조가 다른 파벌이라는 걸 드러내시는군요.
‘저는 그 말에는 한마디도 반응하지 않겠습니다, 이사님….’
그냥 어설프게 웃으면서 고개나 끄덕이자.
이거 잘못 걸리면 이사랑 같이 A조 뒷담 깐 게 된다.
이사야 당연히 괜찮겠지!
하지만 줄 안 탄 신입따리인 나는 X 되는 것이다….
나는 어쩔 줄 모르겠지만 차분해져 보겠다는 기색을 드러내면서, 어렵게 발언하는 척 말을 꺼냈다.
“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게 기초가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에… 사실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
“하하하! 괜찮네, 괜찮아. 그래, 긴장할 만한 상황이지, 솔음 주임이.”
청 이사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가 정색했다.
“내 말에 다 맞장구쳐줄 필요 없네. 그런 간신 같은 인간은 안 좋아하니까.”
“…….”
“그래. 내가 단어 선택을 좀 더 확실히 해야겠군. 그렇지?”
청 이사가 마치 잠깐 생각에 잠긴 것처럼 뜸을 들이더니, 서류를 덮으며 말한다.
“나는 자네를 정예팀 중 하나에 넣겠다는 게 아니야.”
“…?”
“정예팀의 대우를 받는 것에 관심이 있냐는 뜻이었지. 그래…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겠군.”
청 이사가 빙긋 웃었다.
“D조가 정예팀이 된다면 어떨 것 같나?”
“…!!”
“자네가 원하는 조원을 하나 넣어서, 통째로 말이야.”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