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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83화


정예팀.

현장탐사팀 목숨을 B등급 꿈결 용액보다 평가절하하는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슬슬 ‘장기적으로 가치 있는 직원’이라고 평가해 주기 시작하는 등급이다.

개인 사무실이 주어지며 임금 테이블을 따로 적용한다. 게다가 복지몰에 새로운 이용 항목도 주어진다.

무엇보다….

여차하면 여분의 목숨처럼 쓰도록, 마무리팀 직원을 배정해 준다.

사람 기분 더러워지게 하는 정책이긴 했으나, 어쨌든 생존율을 높여준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개발부 이사가 내게 제안하고 있었다.

“마침 정예팀 숫자를 늘리자는 의제가 꾸준히 올라오는 중인데… 그게 D조가 된다면 그림이 좋지 않겠나?”

D조 자체를 정예팀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내 환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우만 압도적으로 더 좋게 바꿔주겠다는 거다.

“마침 알파벳도 딱 순서에 맞고, 여러모로 행정 절차가 편리하단 말이야.”

“…….”

“함께 근무하고 싶은 직원 하나를 정해 오게. 둘 셋 정도로 후보 명부를 작성해서 줘도 괜찮겠군.”

잠깐만.

도저히 지금 흐름을 못 따라가겠는데….

“감사하지만… 왜 제게 이런 큰 제안을 주시는 겁니까?”

막말로 이자헌 조장을 정예조로 보내고 싶다고 한다면 이해한다.

내 기억에 따르자면, 원래도 잠깐 정예팀 조장을 하다가 다른 루트로 승진할 예정인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왜… 나를 기준으로 말하는 거지?

‘조장 놔두고 신입 불러다가 이런 말 하는 건 이상하잖아.’

내가 매뉴얼 창조하며 A등급 용액을 두 번 뽑아오는 규격 외의 성과를 낸 건 알겠는데,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괴담을 클리어하는 네임드들은 더 있었다.

그런 탐사기록들이 쌓여야 매뉴얼이 되는 거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너를 위해 네 팀을 다 정예팀으로 만들어줄게~’ 같은 소리는 듣지 않았다.

‘이상하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저는 일개 신입입니다. 일한 만큼 포인트와 수당은 충분히 사내에서 받고 있고, 승진이 대단히 빠른 것만으로도….”

“솔음 주임. 혹시 윤조훈이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나?”

등이 얼어붙을 뻔했다.

간신히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이 상황이 긴장된 투로 대답하는 것에 성공했다.

“…혹시 직원분이십니까?”

“맞네.”

선선히 대답한 청 이사가 날 보며 빙긋 웃었다.

“사실, 이번 정기인사에서 새롭게 D조로 발령났던 주임이지.”

“…….”

“하지만 이제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돌려봐도 나오지 않을 거야. 자네 기억에도 없겠지.”

반응하지 않았다.

“고등급에는 가끔 그런 어둠이 있어. ‘실패’한 사람은 존재가 말소되는 것 말이야. 하지만…….”

청 이사가 서류를 내려놓더니, 데스크 밑에서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꿈결 수집기.

“사망한 직원의 꿈결 수집기는 회사에 다시 송환되지.”

“…!!”

“아깝지만, 사망 직전까지 수집된 꿈결을 동력으로 삼는 자가구동식이네. 그리고….”

청 이사가 녹음기의 끝을 퉁 튕겼다.

“가벼운 녹음 기능도 여기 포함되어 있지.”

“…….”

“그래서 현실에서 말소된 직원의 탐사기록도 이 회사에서는 확인하고 참고할 수 있다는 거야.”

맙소사.

“아마 자네라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하네. ‘대체 죽은 직원들의 기록은 어떻게 매뉴얼에 참고되어 있는 거지?’”

잠깐만.

그래. 당연히 <어둠탐사기록>에도 죽은 직원들의 탐사 결과가 적혀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괴담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당연히 탐사자가 전멸하는 기록도 써야 했다. 그게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효과적이니까!

존재 자체가 말소된 직원이나 물건에 대한 기록도 멀쩡히 다 있다.

하지만….

‘어차피 위키라는 건 전지적 시점에서 기록되기 마련이잖아.’

그리고 왜 그게 가능한지도 개념적으로는 대충 합리화되어 있다.

현장탐사 직원들은 사망 시 탐사기록이 회사에 전송됨.

이렇게.

구체적으로 어떤 아이템이나 방식을 쓰는지는 설정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굳이 기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떨어졌을 때도 그 공백은 그냥 자연스럽게 넘겼다.

여긴 원래 위키 베이스의 창작 세계관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구체적이고 확실한 설정값이 있었단 말이지…….’

순간, 내가 지금까지 ‘어차피 그런 세계관’이라 넘겼던 모든 의문이 머릿속에 우수수 다시 떠올랐다.

설마 거기에도 전부 ‘개연성 있는 추가 배경 설정’ 있는 건가?

이런 방식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찰나였다.

-노루 씨! 상대가 아직도 당신을 보고 있군요. 아무래도 인터뷰를 이어가고 싶나 봅니다.

‘…!’

-스타에게 겸손한 자세를 원하는 부류 같으니, 집중해 봅시다….

그래.

지금은 당장 대화에 집중할 때였다.

다행히 내 동요는 ‘회사의 비밀스러운 노하우를 깨달은 직원’다운 수준에서 끝났고, 이사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이 녹음 기록을 토대로 하자면, 김솔음 주임은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어둠을 탐사하고 장악한 모양이야.”

“…….”

내가 학생이 된 걸 윤조훈 주임이 알아봤던 모양이다.

“스스로 도시전설의 일부가 된다. ‘동화同化’라니, 범상한 자는 겁이 많고 지혜롭지 못하여 고르지 못하는 방식이지….”

대체 무슨 무서운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어쨌든, 그런 탐사 기록까지 공백 없이 수집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네.”

청 이사가 나를 보았다.

“어때, 자네 생각보다 체계적인가?”

“…….”

“이 회사가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직원들이 있다고 들었지.”

이, 이건… 사회인의 식은땀이 났다.

“나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 대부분 똘똘한 녀석들이야.”

어딘가 인자한 목소리.

“하지만 있다 보면, 이 세상에서 이만큼 상벌이 확실하고 합리적인 기업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거란다.”

“…….”

“능력만 출중하다면, 한두 번 실수해도 순조롭게 위로 올라갈 수 있지.”

나는 결코 긍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 이사는 마치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사님!’이라고 대답하기라도 한 듯, 웃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가보게. 이자헌 과장에게 내 안부도 전해주고.”

* * *

친구. 이 속담을 혹시 알고 있습니까? ‘크림은 언제나 위에 뜨기 마련이다.’

-뛰어난 것은 결국 어디서든 두각을 나타낸다는 뜻이지요. 지금의 친구를 묘사하기에 꼭 알맞은 속담입니다!

그보단 ‘모난 돌이 정 맞는다’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영혼이 털린 기분으로 D조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럴싸한 유사과학서를 읽었는데, 사실 그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은 기분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자헌 과장에게 말을 걸었다.

“과장님.”

“예.”

“방금 제가 한 건 인터뷰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군요.”

“…….”

“…….”

“도움이 필요합니까?”

“네.”

“설명하십시오.”

나는 일어났던 일들을 랩이라도 하듯이 토로했다.

청 이사가 했던 발언, 꿈결 수집기, 사라진 D조 직원.

그리고 내가 받은 제안까지!

‘어차피 꿈결수집기 정보는 과장급 정도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겠지.’

게다가 이자헌 과장은 감히 신입이 자길 제치고 파격 제안을 받았다고 화내거나, 본인이 정예팀되겠다고 날 가스라이팅할 위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야… 도마뱀이니까.

“그렇군요.”

아니나 다를까, 도마뱀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제 조언이 필요합니까?”

“예.”

“거절하십시오.”

“…!!”

이렇게 단번에 결론이 나온다고?

“이유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예. 청달래 이사는 회사에 대한 강력한 주인의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

이 회사를 자기 것이라 생각한다는 뜻인가.

아니, 잠깐만.

“방금 ‘존재’라고 하셨습니까?”

“예.”

굉장히 수상한 지칭이다.

“…혹시 청 이사님은, 인간이 아니십니까?”

“대답할 수 없습니다.”

“…….”

사실상 그냥 그렇다고 대답해 주신 거나 다름없잖습니까…!

최소한 청 이사에게 뭐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괴담 회사 이사가 그렇지 뭐!

“아, 아무튼, 계속 말씀해 주십시오.”

“예. 그렇기에 청달래 이사는 자신이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이 회사에 유능한 개체를 종속시킬 기회가 온다면, 망설이지 않을 겁니다.”

“…!”

“이 과정에서 김솔음 주임의 윤리 기준상 극렬한 거부감을 느낄 행위가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맙소사.

“위험을 감수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반년 안에 정예팀에 배치될 확률 역시 높습니다.”

“…D조를 떠나서 다른 조가 되겠지만 요?”

“예.”

“…….”

“D조에 남고 싶습니까?”

“되도록 그러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신입이고 나발이고 정말 하나도 안 아쉬워 보이십니다, 과장님….

참 한결같은 인간… 아니, 도마뱀이었다.

‘뭐 기대도 안 하긴 했어.’

어쨌든 날 일부러 속이려고 할 도마뱀은 아니니, 그냥 문자 그대로 믿으면 되겠지.

“친절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장님.”

“예.”

흠.

나는 갈등하다가 물었다.

“저, 혹시 조장님께선 정예팀의 조장이 되시고 싶진 않습니까?”

“호오가 없습니다.”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내 결정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미치겠네.’

그 후 이자헌 조장과 몇 가지 대화를 더 나누긴 했지만, 뚜렷한 수확은 없었다.

그저 고민만 깊어졌을 뿐이다.

‘정예팀이라….’

이자헌 과장이야 논리와 합리의 이름으로 내게 거절하라고 권유했지만, 회사 생활은 불합리와 감정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서 말이다.

왜 이자헌 과장이 그토록 회사에 적이 많고 A조 조장이 마주칠 때마다 죽일 듯이 보겠는가!

‘조언은 고맙지만, 그 방식으로 접근하긴 어려운데….’

애초에 괴담 회사 임직원은 거절이 안 통할 것 같은 상대였다.

A조 조장에게 했듯이 빠져나가는 건 안 통할 것 같았다. 청 이사가 대놓고 언급까지 한 건, 하면 X 된다는 뜻이다.

“하…….”

아니, 왜 나는 승진 및 파격적 대우를 약속받았는데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가…!

‘괴담 회사 너무 퇴사하고 싶다…!!’

결국 그날 저녁.

나는 정신적 파김치가 된 채로 퇴근하게 되었다….

“…….”

어둠 탐사를 간 것도 아니고, 그냥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보고서만 작성했는데도 기가 쪽 빨리는 기분은 오랜만이다.

-이런, 내 친구의 심신이 많이 지친 것 같군요.

-우선 빨리 집 안에 들어가지요. 좋은 공연을 위해선 휴식도 중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

높으신 분이랑 만나고, 세계관 정보를 듣고, 파격 제안을 받고….

‘지친다…….’

일단 씻자마자 거실 소파에 뻗었다.

친구, 우리 뜨거운 초콜릿이라도 한 잔 마시면서 이 저녁에 대화를 나누면 어떻겠습니까? 하루의 피로를 그렇게 풀어보지요!

핫초코…는 이 집에 없고, 꿀물이라도 한잔 마시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식탁에 브라운을 올려둔 후, 포트에 물을 끓여 꿀물을 생산했다.

그걸 기계적으로 들이켜며, 브라운을 살짝 등진 채 가볍게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었는데….

친구. 이 브라운이 비밀을 하나 들려주겠습니다.

비밀?

-그렇습니다. 직업적 소양인 내 유쾌함으로 잘 숨겨서 아마 노루 씨가 눈치채긴 어려웠을 테지만, 사실…….

브라운이 숨을 들이켠 후, 극적으로 말했다.

-간밤의 일에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

비밀……인가?

어쨌든 위로하려는 의도는 틀림없어 보이니 성의껏 반응했다.

“뭐가… 그렇게 충격이었는데?”

‘착한 친구’는 친구가 원한다면 어디든 동행합니다…. 그런데, 이 브라운은 그러지 못했지요.

언뜻 보인 토끼 인형의 그림자가 어쩐지 축 처진 것 같았다.

-참으로 수치스럽고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그럴 것까지야?

어차피 꿈속이었는데 말이다.

추측하기로는, 브라운이 내 소지품이 아니라 동격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따로 의식을 치렀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고말이다.

‘어쨌든 마음 쓰지 않아도 괜찮아. 앞으로는 그런 일 별로 없을 거니까.’

-이런, 내 친구는 배려심이 깊군요.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당신의 가장 착한 친구인 내가 어젯밤 강렬했던 꿈속 졸업식까지 함께했다면, 오늘 친구가 겪은 난감함도 한결 낫지 않았겠습니까?

…….

그건…… 그럴지도.

애초에 윤조훈 주임에게 포착될 일 자체가 없지 않았을까.

브라운이 조명을 꺼줬다면.

-바로 그겁니다! 나의 역할!

-…이런 초조함은 오랜만이군요. 우리의 우정을 위해, 그리고 이 브라운이 역할을 다하기 위해, 흠…….

머리 뒤에서, 마치 초조하게 생각에 잠긴 채 구둣발로 바닥을 걷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우뚝, 멈춰 섰다.

-그렇지! 내가 직접 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았겠습니다만… 이 솜 든 몸으로는 노루 씨의 도움이 필요하군요.

-아주 간단한 행동 하나면 우린 더 괜찮을 겁니다, 친구. 부탁해도 괜찮겠습니까?

브라운이 정중하고 친근한 목소리를 냈다.

-내가 한 번만 더 젊음의 욕조에서 목욕하도록 도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습니다!

아.

‘그거.’

…….

…….

“그렇게 할까?”

-아! 정말 고맙습니다, 친구…!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착한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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