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92화
마네킹 직원들이 나란히 대열을 맞추어 서서 일제히 박수했다. 반지를 사겠다는 내 의사표시에 열렬한 호응한 것이다.
그리고 나를 따라온 두 명의 동기는 멍하니 이 사태를 보고 있다.
내가 고른 반지와 물물교환용으로 적당한 가치를 지닌 두 명의 인간.
짝짝짝…
마네킹들이 박수를 멈췄다. 그리고 결제를 진행하려는 듯, 내 뒤에 선 둘을 향해 일제히 걸어온다…….
나는 손을 들었다.
“다만, 지불 방식을 좀 변경하고 싶습니다.”
우뚝.
멈춘 마네킹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물론 이 부티크에서 물물교환으로 인간을 받아 가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게 거래가 가능하고 말이다.
그런데 왜 인간을 받아 가는 걸까?
근본적으로 그 이유를 따지자면….
‘노동력이지.’
허드렛일 하는 직원으로 쓰든, 일을 잘해 승진해서 저렇게 마네킹이 되든 간에 이미 위키에 묘사된 사실이었다.
즉, 가게 운영에 확실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물물교환용으로 인신매매를 받아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력 외에도 가게 운영에 ‘확실한’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일까?
백일몽 주식회사만 떠올려도 바로 연상되는 게 있지 않나.
‘원료 수급.’
나는 문신에 손을 집어넣어 물건을 하나 꺼냈다.
내가 챙겨왔던 것 중에 가장 값비싼 물질.
“이걸로 계산하고 싶습니다.”
골드바다.
“…!”
괴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본주의의 별에, 뒤에 선 동기들이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외계인 상점에서 전 품목 구매를 누르고 난 후에 내 잔고가 간당간당해서, 이걸 지를까 말까 고민했지만….
‘역시 종로 가서 챙겨오길 잘했다.’
금, 은은 괴담에서도 단골 소재였으니까.
특히 퇴마에 주로 사용되는 은과 달리 금은 이미지에서 약간 더 범용성이 있다. 욕망이나 주술적 대가로도 자주 상징되어 어느 곳에서든 잘 통하기 좋았다.
그러니까….
“결제 가능합니까?”
마네킹 중 유니폼이 좀 더 격식 있는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작은 골드바에 고개를 푹 숙이더니….
정중하고 공손하게 양손을 내밀었다.
‘…됐다!’
먹혔구나.
최악의 경우엔 그냥 도망갈 생각까지 했는데,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나는 골드바를 마네킹의 손에 떨어트렸다. 마네킹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더니, 유리장 뒤에서 반지를 더 포장해서 들고 나왔다.
기묘한 뱀 무늬가 새겨진 벨벳 방석 위에 내가 구매한 은반지를 올려서 내민다.
‘방석…까지 세트인가?’
함께 챙겨도 반응은 없었기에, 나는 즉각 문신에 전부 수납했다.
그 다음으로는 다른 마네킹이 양옆에서 각각 직사각형 벨벳 상자를 들고 앞으로 나선다.
양쪽 상자는 똑같이 생겼으나 각각 다른 것이 들어 있었다.
왼쪽은 우아하고 정통적인 형태의 주머니였는데, 살짝 풀린 입구 안으로 거꾸로 인쇄된 동전들이 보였다.
‘거스름돈!’
추가 환전 소득이었다.
아까 정육점에서 받았던 것보다 훨씬 묵직한 양이라는 게 한 번에 보였다. 게다가 동전들이 크고 두껍다. 단위가 다른 게 분명했다.
‘이걸 다 받는 게 맞겠지.’
이미 마음이 기운 상태로 반대편을 보았다.
다른 한쪽 마네킹이 들고 있는 상자 안에 진열된 건… 흠. 액세서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작은 잡화들이다.
몸에 착용한다고 판단하기도 애매할 정도라서, 굳이 저것도 정신 방어에 효력이 있는지 모험할 정도도 아니라고 할까.
아무래도 거스름돈 주기 전에 판촉 한번 하려는 것 같지?
‘역시 범용성 있는 화폐 쪽이 더 나은데.’
…까지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잡화들 사이로 어떤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리본 머리끈이다.
뭔지 모를 재질이었으나, 흑갈색 끈이 반질거리는 게 고급스럽다.
“…….”
흠.
“저것도 같이 가져갈 수 있습니까?”
나는 머리끈을 가리켰다.
마네킹들이 다시 박수하더니, 주머니에 담겨 있던 거스름돈 절반을 빼내고 내게 정중히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잘 포장된 물건들을 받아 들어 문신에 보관했다.
“이야.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그 능력 참 좋아 보이네요! 무슨 장비를 쓰시는 겁니까?”
“예.”
나는 히죽 웃고 있는 강이학을 돌아보았다.
내가 본인을 포함한 동기 둘을 인신매매할 수도 있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건가.
‘후…, 한 번만 더 시도하자.’
나는 딱 한 번만 더, ‘미친놈으로 보여서 시비 걸리지 않기’ 시도해 보았다.
바로 강이학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궁금합니다.”
“예?”
“지성체 하나를 팔면 금을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짧은 침묵 후.
“엥? 그런 수지타산 안 맞는 생각을 왜 하십니까~ 하하!”
강이학은 시원하게 웃었다.
“신장이나 각막 떼는 편이 골드바 몇 개는 더 나올 텐데요.”
“…….”
이게 정상인의 사고방식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반박을 포기했다.
슬슬 진짜 무서우니까…!
‘이 괴담에서 나갈 때까지 참아야 한다.’
대신 동기들에게 당근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받으십시오.”
“어…?!”
주머니에 든 거스름돈을 삼 등분해 동기들과 나눈 것이다.
“빌려드리는 겁니다. 사용하면 금으로 갚으시고, 나갈 때까지 사용 안 하시면 회수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장허운이 먼저 고개를 꾸벅거렸다.
아니, 강이학 씨는 내가 범접하지 못할 미친 사람 같으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대체 장허운 씨는 왜 이렇게 태연한 건지 모르겠다.
‘마무리 팀에서 무슨 일을 당한 겁니까….’
분명 시작할 때만 해도 ‘정상인 동기들과 함께하는 믿음직한 탐사가 될 거야!’ 했는데, 너무 멀리 와서 차라리 백사헌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그 새끼는 예측 가능한 짓만 해서 편하기라도 했는데….’
여기선 그냥 식은땀으로 목욕 중이다.
그 와중에 동전을 들어 올려 표면을 보려는 강이학도 황급히 제재했다.
“자세히 보지 마세요.”
“예~”
강이학은 약간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금은… 실패하지 않는단 말이지.”
“…….”
“저, 조랑말 씨. 단정짓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장허운이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세상에는 금보다 귀한 게 많으니까요.”
“하하, 음, 들소 씨. 제가 동기로서 팁 하나 드리겠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소원권 사용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아닙니까.”
“에이~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씀을! 더 부족하고 가치 있는 걸 끝없이 찍어내는 편이 효율적 선택이죠!”
강이학이 활짝 손을 펼치며 말했다.
“바로 미다스의 손입니다!”
“……!”
뭐?
“…닿는 모든 물건을 금으로 바꾸는 손, 말입니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 역시 우리 한국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삭하단 말이죠!”
강이학이 씩 웃었다.
“물론 진짜 손 닿는 걸 다 금으로 바꿔 달라고 할 생각은 아니고, 일상생활에 지장 없는 부위를 생각해 뒀지요~”
“…….”
놀랍게도, 장허운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신입 OT 때, 양복과 머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손을 들고 소원권에 대해 질문하던 당시처럼.
“…그럼 그냥 통장에 백억이든 천억이든 받으시죠.”
그러나 강이학은 거침없었다.
“예? 뭐 하러 일회용 소원을 빈답니까. 심지어 원화는 이 나라 망하면 휴지조각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금은!”
조롱말 가면을 쓴 자가 장허운에게 고개를 들이댔다.
“금은 절대 추락하지 않습니다.”
“……!”
“다이아도, 달러도, 세상 모든 화폐가 망해도 금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상향의 거시적 그래프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완벽한 자본이라니까요?”
“…….”
“어디 들어봅시다. 우리 기수 수석, 최단기 주임 승진, 그리고 최단기 포인트 적립 기록을 경신 중이신… 노루 주임님도 제 말이 동의하시지요? 예?”
강이학이 외쳤다.
“아니, 들을 필요도 없지요~ 그러니까 금을 챙겨오셨겠지! 방금 봤잖아요. 금이 아이템이 되는 걸 말입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금이 곧 돈이고, 돈이 곧 힘인 겁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강이학에겐 꿍꿍이가 없었다.
‘이 사람… 그냥 돈에 미친 사람이다…!’
물론 사람은 보통 돈을 벌고 싶어 하지만, 이렇게 영혼도 무게 달아서 팔 것처럼 구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은심장과 ‘상권’이라는 주변 환경이 영향을 끼쳐서 더 미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 모습이 더 진실하고 솔직한 본심 같다.
괴담에 들어오기 전, 그 사람 좋은 태도 아래에서도 저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위험하다.’
이 괴담에서 나가는 대로, 엮이지 말자…!
하지만 당장은 태연하게 팔짱을 꼈다.
“잘 들었고요. 돈 많이 버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예!!”
일단 이 가게부터 탈출하자.
나는 ‘좀 더 둘러보다가 알아서 돌아가겠다’라며 직원들의 배웅을 만류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다시 손만 둥둥 떤 작업형 형태로 돌아가자마자 부리나케 뒷문을 통해 나왔다.
‘후.’
쪽문이 다닥다닥 붙은 어두운 뒷골목.
이 괴상한 장소가 잠시나마 안도감을 줄 줄이야.
‘내 목적만 달성하고 나면, 그나마 안전하고 걷기 괜찮은 골목 하나를 빨리 찾아내서 그 길에서 남은 걸음 수를 채우자.’
길이 더 좁아지기 전에 말이다.
다행히 부티크에서 천 걸음을 가뿐히 채운 덕에 새로운 골목도 순조로이 나타났다.
당신의 몸을 포기하지 마세요!
남은 걸음 수 : 3999
쪽문 틈 사이로 나타난 길은 이 뒷골목과 비슷한 넓이였지만, 훨씬 나았다.
“왠지 정겨운데요?”
일단 전봇대의 불빛이 아련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별빛이 보이는 밤. 가게마다 간판과 안에서 노란빛이 비쳐 나온다.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느낌이다….’
마치 구도심의 주택 사이 작은 골목길 같은 분위기로, 마음이 편안하게 풀리기 좋은 풍경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하다가는 어느 가게의 호객행위에 잡혀서 홀랑 실종되거나 미칠지도 모르지만.
“아는 곳이네요!”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단길의 골목:
12. 옛날 상가
매뉴얼에서 자주 언급되었으며, 직원들의 탐사기록에서 등장 빈도수가 꽤 많으면서도 비교적 안전한 골목이었다.
그리고….
내 목적지이기도 했다.
“다음 골목으로 이동합시다.”
“넵!”
우리는 정겨운 느낌의 작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인파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나 신년의 밤처럼, 어딘가 신비한 느낌이 났다….
나는 양옆의 작고 소박한 가게들을 지나치며 동기들과 걸었다.
그러다 한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
바로 문구점이었다.
문구라고 해도 몇 가지 학교 준비물과 학생들이 좋아할 장난감만 파는 곳으로, 군것질거리를 훨씬 많이 파는 그런 동네 문구점 말이다.
마치 2000년대 학교 앞에 있어서 떡볶이와 불량식품들을 팔던 가게처럼 생겼다.
나는 좌판을 보았다. 오뎅과 떡볶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기묘한 연꽃무늬가 새겨진 메밀묵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의 간판.
달콤문방구
‘찾았다.’
포장지에 내 인상착의가 그려진 초콜릿 바를 판다는 그 가게.
‘후우.’
막상 오니까 긴장되네.
나는 동기들을 돌아보았….
“노루 씨.”
으아아아악!
허공에 뛰어오를 뻔했다…!
간신히 참고 고개를 돌리자, 가게 옆에 전봇대 그림자 속에 서서 멀뚱히 나를 쳐다보는 흰 도마뱀 머리가 보였다.
…조장님!
“몇 걸음 남았습니까.”
나는 문방구와 도마뱀을 번갈아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혹시… 이 앞에서 저희를 기다리는 중이셨던 겁니까?”
“예. 몇 걸음 남았습니까.”
“…저희는 3900걸음 정도 남았습니다. 혹시 조장님께선 만 보를 거의 다 채우신 상태입니까?”
“예. 이 골목이 함께 진입한 탐사자들과 조우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500걸음을 남기고 대기 중이었습니다.”
내가 이 문방구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추측한 모양이다.
애초에 이 괴담에 들어온 이유부터가 이 문방구에서 목격된 신상 과자 때문이었으니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래도 길게 대답해 주는 건 아주 괜찮았다. 상사로서 도마뱀의 평점이 또 하강과 상승을 반복했다.
그때, 강이학이 치고 나왔다.
“이야, 정말 든든합니다, 조장님! 아, 그럼 저희 걸음수도 채울 겸 잠깐 옆 가게에 좀 들어가 봐도 괜찮을까요?”
동기가 손으로 가리킨 옆 가게는 털실로 짠 잡화를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매뉴얼에 구매 기록이 이미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강이학은 아까 받은 동전도 흔들어 어필했다.
도마뱀이 동기를 빨간 동공으로 쳐다보았다.
“이곳의 화폐를 가지고 있습니까?”
“네넵! 솔음 주임님께서 구해주셨거든요~ 진짜 대단한 분이십니다. D조 분들은 다 능력자셔서 본받을 점이 참 많네요. 하하!”
“그렇군요.”
도마뱀이 빠르게 말했다.
“2인 1조로 들어가십시오. 매뉴얼에 어긋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10분 이상 머물지 말고 골목으로 나오십시오.”
“넵!”
“아, 어…. 예.”
강이학은 부리나케 장허운을 끌고 장갑과 머플러를 파는 가게로 갔다.
음. 아무래도 여기가 탐사기록상 비교적 덜 위험한 골목이고 가게라 이자헌도 저렇게 보내준 것 같았다.
마침 잘 된 거긴 했다.
‘굳이 ‘비밀’을 공유하지 않고도 목적지에 들어가 볼 수 있으니까 말이지.’
“…….”
나는 문방구의 유리문 앞에 섰다.
뒤로 이자헌 과장이 따라왔다.
“들어가겠습니다.”
“예.”
딸랑.
나는 문방구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착한 아이 초콜릿 바’를 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