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 1003화
군림천하 (1003)
제405장 호인괴인(好人人)
섬서성 일대가 온통 술렁이고 있었다.
하남성에서 퍼진 소문 하나가 삽시간에 화북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신검무적이 종남파로 돌아오고 있다!
서안은 물론이고 섬서성과 화북 일대가 온통 그 소문에 들썩거렸고,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건 아니건 모두들 귀를 쫑긋거리며 이후에 들려올 소식을 간절히 기다렸다.
특히 서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환호작약하면서 어서 빨리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학수고대했다.
신검무적이 낙양의 공가장에서 당금 무림의 최고 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림맹주 위지립과 점창파 사상 최강의 고수인 사효심 그리고 오랫동안 천수관음과 함께 여중 제일고수를 다투던 소수마후 섭소심의 합공을 물리치고 그들 모두를 격살시켰다는 소문은 당금 무림을 온통 뒤흔들어 버렸다. 게다가 천하제일의 청부집단인 쾌의당의 당주 또한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에는 모두들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쾌의당주는 그 신비로운 정체만큼이나 탈혼검의 주인으로서 공포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그의 죽음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당금 무림의 최정상을 달리는 네 명의 절정고수들이 모두 같은 자리에서 신검무적에 의해 쓰러지고 말았으니 모든 무림인들이 경악하고 흥분하여 난리법석을 일으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무림 전체가 용광로처럼 한바탕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을 때, 진산월 일행은 조용한 여정을 계속 이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낙녕(洛)과 흥화(興)를 지나 금보산(金寶山)에 이르렀으며, 그곳에서 강을 건넌 다음 관도를 계속 내려갈지 아니면 뱃길로 낙수를 타고 내려갈지 결정해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평상시였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뱃길을 이용했겠지만, 제대로 운신할 수 없는 임영옥 때문에 마차를 버린다는 선택이 쉽지 않았다.
침상이 들어갈 만한 사두마차를 다른 곳에서 구한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아무리 날씨가 더워졌다고 해도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는 것이 그녀에게 괜찮을지 선뜻 판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 그런 고민은 의외로 새롭게 일행에 합류한 서인걸 덕분에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다.
서인결은 강을 타고 내려가야 할지 도강(渡江)을 하여 관도로 가야 할지 고심하고 있는 진산월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장문인. 저쪽 나루터에 본가의 배가 있으니 이용해 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뜻밖의 말에 진산월은 물론이고 전흠과 누산산도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이곳에 서가보의 배가 있단 말인가?”
진산월의 물음에 서인걸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침 본가의 외숙께서 이 근처에서 상행(行)을 하시는지라, 아버님께서 배 두 척을 투자하셨습니다. 두 척이 보름씩 돌아가면서 낙수를 운행하기에 지금쯤이면 그중 한 척이 정박해 있을 겁니다.”
서인걸은 공교롭게도 진산월과 나이가 똑같았다. 다만 장문인과 제자라는 신분 때문에 서인걸은 진산월에게 공대를 했고, 진산월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평대를 했다.
신분 차이 때문에 친구처럼 지낼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서인걸은 자신이 진산월의 사제가 된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고, 종남파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언행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배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양곡(糧)을 운반하는 용도의 배라서 상당히 큰 편입니다.”
서인걸은 임영옥이 타고 있는 거대한 사두마차를 돌아보았다.
“제 생각에는 저 마차도 충분히 태울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마차를 함께 운반할 수 있다면 뱃길로 이동하는 것이 당연히 최선의 방책이었다. 일반의 여객선에는 마차를 실을 수 없기에 포기하고 있던 진산월로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건 정말 좋은 소식이로군. 외숙께서는 어디 계신가?”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금보산 앞의 나루터는 상당히 크고 번화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낙수를 따라 내려가면 섬서성에서도 상당히 큰 도시인 낙남(洛南)이 나오기에 일찍부터 수로가 발달되어 있었다.
낙수를 따라 상행을 떠나는 상단의 거점과 크고 작은 배의 선주들의 숙소와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나루터는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인걸은 상점가에서도 상당히 큰 건물로 그들을 안내했다.
<경방상행(景房商行)>이라고 적힌 간판을 본 진산월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경방이라면 혹시 자네 외숙이 경가(家)의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당대 경가 가주의 둘째 동생이지요.”
경씨가문은 섬서성과 하남성의 경계에서는 가장 큰 명문이었다.
그들은 정통 무림세가는 아니었으나, 오랫동안 상단을 꾸려 오며 거대한 부를 쌓아 온 데다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기에 평판도 무척 좋았다.
외숙이 경가 가주의 동생이라면 서인걸의 어머니는 가주의 여동생이란 말이었다.
경가의 여식을 아내로 삼을 정도로 서가보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의미였기에 진산월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서해원은 충직한 성품만큼이나 인맥도 대단해서 당대의 서가보를 성세로 이끌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에 절로 흡족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황급히 따라오고 있었다. 서인걸은 먼저 경방상행의 건물 안으로 뛰어들 듯 들어갔다. 잠시 후에 다시 나오는 그의 뒤에는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이 흥분 어린 표정을 지으며
숙였다. 중년인은 건물 앞에 있는 커다란 사두마차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 앞에 고고한 자세로 서 있는 진산월을 보더니 이내 앞으로 달려와 허리를
“낙녕경가(洛寧景家)의 경장호(景長浩)가 대명이 자자한 진 장문인을 뵙습니다.”
“종남의 진산월이오. 불쑥 찾아와 폐를 끼치게 되었소.”
경장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폐라니 당치 않습니다. 저야말로 진 장문인을 잠시나마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가시는 길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차가 상당히 큰데, 우리 때문에 상행에 지장이 가는 것은 아니오?”
“마침 양곡을 나르는 가장 바쁜 시기가 거의 끝나가서 공간은 충분합니다. 전혀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히 계시도록 하십시오.”
“마음이 급해서 가급적이면 빨리 길을 떠났으면 하오. 배를 볼 수 있겠소?”
경장호는 이미 신검무적이 종남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지라 본산으로 향하는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준비하면 한 시진 내에는 길을 떠날 수 있을 겁니다.”
경장호의 배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컸다. 원래 양곡을 나르던 배여서인지 일반 여객선의 몇 배 크기여서 사두마차를 실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일단 마차를 배에 싣기 위해 네 마리의 말을 모두 마차에서 풀어 한 마리씩 배에 태웠다. 이어 마차 안에 머무르고 있던 임영옥과 정소소, 엄쌍쌍이 모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하의 절색인 여인이 세 사람이나 마차에서 줄지어 내려서자 주위에서 나직한 탄성이 거푸 흘러나왔다. 경장호 또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가 이내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듯 헛기침을 하고는 다른 쪽에서 멍하니 서 있는 건장한 체구의 장한에게 다가갔다.
햇볕에 얼굴이 검게 탄 그 장한은 입을 반쯤 벌리고 있다가 경장호가 어깨를 툭 치자 화들짝 놀랐다.
“오(吳) 선장(長), 이쁜 여자만 보면 정신이 나가는 건 여전하군.”
“힉!”
오선장이란 장한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가 상대가 경장호임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행수(首)님도 장난이 짓궂으시군요. 그나저나 저런 미인들은 처음 봅니다. 필시 강호의 이름 높은 여협(女俠)들이시겠지요?”
“그러네. 그러니 쓸데없이 분란을 일어나게 하지 말고 아래 사람들 단도리를 잘하게.”
“알겠습니다. 험한 뱃일을 하는 놈들이라도 눈은 달려 있으니 강호의 여협들에게 눈총받을 짓을 하는 간덩이 큰 놈은 없을 겁니다.”
“그래야지. 이번 상행에는 나도 따라갈 테니 자네가 조금 더 신경 쓰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저 가운데의 여인은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군요. 저런 미모의 여인이 몸에 병이 있다니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파 오는 것 같습니다.”
경장호는 엄격한 눈으로 오 선장을 쏘아보았다.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입조심, 눈 조심하고, 절대로 저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히거나 언짢게 해서는 안 되네.”
“에구, 요놈의 입!”
오 선장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찰싹 치고는 이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님은 남자 두 분에 여자 네 분이 다입니까?”
경장호는 턱으로 서인걸을 가리켰다.
“저기 내 외조카도 있으니 모두 일곱 사람일세. 숫자는 많지 않지만 모두 강호의 유명한 고수들이니 절대로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네.”
“걱정 마십시오.”
“준비가 되는 대로 배를 출발시키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배가 나루터를 떠난 것은 경장호의 장담대로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배가 상당히 커서인지 흔들림도 적고 안정적이어서 진산월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몸은 어때?”
진산월은 선실의 침상 한쪽에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임영옥의 안색을 신중한 눈으로 살폈다. 마차를 나와 배에 오를 때 때마침 불어온 강바람에 임영옥이 한 차례 몸을 떨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임영옥은 특유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속삭이듯 대답했다.
“견딜 만해요.”
“해가 지면 강바람이 제법 차가울 테니 당분간은 선실에만 머물러 있도록 해.”
“잠깐 나가서 강변을 보고 싶어요.”
“어차피 똑같은 풍경일 텐데, 굳이 나가서 볼 필요가 있을까?”
임영옥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보고 싶은 모습이 있어요.”
“무엇인데?”
“금보산.”
“금보산이라면 오늘 오면서 멀리서 보았잖아.”
임영옥은 다시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강 위에서 보는 금보산이 보고 싶어요.”
그 말에 진산월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표정이 조금 변했다.
“예전처럼 말이지?”
“그래요. 사 년 전의 그때처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사 년 전,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처음 나선 강호행. 그때 그들은 관도를 따라 낙수를 거슬러 오르다 금보산 앞의 나루터에서 강을 건넜다. 그곳에서 우연히 석가장의 십이지공자 중 한 사람인 석지명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되지 않았는가?
그를 따라 낙양의 석가장으로 가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파란만장한 그들의 강호행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 중 하나일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임영옥은 그때를 회상하며 금보산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때의 가슴 설레고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이 그리웠던 것일지도 몰랐다.
진산월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