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23권 무림세가(武林世家)편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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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23권 무림세가(武林世家)편 : 2화


제 230장 삼대사건(三大事件)

꿈도 꾸지 않은 깊은 잠을 잔 것 같았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는 잠시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진산월은 꼼짝도 하기 싫어서 눈도 뜨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조금씩 공력을 운용해 보았다. 별다른 막힘이 없이 원활하게 흐르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느껴졌다. 진산월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이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사람의 얼굴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노인이었다. 혈색이 좋은 얼굴에 노인답지 않게 피부는 팽팽했고, 허연 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품채가 좋아 보였다, 색상이 화려한 화의를 입고 있었는데, 노인의 활기찬 표정과 몹시 잘 어울려 보였다. 노인은 생생한 확력이 느껴지는 눈으로 진산월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이를 드려내며 활짝 웃었다.

“마침내 깨어났군. 자네가 깨어나길 정말 학수고대하고 있었네.”

진산월은 생명부지의 노인이 반색을 하며 반가워하자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노인장께서 나를 구하셧습니까?”

화의노인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그를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를 구한 사람은 지금 밖에서 퍼자고 있네. 이틀 동안 자네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불난 집에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조금 전에 잠이 들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인사불성으로 뻗어 있을 걸세.”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모가야, 나 아직 안 잤다.”

들어온 사람은 꾀죄죄한 얼굴에 머리가 봉두난발처럼 흐트러진 초라한 몰골의 노인이었다. 하나 그를 보자 진산월은 누워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보니 개방의 나 방주께서 나를 구해 주셧군요.”

진산월이 침상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을 하자 들어온 노인은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노화자(老化子)를 알고 있소?”

“삼 년 전에 소림대집회 당시에 먼발치에서 뵌 적이 있었습니다.”

“오. 그렇지 진 장문인께서고 당시에 그 집회에 참석하셨구려.”

그제서야 노인은 생각이 난 듯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 허름한 용모의 노인은 개방의 용두방주이며 당금 무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만리무영개 나자행이었다. 나자행은 진산월이 아직도 포권을 풀지 않고 있자 자신도 황급히 그를 향해 인사를 했다. 나이나 강호에서 배분으로 보면 그가 훨씬 높았지만, 진산월은 엄연한 한 문하의 장문인 신분이었으니 일방적으로 인사를 받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지 옆에서 보고 있던 화의노인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흐흐….나가 놈이 이렇게 쩔쩔매는 광경은 처음 보는구나, 소림사 장문인을 만나도, 심드렁하던 놈이 웬일이냐?”

나자행은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시간이 있으면 진 장문인의 상세나 한번 더 살펴보아라. 이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도 괜찮은 것이냐?”

화의노인은 두 눈을 반짝이며 진산월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나도 그 점이 궁금하던 참이었다. 어떤가? 머리가 어지럽거나 몸이 불편하지 않은가?”

진산월은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자신을 주시하는 두 노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을 텐데도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약간의 두통이 있긴 하지만 견딜 만합니다. 노인장께선 어느 방면의 고인이신지 궁금하군요.”

화의노인은 진산월의 예의를 잃지 않은 정중한 말에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하하….신검무적 앞에서 고인 소리를 들을 만큼 고명한 사함은 아니라네. 그저 쓸데없는 잡서(雜書)들이나 뒤적거리는 걸 좋아하는 모인풍이라는 늙은이일세.”

“이제 보니 해수 모 대협이셨군요. 미처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아닐세. 나야말로 강호에 이름 높은 제일검객을 만나게 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모인풍은 무공이 뛰어난 절정고수는 아니었으나 식견이 탁월하고 아는 것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강호제일지자 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의 해수라는 별호도 사함들의 궁금증을 쉽게 해결해 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제가 경황이 없어 아직 두 분께서 저를 구하게 된 연유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진산월의 물음에 모인풍이 빙긋 웃으며 나자행을 가리켰다.

“그건 나보다 저 나가 늙은이에게 듣는 것이 더 정확할 걸세. 자네를 들쳐 업고 이곳으로 달려온 당사자이니 말일세.”

나자행이 한차례 헛기침을 하고는 그간의 사정을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진산월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모인풍은 진산월이 나자행의 말을 막지 않고 상당히 긴 내용의 말을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자 내심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저런 침착성과 참을성을 저 나이에서는 보기 어려운데 과연 대단하군, 그가 젊은 나이에 강호제일의 검객이 된 것에는 저런 성정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자행의 말이 끝난 후에도 진산월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자행은 그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질 것에 대비해서 답변할 말도 생각해 놓았는데 막상 그가 아무 물음도 없이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듯하자 약간은 어리둥절하고 약간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상념에서 깨어난 진산월은 다시 나자행과 모인풍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두 분께서 저를 구해 주신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모인풍이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그의 인사를 받은 반면에 나자행은 평소의 모습답지 않게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 늙은 거지가 호기심에 못 이겨 남의 뒤를 따라갔다가 차조한 일이니 진 장문인은 너무 고마워할 필요 없소. 그보다 몸은 정말 괜찮은 거요?”

나자행은 거듭 진산월의 몸상태에 대해 물었다. 그것은 그만큼 그가 진산월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진산월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보다 나 방주께서는 저의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남해청조각의 당대 전인인 이동심 소저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하셨는데. 이 소저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요?”

“그녀는 진 장문인의 상태가 위급함을 벗어난 것을 확인하고는 선약이 있다며 먼저 길을 떠났소.”

진산월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생명부지의 여인에게 목숨의 빚을 졌는데도 고맙다는 사례의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마음을 짐작한다는 듯 나자행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헛 진 장문인이 그녀에게 빚진 것은 염주 한 알뿐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소. 정 마음에 걸린다면 다음에 그녀를 만나게 되면 쓸만한 염주나 하나 새로 마련해 주시면 될 것이오.”

“염주 한 알이라니요?”

“진 장문인을 중독시킨 미인루의 중독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혈옥수의 가루가 꼭 필요했소. 그래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혈옥수로 만든 홍옥모니주 한 알을 떼어내야만 했던 거요.”

나자행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으나 그 말을 들은 진산월의 얼굴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남해청조각의 전인들에게 홍옥모니주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남해청조각은 불교의 성지인 절강성 보탄산에 있는 사찰이었다. 원래는 비구니들이 기거하는 작은 암자에 불과 했으나, 몇 백 년 전부터 간혹 뛰어난 실력을 지닌 여고수들을 배출하여 조금씩 명석을 얻게 되었다. 그 뒤로 불도와 검도에 모두 관심이 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한때는 절강성뿐 아니라 강남 무림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세력을 이루기도 했었다.

하나 백 수십여 년 전에 불망신니라는 신비의 여고수가 나타나 패도로 흐르던 남해청조각의 기풍을 일신하고 본격적인 비구니들의 도량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해청조각은 엄격한 심사를 거친 소수의 여인들만을 선별하여 받아들였고, 그들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삼 년간 강호를 떠돌며 협행을 한 후 돌아오게 했다.

남해청소각의 전인들은 하나같이 재색을 겸비한 일대의 기녀들 이었을 뿐 아니라, 개중에는 강호무림의 어느 검객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여검객들도 적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들 중 유달리 특출난 무공의 여고수에게 검후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대략 오십 년에서 칠십 년 주기로 하여 무림인들이 누구나가 검후라고 인정할 만한 여검객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혹자는 “남해청조각에서는 한갑자에 한명씩 검후를 배출한다”고 떠들기도 했으나, 누구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이동심은 근 칠 년 만에 남해청조각에서 배출한 전인으로, 고경한 심성과 아리따운 자태로 명성이 높았으나 아직 무림인들에게 검후라는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남해청조각에는 특별히 강호로 나가는 전인들을 위해 수령 백 년이 넘는 혈옥수를 다듬어 백팔 개의 염주를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홍옥모니주였다. 홍옥모니주는 백독을 막아 주고 온갖 사기의 침입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줄뿐 아니라 불문 무공을 익힌 자가 손에 쥔 채로 운공을 하면 커다란 효능을 본다고 알려져 있어, 강호를 행도하는 남해청조각 전인들의 상징과도 같은 절세의 기보였다.

자신 때문에 그런 기보의 일부를 훼손했다고 하니 진산월로서는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당사자는 이미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말았으니 보은은커녕 감사의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닌가? 한동안 무거운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진산월은 다시 나자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 방주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시오. 이 노화자가 아는 것이라면 기꺼이 대답해 드리리다.”

“당시 장내에 있던 구궁보의 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그때는 노화자도 정신이 없어 진 장문인만을 데리고 간신히 몸을 피했을 뿐이라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오. 다만 어제 한 가지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웬일인지 나자행은 그갑지 않게 말문을 흐렸다. 진산월은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그가 다음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나자행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궁보의 중요 인물이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해 생사지경에 처했는데, 때마침 근처를 지나던 천봉궁의 단봉공주가 그를 구해 주었다는 소문이었소. 그들은 함께 구궁보로 가고 있다고 하더구려.”

진산월은 묵묵히 고개를 끄떡였다. 나자행은 유심히 그를 살펴보았으나, 그의 얼굴은 그저 담담할 뿐이어서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다만 두 눈만이 유난히 침침하게 가라앉아 있었는데, 그 것이 자신이 걱정하던 사람이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된 안도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헝클어져 버린 실망 때문인지는 나자행도 알 수 없었다.

한동안 장내에는 기이한 침묵이 감돌았다. 진산월이 깊은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나자행과 모인풍 또한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자행은 말할 것도 없고 모인풍도 말이 많기로는 강호의 누구보다 못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진산월에게서 풍겨나오는 무거운 중압감과 말로 표현 못할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두 사람 모두 좀처럼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강호에서의 명성과 그동안의 행실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그만큼 신검무적이라는 이름이 그들에게 얼마나 비중 있는 존재로 비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침묵을 깬 사람은 진산월이었다. 그는 장내의 무거운 분위기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사람처럼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뜻하지 않은 일로 고초를 겪기는 했지만 덕분에 강호에 명망 높은 두 분 선배님들과 인연이 닿게 되었으니 오히려 그런 일을 당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특히 모 대협은 강호에서 만나기가 힘들기로 유명한 분인데, 오늘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모인풍이 눈을 반짝이며 히죽 웃었다.

“그건 내가 할 소리일세. 그런데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게 용건이 있는 모양이군그래?”

“강호에서 가장 아는 게 많은 분을 어렵게 만났으니 누구라도 묻고 싶은 게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런 심정은 너무 잘 알고 있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질문이 귀찮아서 남들 만나는 걸 꺼려했던 걸세.”

“그렇다면 제가 모 대협의 심기를 어지럽힌 격이 되는군요. 미리 사과드립니다.”

모인풍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가 조금 더 장난스럽게 변했다.

“사과할 필요 없네. 당대 제일 검객의 몸을 실컷 감상한 것만으로도 대가는 이미 차고 넘치도록 받은 셈이니 말일세. 오히려 기대에 어긋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생각마저 드는군. 궁금한 게 무엇인가?”

모인풍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오자 진산월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다.

“제가 듣기로는 모 대협께서 강호의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아서 근 백 년 내 강호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에 대해 가장 정통하시다고 하더군요.”

“내가 강호의 역사를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는 건 사실일 걸세. 그렇다고 강호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건 아닐세, 강호가 얼마나 넓고 광활한데 한 사람이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알 수 있겠나?”

“모 대협께서는 지난 백 년간 강호에서 벌어진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침착하기 그지없던 모인풍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심지어는 한쪽에서 묵묵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자행도 의아스런 눈으로 진산월을 쳐다보고 있었다.

‘신검무적이 해수에게 물을 게 있다기에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그는 왜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일까?’

모인풍은 다소 어리둥절하고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익살 맞게 대꾸했다.

“무슨 질문이 그런가? 그렇게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으면서도 괴상한 걸 물어보는 사람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밖에 없을 걸세.”

“저도 제 질문이 다소 뜬구름 잡는 식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순수한 모 대협의 관점에서 지난 백 년간 강호에서 벌어졌던 일들의 비중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왜 하필이면 내 관점인가?”

모인풍이 예리하게 되물었으나 진산월의 표정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강호에서 가장 박식한 분의 관점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귀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허….사람을 머리꼭대기까지 올려놓는 진 장문인의 말솜씨가 대단하군. 내 관점에서 본 강호에서 벌어진 백 년 내 가장 중요한 일이라……”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던 모인풍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백 년인가? 아예 강호 역사상이라고 물었으면 더 대답하기 쉬웠을 텐데…”

“너무 오래전 일은 이미 신화가 되어 버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백 년이라면 비록 오래되었기는 했으나 지금도 충분히 수용 가능한 이야기이며..”

나자행이 옆에서 그의 말을 받았다.

“현재에도 충분히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

진산월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모인풍은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 조금 전보다 한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군. 그렇다면 말해 주지, 먼저 이건 순전히 노부 개인의 의견임을 미리 피력해 두는 바일세.”

“경청하겠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백 년 내 강호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 중 진정으로 큰 의미를 가진 것은 모두 세 개가 있네. 그것들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일인지는 묻지 말게. 나로서는 그 일들의 경중을 감히 판단할 수 없으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우선 먼저 생각나는 건 검성 모용 대협의 출현일세. 검성현신은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 파격성이 있지.”

진산월은 물론이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나자 행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오십여 년 전, 당시 천하제일마였던 혈마 좌무기가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을 때 모용단죽은 약관의 나이로 혜성같이 강호에 등장하여 좌무기를 꺾었다. 당시 두 사람이 황산 천도봉에서 벌인 일주야의 사투는 지금까지도 ‘마성지쟁’이라는 이름으로 강호인들에게 회자되고 있었다. 마성지쟁 이후, 모용단죽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인이 되었으며, 그를 배출한 모용세가 또한 천하제일세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모용단죽이 등장한 이래로 강호의 역사는 모용가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에 벌어진 서장무림의 세 번에 걸친 싸움은 모용단죽과 모용세가의 지위를 독보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그 중대성이나 파생된 영향력을 따져 보아도 검성현신이 백 년 내 강호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는 모인풍의 의견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건 서장에 야율척이란 존재가 배출되었다는 것이지. 지금까지 서장무림을 은연중에 깔보고 낮게 평가하던 무림인들이 비로소 경각심을 느끼고 두려워하게 된 것은 바로 그의 출현 때문이었네. 그야말로 법왕현세가 된 것이지.”

야율척! 당금 강호를 살아가는 무림인들에게 듣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두려운 이름이 있다면 바로 ‘야율척’이라는 세 글자일 것이다. 그를 직접 본 사람은 손으로 헤아릴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그의 명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호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무림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모용단죽이 인정한 유일한 적수이자 어쩌면 이미 그를 능가했을지도 모르는 절대적인 존재! 모용단죽이 이미 찬란한 영화를 뒤로한 채 저물어 가는 해라면, 그는 언제라도 중천에 떠오를 수 있는 해였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모르고 있을 뿐인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건 야율척의 등장을 백 년 내 무림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로 꼽은 모인풍의 의견에 두 사람은 깊은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모인풍은 두 사람이 자신의 말에 집중해 있음을 알고 있는지 절로 음성에 힘이 들어갔다.

“마지막 사건은 굉장히 오래전에 벌어진 것일세. 자네가 말한 백 년이란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군. 그건 바로 신검산화일세.”

“신검산화라면….?”

“백 년 전의 천하제일고수였던 신검 조일화의 화려한 비상과 허무한 최후를 가리키는 말일세. 자행, 자네는 잘 알고 있겠지?”

나자행은 평소와는 달리 무겁고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 있나? 적어도 구파일방에 속한 인물들이라면 그것은 절대로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지.”

얼굴에 떠오른 표정만큼이나 무겁게 가라앉은 나자행의 음성을 듣고서야 진산월은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신검 조일화는 화산파 사상 제일의 고수였다. 태을검선 매종도가 종남파 사상 제일의 고수로서 천하제일인으로 추앙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일화 또한 화산파가 배출한 최고의 검객이었다. ‘종남에 검선이 있다면 화산에는 신검이 있다’라는 말이 한동안 대강남북을 뒤흔든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와 매종도는 백 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하나 두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판이하게 다른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매종도가 날 때부터의 천재로 어려서부터 혁혁한 명성을 떨치다가 종남파에 입문한 반면, 조일화는 화산파에 들어올 때까지도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매종도는 천하제일고수가 된 이후에 종남파에 칩거하며 속세와 거리를 두었으나 조일화는 끊임없이 화산파 밖으로 나가서 뭇 고수들과 비무를 즐겼다. 두 사람의 말년 또한 전혀 달랐다. 매종도는 실연의 상처를 겪은 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은거해 버렸으나, 조일화는 화산파를 천하제일문파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구대문파를 찾아다니며 굴종을 강요했다. 처음 구대문파에서는 그 사안의 중요성을 별로 인식하지 못했으나 종남파와 점창파, 청성파, 공동파가 거푸 그의 손에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다. 결국 조일화가 다섯 번째로 아미파를 찾아갔을 때, 그곳에는 소림과 무당, 아마파의 최고 고수 세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과거 조일화의 손에 패한 적이 있는 인물들이었으나, 세 사람이 합세하자 제아무리 신과 같은 검술을 지닌 조일화라 해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조일화는 그들의 합공에 피를 뿌리며 쓰러져야만 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마흔두 살이었다. 하나 그 일의 후유증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한 사람을 합공해야만 했던 소림과 무당, 아미의 최고 고수들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평생 폐관하여 두 번 다시 강호에 나타나지 않았고, 화산파는 책임을 지고 십 년 가까이 봉문해야만 했다. 조일화에게 패한 네 문파도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절치부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고, 조일화의 행적을 소림과 무당에 알렸던 개방은 한동안 화산파와 소원한 사이가 되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왕래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구대문파는 어느 한 문파가 강호무림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여 서로 간에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았다. 구대문파 사이의 단단했던 결속력이 깨어진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강호의 역사를 보면 구대문파 중 특정한 한 문파의 힘이 비대하게 강해진 적은 여러 번 있었다. 하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신검 조일화처럼 노골적으로 다른 문파들을 누르고 그 위에 올라서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 때문에 당시에 구대문파를 비롯한 무림인들이 느꼈던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군림천하’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금기시되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자행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당금의 강호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자꾸 흩어지는 것도 그 연유를 따져보면 결국 신검 조일화의 그 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네. 그 전에는 구대문파 사이에 나름대로 규율 같은 게 존재했네. 적어도 구대문파는 서로를 존중해 주었으며,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결정되면 그것을 어기거나 깨뜨릴 생각을 하지 않았네. 그런데 조일화가 그러한 불문율을 깨어 버린 거지.”

나자행의 시선이 진산월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 영향을 가장 나쁘게 받은 문파가 바로 종남파라고 생각하오.”

진산월은 물처럼 고요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구대문파가 백여 년 전 같은 결속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이십년 전의 기산취악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요. 기산취악은 커녕 오히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던 형산파를 억누르고 종남파의 존재를 인정해 주었을 거요. 그러한 구대문파 가이의 상호 존중이 사라진 건 정말 아쉬운 일이었소.”

그말에 진산월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자행의 얼굴에 그답지 않은 씁씁한 웃음이 떠올랐다.

“일전에 낙양의 분타주에게서 진 장문인의 아직도 기산취악의 일로 인해 본 방에 서운한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소, 기산취악은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소. 선사께서도 늘 그 점을 안타까워하셧소.”

그의 음성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그 안에는 절절한 진심의 빛이 담겨 있었다.
거대 방파를 이끌고 있는 우두머리로서, 그리고 강호무림의 최정상에 있는 사람으로서 나자행은 나름대로 완곡한 사과를 한 셈이었다. 과거 자신의 사부가 어쩔 수 없이 관여해야만 했던 일에 대해서 제자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진산월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자행이 다시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분타주가 아직 방주님께 전하지 않은 말이 있군요.”

“그게 무엇이오?”

“저는 이미 그 일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이 분타주가 제 부탁을 들어준 순간부터 말입니다. 그러니 방주께서는 심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나자행은 그의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듯 진산월을 가만히 응기 하다가 이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진 장문인 말이 맞소. 나이를 먹으면 쓸데없는 근심만 늘어난다고 하더니 이 노화자도 그런 모양이오.”

모인풍이 낄낄거리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흐흐,,,,,그걸 이제 알았느냐? 근심만 늘어나면 그나마 다행인데, 너는 주책과 수다가 같이 늘어나니 어찌 걱정스럽지 않겠느냐?

“나만 그러느냐?”

“아무튼….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기에 백 년 동안 강호에서 벌어진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을 말했는데, 아무래도 한 가지 사건을 더 첨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나자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세 사건만큼이나 중요한 사건이 또 있다고? 그게 무엇이냐?”

“바로 네가 말한 기산취악이다.”

그 말에 나자행은 움찔 놀랐고, 진산월은 눈빛을 반짝였다. 나자행은 진산월을 슬쩍 돌아보다 다시 모인풍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기산취악이 비록 강호의 커다란 사건이기는 하지만….”

“다른 세 사건들처럼 백 년 내 강호를 뒤흔든 대사건이라 거기에는 미흡하단 말이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느냐?”

“나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차피 구대문파 중 하나가 없어지고 다른 하나가 새로 들어온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지. 그런데…”

모인풍의 시선이 진산월에게로 향했다.

“신검무적을 보니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그게 무엇이냐?”

“기산취악 자체는 찻잔 속의 태풍처럼 구대문파 내부의 일게 변고일지 몰라도 그 여파는 실로 작지 않다는 것이지. 당장 생각해 보아도 기산취악으로 인해 종남파가 철치부심하여 결국에는 신검무적 같은 절세의 검객이 배출되지 않았느냐?”

“그렇긴 하다만…”

나자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정 부분 수긍의 기색을 보이기는 했으나 얼굴 한 구석에는 아직도 완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모인풍이 언급한 검성현신과 법왕현세, 신검산화가 엄청난 사건들이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나 모인풍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당금 무림의 복잡한 정세 속을 살펴보면 기산취악의 여파로 벌어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 무림의 가장 큰 현안(懸案)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인풍”

나자행이 화들짝 놀라 그를 제자하려 했으나 이미 모인풍은 할 말을 모두 내뱉은 상태였다.
진산월이 침착한 음성으로 물었다.

“모 대협께서 말씀하신 당금 무림의 가장 큰 현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모인풍은 이미 진산월이 그것에 대해 물어볼 것을 짐작하고 있었는지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도 아닐세. 저 쓸데없이 나이 먹으면서 걱정만 많아지는 늙은 거지는 자네에게 또 다른 짐을 줄까 저어하여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인데, 나는 이런 일일수록 당사자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나자행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아무튼 내가 너 때문에 더 빨리 늙는다. 난 그저 아직 그것을 밝힐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 시기라는 건 누가 정하는 거냐? 아니면 그자가 잘난 멋에 사는용가(龍家) 늙은이냐?”

“강호의 일이란 게 기분 내키는 대로 진행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그 일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어 어느 한 개인의 생각만으로 사안을 결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당사자만 쏙 빼놓고 암중(暗中)에 일을 진행 하려고 했느냐?”

“암중이라니? 우리가 숨어서 몰래 작당이라도 했단 말이냐?”

나자행이 펄쩍 뛰었으나 모인풍은 낼랭하게 쏘아붙였다.

“당사자 모르게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 그럼 숨어서 작당하는 게 아니란 말이냐?”

나자행은 몇 차례 안색이 변했다가 이내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난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하려무나.”

“어차피 얼마 가지도 않아서 세상 천지에 다 알려지게 될 일을 무슨 천기누설이라도 하는 양 쩔쩔매는 게 우습지도 않구나. 아무튼 나는 그 일은 진 장문인에게 하루라도 빨리 알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며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나자행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손만 한 차례 흔들었다.
모인풍은 진산월이 그때까지도 차분한 자세로 자신을 보고 있자 그의 정력(定力)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자기에 관한 중대한 일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저토록 침착할 수 있다니……. 정말 보기 드문 심성의 소유자로구나.’

진산월의 담담하게 가라앉아 있는 눈빛을 보자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든 모인풍은 나직하게 헛김침을 하고는 침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도 돌아오는 유월 일일에 무당에서 대집회가 벌어진다는 건 알고 있겠지?”

“소림의 대방 장문인께 전해 들었습니다.”

“그 집회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들었나?”

“예”

“그 목적 중 한 가지가 얼마 전에 새롭게 첨가되었네.”

무당에서 벌어지는 대집회는 중추절에 벌어질 야율척과 모용봉의 이차 대결을 앞에 두고 중원에 침투해 있는 서장무림의 척후 세력들을 척결하고 야율척의 야욕을 분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한 모임이었다. 그런데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새로 생겨났다니 의아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모인풍은 말을 하기 전에 나자행을 슬쩍 돌아보았다. 나자행은 알아서 하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으나, 얼굴 한쪽에는 지금이라도 말하지 말았으면 하는 무언의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모인풍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자행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실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이내 그는 모인풍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모인풍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무당의 집회는 비록 무당파에서 열리지만, 실질적인 주최자는 바로 형산파일세, 형산파는 이번 집회에서 과거의 일을 완벽하게 매듭짓길 원하고 있네.”

그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진산월을 향해 힘주어 말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이번 기회에 종남파를 완전히 말살하려고 한단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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