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24권 모산지연(姆山之宴)편 :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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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24권 모산지연(姆山之宴)편 : 4화


제 243장 적정탐색(敵情探索)

정소소와 이동정은 비무가 끝난 후에 곧바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종남파 사람들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이동정이 그녀와 함께 떠난 것은 다소 의외였으나, 이내 그들에 대한 관심은 종남파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왜냐하면 뜻밖의 인물이 그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종남파와는 일면식도 없던 황산파의 장문인이 사제들을 잔뜩 대동하고 종남파의 숙소를 방문한 것이다. 황산파는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정파로, 구대문파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안휘성 일대에서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위세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당금의 장문인인 고림산(高臨山)은 뛰어난 무공만큼이나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고림산이 진산월을 대하는 태도는 정중하면서도 예의를 다하는 것이어서 평소 그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진 장문인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소.”

고림산은 강호의 명숙을 처음 만나는 신출내기 무사처럼 약간은 들뜨고 흥분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진 장문인이 무도(無道)한 초가보를 무너뜨리고 종남파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말았소. 당대 제일의 검객을 볼 수 있게 되길 학수고대했는데,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강호의 소문이 잘못된 게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실히 알겠구려.”

진산월은 정중하게 답례를 했다.

“별말씀을. 나 또한 귀 파의 명성을 오랫동안 들어 왔소.”

고림산은 짐짓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중천에 떠 있는 태양과도 같은 종남파에 비하면 명성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일 뿐이오.”

그가 손짓을 하자 뒤에 도열해 있던 그의 사제 중 한 사람이 잘 포장된 상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가지고 왔다.

“이것은 본 파가 있는 황산에서 모처럼 발견한 적하수오(赤何首烏)로, 오백 년은 족히 되는 것이오. 약소하지만 진 장문인을 만나는 기념으로 가져왔으니 받아 주시면 고맙겠소.”

변변한 영약 하나 없던 종남파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선물이었다.

진산월은 사양하지 않고 받으면서도 정중한 사의를 표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귀 파의 마음을 감사히 받겠소.”

고림산은 눈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라도 황산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바쁘시겠지만….”

갈망하는 눈으로 자신을 빤히 주시하는 고림산의 얼굴을 보니 진산월로서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꼭 귀 파를 방문토록 하겠소.”

고림산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떠나갔다. 하나 고림산의 방문은 시작에 불과했다. 고림산 일행이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악가장의 장주인 악진화가 찾아오더니, 그 뒤로는 꼬리를 물고 방문자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동중산과 종남파의 고수들도 계속 날아드는 유명한 고수들의 명첩(名帖)에 놀라 희희낙락했으나, 불과 반나절도 되지 않아 모두 울상을 짓고 말았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종남파가 머무르고 있는 가빈루는 비어 있는 객실 하나 없이 사람들로 들어찼고, 가빈루 주위의 크고 작은 객잔들 또한 좀처럼 보기 힘든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동중산은 중인들의 성화에 떠밀려 잠시 짬을 내어 쉬고 있는 진산월을 찾아가야만 했다.

“장문인….”

진산월의 앞에 선 동중산은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진산월은 그의 의중을 짐작하고 있는지 자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관리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구나.”

동중산은 고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너 외에는 마땅히 응대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네가 더욱 힘들겠구나.”

“제자가 힘든 것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전 사숙께서 상당히 갑갑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흠뿐 아니라 손풍 또한 몇 번이나 그를 찾아와 며칠째 좁은 객잔에만 처박혀 있으니 답답해서 미치겠다고 하소연을 해 오고 있었다.

하나 의외로 진산월은 엄격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이삼 일은 더 머물러야 한다. 전 사제에게는 내가 말하겠으니, 너도 다른 제자들을 잘 다독이도록 해라.”

동중산은 진산월이 이토록 딱 부러지게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낙 사숙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십니까?”

진산월은 고개를 저었다.

“일방 때문이 아니다. 일방은 우리의 차후 일정을 알고 있으니, 우리가 이곳을 떠나도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산월 또한 지금의 번잡함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조용하고 한적한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나 그는 며칠 더 이곳에 머물러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보다 많은 사람들과 우의(友誼)관계를 다져 놓을 필요가 있다. 본 파는 더 이상 종남산에만 웅크리고 있는 약소 문파가 아니니 말이다.”

그 점은 동중산도 깊이 동감하고 있었다. 기산취악 이후 종남파는 종남산에만 칩거한 채 거의 모든 무림인들과 단절되다시피 했었다. 문파가 성장해 나가는 데 있어 인맥(人脈)이란 것을 무시할 수 없는데, 종남파는 그동안 명백히 인맥관리에 실패했던 것이다. 종남파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전대 장문인이었던 임장홍의 친구 몇 사람 외에는 전무한 실정이었으니, 오랫동안 구대문파에 속하며 강호에 명성을 떨쳐 오던 명문 정파라고 하기에는 실로 낮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수많은 무림의 고수들이 제 발로 선물을 가득 안고 찾아오고 있으니,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을지라도 종남파로서는 그들을 기꺼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들이 자연스레 본 파의 보호막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동중산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본 파가 남의 보호를 받을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의 음성 속에는 종남파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일방을 유인해 간 자들의 목표가 단순히 일방 한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진산월의 말에 동중산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장문인께서는 그들이 본 파에 계속 수작을 부릴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남궁세가와의 비무가 본 파의 승리로 끝난 이상 그들이 누구든 다시 도발해 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진산월은 가만히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붕대가 감겨 있는 그의 손을 보자 동중산은 이내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아! 장문인께서는 손이 완치될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실 계획이로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계속 본 파를 찾아오고 있고 주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으니, 이곳에 있는 한 누구라도 쉽게 본파에 수작을 걸어 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원래 검을 다시 잡으려면 칠팔 일 정도의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상처의 회복이 빨라서 앞으로 이삼 일이면 가능할 것 같구나.”

동중산은 진산월의 부상만 회복된다면 상대가 어떤 수작을 걸어오든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진산월의 의중을 파악한 동중산은 이내 활기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걱정은 마십시오. 제가 사제들과 사숙께 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중산의 장담만큼이나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진산월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으며, 손풍은 퉁퉁 부은 얼굴로 투덜거리다가 전흠에게 튀통수를 맞기까지 했다. 전흠은 동중산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평소의 조급했던 모습과 달리 진중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상대하는 사람이 대부분 강호의 젊은 여고수들이라는 것이 다소 특이할 뿐이었다.

손풍이 여자들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상대해야 한다고 나섰다가 전흠의 발에 엉덩이를 가격당한 일 외에는 분주한 가운데 나름대로 조용한 일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나 그런 평온한 일상도 이틀째 되는 날 저녁에 깨어지고 말았다. 동중산이 배첩을 들고 오자 진산월은 무심결에 배첩을 받아 들었다.

“이번엔 누구인가?”

동중산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점창파의 장로인 독검취옹 백리장손이 장문인을 뵙자고 찾아왔습니다.”

“백리장손?”

진산월이 배첩을 보니 과연 배첩에는 ‘대점창파 백리장손’이라는 글귀가 날카로운 필체로 적혀 있었다. 매 같은 그의 성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필체였다. 백리장손은 소림사에서 처음 만난 이후, 엊그제 벌어졌던 남궁세가와의 비무 때 먼발치에서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에 대한 인상은 무척이나 강렬해서 진산월은 마음속으로 늘 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가 종남파에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은연중에 경계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백리장손이 직접 자신을 만나러 찾아왔다는 건 진산월도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혼자 왔느냐?”

“일전에 보았던 사인기 소협과 다른 한 명의 공자가 함께 왔습니다.”

“한 명의 공자라니?”

“남궁세가와의 비무 당시 참관인을 했던 혁리가의 인물로, 혁리공이라고 합니다.”

진산월은 잠시 침음하다가 물었다.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 가는 것이 있느냐?”

동중산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오랫동안의 강호 경험으로 이런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의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면 두 번이나 본 파의 비무를 참관하게 된 인연을 보다 두텁게 하기 위함이겠지요.”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본 파나 장문인의 사정을 탐문하여 새로운 일을 획책하려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진산월은 동중산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으니 자세한 속 사정이 궁금해서 직접 찾아온 것이란 말이지?”

“제자의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필히 만나 봐야겠군.”

직접 만나서 상대의 사정을 파악한다는 건 결코 일방적인 게 아니었다. 그쪽에서 이쪽을 살펴보는 동안, 이쪽에서도 얼마든지 그쪽의 사정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진산월이 동중산을 대동하고 접견실로 사용하는 대청으로 들어가자 차를 마시고 있던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리장손과 사인기는 일전에 만난 적이 있어서 낯이 익었고, 혁리가의 공자라는 한 사람만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진산월은 그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조용한 듯 웃고 있는 얼굴 뒤에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악의가 느껴졌던 것이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은 후 자리에 앉자 백리장손이 먼저 축하의 말을 전해 왔다.

“우선 남궁세가와의 비무에 승리한 것을 축하하네. 소림사에서 처음 진 장문인을 만난 게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종남파와 진 장문인의 명성이 천하를 경동하고 있으니, 제법 세상을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는 노부로서도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네.”

소림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진산월을 향해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않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큼 달라진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종남파는 그 기간 동안에 청의방과 남궁세가를 비롯한 크고 작은 여섯 개 문파와의 비무에서 모두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진산월은 강호의 전설인 무림구봉의 한 사람마저 꺾었으니 아무리 오만하고 콧대가 높은 백리장손일지라도 상대의 업적을 인정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백리장손은 점창파의 열두 명이나 되는 장로들 중에서도 서열로는 다섯 번째였고, 그 실력이나 비중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점창파의 최고 원로이며 강호 무림 전체를 놓고 보아도 가장 배분이 높은 편인 점창일독 백리궁의 친조카였고, 점창파의 당대 장문인인 신풍우사(神風羽士) 장거릉(張居陵)의 사형이기도 했다. 종남파의 종남삼검과 같은 배분이어서 진산월로서도 그를 강호의 선배로 대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종남삼검과 어느 정도의 안면이 있었는지 전풍개의 안부를 물어 왔다.

“전풍개, 전 대협은 지금도 정정하신가? 일전에 듣기로는 초가보와의 싸움에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고 하던데, 후유증이 없으신지 모르겠군.”

“사숙조께선 당시의 부상을 털어 버리고 일어나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다행스런 일이군. 그러고 보니 진 장문인도 얼마 전에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했다고 들었네.”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진산월의 붕대를 맨 오른손으로 향했다.

진산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대꾸했다.

“피육의 상처일 뿐이어서, 손을 사용하는 것에는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다행이군.”

백리장손 또한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화제를 돌렸다.

“이제 남궁세가와의 비무까지 마쳤는데, 아직도 비무행을 계속할 생각인가? 남궁세가마저 물리친 이상 더 이상의 마땅한 상대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렇지 않아도 그 점 때문에 이곳에 며칠 머물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리라고 짐작했네. 다음 상대는 정했는가?”

“아무래도 강남으로 가야 할 듯싶습니다.”

백리장손의 두 눈에서 날카로운 신광이 번뜩이고 지나갔다.

“강남이라…..설마 형산파로 가려는 건 아니겠지?”

“언제 들러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그곳까지 갈 생각이 없습니다. 강남에는 신흥 명문도 많고 강북과는 여러모로 분위기가 다르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제자들과 강남의 정취를 느껴볼 생각입니다.”

백리장손은 진산월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남의 문물(文物)은 강북과는 많이 다르지. 사람들도 다르고, 무공 또한 그럴 걸세. 강남이라…..마땅한 문파가 어디에 있더라?”

백리장손은 자신이 마치 종남파의 일원이라도 되는 양 비무의 상대로 어울릴 만한 곳을 몇 군데 짚어 주었다.

“우선 떠오르는 게 강소성(江蘇省) 최고의 명문인 담씨세가로군. 그들의 도법은 정말 화려하면서도 위력적이지. 강서(江西)쪽에는 남창(南昌)의 진천벽력문(震天霹靂門)과 무공산(武功山) 자락의 포검산장(抛劍山莊)이 유명하네.”

진산월은 묵묵히 백리장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절강은 항주(抗州)의 금응방(金鷹幇)과 보타산의 남해청조각 정도가 떠오르는군. 그 외에 광동성의 패자인 백학문이나 복건성의 천웅보(天雄堡)도 결코 남궁세가에 못지않은 성세를 자랑하는 문파들일세.”

백리장손이 거론한 곳들은 하나같이 구궁보와 구대문파를 제외하고는 당금 무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방파들이었다. 그들 모두를 상대하려고 했다가는 얼마의 시일이 소요될지도 모르고, 더구나 그 반향(反響) 또한 만만치 않을 게 분명했다. 백리장손이 그들을 거론한 의도는 확실치 않았지만 진산월은 그의 말에 사의를 표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리 대협의 말씀을 고려하여 신중히 생각한 다음 본 파의 진로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부가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다니 다행이군. 어느 길을 가든 후회 없는 선택이길 바라네.”

진산월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후회 같은 건 없습니다. 종남의 산문을 나올 때 그런 건 모두 던져두고 왔으니 말입니다.”

조용한 음성이었으나 백리장손은 살짝 눈빛이 변했다. 그 짤막한 말속에 필설로는 형용키 어려운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종남파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자신들의 행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백리장손은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절감할 수 있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잠깐 경직되었으나, 그때 마침 혁리공이 활기찬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강남으로 가실 예정이라면 본가에도 꼭 들러 주시길 갈망하겠습니다. 아버님을 비롯한 본가의 모든 사람들이 진 장문인과 종남파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할 것입니다.”

“고마운 말씀이오. 하나 소주(蘇州) 쪽으로 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구려.”

“강호에서의 일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혹시라도 강소성을 지나시게 되면 본가를 잊지 말고 찾아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알겠소”

소주 혁리가는 장사의 구양가와 함께 강남의 상계(商界)를 양분하고 있는 거대한 가문이었다. 낙양에 있는 석가장과 함께 그들을 삼대 부귀 가문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들의 금력과 위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혁리가의 당대 가주인 혁리아에게는 일곱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뛰어난 인재들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나 혁리공은 그들 중 가장 덜 알려진 인물로, 진산월도 이곳에 와서야 겨우 그의 이름을 들어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혁리공이지만 직접 그를 만나 본 진산월의 소감은 그가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입가에 엷은 웃음을 지은 채 진산월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보는 이의 마음을 자극하는 묘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진 장문인께 작은 청(請)이 하나 있습니다.”

진산월은 혁리공의 유난히 창백하고 메마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무엇이오?”

“소호(巢湖) 쪽에 저의 개인적인 산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진 장문인을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호라면 이곳 회남에서 강남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히 지나쳐야 할 곳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의 초청을 수락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 무슨 생각에서인지 진산월은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그의 청을 기꺼이 승낙했다.

“좋소. 귀하의 산장이 소호의 어느 쪽에 있는지 자세한 위치를 알려 주시오.”

혁리공은 진산월이 자신의 초청을 이토록 순순히 받아들일 줄은 미처 몰랐는지 눈이 다소 커지더니, 이내 비쩍 마른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소호의 호수 한가운데에 모산도(모山島)라는 제법 큰 섬이 있습니다. 그 섬 일대의 풍광은 가히 안휘 제일경(安徽第一景)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수려합니다. 미흡하나마 제추한산장(追閑山莊)은 그 모산도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추한산장이라…….. 마음에 드는 이름이군.”

“제가 워낙 번잡한 걸 싫어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원하는지라 지은 이름입니다만, 그러한 삶을 살게 될지 아직은 자신할 수 없군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소? 다만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오.”

혁리공은 그 말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빙긋 웃기만 했다.

진산월은 아예 추한산장을 방문할 날짜까지 못 박았다.

“내일 출발하면 삼 일 후에 도착하겠군. 그때 잠시 신세를 지도록 하겠소.”

혁리공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 일 후. 알겠습니다. 진 장문인을 모시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소. 나도 번잡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소.”

혁리공의 얼굴에 잠깐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걱정 마십시오. 저도 너무 소란스러워지는 건 원치 않습니다.”

혁리공은 진산월을 대접할 생각에 마음이 급한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수 없이 백리장손 또한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하나 막 그들이 진산월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할 때, 지금까지 묵묵히 한쪽에 앉아 있던 사인기가 조심스레 진산월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진 장문인, 한 가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진산월은 사인기의 다소 특징 없어 보이는 얼굴을 응시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사 소협과는 제대로 말도 나누지 못했구려. 말해보시오.”

“진 장문인의 사제인 낙일방 소협을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일방을?”

“낙 소협이 다른 종남파의 고수불들과 회남에 도착했다는 소문을 듣고 이번 비무에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잠깐이라도 만나서 인사라도 나누려고 장로님을 따라온 겁니다.”

사인기의 얼굴은 비록 평범하고 볼품없는 편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누구보다도 맑고 투명했다. 진산월은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일방은 급한 일이 있어 잠시 다른 곳으로 갔소. 그가 돌아오면 사 소협이 찾아왔다는 말을 전해 줄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게 좋을 것 같소.”

사인기의 얼굴에 아쉬움의 빛이 진하게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뵐 수 있게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사인기가 정중하게 포권을 하고 돌아서자 백리장손과 혁리공이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동중산이 세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오니 진산월은 그때까지도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갔느냐?”

“예, 장문인.”

“백리장손이 나를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가 한 질문이나 태도가 너무 평범해서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가 본 파의 다음 행선지를 물어볼 때, 그가 본파의 이동 경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진산월은 조금 다른 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자가 나의 부상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더구나.”

동중산은 흠칫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장문인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진산월은 담담한 눈으로 붕대가 매어져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강호의 고수들 사이에서 상대의 부상 정도를 면전에서 직접 물어보는 건 금기(禁忌)에 가까운 일이다. 더구나 그는 내 손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운지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했다.”

동중산이 비록 종남파에 입문한 지 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나, 그는 원래 떠돌이 낭인으로 더 오랜 시간을 강호에서 보낸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강호의 명문 정파들 사이의 불문율(不文律)이나 묵계(默契)에 대해 아직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구대문파나 명문 세가 같은 강호에서 일정한 지위를 가진 세력들은 서로 간에 상당한 교분 관계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대의 약점이나 흠에 대해 묻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리장손이 전풍개의 안위를 묻는 정도야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지만, 그가 진산월의 앞에서 당사자인 진산월의 부상에 대해 거론한 것은 그동안의 명문 정파 간 관례에 비추어 보면 다소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진산월의 신분이 일파의 장문인인 점을 생각해 본다면 예의(禮儀)문제를 거론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동중산은 뒤늦게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제자가 불민하여 상대의 무례함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문파 간의 관행(관행)에 대해서는 나중에 본산으로 돌아가면 정해에게 따로 가르침을 받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 쪽으로는 정해가 가장 정통하니 말이다. 그보다 백리장손이 나의 부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동중산의 외눈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장문인께서 검을 사용하실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일 겁니다. 부상 부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까지 했다면 그 점 외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별로 안면도 없던 그가 일부러 찾아와서 장문인의 부상 부위를 살핀 것은 무언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본 파에 좋지 않은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진산월도 그 점을 느끼고 백리장손이 자신의 손을 보려고 할 때 순간적으로 손목 부위로 지나는 내공의 흐름을 잠시 끊어 놓기도 했다. 겉으로 보아서는 별 차이를 알아차릴 수 없을지 몰라도 백리장손같이 오랫동안 검을 수련해 온 검도의 고수라면 손으로 내공이 원활하게 흐르고 있는지와 그렇지 않은지를 어떤 식으로든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백리장손이 자신의 손이 아직 검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게 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진산월은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었다. 백리장손의 선택 여하에 따라 점창파를 대하는 진산월의 행동 또한 달라질 것이다.

손의 부상은 진산월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아물고 있었다. 동중산은 진산월의 회복이 빠르다는 것에 별 생각 없이 안도하고 있지만, 진산월은 마음속으로 상당한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손아귀는 일단 찢어지게 되면 아물 때까지 상당한 시일이 경과되는 부위인데, 자신의 상처가 이상하리만치 빨리 나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빠르거나 늦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자신의 몸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할 무림의 고수라면 무조건 상처가 빨리 낮는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진산월은 그것이 자신의 몸속에 잠복되어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의 효과일지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운공을 할 때마다 그 기운이 조금씩 자신의 진기에 흡수되고 있으며, 그때마다 몸의 감각이 미세하게나마 예민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산월은 음공을 익히면 감각이 예민해지고 상처가 빨리 낫는 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의식을 잃었을 때 주입되었던 그 정체 모를 기운은 정녕 음공의 일종인 것일까?

그 기운이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자신의 진기 속으로 흡수되는 것을 진산월은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달리 그 기운만을 밖으로 배출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몸의 한쪽에 몰아 봉쇄할 수도 없었다. 운동할 때마다 조금씩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기운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자신에게 그 기운을 주입한 자가 만리무영개 나자행이라면 그 기운은 어쩌면 개방의 비전 신공이라는 옥류대하신공(玉流大河神功)일지 모른다. 옥류대하신공은 정파의 무공 중에서 상당히 음기의 성질이 강한 신공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남해청조각의 전인인 이동심의 기운이라면 남해청조각비전의 음공일 것이다. 그 기운이 성락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같은 효과를 보인다면, 남해청조각의 내공이 종남파의 내공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성질의 내공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섞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 문파의 내공이란 것은 겉으로 보이는 외양적인 성격과 달리 그 본질은 서로 일맥상통한다. 양강지공(陽剛之功)이든 음유지공(陰柔之功)이든 같은 문파의 내공이라면 서로 간에 배척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융합도 가능했다. 같은 문파의 내공을 여러 개 익히는 것이 가능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반대로 타 파의 내공을 함부로 익힐 수 없는 것도 그럴 경우에는 지금까지 익혔던 자신의 내공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진산월의 체내에 숨어 있는 그 정체 모를 기운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배척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진산월의 본신 내공에 조금씩 흡수되고 있으니 실로 기이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것은 적어도 그 기운의 연원(淵源)이 종남파의 내공과 같은 곳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기운이 개방의 것이든 남해청조각의 것이든 진산월로서는 실로 고민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산월이 그런 심중의 복잡한 생각으로 잠시 상념에 빠져 있을때 동중산이 조심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데 혁리공의 초청을 수락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진산월은 생각에서 벗어나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혁리공의 초청을 받아들인 것이 뜻밖이냐?”

“이런 민감한 시기에 아직 본 파에 호의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불분명한 자의 초청을 받는다는 것이 왠지 꺼림칙한 생각이 드는군요.”

“남궁세가와 친분이 있고 참관인까지 했던 자가 본 파에 호의를 가지고 있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그런 줄 아시면서도 그의 초청을 선뜻 승낙하셔서 조금 의아했습니다. 더구나 그 장소가 섬 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립니다.”

섬은 지극히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호수 속의 섬이라 해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자의 초청으로 그런 공간에 제 발로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낙일방을 유인해 간 자가 어떤 식으로든 다음 행동을 할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이틀간 많은 문파가 접촉을 해 왔지만 뚜렷하게 의심을 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지. 그런데 비로소 혐의를 둘 만한 자가 초청을 해 왔으니 어찌 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장문인께서는 그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에게서 나에 대한 희미한 적의(敵意)같은 것이 느껴졌다. 더구나 그는 본 파의 이동 행로를 예측하고 미리 피할 수 없는 곳으로 장소를 지정해 본 파를 초대했으니,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동중산은 진산월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반대를 표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그도 혁리공이란 자에 대한 인상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내심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한 그 야릇한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혁리공이 낙 사숙을 유인한 것이라면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혁리가와 본 파는 아무런 은원 관계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혁리공의 초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동중산은 진산월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진산월 또한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 만났던 인물들 중 혁리공이 가장 의심스러운데, 그가 마침 자신을 초청했으니 그것이 유인책이든 그렇지 않든 일단 찾아가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초청을 승낙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나중에 사인기의 말을 듣고는 조금 더 많은 가능성을 두게 되었다.”

동중산의 외눈이 번쩍 빛났다.

“사 소협이 낙 사숙에게 친분을 느끼고 찾아온 것은 별로 이상할 게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 문제는 그가 백리장손과 동행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다른 문파를 방문해야 하는 제자가 굳이 문파의 어른을 따라올 필요가 있겠느냐?”

“장문인의 말씀을 듣고 보니 확실히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 그렇다면 장문인께서는 사 소협이 낙 사숙의 행방을 물은 것이 백리장손의 지시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인기 본인은 순수한 마음일지 몰라도, 그를 대동한 자는 전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 그리고 그를 대동한 자는 백리장손은 아닐 것이다.”

동중산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백리장손이었다면 굳이 사인기를 대동하여 의심을 살 필요 없이 나중에 사인기에게서 보고를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혁리공이라면 사인기에게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을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그를 동행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혁리공이 낙 사숙과 사인기가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혁리공이 일방과 본 파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자라면 충분히 사전에 조사를 했을 테니, 인적 관계도 넓지 않은 일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마침 일방의 행방을 궁금해 하고 있던 사인기를 슬쩍 부추겨 동행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동중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호의 일이란 정말 어렵군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일이 일단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니 한도 끝도 없이 의심이 깊어지니 말입니다.”

“일방이 그런 일을 당하고 본 파에 적의를 가진 누군가가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어떤 일이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소한 만남도,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말이지.”

그때 비로소 동중산은 진산월이 지금까지 종남파를 찾아온 그많은 고수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계속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음을 깨달았다. 혹시라도 그들 중 종남파에 적의를 가지고 낙일방을 유인한 자가 있을까 봐 노심초사했을 진산월을 생각하자 동중산은 단지 사람을 안내하는 일만으로도 벅차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장문인의 노고가 너무 크십니다. 제가 좀 더 주위의 일에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네 할 일을 잘해 내고 있다. 어쨌든 이것으로 한 가지 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구나.”

동중산은 마지막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진산월은 깊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혁리공이 사인기를 대동하면서까지 일방의 행방을 알려고 했던 것은 그의 행적을 놓쳐 버렸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적어도 일방이 참변을 당하거나 그들의 수중에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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