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28권 열한기공(熱寒奇功)편 : 5화
제 286장 염홍한수(染紅漢水)
화창한 초여름 날, 한수를 운행하던 배에서 갑자기 요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뒤이어 사람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불이다!”
과연 배 한복판이 시뻘건 화염에 휩싸여 버렸다. 몇몇 사람은 불길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몇 사람은 몸에 불이 붙어 강물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삽시간에 벌어진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한적했던 강 위는 순식간에 불과 연기, 사람들이 내지르는 고함과 비명으로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강물 위를 빠르게 질주하는 일단의 배들이 있었다. 배들은 현장에서 멀지 않은 갈대밭 사이에 숨어 있었는데,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선체가 유선형으로 길쭉해서 무척 빨라 보였다.
십여 명의 장한들이 탄 수십 척의 쾌속선이 무서운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불이 난 배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일대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그 장한들이 하나같이 날카로운 병장기를 든 험악한 인상의 사나이들이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많은 쾌속선들 중에서도 유난히 빠른 배 한 척이 눈에 띄었다. 그 배의 앞머리에는 붉은 두건을 쓴 큰 키의 홍의인이 우뚝 서 있는데, 그의 오른손에는 보기만 해도 섬뜩한 낭아도(狼牙刀)가 쥐어져 있었다.
홍의인은 자신의 눈앞에 빠르게 가까워지는 불타는 배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흉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드디어 종남파 놈들의 피 맛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구나! 형제들의 혈채(血債)를 몇 곱절로 받아내고야 말 것이다.”
살기등등한 얼굴로 연신 무서운 웃음을 짓고 있는 홍의인은 장강십팔채 중 혈호채(血狐寨)의 채주인 혈풍참혼도(血風斬魂刀) 만진홍(萬眞紅)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계마구에서 진산월의 손에 비명횡사한 색명창 탕월의 생사지우(生死之友)로, 심지어는 옷도 두 사람이 똑같이 붉은 색으로 맞춰 입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탕월의 죽음을 전해 들은 만진홍은 자신의 손으로 친우의 복수를 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마침내 그 순간이 코앞으로 닥쳐온 것이다. 그의 두 눈은 치밀어 오르는 흥분과 살기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낭아도를 움켜쥔 손에는 새파란 핏줄기가 잔뜩 돋아나 있었다.
만진홍 외에도 쾌속선의 여기저기에는 십팔채주 중의 생존자들이 다수 자리하고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계마구의 혈전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채주들이 대부분 몰려온 것이 분명했다.
불에 타고 있는 배로 접근하던 만진홍의 얼굴에 문득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배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것 같았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배의 한쪽에만 불길이 나 있고 그것도 조금씩 잦아드는 형세였다. 게다가 승객의 상당수가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혼란이 극에 달해 있을 줄 알았는데, 선상에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설마 이들이 미리 알고 오히려 우리를 유인했단 말인가?’
만진홍은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으나 이내 이를 악다물었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보았자 오늘 너희들이 물고기밥 신세가 되는 걸 벗어날 길은 없다.’
오늘 이곳에 투입된 인원은 장강십팔채의 모든 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십팔채주들 중 부득이한 사정으로 빠진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참여했을 뿐 아니라, 총채주인 방산동이 아끼고 있던 세 개의 무력단체를 모두 동원하여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인 상태였다. 종남파 고수들의 숫자가 채 열 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너무 지나친 전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장소 또한 자신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상(水上)이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종남파 고수들이 살아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은 수중으로 접근하는 온서당의 수서(水鼠)들이 종남파 고수들이 타고 있는 배의 밑바닥에 거의 도달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배에서 이 장쯤 떨어진 물 위에 몇 개의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수달피를 뒤집어쓴 것으로 보아 온서당의 수서들 중 일부가 분명해 보였다.
배 전체가 화마에 휩싸여 타버리면 제일 좋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배 밑에 구멍 몇 개만 뚫어놓아도 배에 타고 있는 자들은 강물로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일지라도 장강십팔채를 상대로 물속에서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종남파 고수들은 오늘 모조리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고 말 것이다.
만진홍은 이런 생각을 하며 쾌속선이 배에 도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물 위로 얼굴을 내민 수서들의 모습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줄 알았건만 그들 대부분이 입으로 피를 토하며 다시 물속으로 잠겨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몸이 사라진 물속에서 붉은 핏물이 번져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물속에도 고수를 숨겨 두었구나!”
그제야 사정을 짐작한 만진홍이 이를 부드득 갈아붙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몸에 불이 붙은 채로 다급하게 강으로 뛰어들던 자들이 왠지 의심스러웠다. 강에 사람이 빠졌는데도 배에서 그들을 구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것이 그런 의심을 더욱 확실하게 했다.
때마침 배에 거의 도착하자 만진홍은 제일 먼저 배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경경호가 터졌음에도 배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배의 한쪽 갑판에 번들거리는 재질로 만들어진 천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불은 그 천 위에서만 타오른 채 그 밖으로는 전혀 퍼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쪽에 부서진 경경호의 잔해가 있는 것을 보니 그 천 위에서 경경호를 터뜨려 불길을 제한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 천은 피화(避火)의 기능을 지닌 기물임이 분명해 보였다.
만진홍은 상황이 당초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것에 다소 불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자신의 뒤를 이어 장강십팔채의 고수들이 속속 배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이내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았다.
사람들로 북적거릴 줄 알았던 선상은 텅 비어 있었고, 중앙에 두 사람만이 나란히 선 채 배 위로 올라오는 장강십팔채의 고수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는 자들이 스무 명은 족히 될 텐데…….’
만진홍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이내 다른 자들이 선실에 들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선실 앞에 칠팔 명의 인물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공이 약하거나 무림인이 아닌 자들은 저 안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군. 제법 머리를 굴린 모양이나, 어차피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만진홍의 시선이 중앙에 서 있는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젊은 청년과 중년인이었는데, 하나같이 신태가 비범해서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실력을 지닌 고수들임을 알 수 있었다.
만진홍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준수한 청년의 얼굴과 탈속한 듯한 중년인의 모습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옥면신권과 무영검군이로구나. 이들만으로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그는 슬쩍 자신을 따라 배 위로 올라온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배 위는 이미 장강십팔채의 고수들로 뒤덮인 상태였다. 같은 십팔채의 채주들이 무려 여덟 명이나 참여했고, 황랑대와 흑수단의 수뇌들도 다수 끼어 있었다. 총채주인 방산동과 그의 최측근 세력인 혈염조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수들이 살광을 번뜩인 채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만진홍은 주저하지 않고 살기가 가득 담긴 고함을 내질렀다.
“모두 쓸어버려라!”
그 말을 신호탄으로 한 듯 장강십팔채의 고수들이 맹렬한 기세로 중앙에 있는 옥면신권과 무영검군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선실 쪽으로 몸을 날려서 배 전체가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해 버렸다.
만진홍이 고수들만의 합공을 배제한 채 처음부터 인해전술로 나선 것은 이러한 방식이 수적들의 전통적인 공격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일대일로는 절정고수가 다수 포진한 종남파 고수들을 당해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상황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선상난전(船上亂戰)으로 이끌어 가려는 것이다.
그의 계획은 어느 정도 적중해서 중앙에서 장강십팔채의 고수들을 도맡아 처리하려던 낙일방과 성락중은 자신들을 향해 노도처럼 덤벼드는 수적들에 휘말려 선실 방향으로 몰려가는 수적들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선실 안에는 만진홍의 짐작대로 무공을 전혀 모르는 두 명의 사공과 노부부, 그리고 아직 부상이 심해 운신에 제약이 있는 곽자령과 임지홍, 제갈도 등이 유소응, 손풍 등 무공이 약한 종남파 제자들과 함께 모여 있었다. 선실 주위에는 제갈도를 호위하기 위해 파견된 제갈세가의 수신호위들인 명품사절(名品四絶)이 사위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고, 좁은 선실의 입구는 동중산이 이정문과 육난음, 담옥교와 함께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다.
수공에 관한 한 일행 중 가장 뛰어난 전흠은 이미 이정문의 수하 두 명과 함께 물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이정문이 미리 준비한 방화포 위에 경경호를 터뜨려 적들을 유인한 후 전흠과 이정문의 수하들은 불에 탄 것처럼 위장하여 물속으로 뛰어들고, 낙일방과 성락중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선실로 모여드는 이러한 방위 체계는 이정문이 계획한 것으로,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과 부상자들, 그리고 무공이 약한 제자들이 다수 섞여 있는 현재의 인원을 고려해 볼 때 가장 합당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이런 사태를 예측한 것인지 이정문과 동행한 두 명의 고수들은 모두 수공에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과 전흠이 수중에서 활약한 탓인지 아직까지 배의 밑바닥이 공격당하는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동중산은 이정문이 장강십팔채의 습격에 대비해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준비를 해 온 것에 내심 안도하기도 했으나, 그들이 철저한 물량공세로 나오자 걱정스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선실 안으로 수적들이 난입하기라도 한다면 상당한 인명피해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낙일방과 성락중의 주위를 워낙 많은 수적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그들의 안위도 점차 우려되었다. 아무리 그들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한 손으로는 열 손을 당할 수 없다는 강호의 오랜 격언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동중산은 선실로 몰려드는 수적들을 상대하고 있는 제갈세가의 명품사절을 다소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행히 명품사절은 가주를 지키는 수신위들답게 개개인의 실력이 하나같이 뛰어난 고수들이어서 단시간 내에는 누구도 그들의 방어망을 쉽게 뚫고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동중산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정문을 돌아보았다.
“저자들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달려들 줄은 몰랐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이정문은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내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한 대로요. 이건 아주 전형적인 수적들의 공격 형태요.”
“나도 몇 차례 수상전을 겪은 적은 있지만, 이런 식의 저돌적인 공격을 보는 건 처음일세. 이자들은 정말 자신들이 모두 쓰러질 때까지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셈인가?”
“이렇게 공격하다 사태가 불리해진다 싶으면 허무할 정도로 재빨리 물러나는 게 수적들의 습성이오.”
“어디로 말인가?”
“물속이든 자신들이 타고 온 쾌속선이든 그들이 몸을 빼낼 방법은 많이 있소. 다만 공격당하는 쪽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오.”
너무도 태연자약한 그의 모습에 동중산은 한편으로는 살짝 약이 오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 그가 자신보다 강호 경험이 풍부한 것 같아 감탄하는 마음도 들었다.
“수적들에 대해 잘 아는 것 같군.”
“예전에 호기심으로 수전(水戰)에 대해 연구해 본 적이 있었소. 덕분에 수적들의 행태나 그들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소.”
“산수재가 강호의 모든 학문에 정통하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군. 수적들의 사고방식은 일반인들과는 다른가?”
“많이 다르오. 여느 무림인들과도 다르고 심지어는 산적들과도 판이하오.”
동중산은 사방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위급한 상황임에도 호기심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다른가?”
“도적들은 근본적으로 약자요. 뭉쳐 있지 않으면 절대로 강호의 고수들이나 문파를 당해낼 수가 없소. 산적들이 녹림맹으로 뭉치고 수적들이 장강십팔채로 몰려드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흩어지는 순간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소.”
“그들이 약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신기한 일이군.”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주위에서 자신들을 약자로 보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오. 그래서 그들의 손속은 거칠고 잔인해질 수밖에 없소.”
“약자로 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잔인하게 행동한다는 말이로군.”
“그렇소.”
“수적들이 산적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산적들은 일단 패색이 짙어도 웬만하면 항복을 하거나 도망치지 않소. 도망쳐 봤자 상대가 끈질기게 따라오면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반면에 수적들은 불리하다 싶으면 일단 몸을 피해 버리오. 수상에서는 누구도 자신들을 쫓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거요.”
“하지만 수상에서 포위된다면 더욱 도망칠 곳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항상 퇴로가 준비된 곳에서만 공격을 하오. 지금처럼 말이오.”
이정문의 말을 듣고 보니 이곳은 한수의 한복판이어서 사방이 온통 물이었다. 다시 말해서 장강십팔채의 무리들이 배에서 도망친다면 종남파로서는 그저 멍하니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동중산은 이미 수십 명이나 피바다 속에 쓰러져 있으면서도 악착같이 낙일방과 성락중을 공격하는 수적들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런 점을 느낄 수 없군. 저들은 마치 이곳에서 몽땅 죽기로 각오한 자들처럼 보이네.”
“그건 그만큼 그들이 절박하기 때문일 거요. 여기서 물러나면 비록 목숨은 건지겠지만, 더 이상 아무도 자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위험을 각오하는 거요. 하지만 두 가지 상황만 벌어지면 그들은 언제 달려들었냐는 듯 더욱 빠르게 꼬리를 말고 물러날 거요.”
“두 가지 상황이라니?”
“첫째는 자신들을 인솔하는 채주들이 대부분 죽었을 때요. 우두머리가 없어지면 그들은 단순한 수적에 불과할 뿐이오.”
동중산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하군. 두 번째 상황은 어떤 것인가?”
이정문의 두 눈이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 빛났다.
“방산동이 쓰러졌을 때요.”
“방산동이?”
“방산동은 장강십팔채의 정신적인 지주일 뿐 아니라 공포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오. 그가 변을 당하면 장강십팔채의 무리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 거요.”
동중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방산동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담옥교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방산동은 아마 수중에 있을 거예요. 그는 수공의 최고수라서 싸움터에서는 좀처럼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요.”
그때 한쪽에 말없이 서 있던 육난음이 갑자기 장난처럼 가볍게 오른손을 내저었다.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명품사절의 한 사람을 무섭게 공격하던 흑수단의 고수 하나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그의 이마에는 어른의 손바닥만 한 길이의 비침 하나가 깊숙이 꽂혀 있었다.
“아무래도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힘에 부치는 것 같군. 우리도 나서야겠네.”
동중산의 말마따나 선실의 사위를 막아서고 있던 명품사절은 거듭된 장강십팔채 고수들의 공격에 조금씩 몰리고 있었다. 그들을 주로 공격하는 인물들은 장강십팔채의 무력단체인 황랑대와 흑수단의 고수들이었는데, 벌써 칠팔 명 가까이 쓰러졌음에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맹렬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명품사절은 가주인 제갈도를 호위하는 인물들답게 제갈세가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들이었으나, 워낙 장강십팔채 고수들의 공세가 격렬해서 그들을 막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동중산이 막 명품사절이 있는 곳으로 몸을 움직이려 할 때, 굳게 닫혀 있던 선실 문이 열리며 손풍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손 사제, 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니면 사고께서 전하시는 말씀이라도?”
동중산이 혹시나 하여 황급히 묻자 손풍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퉁퉁 부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제길. 갑갑해서 도저히 더 못 있겠소. 동 사형, 딱 한 놈만 상대하겠으니 나도 좀 끼워주시오.”
“지금 상황이 어느 때인데…….”
“어느 때긴. 수적 놈들이 감히 본 파를 습격해 오는 때지. 이럴 때 숨어 있으려고 그 고생을 해서 무공을 배운 줄 아시오?”
동중산이 무어라고 하기도 전에 손풍이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다시 사정하는 투로 말했다.
“동 사형, 더도 말고 딱 한 놈만 패겠다니까. 그때 그렇게 두들겨 맞고 한 대도 못 때려서 화병 때문에 아직까지 밤에 잠도 못 자고 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소? 딱 한 놈만 상대해서 꽉 막힌 속을 풀 테니, 동 사형이 내 사정 좀 봐주시오. 이러다 속 터져 죽겠소.”
손풍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오히려 사정을 하자 동중산도 마냥 그를 꾸짖을 수는 없었다. 손풍의 말마따나 그동안 손풍이 얼마나 이를 악물며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는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손풍의 모습이 딱해 보였던지 이정문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그렇게 합시다. 당당한 종남파의 제자이니 자기 몸 하나 지키지 못하겠소?”
동중산은 어이가 없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손풍이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있었으면 애초부터 동중산이 그를 선실에 처박아놓고 나오지 못하게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을 이정문이 이리 말하는 건 아직도 손풍을 조롱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동중산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 손풍은 이정문의 말에 용기백배한 듯이 오히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선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맞소, 맞아. 이 친구가 생긴 건 야박해 보여도 사람 볼 줄 아는군.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한 몸은 지킬 자신이 있소. 무공을 몰랐던 시절에도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우는 소리 한 번 내지 않던 사람이 바로 나요. 하물며 장괘장권구식까지 모두 익혔는데 한낱 수적 따위에게 당할 것 같소?”
손풍이 아예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큰 소리를 치자 동중산도 차마 더 이상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알았네. 대신 딱 한 명일세. 내가 골라주는 자만 상대해야 하네.”
“내가 직접 고르면 안 되겠소?”
손풍이 눈을 번뜩이며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다 한 사람을 가리켰다.
“저자의 상판을 보니 삼대(三代)는 재수가 없어 보이는구려. 게다가 몸도 비리비리하고 눈빛도 게슴츠레한 게 딱 패기 좋아 보이는 인상이오. 저자로 하겠소.”
이어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그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동중산은 몰랐지만 손풍이 달려든 자는 계마구에서 손풍을 사정없이 두들겨 팬 인물과 비슷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흑수단에서 단 세 명뿐인 부단주(副團主)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채석도(蔡晳道)는 황당한 일을 당하고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이번 습격은 장강십팔채로서는 총력을 기울인 작전이었다. 워낙 압도적인 숫자가 투입되었기에 그냥 덤벼도 되었지만 혹시나 하는 우려에 몇 가지의 계책을 동원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온서당의 수서들을 투입해 배에 구멍을 뚫는 일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장강십팔채의 목적이 단순히 종남파 고수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한 가지 물건을 입수하는 것이기에 배를 침몰시키는 일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마지막 방법이었다.
사공이 없어지고 배에 난 불로 그들이 혼란에 빠지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종남파 고수들을 모두 제거하고 물건을 가져오면 끝나는 일이었다. 마침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 신검무적도 없는 상황인지라 채석도를 비롯한 장강십팔채의 무리들은 추호도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경경호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 줄 알았던 종남파 고수들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멀쩡한 것을 보고는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머리 한구석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 예감은 어김없이 맞아떨어져서 옥면신권과 무영검군을 공격하던 십팔채주와 그들의 수하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그나마 선실로 향했던 황랑대와 흑수단은 그들보다 피해가 적었으나, 그들을 막아선 네 명의 고수들의 실력이 예상보다 뛰어나서 좀처럼 그들을 뚫고 선실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열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내고 나서야 겨우 그들을 수세에 몰 수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거친 숨소리와 함께 웬 천둥벌거숭이 같은 젊은 놈 하나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이놈! 넌 오늘 내 차지다!”
뜻 모를 소리를 외치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는 젊은 놈의 자세는 엉성하기 짝이 없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무공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임을 알 수 있었다.
‘이놈이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장강십팔채의 무력집단인 흑수단의 부단주일 뿐 아니라 단주인 흑갈마객(黑蝎魔客) 염오(閻烏)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고수중 하나인 채석도로서는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무심결에 두 번 정도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공격을 피했더니 그 젊은 놈은 더욱 기세등등하여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이었다.
“넌 오늘 열다섯 대만 맞아라. 아니, 이자까지 열여덟 대다. 우선 한 대!”
젊은 놈의 주먹이 호선을 그리며 옆구리로 날아왔다. 주먹에 실린 힘은 제법 있어 보였으나, 속도가 느리고 변화도 거의 없는 한심한 공격이었다. 채석도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못 느끼고 몸을 피하기는커녕 앞으로 다가서며 젊은 놈의 텅 비어 있는 겨드랑이를 후려쳤다.
‘어디서 이런 병신 같은 놈이……. 설마 이런 놈도 종남파의 제자란 말인가?’
젊은 놈의 공격이 채 닿기도 전에 채석도의 주먹이 그의 겨드랑이를 그대로 가격했다.
팍!
“크읍!”
젊은 놈의 입에서 괴상한 신음이 흘러나오더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젊은 놈은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된 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비겁하게 반격을 하다니……. 네놈은 이자에 이자까지 스무 대는 맞을 것이다!”
채석대는 미친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젊은 놈을 보고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의 주먹에는 제법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는데, 급소인 겨드랑이를 맞고도 덤벼드는 모습이 가소로우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루살이 같은 놈이지만 심심하지는 않겠군.”
채석대는 자신의 코를 향해 날아드는 주먹을 살짝 어깻짓으로 피하며 상대의 코를 가격했다. 젊은 놈의 코에서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며 삽시간에 퉁퉁 부어올랐다.
두 번이나 연달아 주먹에 맞은 젊은 놈이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놈도 고수냐? 어째 이놈도 고수고 저놈도 고수고, 내가 상대하는 놈들은 죄다 고수란 말이냐? 좋다, 이제 제대로 해보자.”
젊은 놈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잡더니 앞으로 성큼 크게 다가서며 그의 아랫배를 손등으로 가격해 왔다. 그 기세와 속도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상당히 날카롭고 예리했다.
“이번에는 좀 그럴듯하군.”
채석대는 냉소를 터뜨리며 옆으로 반걸음 비켜서며 자신의 아랫배를 노리고 휘둘러진 주먹을 피한 다음 다시 옆구리를 가격하려 했다. 젊은 놈은 세 번씩이나 당할 수 없었는지 내밀었던 손을 황급히 거두어들이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덕분에 채석대의 주먹을 피할 수 있었으나, 반면에 앞가슴이 훤하게 비어 버렸다.
“이놈! 장난도 여기까지다!”
채석대는 살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후려갈기려 했다. 이번에 그는 아예 끝장을 내려는지 주먹에 담긴 힘이 지금까지와는 판이했다.
한데 그때 맥없이 가슴을 가격당할 줄 알았던 젊은 놈이 왼손바닥으로 그의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엉성한 동작 같아도 워낙 시기가 절묘하여 채석대의 주먹은 허공으로 튕겨 올라가고 말았다.
“엇?”
채석대가 뜻밖의 상황에 움찔하는 순간, 젊은 놈은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다시피 다가서며 오른 주먹을 세차게 내뻗었다. 그것은 채석대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채석대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콧등이 정면으로 깨지는 상황은 면했으나 뺨이 주먹에 스쳐 살짝 부어올랐다.
“아깝다!”
젊은 놈은 탄성을 터뜨리며 다시 두 주먹을 풍차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비루먹은 말같이 생긴 놈이!”
채석대는 눈에 두지도 않았던 풋내기에게 하마터면 코를 맞을 뻔했다는 것을 알고는 이내 두 눈에 살기를 머금으며 이를 악다물었다. 조금 전에 젊은 놈이 코가 아닌 가슴을 노렸다면 피하지 못하고 격중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젊은 놈은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주고 싶었는지 굳이 코를 노리고 주먹을 날렸기에 간신히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 보아도 눈앞의 이 가소로운 젊은 놈이 남과 제대로 싸운 적이 거의 없는 생초보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고수와 싸우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너무도 어이없고 한심한 일이었다.
젊은 놈은 물론 손풍이었다. 손풍이 조금 전 사용한 수법은 종남산에서 유소응이 단리상을 이길 때 사용했던 연환식이었다. 당시의 장면이 워낙 인상적이었는지라 뇌리에 잘 새겨두었던 손풍은 기회를 노려 회심의 수법으로 그 연환식을 그대로 사용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쓸데없이 상대의 콧등을 박살내려는 욕심 때문에 아깝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일단 기선을 제압했다는 생각에 용기백배하여 다시 천전만권의 초식으로 용맹하게 덤벼들었다.
하나 방심 상태에서 한 방 맞을 뻔한 후로 경각심을 갖게 된 채석대가 그의 허술한 공격에 당할 리가 없었다. 채석대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손바닥을 활짝 편 채 풍차처럼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손풍의 공세 속으로 곧장 찔러 넣었다. 그러자 제법 삼엄한 기세를 펼쳤던 손풍의 공세가 맥없이 사라지며 채석대의 손이 손풍의 얼굴을 움켜잡아 왔다.
“앗?”
손풍은 깜짝 놀라 다급한 경호성을 내지르며 황급히 그 자리에 반쯤 주저앉았다. 채석대의 손이 그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에 손풍은 두 주먹을 머리 위로 세차게 치켜 올리며 벌떡 일어났다. 나름대로 장괘장권구식 중의 영양괘각을 응용한 괜찮은 동작이었다.
문제는 채석대가 그의 그런 반격을 훤히 짐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손풍의 몸이 채 완전히 일어나기도 전에 채석대의 발길질이 그의 가슴을 그대로 가격해 버렸다.
쾅!
“큭!”
벼락 치는 듯한 폭음과 함께 손풍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일 장 밖으로 나뒹굴었다.
한쪽에서 장강십팔채의 고수들을 상대하면서도 가끔씩 손풍 쪽을 살펴보던 동중산이 이 광경에 놀라 황급히 달려오려 했으나 상대하던 자들이 그를 순순히 놔두지 않았다.
손풍은 바닥을 몇 번 구르다 비실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동중산은 아직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있는 손풍을 향해 채석대가 맹렬하게 달려드는 광경을 보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수중의 장검을 그를 향해 집어 던졌다. 덕분에 채석대가 몸을 피하느라 손풍을 박살내는 것은 막을 수 있었으나, 손이 비어버린 동중산 자신은 곧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담옥교가 도를 휘두르며 전권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동중산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담옥교는 눈부신 칼솜씨로 동중산을 위협하던 흑수단의 고수 세 명을 쓰러뜨리고는 동중산을 지그시 응시했다.
“비천호리답지 않은 무모한 행동이었어요.”
동중산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담 소저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소.”
담옥교는 봉황을 연상시키는 눈으로 동중산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들 사형제는 정말 이상하군요. 그 성질 급한 손풍인가 하는 자도 그렇고, 동 대협도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어요.”
“어떻게 다르오?”
“비천호리라면 당연히 누구보다 냉정하고 계산적인 인물인 줄 알았어요. 강호에 퍼진 소문도 그랬었고.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동 대협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럼 어떤…….”
동중산은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손풍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손에는 언제 꺼내들었는지 비표 하나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손풍이 다시 위기에 처하는 것 같자 그쪽으로 빠르게 던져 버렸다.
덕분에 막 살벌한 기세로 손풍을 몰아치던 채석대의 손길이 늦춰져 버렸다.
손풍은 채석대의 발길질에 가슴을 강타당해서 입으로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용케도 쓰러지지 않고 계속 그에게 맞서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심각한 통증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을 텐데도 오히려 두 눈을 번뜩이며 주먹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 바람에 다시 얼굴과 옆구리를 한 대씩 가격 당했으나 추호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채석대의 공격은 상당히 매서워서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중 한 번만 맞아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담옥교는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에서도 주먹을 휘두르며 채석대에 맞서고 있는 손풍의 모습을 힐끔 쳐다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렇게 당하고도 버틸 수 있다니 볼수록 신기한 일이야. 그 과묵한 장문인도 그렇고, 애늙은이 같은 소년도 그렇고……. 확실히 종남파에는 평범한 자들이 없는 것 같구나.”
그녀는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낙일방과 성락중이 버티고 있는 갑판 중앙의 사정은 여전히 팽팽했으나, 십팔채주 중 두 명이 쓰러지자 조금씩 장강십팔채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실을 공격했던 황랑대와 흑수단의 고수들 또한 상당수의 희생을 내면서도 방어를 뚫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특히 육난음의 손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명씩 목숨을 잃자 그녀가 손을 휘두르려는 기색만 보여도 모두들 움찔하여 물러서는 판국이었다.
‘장강십팔채에서 이 정도로 물러날 리는 없을 텐데…….’
그녀의 짐작을 확인시켜 주려는 듯이 그때 다시 십여 명의 인물들이 배 위로 뛰어올라왔다. 그들은 중앙에서 싸우고 있는 낙일방과 성락중은 본 체도 하지 않고 곧장 선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을 본 담옥교가 짤랑짤랑한 음성을 토해냈다.
“저들은 혈염조의 고수들이에요. 아마도 방산동이 온 모양이에요.”
혈염조는 확실히 장강십팔채의 다른 고수들과는 무공 수준이 달랐다. 이번에 나타난 혈염조의 숫자는 십여 명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들의 가세로 장내의 형세가 판이해져 버렸다.
당장 명품사절 중 몇 사람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졌다. 원래 그들은 거듭된 격전에 상당히 지쳐 있었는데, 혈염조의 고수 대여섯 명이 가세하자 손발이 어지러워지며 뒤로 정신없이 몰리고 있었다.
하나 다른 사람들의 상황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그들의 위기를 보고도 선뜻 도움의 손길을 보낼 수가 없었다. 동중산만 해도 혈염조 고수 두 명의 공격을 막느라 손풍을 지켜보는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육난음과 이정문은 혈염조 네 명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의 방위를 철저히 지켜서 수비에 치중하고 있었다. 육난음도 이정문의 안위를 신경 쓰느라 짧은 시간 내에 그들을 쓰러뜨리기는 힘들어 보였다.
담옥교에게도 두 명의 고수가 다가왔다. 담옥교는 일전에 혈염조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쯤은 능히 물리칠 자신이 있었으나, 막상 상대해 보니 예전에 만났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들임을 알고 당혹스러운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상대하는 자들은 혈염조의 일조장(一組長)인 탈명마도(奪命魔刀) 구형(具螢)과 이조장(二組長)인 혈수망혼(血手亡魂) 자인동(紫寅東)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혈염조의 총조장(總組長)인 추풍귀(追風鬼) 도잔(陶殘)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고수들이었기에 담옥교로서도 그들의 합공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선실을 막아서고 있던 여덟 사람이 모두 혈염조의 합공에 막혀 있는 사이 남아 있던 흑수단과 황랑대의 고수들이 우르르 선실 입구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 막 선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난입하려던 흑수단 고수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크악!”
그의 목에는 날카로운 톱날이 달린 원반 하나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팔비신살의 혈선륜이다!”
무작정 선실 안으로 밀고 들어가려던 장강십팔채의 무리들이 놀란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몸을 피했다. 대신 중앙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우뚝 서 있게 되었다.
그는 비쩍 마른 체구에 눈빛이 유난히 시퍼런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은 옆구리에 자신의 체형처럼 가느다란 장검을 차고 있었는데, 장검의 손잡이를 살짝 잡은 채 미동도 않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중년인이 선실을 향해 한 발 앞으로 나서자마자 다시 하나의 비륜이 선실 안에서 튀어나왔다. 중년인의 오른손이 슬쩍 움직이며 그의 허리춤에서 빛살 같은 검광이 폭사되었다. 그 검광은 비륜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땅!
귀청을 찢는 듯한 음향과 함께 비륜이 검에 튕겨 올라가더니 이내 다시 호선을 그리며 중년인의 가슴팍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비륜의 속도는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욱 빨라진 것 같았다. 하나 중년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검을 휘둘렀다.
터엉!
조금 전보다 다소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비륜이 삼 장 밖으로 날아가 배의 바닥에 틀어박혔다. 놀랍게도 일단 발출하면 반드시 피를 보고서야 멈춘다는 혈선륜이 단 두 번의 칼질에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팔비신살도 별 볼일 없군.”
중년인은 냉랭하게 중얼거리며 선실로 성큼 다가섰다.
선실의 중앙에는 한 사람이 사나운 눈으로 그를 노려본 채로 우뚝 서 있었다. 몸의 여기저기에 붕대를 맨 그 사람의 안색은 시체의 그것처럼 창백했고, 손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곽자령이었다.
사실 곽자령은 부상이 워낙 심해서 아직은 무공을 펼칠 수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남과 싸운다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하나 석실 안으로 장강십팔채의 무리들이 침입할 순간이 되자 다른 사람이 말릴 겨를도 없이 앞으로 나선 것이다. 무리하게 비륜을 발출하느라 손바닥이 찢어지고 그나마 조금씩 아물고 있던 상처가 터져서 극심한 고통이 치밀어 올랐으나, 곽자령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태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중년인은 선실 안을 한 차례 훑어보더니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대체 누가 있기에 이토록 악착같이 지키고 있나 했더니 부상자투성이에 무지렁이들뿐이로군.”
그의 칼날같이 날카로운 시선은 선실의 한쪽 구석에서 떨고 있는 두 명의 뱃사공과 노부부를 지나 병색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제갈도와 임지홍을 거쳐 제일 구석에 있는 어린 소년과 여인에게로 향했다.
중년인의 두 눈에서 섬뜩한 광망이 이글거리며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행히 헛걸음은 면하게 되었군.”
의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린 중년인이 갑자기 중앙에 서 있는 곽자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동작이 어찌나 빠르고 민첩했던지 중인들은 그저 무언가 희끗한 것이 번뜩이고 지나가는 것만 보았을 뿐이었다.
팟!
핏줄기가 뿜어지며 곽자령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자령!”
제갈도가 깜짝 놀라 그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그때 임지홍이 그의 몸을 급하게 잡아당겼다. 그 덕분에 제갈도는 자신의 콧등 앞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칼날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제갈도의 등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곽자령을 도와주려다 영문도 모르고 머리통이 잘려나갈 뻔했던 것이다. 제갈도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이놈이 대체 누구이기에 이토록 빠른 검법을 사용한단 말인가?’
중년인은 처음의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는 가만히 있는데 제갈도가 제풀에 놀라 물러난 줄 알았을 것이다.
제갈도는 당황하는 와중에도 곽자령이 걱정스러워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곽자령은 언제 뽑아들었는지 새로운 비륜을 들고 있었는데, 그 비륜이 반으로 잘라져 있고 옆구리에 일자로 칼자국이 나 있었다. 비륜 덕분에 가슴이 갈라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으나, 베어진 옆구리에서는 시뻘건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비륜은 그의 독문병기인 혈선륜이 아니라 제갈세가에서 임시로 마련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혈선륜 본연의 파괴적인 위력에 미치지 못했고, 곽자령 또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어서 팔비신살이라는 위명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낭패스런 꼴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 중년인의 눈부시도록 빠른 쾌검으로 보아 곽자령이 멀쩡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중년인이야말로 혈염조의 총조장이며 최고수인 추풍귀 도잔이었다. 도잔은 특히 신법과 검법에서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는 인물로, 순수한 무공 실력만 따지면 십팔채주 중에서도 상위에 꼽힐 만큼 뛰어난 고수였다.
그가 이끄는 혈염조는 방산동이 가장 믿는 수하들이었고, 도잔은 방산동의 오른팔과도 같은 존재였다. 오늘 습격한 인물들 중 자신들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가장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바로 그였다.
그래서 그는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방해자들을 해치우고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하나 그때 누군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선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센 폭풍과도 같았다.
콰앙!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이 터지며 선실 안으로 몰려들던 장강십팔채의 고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크아악!”
마치 합창을 내지르듯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분수를 뿌리며 쓰러지는 사람은 무려 다섯 명에 달했다. 그 바람에 새파랗게 질린 나머지 고수들이 황급히 몸을 피하느라 선실 안이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도잔은 중앙에 서 있는 곽자령을 향해 막 검을 날리려다 세찬 경기와 함께 무언가 강력한 기운이 자신에게 밀려오자 옆으로 슬쩍 몸을 돌리며 검을 빠르게 내찔렀다.
그의 검 끝이 가늘게 떨리더니 이내 검 자체가 흔들거렸다. 기운을 헤치고 나아가려던 검날이 막강한 압력 때문에 좀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도잔은 자신이 상대하는 인물이 준수하기 그지없는 백삼의 청년임을 알아보았다.
“옥면신권이구나!”
십팔채주들의 포위망에 갇혀 있는 줄 알았던 낙일방이 어느새 선실 안에 나타난 것이다.
도잔은 선실 밖의 상황이 어떤지 살펴보고 싶었으나 상황은 그런 여유를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우우웅……
그의 검에 가해지는 압력이 한층 더 강해지며 그의 검이 금시라도 손에서 벗어날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도잔은 전력을 다해 검을 쥔 오른손의 반대편 방향인 왼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경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반격을 꾀하려 했다.
하나 그 순간, 그의 전면에서 무섭게 압박해 오던 기운의 방향이 갑자기 반대로 바뀌어 버렸다. 그 바람에 도잔의 몸은 중심을 잃고 왼쪽으로 주르르 밀려나고 말았다. 도잔은 다급한 표정으로 사력을 다해 간신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콰앙!
그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공간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그의 신형이 충격을 받아 마구 흔들렸다. 그리고 그때 낙일방의 주먹이 뇌전 같은 속도로 날아와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가격해 버렸다.
“크악!”
도잔은 시커먼 피를 폭포수처럼 쏟으며 선실 벽까지 날아가 틀어박혔다.
혈염조의 제일 고수가 제대로 반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불과 몇 초 만에 쓰러져버린 것이다.
도잔으로서는 운이 나빴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신법이 빠르고 쾌검을 사용하는 도잔에게 좁은 선실은 절대적으로 열세인 장소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런 공격을 받아 상대의 강력한 경기에 휘말린 상태에서 싸움을 벌였으니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도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보기엔 간단한 것 같아도 낙일방이 도잔을 쓰러뜨린 방식은 정교하면서도 현오막심한 것이었다.
낙일방은 구반장법의 압산진해(壓山鎭海)로 도잔에게 압박을 가하고, 역발천망(力拔天網) 초식으로 그의 사위를 완전히 봉쇄한 다음 신전천벽(神轉天劈)으로 그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곧이어 낙뢰신권으로 그의 가슴을 박살내 버렸다. 그가 사용한 구반장법의 세 초식은 그야말로 거대한 벽처럼 상대를 가두는 상승의 수법으로, 일단 그 벽속에 갇히게 되면 어떠한 고수라도 몸의 중심을 완전히 잃고 제대로 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이것이 바로 삼수, 삼전과 함께 구반장법의 최고 절초라 할 수 있는 삼벽이었다.
낙일방이 나타나자마자 장강십팔채의 고수들을 짚단처럼 쓰러뜨리고 도잔마저 단숨에 격살하자 모든 사람들이 공포와 경이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황랑대와 흑수단의 남은 고수들은 황급히 선실을 빠져나가 버렸고, 곽자령과 제갈도 등은 감탄 어린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를 쳐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낙일방은 옆구리가 피범벅이 된 채 서 있는 곽자령을 향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직은 견딜 만하네. 그나저나 자네 정말 대단하군. 실로 놀라운 솜씨였네.”
“별말씀을.”
낙일방은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이내 유소응과 나란히 구석에 서 있는 임영옥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저께선 별일 없으십니까?”
임영옥은 물처럼 고요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야 여기 가만히 있기만 했는걸. 그보다 사제의 등에 부상이 있는 것 같던데, 사제야말로 괜찮은 거야?”
그 말에 제갈도가 화들짝 놀라 낙일방의 등을 바라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낙일방의 등에는 두 군데의 칼자국이 나 있고, 그 사이로 엷은 혈흔이 내보이고 있었다.
낙일방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급히 이곳으로 달려오느라 등 뒤에서 이검을 스쳐 맞았을 뿐입니다. 천단신공으로 보호했기에 큰 부상은 아닐 겁니다.”
제갈도가 상처를 살펴보고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피육이 베어진 것에 불과하군. 옷을 베인 상태를 보면 상당히 강력한 검격이었을 텐데 이 정도 상처에 불과한 걸 보면 자네의 호신강기가 정말 뛰어난 모양일세.”
낙일방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나저나 배 쪽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 물속으로 들어간 전 사형이 걱정이군요.”
“전 사제가 아직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니?”
“예. 그래서 걱정입니다. 방산동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그자도 수중에 있는 모양인데, 전 사형도 나타나지 않으니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드는군요.”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제 뒤에 계십시오.”
낙일방이 먼저 선실 밖으로 나갔다. 선실 밖의 상황은 확실히 낙일방의 말대로 종남파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성락중을 상대하는 십팔채주는 불과 네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홉 명에 달했던 십팔채주 중 다섯 명이나 이미 바닥에 쓰러져 버린 것이다. 그중 세 명은 낙일방의 손에 쓰러진 것이고, 다른 두 명은 선실로 향하는 낙일방의 등을 공격했다가 성락중의 검에 당한 것이었다.
육난음과 이정문을 막아섰던 네 명의 혈염조 고수들도 육난음의 비도에 모두 숨을 거두었고, 위기에 처해 있던 명품사절도 이정문과 육난음의 도움으로 오히려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동중산 또한 처음에는 병기가 없어 쩔쩔매다가 용케도 바닥에 널려있던 검 하나를 주워든 뒤로는 그럭저럭 두 명의 혈염조원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오직 담옥교만이 두 명의 혈염조 조장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너무 살벌해서 누구도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본 낙일방의 시선이 이내 한 곳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퉁퉁 부어오른 손풍이 한 명의 흑의인을 상대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것은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웠는데, 그렇게 많이 맞으면서도 계속 주먹을 날리며 반격하려고 애쓰는 손풍의 모습은 희극적이다 못해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낙일방은 명품사절을 공격하던 혈염조원 한 명이 다시 육난음의 비도에 쓰러지는 광경을 힐끗 보고는 천천히 손풍이 싸우는 곳으로 걸음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