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33권 회람연회편 :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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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33권 회람연회편 : 3화


제 328 장 심야밀담(1)

방을 나온 진산월은 잠시 어두운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휘잉!

때마침 불어오는 서늘한 밤바람이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으나,그는 전혀 시원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악자화가 내뱉은 말들이 계속 맴돌고 있었사 년 전에 악자화는 천양신공만이 임영옥을 치유할 수 있다고 역설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현음진기로 임영옥을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 것이다.

구궁보의 천양신공!

신목령의 현음진기!

두 무공 모두 당대 제일을 논할 수 있는 뛰어난 신공절학들이었다. 악자화가 이 무공들을 거론한것이 결코 즉흥적인 생각이나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구음향 때문에 격발된 태음신맥의 음기를 억누르기 위해 천양신공이 필요하다는 당시의 의견도 수긍할만했고,혈맥 전체에 퍼져 있는 음기를 제어하는 것이 현음진기로 가능할 것이라는 지금의 말도 납득이 가는 것이었다.

하나 또한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왜 하필이면 천양신공이고,현음진 기인가?

그녀의 몸을 고치기 위해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두 가지 신공이 차례로 필요하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일 뿐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선양으로 달려가 신목령주를 만난다고 한들 그가 선뜻 독문절학을 알려주려 하겠는가? 자신의 제자들에 게조차도 선별해서 전해줄 정도로 아끼고 아끼는 비학을 과연 순순히 건네주려 하겠는가?

그리고 천양신공으로도 감당하지 못한 태음신맥의 음기를 과연 현음진기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진산월은 각기 음과 양에서 강호무림에 독보적인 두 가지 신공이 임영옥과 연관되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몇 번이고 되짚어 보았다.

그러다 문득 종남파의 육합귀진신공중 실전된 두 가지 신공 또한 음과 양의 절학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랐구양신공과 칠음진기.

그리고 천양신공과 현음진기.

이름조차 비슷한 네 무공들에 대한 수많은 단상들이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진산월이 한동안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을 때,멀리서 동중산이 그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다가왔다.

“장문인. 여기 계셨군요.”

“무슨 일이냐?”

“이 공자가 찾아왔습니다.”

이 공자란 이정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정문의 방문은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기에 진산월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그가 기다리고 있는 접견실로 걸음을 옮겼다.

하루 사이에 이정문은 무척이나 헬쑥하게 변해 있었다. 가뜩이나 강퍅하고 볼품없었던 얼굴이 더욱 추레해져서 초췌해 보이기까지 했다. 늘그의 곁에 있던 육난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의 두 눈은 여느 때보다 더욱 반짝거리고 있었다.

진산월을 보자 이정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했다. 평상시의 광오하고 독선적인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이례적이라할 만큼 예의를 다하는 모습이었다.

“먼저 그녀를 구해준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오. 진 장문인은 그녀뿐아니라 나도 살린 것이나 마찬가지요.”

“육 소저는 어떻소?”

진산월이 그녀의 안부를 묻자 이정문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거처에 머물러 있소. 몸 상태는 괜찮은 편인데,아직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해서 바깥줄입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태요.”

적에게 사로잡혀 인질이 된 경험은 건장한 남자라도 견디기 힘든 가혹한 것이었다. 그러니 여인의 몸으로 그런 일을 당한 육난음이 아직 완전한 상태로 되돌아오지 못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육 소저는 강한 여인이니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요.”

“나도 그렇게 믿고 있소.”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정문의 시선이 탐색하듯 진산월의 얼굴을 한 차례 훌고 지나갔다.

몇 번인가 무어라고 입을 열려다 망설이는 그를 진산월은 묵묵히 지켜 보기만 했다.

이정문은 한 차례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형산파와의 비무에서 승리한것을 축하드리오. 내 평생 처음 보는 대단한 격전이었소.”

“고맙소.”

이정문은 사실 진산월에게 묻고 싶은 것이 적지 않았다. 형산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는 했으나 아직도 종남파가 가야 할 길은 결코 짧지 않다는 것이 이정문의 생각이었다.

당장 형산파와의 비무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종남파 고수들의 상태도 궁금했고,놀라운 솜씨로 비성흔을 쓰러뜨린 임영옥의 부상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고 싶었다.

하나 그 어떤 질문도 진산월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들뿐이어서 남의 시선이나 평판을 의식하지 않는 이정문조차도 선뜻 물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 진산월의 위상은 절대적인 것이었으며, 이정문이 그에게서 느끼는 압박감도 상당했다.

‘내가 누군가의 눈치를 이렇게까지 본 적이 있던가?’

이정문은 새삼 자신의 신세가 한심스러워져서 한숨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혁리공의 협박에 못 이겨 진산월을 찾아왔을 때부터 치명적인 약세를 보인 상태였으며, 그의 도움으로 육난음을 구한 뒤로는 마음의 부담까지 더해져 그를 대하는 것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정문은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묻기로 결심했다.

“이제 오랜 숙원을 해결하였는데,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오?”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으나,그만큼 핵심을 찌르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종남파의 현재 처지는 다소애매했다.

종남파의 가장 큰 목적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구대문파로의 복귀 였다.

하나 형산파와의 비무에서 승리했다고 당장 구대문파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무당산에는 구파의 수뇌부들이 거의 대부분 모여 있지만,형산파를 꺾었다고 그들을 채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형산파를 이긴 이상 어떤 식으로든 종남파의 입지가 커지고 결국에는 구대문파로 복귀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그러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일이 필요했다.

더구나 진산월은 무림맹의 선봉장이 되어 서장무림과 일전을 벌여야 할 처지였다. 그 싸움의 결과에 따라 종남파의 위상 또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진산월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 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약 당장이라도 종남파의 구대문파 복귀를 주장한다면 다시 한 차례 커다란 풍파가 일어날 것이며,그것은 서장무림과의 싸움을 앞에 둔 상황에서 모든 중원 무림인들이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진산월이 형산파를 이긴것에 만족하고 순순히 물러나리라고 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는 종남파의 구대문파 복귀를 위해서 무언가 행동을 취할 텐데,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강호 전체의 정세가 요동을 치게 될 것이고 서장무림과의 싸움이 순조롭게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그만큼 현재 진산월과 종남파가 강호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대한것이 되어 버렸다. 정말 어느 순간에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정문은 진산월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다.

진산월은 담담한 눈으로 이정문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선반의 반주로서 임무를 할 것이오.”

이정문의 눈에 기광이 번뜩거렸다.

그 말은 곧 무림맹의 일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이었다.

진산월이 종남파의 구대문파 복귀에 주력할 줄 알았던 이정문으로서는 다소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느낀 듯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종남파의 다른 분들은?”

“그들은 당연히 본산으로 돌아갈것이오.”

이정문은 그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듯 진산월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전혀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자 이정문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제길.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 라니까.’

그럼에도 이정문은 재차 확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종남파의 앞으로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정말 진 장문인을 제외한 종남파의 모든 고수들이 종남파로 복귀한 단 말이오?”

진산월은 담담한 눈으로 이정문을 응시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이곳에 남아서 무엇을 하겠소?”

진산월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치자 좀처럼 두려움을 모르는 이정문도 순간적으로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 시퍼렇게 선 거대한 칼날이 자신의 코앞으로 날아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본 파에게 달리 바라는 것이라도있소?”

심령을 조여 오는 듯한 진산월의 음성에 이정문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소? 다만 이번 비무로 종남파에도 부상을 입은 분들이 몇몇 계신 것 같은데,그분들의 치료가 끝난 후 움직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오.”

“본 파를 걱정해주는 것은 고마우나,본 파의 일은 본 파가 알아서 판단할 거요.”

진산월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이정문도 더 이상은 무어라고 물어보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선반의 반주로서 임무를 다하겠다는 진산월의 말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반의 임무라면 강호에 암약하는 서장무림의 세력들을 사전에 척결하는 것인데,진산월의 의중에 따라그것은 자칫 강호에 또 다른 혈풍을 불러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위지 맹주께서 나에게 진 장문인을 보좌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진 장문인의 의견은 어떻소?”

“위지 맹주에게 이 공자를 부탁한 사람은 나요. 당연히 당신은 앞으로 나와 함께 동행해야 하오.”

“진 장문인께서 나를 그토록 높이 보아주시니 정말 고마운 일이오. 하지만 나는 지금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이정문이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 했으나 진산월은 나직하면서도 분명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내일 오후에 선반의 모임을 열겠소. 그때 당신을 부반주로 임명하겠으니,나를 잘 도와주기 바라겠소.”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한 부채는 그것으로 갚는 것으로 합시다.”

진산월의 단호한 말에 이정문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식으로 마음의 빚을 정리할 기회를 준 진산월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일어났다. 평생 동안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이정문으로는 참으로 어색하고 익숙지 않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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