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 344화
제 338 장 음모지야(2)
습격을 처음으로 감지한 사람은 별실의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에 머무르고 있던 동중산이었다.
창문 밖을 어스름히 밝히던 등이 갑자기 꺼지자 침대에 누워 있던 동중산은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창문이 박살 나며 시커먼복면을 뒤집어쓴 두 인영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시퍼런 빛을 뿌리는 병장기가 쥐어져 있었다.
“웬 놈들이냐?”
동중산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침상위의 이불을 집어 던졌다.
그가 일부러 고함을 지른 것은 별실의 다른 사람들에게 습격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불을 던진 것도 아주 시의적절한 판단이었다. 그때 그는 막 잠자리에 들었던 터라 몸에 어떠한 병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당장 습격자들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검광이 번뜩이자 동중산이 내던진 이불은 곧 수십 개의 헝겊조가리로 잘려져 버렸지만,그 사이에 동중산은 침상 옆에 걸어놓은 장검과 암기 주머니를 움켜쥘 수 있었다.
파파팍!
암기 주머니에 그의 손이 들어갔다나온 순간 서너 개의 섬광이 벼락같은 기세로 습격자들을 향해 쏘아져갔다. 과연 비천호리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눈부신 암기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땅! 땅!
하나 동중산이 날린 암기들은 너무도 맥없이 습격자들의 검에 튕겨져나갔다.
습격자들이 가벼운 동작으로 암기들을 쳐내는 것을 본 동중산의 표정이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들 개개인이 상당한 실력을 지닌 검수들임을 알아본 것이다.
동중산은 이내 검을 뽑아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습격자들에 맞서갔다.
예측대로 습격자들의 공격은 가슴이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고 예리했다.
동중산은 종남파에 입문한 후 꾸준히 무공을 수련해왔다. 한때는 너무늦은 나이 때문에 무공의 발전이 더디어서 수련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으나,어린 사제들의 눈부신 진경을 보고 자극을 받아 틈만 나면 나름대로 열심히 무공을 연마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실력은 종남파에 입문하기 전보다 상당히 발전한 상태였고,특히 체계적인 검법 수련을 받은 덕에 검에 대한 이해도와 검법의 경지가 눈에 띄게 높아져 있었다.
아마 예전의 동중산이었다면 두 명의 습격자들의 손에 십 초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동중산이 우세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제법팽팽한 접전을 벌일 수 있었으나,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 싸우는 곳이 좁은 방안이었기에 습격자들이 합공을 하기에 마땅치 않은 탓에 당장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지만,이대로 간다면 결국 나중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들의 손에 쓰러질 게 뻔했다.
동중산은 쉴 새 없이 검을 놀려그들의 공세를 막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끊임없는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솜씨를 보니 뜨내기 낭인이나 사도(邪道)의 무리들 같지는 않다. 겉으로는 투박하고 거친 듯해도 군데군데 정교하고 현묘한 변화가 숨어 있으니 명문가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분명하다. 이들이 단순히 내가 아니라 본 파를 노리고 습격을 해온 것이라면 사저나 두 사제들이 걱정되는구나. 아무리 사숙조와 낙사숙의 무공이 뛰어나더라도 세 사람이나 짐이 되는 상황에서 마음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터인
데…….,
동중산은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가슴이 터질 듯했으나 지금 당장은 그들의 공격을 막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동중산이 우려한 대로 습격은 다른 곳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종남파 일행들이 머무른 별실에는 모두 다섯 개의 방이 있었는데,동중산과 낙일방,성락중이 하나씩 사용하고 유소응과 손풍이 하나를,그리고 임영옥이 제일 가운데 있는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괴한들이 습격을 해온 방은 공교롭게도 동중산과 낙일방,성락중이 머물러 있는 방들이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종남파의 제자들이 운이 좋은 것 같았으나, 괴한들의 습격이 그들에게만 집중된 것이 단순히 우연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습격을 당한 세 사람 중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낙일방이었다.
낙일방은 창문을 뚫고 습격자들이 들어오자마자 침상에서 일어나며 오른 주먹을 맹렬히 휘둘렀다. 그와 함께 무지막지한 경력이 구름처럼 일어나 삽시간에 방안을 휩쓸어 버렸다.
과아앙!
엄청난 굉음이 터지며 창문으로 들어왔던 복면인 몇이 벽을 뚫고 튕겨져 나갔다. 그 요란한 소리는 별실은 물론이고 객잔의 후원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다. 후원에 있는 별실의 수가 적지 않음에도 이토록 소란스러운 폭음에 아무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낙일방은 자신을 공격해 온 무리들의 수가 적지 않음을 보고 좁은 방안에서 그들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부서진 벽을 뚫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니 뒤쪽과 반대편에 위치한 방에서도 예리한 검풍과 칼 부딪히는 소리가 연신 홀러나오고 있었다.
‘성 사숙과 동 사질의 방에도 암습자들이 쳐들어온 모양이구나. 동 사질이 무사해야 할 텐데……
무공이 약한 동중산의 안위가 걱정되자 낙일방은 절로 마음이 다급해졌다.
더구나 행여 임영옥과 유소응,손풍의 방에도 습격이 이어진다면 낭패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그 두 방은 낙일방과 동중산의 방이 앞뒤로 에워싼 형국이어서 아직 암습자들이 그곳까지 침입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마음을 굳힌 낙일방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을 에워싼 일단의 무리들을 향해 불문곡직하고 달려들었다. 상대의 정체가 무엇이고 목적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고 한시라도 빨리 격퇴하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역력히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낙일방을 공격해 온 무리들은 여덟명이나 되었는데,그의 주위를 삼엄하게 둘러싼 채 움직이는 모습이 몹시 유연하면서도 나름의 절도가 있었다.
낙일방의 주먹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그들을 향해 몰아쳤다. 낙일방이 사용한 것은 낙뢰신권 중의 쌍봉관뢰로,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장기인 낙뢰신권을 펼친 것은 그만큼 현재의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두 가닥의 뇌전 같은 경기는 암습자들 중 누구도 해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벽에 막혀바닷속에 빠진 돌덩이처럼 맥없이 사라져 버렸다.
낙일방은 이내 그들이 특이한 합격진(合擊陣)을 펼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런 합격진쯤은 단숨에…….,놀라기는커녕 더욱 맹렬한 기세로 낙뢰신권들의 절초를 펼쳐 연거푸무시무시한 공세를 취했던 낙일방의 눈가에 어느 순간 한 줄기 당혹스런 빛이 떠올랐다. 합격진의 위력이 예상보다 뛰어나서 단 시일 내에 그것을 돌파하기 쉽지 않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여덟 명이라 단순히 팔괘진(A卦陣)의 변형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아무리 봐도 수비의 위력을 강화시킨 특수한 목적의 절진 같구나.’
낙일방의 낙뢰신권은 빠르고 강력할 뿐 아니라 특유의 기운이 담겨있어 어지간한 경기라도 종잇장처럼 뚫고 들어가는 놀라운 절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일방이 펼쳐낸낙뢰신권의 권경이 암습자들의 근처에만 가면 본연의 위력을 잃고 힘없이 사그라지고 있으니 낙일방이 당혹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낙일방은 뜻밖의 기연과 본인의 부단한 노력으로 짧은 시간 내에 절정고수로 성장했지만,아직 대적(對敵) 경험은 풍부한 편이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기묘한 위력을 지닌특이한 합격진을 상대한 적은 거의 없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낙일방은 몰랐지만 지금 그가 상대하는 절진은 대일인용 합격진으로는 강호무림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뛰어난 것이었다.
그의 경험이 좀 더 풍부했다면 아마그 특이한 묘용과 형태를 보고 합격진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낙일방이 여덟 명의 합격진에 막혀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성락중 또한 의외의 고전을 하고 있었다.
성락중의 상대는 단 한 사람이었다.
다른 암습자들처럼 얼굴에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그 인물은 한 자루창을 사용하고 있었는데,그 창이 어찌나 빠르고 날카롭게 움직이는지 뛰어난 검법을 지닌 성락중으로서도 전혀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성락중이 건성으로 상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락중 또한 한시라도 빨리 암습자들을 물리칠 생각에 처음부터 전력을 기울였음에도 복면인을 격퇴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따금씩 복면인의 창이 허공에서 괴이한 변화를 뿌리며 날아들 때마다 그 창을 막느라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무당산에서 형산파의 오결검객 중에서도 무섭기로 소문난 비응검 사공표를 격파한 이후 강호무림 전체에 엄청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성락중의 위상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악전고투였다.
복면인의 창에는 붉은 수실이 매어져 있었는데,그래서인지 창이 번뜩일 때마다 허공에 이리저리 혈선(ifll 線)이 수놓아지는 것 같았다.
성락중의 눈에는 자신의 주위가 온통 그 혈선으로 가득 차여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복면인의 창은 눈부시게 빠르고 정교했다.
가끔씩 검과 창이 부딪힐 때마다 주위를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고,두 사람의 몸이 한 차례씩 부르르 떨리기도 했다.
성락중은 상대의 내공이 자신에 못지않은 것을 알고 검법으로 그를 누르려 했으나,상대의 창법 또한 자신이 절대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붉은 수실이 동그랗게 말리며 창날이 교묘하게 뒤틀어져 날아오는 괴이한 초식의 변화는 섬뜩할 정도로 위력적이어서 막는 것만으로 급급할정도였다.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식의 창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는 데……
성락중은 상대의 정체가 궁금했으나,워낙 상황이 긴박하여 더 이상깊은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성락중의 검에서 홀러나오는 새하얀 검광과 복면인의 창이 뿌리는 붉은 혈선이 검은 하늘에 뒤섞이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으나,그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얼마나 살벌하고 흉험한지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별실은 사방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싸움의 여파로 곳곳이 파괴되고 무너져 그야말로 폐허를 연상케 했다.
희미한 월광이 장내를 비추는 가운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한 명은 우람한 체구에 흑포를 걸 친 복면인이었고,다른 한 명은 하늘하늘한 몸매에 얼굴에는 면사를 쓴 궁장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내의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일부러 몸을 숨기지 않았음에도 장내의 누구도 그들이 나타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의 행동은 은밀했고,완벽하게 기도를 숨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