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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385화


제 354 장 신공비사(神功秘史) (2)

육합귀진신공은 오랫동안 종남파 최고의 비전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무공이었다.

그 신공을 처음 완성한 사람은 매종도의 스승인 유백석이었으며, 신공을 익힌 사람 또한 그를 포함하여 종남오선 중의 세 사람뿐이었다.

익힌 사람이 단지 네 명에 불과할 뿐임에도 육합귀진신공은 종남파를 대표하는 최고의 신공절학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만큼 가히 하늘도 놀라고 땅도 꺼지게 할 만한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종남오선 이후 수많은 종남파의 고수들이 육합귀진신공을 되살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것도 그 길만이 기울어져 가는 종남파를 되살리는 첩경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육합귀진신공에 대한 전설은 종남파는 물론이고 당시 그 신공을 경험하거나 목격했던 강호의 여러 고수들에 의해서 알음알음 전해져 왔으며, 당금에 이르러서는 누구도 그 진정한 실체를 알지 못하는 신비와 전설의 무공이 되어 버렸다.

육합귀진신공은 종남파 최고의 신공 여섯 가지를 규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 신공들을 어떻게 운용하여 하나의 신공으로 완성하는지는 당시에도 극소수의 몇몇 사람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종남오선의 실종 이후에는 그 여섯 가지의 신공들 중 상당수가 실전되어 아예 익히려는 시도조차도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종남오선의 실질적인 최고고수인 매종도가 단지 하나의 신공만으로 육합귀진신공을 익히는 방법을 연구했었다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한편으로는 지극히 매종도다운 일이라는 생각과 그의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종남파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는 아쉬움, 그리고 그 신공이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 미완의 무공이라는 것에 대한 어떤 안도감 같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모용단죽은 진산월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양신공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태을검선은 구양신공의 위력을 최대한 증폭하여 다른 다섯 가지의 신공이 가진 힘에 견줄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익히는 사람의 체내에 있는 모든 양기까지 빨아들이는 부작용이 생겨난 것일세. 태을검선은 실제로 이 신공을 만들어 놓고 그 자신은 미처 익히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게 분명하네. 그래서 만에 하나 이 신공에 잘못된 점이 있을 것을 우려해 종남파에 전하라거나 종남파의 무공으로 인정한다는 말을 남기지 않았던 걸세. 지금 생각하면 확실히 그의 우려는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음이 증명된 셈이지.”

모용단죽은 태을검선이 천양신공의 단점을 미처 알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지만, 진산월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의구심이 떠올랐다.

과연 그럴까?

태을검선은 종남파 사상 최고의 고수였으며, 적지 않은 무림인들 사이에서 어쩌면 고금최강의 고수였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불가일세(不可一世)의 인물이었다. 그의 비범함은 종남파에 남아 있는 여러 가지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한 무학의 일대종사가 과연 자신이 만든 무공에 그런 커다란 단점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문파를 떠나 화산의 외진 곳에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연구를 거듭하던 그 결과물이 사실은 남자에게는 너무도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을 정말 알지 못했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거처에 그런 무공을 남겨놓은 매종도의 진정한 의도는……?

진산월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 모용단죽의 다음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사부께서는 오랜 시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천양신공의 토대가 되는 구양신공을 복원하는 데 성공하셨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분의 천양신공의 화후가 절정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석동이 구양신공을 복원했다는 모용단죽의 말은 진산월의 마음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태을검선의 실종 이후 종남파에서는 구양신공을 완성한 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 종남오선 시절에는 적지 않은 고수들이 구양신공을 익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태을검선이 사라진 후 구양신공을 완성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후로 언제부터인지 구결마저 사라져버려 이제는 그야말로 이야기 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상상의 무공이 되어 버렸다.

그런 구양신공을 다시 되살렸다니 아무리 침착하고 냉정한 진산월이라도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용단죽은 힘이 담긴 눈으로 진산월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제 내가 왜 자네를 적임자라고 하는지 알겠나? 비록 오랜 세월이 걸리고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천양신공에서 복원된 구양신공이 늦게나마 다시 종남파로 되돌아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세.”

“……!”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종남파에 전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지. 자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때의 종남파는 거의 문파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한 상태였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조익현의 야욕을 제지하는 것이었으니 말일세.”

모용단죽의 음성은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익현이 강호로 돌아온 시기는 공교롭게도 구양신공이 복원된 지 얼마 후였네. 당시 사부는 아직 과거의 부상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부를 대신해 조익현을 막을 방법을 모색해야 했네. 여러 가지 방법이 모색되었지만, 구양신공을 익힐만한 새로운 적임자를 찾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었네. 조익현의 입김이 닿아 있지 않으면서도 그와 능히 자웅을 겨루어 볼 만한 최고의 인재를 말일세.”

진산월은 한 가지 의문이 들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구양신공이 비록 천하의 절학이긴 하지만, 그걸 익힌다고 해서 조익현을 꺾는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석동과 양패구상을 하고도 석동보다 먼저 상세를 회복했다면, 현재의 조익현은 석동을 능가하는 실력의 소유자라는 의미였다.

당금 무림의 제일고수라는 모용단죽조차도 그가 두려워 스스로의 거처를 버리고 인적도 없는 외딴 계곡에 숨어 지내는 상황인데, 과연 이백 년 전의 무공 하나를 익혔다고 그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의외로 모용단죽은 선뜻 그 의문에 수긍을 했다.

“확실히 구양신공은 그 위력만 놓고 봤을 때는 천양신공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네. 그것만으로는 조익현을 상대할 수 없지.”

“그렇다면…….”

“내가 조금 전에 한 말을 떠올려 보게. 그러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걸세.”

진산월은 누구 못지않게 총명한 인물이었으므로, 즉시 그 말에 숨은 뜻을 알아차렸다.

“모용 대협의 말씀은 구양신공과 함께 전하기로 했다는 수법에 묘용이 있다는 뜻이로군요.”

모용단죽의 얼굴에 한 줄기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과연 똑똑한 친구로군. 바로 그렇다네. 그 수법을 익히면 능히 조익현과 자웅을 겨루어 볼 수 있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그 수법만이 조익현을 상대로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무공일세.”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의 합격진(合擊陣)일세.”

뜻밖의 말에 진산월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합격진이라면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로군요.”

“상대는 준비되어 있네. 아주 오래전부터 말일세.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와 손을 맞출 또 다른 한 사람이었지.”

진산월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 합격진을 배우기 위해서는 구양신공을 익혀야 하는 것이로군요.”

모용단죽은 그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산월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으나, 그 음성만큼은 여느 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구양신공을 복원한 이유도 바로 그 합격진 때문이었겠군요. 그리고 같이 합격진을 배울 또 한 사람은 틀림없이 칠음진기를 얻은 여인이겠지요?”

모용단죽은 거대한 호수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진산월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의미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그 합격진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모양이군.”

“본 파의 장문인으로서 본 파의 무공을 모를 수는 없지요. 설사 그것이 아주 오래전에 실전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그렇다네. 내가 말한 수법은 바로 종남파의 비전인 음양쌍반진일세. 현재의 조익현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음양쌍반진을 완성하는 것뿐일세.”

음양쌍반진!

한때 강호일절로까지 불리던 종남파 최고의 합격진이었으나, 이미 오래전에 실전되어 이제는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무공이었다.

실전된 음양쌍반진을 모용단죽이 알고 있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었으나, 비선 조심향 이후 익힌 사람이 없다고 알려진 칠음진기를 익힌 여인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말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여인은 비선의 후인입니까?”

진산월의 물음에 모용단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녀가 칠음진기를 익힌 것도, 음양쌍반진의 구결을 알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세. 우리는 그녀의 짝이 될 만한 자를 찾기 위해 상당히 많은 고심을 했지. 그리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자네를 적임자로 선정한 것일세.”

“그녀가 누구입니까?”

지금까지 진산월의 말에 순순히 응해주던 모용단죽이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진산월이 물처럼 고요한 눈으로 그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본 후에야 비로소 모용단죽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모란. 경성홍안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백 년 전의 천하제일미녀 백모란이 바로 비선의 절학을 이은 후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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