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군림천하 : 391화


제 357 장 탐색흉수(探索兇手) (2)

체구가 무척 왜소한 사람이었다. 키도 작고 어깨도 좁은 데다 목도 가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머리는 남들보다 커서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였다.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보이는 더벅머리를 대충 뒤로 묶어서 아무렇게나 어깨 위에 늘어뜨렸는데, 그래서인지 가뜩이나 큰 머리통이 더욱 커 보였다.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했으나 혈색이 좋고 피부가 깨끗해서인지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팔꿈치까지 걷어붙인 소맷자락 아래로 드러난 팔뚝과 손은 여인의 그것처럼 희고 깨끗해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이나 주름진 얼굴과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콧노래를 부르며 철냄비를 능숙한 솜씨로 흔들어댔다. 그럴 때마다 철냄비 안에 가득 담긴 채소와 고기들이 이리저리 뒤섞이며 고소한 냄새를 사방으로 풍겨댔다.

“흐흥……, 흐흐흥……. 흐응!”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지 연신 흥겨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커다란 머리통을 까닥거리며 요리를 하는 그 사람의 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우스꽝스럽고 희화적인 것이었다.

좁은 주방은 이내 자욱한 연기와 음식 냄새로 가득 차 버렸다.

하나 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고 능숙한 손길로 요리를 마치고는 냄비 위의 요리를 접시에 담아 탁자로 가지고 갔다.

“자, 내가 만든 특제 해물볶음 요리일세. 먹고 나면 기운이 부쩍부쩍 솟아오를 걸세.”

탁자 앞에는 낯빛이 창백한 중년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지금은 이른 아침이었다. 요리는 제법 먹음직스러웠지만, 아침부터 기름기 가득한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중년인 또한 그다지 식욕이 당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나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어 묵묵히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왜소한 체구의 더벅머리 중노인은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중년인이 자신의 요리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요리의 양은 제법 많았지만, 중년인은 꾸역꾸역 요리를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중간에 몇 번 쉴 법도 하련만, 접시가 깨끗이 비워질 때까지 중년인은 단 한 번도 손길을 쉬지 않았다.

결국 수북하게 쌓인 요리가 모두 비워진 다음에야 비로소 중년인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떤가, 기운이 좀 나는가?”

중년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결 나아진 것 같소.”

그제야 더벅머리 중노인은 히죽 웃으며 그의 앞에 앉았다.

“다행이군. 처음 봤을 때는 금시라도 무덤 속으로 기어들어갈 것 같은 몰골이어서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듯하니 말일세.”

아닌 게 아니라 중년인의 안색은 백지장을 보는 듯 창백했고, 입술에는 핏기가 거의 없어서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게다가 상반신 전체를 하얀 붕대로 칭칭 감고 있어 하얀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자세히 보면 그 붕대의 여기저기에 붉은색 핏자국이 희미하게 배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붕대를 감은 상처에서 새어 나온 핏물의 흔적이었다.

젓가락질을 하는 그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상처가 터져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중년인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세를 꼿꼿이 한 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더벅머리 중노인은 창백한 안색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다시 엷은 웃음을 흘렸다.

“자네는 제법 뼈마디가 단단하군. 난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뼈마디가 약한 녀석은 조금만 건드려도 곧잘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해서 영 재미가 없단 말이야.”

중년인은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더벅머리 중노인은 그의 반응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자기가 할 말만을 지껄였다.

“듣자니 자네는 계산이 분명해서 어떤 경우에라도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고 하더군.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성격일세. 난 계산이 흐릿한 놈들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그런 놈들을 볼 때마다 갈기갈기 찢어 죽였지.”

“…….”

“또 자네는 눈치가 빠르고 두뇌가 명석해서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군. 자네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모든 걸 갖춘 사람이야. 멍청하고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을 상대하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란 말이야. 나같이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지.”

더벅머리 중노인은 천천히 중년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약간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중년인의 얼굴을 한동안 들여다보던 더벅머리 중노인이 이윽고 한결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틀 동안 치료도 해주고 잘 먹여서 자네 숨통은 트여줬으니, 이제는 자네가 내 궁금증을 풀어줄 차례일세.”

더벅머리 중노인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두 눈이 독사의 그것처럼 섬뜩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물건은 어디 있나?”

백의 중년인의 굳게 다물어진 입꼬리가 순간적으로 가늘게 떨렸다.

더벅머리 중노인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중년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 칼날같이 예리하고 서슬 퍼런 시선 때문인지 중년인의 가뜩이나 파리했던 얼굴이 더욱 창백하고 핼쑥하게 보였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던 중년인이 막 무어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더벅머리 중노인이 불쑥 말을 내뱉었다.

“무슨 물건이냐고 묻지 말게.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나는 정말 실망할 거야.”

막 움직이려던 중년인의 입이 다시 굳게 다물어졌다.

더벅머리 중노인은 여전히 섬뜩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한결 차가워진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가 적류문의 마강이란 자를 시켜 셋째를 유혹한 것을 알고 있네. 자네는 마강만 없어지면 꼬리를 자를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 정도 술수에 넘어가기에는 그동안 강호에서 구른 세월이 너무 오래되었거든.”

“……!”

“마강이란 흑도의 나부랭이가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의혹이었지. 그래서 마강의 뒤를 추적하여 어렵지 않게 그 뒤에 자네가 있음을 알았네. 이제 마강이란 놈도 없어지고 셋째도 죽었으니 자네는 그 일이 유야무야될 줄 알았겠지만, 우리는 한 번 잡은 목표는 놓치는 법이 없는 사람들이거든.”

더벅머리 중노인의 몸이 더욱 숙여져 중년인의 얼굴에 거의 닿을 듯 가까워졌다.

“이틀 동안 자네 수발을 들며 금방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네를 살려둔 것은 거짓말을 듣고 싶어서가 아닐세. 그러니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히 생각한 다음 말하도록 하게. 다시 한 번 묻지, 물건은 어디에 있나?”

중년인의 낯빛은 여전히 창백했으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더벅머리 중노인 또한 그를 응시하는 자세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실내에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후에 중년인의 입술이 열리며 조용하면서도 침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시치미를 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소.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당연히 물건을 내어줄 생각이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소.”

더벅머리 중노인은 냉소를 날렸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는군. 그렇다면 물건을 내놓지 않고 무얼 하는 건가?”

더벅머리 중노인의 다그침에도 중년인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물건은 나에게 없소.”

더벅머리 중노인의 눈꼬리가 살짝 꿈틀거리며, 두 눈에서 감히 마주 보기도 힘들 정도로 섬뜩한 살광이 이글거렸다.

“나를 실망시키는군.”

“그런 귀중한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겠소?”

“그럼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소.”

“그곳이 어디인가?”

더벅머리 중노인이 다급히 물었으나, 중년인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일이 마무리되면 알려드리겠소.”

더벅머리 중노인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 물건은 엄연히 청부의 대가로 주기로 한 것이오. 그런데 귀 문(門)의 셋째는 그 청부를 다하지 못했소. 그러니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소.”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아직도 더 수를 부리려 하는가?”

“강호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오. 청부를 마쳐야만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소.”

중년인의 음성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그 속에는 한 줄기 결연한 빛이 담겨 있었다.

더벅머리 중노인은 중년인의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얼굴을 보고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물건의 행방을 물은 것이 실책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원래 중년인은 계획했던 모든 일이 실패로 끝나고 몸마저 커다란 부상을 입어 꺼진 불과도 같은 신세였다. 그런데 더벅머리 중노인이 섣불리 물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에게 일말의 불씨를 제공해 버린 것이다.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줄기 불씨를 발견한 중년인이 순순히 물러날 리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불씨를 되살리려 할 것이다.

원래 더벅머리 중노인은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인간의 몸을 짓이기고 정신까지 파괴하는 끔찍한 고문(拷問)조차도 태연하게 실행하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더벅머리 중노인은 중년인이 물건에 대해 모른 척하거나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기꺼이 고문을 해서라도 그의 입에서 실토를 받아내려 했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하나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절망적인 순간에 회생의 불씨를 발견한 자에게 고문 따위가 통할 리 없었다. 설사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그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더벅머리 중노인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 전만 해도 자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의 목줄을 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목줄이 많이 헐거워져 버린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물건을 회수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더욱 고약한 상황에 처한 것일지 몰랐다.

그리고 그런 빈틈을 중년인은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물건을 받고 싶으면 청부를 마무리해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내 목을 베어주시오. 이런 상황에서는 살아도 산 게 아니니.”

더벅머리 중노인은 다시 한 번 중년인에게 허점을 내보인 자신의 실책을 자책했다. 비록 날개가 꺾이고 깃털마저 뽑히긴 했으나, 이자는 결코 만만히 상대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린 것이다. 기분 같아서는 이자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아서라도 물건의 행방을 알고 싶었으나, 그것은 한낱 분풀이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소문삼살의 둘째이며 강호에서 공포의 살성(煞星)으로 불리는 괴살(怪殺) 도인수(屠忍修)는 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자네가 셋째에게 한 청부가 정확히 무엇인가?”

중년인, 종남파에서 공인한 대적(大敵)이며 출신문파인 화산파에서도 버림받은 존재가 되어버린 철혈매화 검단현은 한동안 침묵하다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전의 청부는 이미 효력이 다했으니, 새로운 청부를 하겠소.”

“그게 무언가?”

검단현의 두 눈에 귀기 어린 살광이 어른거렸다.

“철면호 노해광의 수급을 잘라주시오.”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