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군림천하 : 945화


군림천하 (945)

제385장 모인모색(謨人摸索)

멀리 낙양성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전흠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저게 바로 낙양성이구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려서부터 해남의 바닷가에서 살아왔던 전흠은 비록 전풍개의 손에 이끌려 중원을 가로질러 종남산으로 오기는 했으나, 중원의 다른 명소는 들러

그래서 말로만 듣던 낙양에 간다는 진산월의 말에 그동안 내심으로 많은 기대를 했다.

그야말로 보는 이의 넋을 앗아 갈 정도였다. 그런데 실제로 본 낙양성은 그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멋이 있었다. 높다란 성벽 뒤로 끝없이 늘어선 고루와 누각의 지붕들이

아쉬운 건 진산월의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오촌을 지나 이곳에 올 때까지 진산월은 줄곧 표정이 어두웠으며, 수시로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전흠은 몇 번이나 그에게 물으려 했으나, 장문 사형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봐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답답해하기만 했다.

지금도 낙양성을 눈앞에 두고도 진산월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두커니 성벽을 본 채 생각에 골몰해 있는 것 같았다.

‘대체 장문 사형은 무슨 생각을 저리도 깊게 하는 것일까?’

전흠은 내심으로 솟구쳐 오르는 의문을 접어 두고 낙양성을 향해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성문을 통과해 성내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충분한 것이었다. 널찍한 대로와 양쪽으로 끝도 없이 늘어선 크고 작은 가게들, 그리고 화려한 장식을 한 다양한 모습의 주루와 누각 들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에

전흠은 가급적이면 위풍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려 했으나, 머지않아 사방을 돌아보느라 정신없이 눈을 돌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것은 영락없이 시골에서 막 올라온 촌뜨기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며 키득거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겨우 전흠은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붉게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장문 사형, 어디로 갈까요?”

전흠이 멋쩍은 얼굴로 묻자 진산월은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된다.”

전흠은 낙양의 중앙을 관통하는 널따란 대로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가 나옵니까?”

“낙양성의 남문(門)이 나오겠지.”

전흠은 진산월의 대답에 어이가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길은 낙양의 남북을 지나고 있으니 당연히 남문이 나오겠지. 장문 사형이 내게 농을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신 건가?’

하나 살짝 살펴본 진산월의 얼굴은 조금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전흠이 계속 자신의 눈치를 보고 표정을 살피자 진산월은 그제야 제대로 된 답변을 해 주었다.

“길을 따라 조금 가다가 적당한 객잔이 나타나면 들어가도록 하자. 오늘 하루는 객잔에서 쉬고 싶구나.”

전흠은 힘들게 낙양까지 와서 목적지로 곧장 가지 않고 굳이 객잔을 잡으려는 진산월의 의중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곧 힘차게 고개를 숙였다.

“예, 제가 적당한 객잔을 알아보겠습니다.”

전흠이 말을 끌고 인파를 헤치며 대로의 앞쪽으로 사라지자 진산월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전 사제에게 너무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군. 전 사제도 이쪽은 초행길일 텐데, 그에게 안내를 맡긴 셈이 되고 말았구나.’

진산월은 오촌 낙빈루의 후원에서 임영옥의 머리띠를 발견한 후 줄곧 흔들리는 마음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같아 일단 근처의 객잔에 잠시 머물기로 한 것이다. 그가 낙양에 온 이유는 석가장으로 가서 여러 가지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의 마음 상태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을 것

하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은 진산월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석가장에서 어떠한 일을 맞닥뜨릴지는 모르지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지 않는다면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일을 그르치게 될지도 몰랐다.

그가 예상하는 사안의 중대성으로 보아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진산월은 객잔에서 며칠을 보내더라도 가능한 한 최상의 몸 상태와 마음가짐을 갖춘 후 석가장으로 가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먹었다.

그만큼 그는 이번의 석가장 방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전흠이 선택한 객잔은 낙양의 중앙대로를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것보다는 상당히 거대했다. 열빈객잔이라는 이름의 그곳은 주루를 겸하는 커다란 건물 하나와 그 뒤에 수십 개의 객방 그리고 몇 채의 후원까지 거느리고 있어 겉으로 드러난

그런 열빈객잔조차도 낙양에서는 중간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낙양에 얼마나 많은 외부인들이 드나들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열빈객잔의 입구 옆에는 말을 관리하는 마구간도 있어서 두 사람은 그곳에 말을 맡기고 한결 홀가분한 상태로 객잔에 들어갔다.

“식사 먼저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쉬시겠습니까?”

“오늘은 좀 쉬고 싶구나. 너는 식사를 하고 싶으면 하도록 해라.”

전흠이 한층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식사를 하고 후원의 객실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진산월은 전흠을 남겨 두고 혼자 후원으로 갔다.

그곳은 아담한 마당을 지닌 독채 건물로, 그 마당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방이 떨어져 있어 서로 방해받지 않으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구조였다. 진산월의 숙소는 그중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손님을 상대할 수 있는 작은 거실이 딸린 곳이었다.

진산월은 방에 여장을 풀고 침상 위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대로에서 제법 떨어져 있긴 하지만 아직 밤이 되지 않아서인지 멀리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호객하는 음성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앉았다. 진산월은 멍하니 천장의 한 점을 응시하고 있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서 중앙의 가장 큰 의자에

그런 다음에 비로소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들어오시오.”

곧이어 거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장문인의 청정을 깨뜨린 것에 사과드립니다.”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오촌의 낙빈루에서 보았던 추동생이었다.

“별말씀을. 추 대협이 이리 찾아온 것을 보니 이 공자도 낙양에 있는 모양이구려.”

추동생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그럼 이 공자가 쫓는다던 그 인물도 낙양에 있는 거요?”

“우리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말 추적하기 힘들었지만, 실낱같은 흔적의 끈이 이곳으로 이어지는 것을 간신히 알아냈습니다.”

진산월은 일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로 놀라지 않고 궁금한 점을 넌지시 꺼내 들었다.

“이 공자가 그토록 집요하게 쫓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자는 이 공자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인 모양이구려.”

자신들이 쫓는 사람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추동생의 얼굴에 난처한 빛이 떠올랐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 장문인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추동생은 비록 이십팔숙의 일인에 불과했으나, 강호에서 이름을 날린 지는 무척이나 오래된 인물이었다. 더구나 나이가 진산월의 두 배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정중하게 사과부터 했다.

그것만 보아도 진산월은 이정문과 그의 수하들이 이번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머리를 숙여 사과를 할지언정 자신들이 추적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 어떤 단서나 질문도 허용치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추동생이 자신을 찾아온 건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에 대해 진산월과 확실한 선을 그었으면서도 이정문은 왜 추동생을 보낸 것일까?

추동생이 이정문의 전언(傳言)을 알려 주었다.

“이 공자께선 그들이 이곳에 왔으니 진 장문인께서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산월은 추동생이 말한 그들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들었다.

무림맹주인 위지립과 무단주 사효심도 낙양에 왔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이 열빈객잔의 건너편에 있는 만화루(萬華樓)의 별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진산월의 눈이 번쩍 빛났다.

“단순한 우연치곤 재미있군. 그들이 이곳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소?”

“진 장문인보다 반 각 늦게 낙양으로 들어왔습니다.”

“낙양에 오자마자 잡은 숙소가 내가 묵는 객잔의 건너편이란 말이오?”

“저도 그들이 숙소로 잡은 곳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그들의 행사가 너무………….”

“노골적이로군.”

추동생은 선뜻 시인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위지립과 사효심이 진산월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낙양으로 들어온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나 그들이 진산월이 거처를 정하자마자 그 건너편에 숙소를 잡은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치기에는 너무나 공교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 숙소를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정문의 수하가 그 사실을 알려 준 것도 특이한 일이었다.

이정문이 한 사람을 필사적으로 추적하면서도 위지립과 사효심 그리고 진산월의 행적까지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진산월로서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지금 낙양에 와 있는 성숙해의 인물들이 모두 몇 명이나 되오?”

추동생의 얼굴에 다시금 난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건…….”

“대략적인 숫자라도 말해 주시오. 열 명이 넘소?”

추동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스무 명도 넘소?”

추동생의 고개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살짝 끄덕여졌다.

진산월은 그제야 이정문이 이번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성숙해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원 최고의 정보 조직이지만, 소속 인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강호에 알려진 것만 보아도 십이비성과 이십팔숙의 사십 명에 불과했다.

그 외에 얼마나 더 많은 인물들이 속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 중 이정문이 직접 부릴 수 있는 자들은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정문은 그 인원의 대부분을 이번 일에 투입한 것이다.

대체 추적하는 자가 누구이기에 이정문이 이토록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지 진산월은 다시 한 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