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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987화


군림천하 (987)

제400장 종남제자(終南弟子)

고소명의 시선이 이어 노해광의 옆에 있는 성락중에게로 향했다.

고소명이 종남파 고수들 중 노해광에게 제일 먼저 인사를 한 것은 사전에 그가 오늘 참석한 종남파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배분이 높다는 것을 미리 조사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해광은 누가 뭐라 해도 현재 서안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나 강호상에서의 명성은 오히려 무영검군 성락중이 더욱 높았다.

특히 무당산에서 벌어진 악산대전에서 형산파 오결검객 중 한 사람인 비응검 사공표에게 승리한 후, 성락중은 당대의 검객들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었다.

그러니 그를 대하는 고소명의 태도는 극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영검군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소. 오늘 성 대협을 실제로 뵈니 남다른 풍모와 출중한 기상을 느낄 수 있어 소문이 오히려 못한 것 같구려. 악산대전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오.”

고소명의 극찬에 성락중은 한편으로는 어색했지만,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과찬이시오. 오늘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오. 덕분에 모처럼 사형제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소.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고마운 일이오. 모쪼록 잘 즐겨 주시기 바라겠소.”

고소명은 성락중 외에도 하동원과도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노해광과 성락중, 하동원은 종남파의 선배 고수들일 뿐 아니라 장문인인 신검무적의 사숙이니 명성은 물론이고 강호에서의 배분으로 따져도 절대 고소명의 아래가 아니었다. 자연히 그들을 대하는 고소명의 태도와 중인들의 반응도 조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나 고소명이 그들을 지나 낙일방을 향해 다가가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옥면신권이다!”

함성이 어찌나 컸던지 고소명은 인사를 하는 것도 잠깐 멈추고 장내를 둘러보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를 그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인기요. 그 유명한 옥면신권 낙 소협을 뵙게 되어 반갑소, 정말 듣던 대로 절세의 풍모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소.” 

낙일방은 자리에서 일어나 답례를 했다.

“낙일방입니다.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예전에 뵈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욱 건장하신 것 같아 놀랐습니다.”

고소명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에 우리가 만난 일이 있었소?”

“칠 년 전에 사부님을 따라 이곳 금륜장에 왔다가 잠깐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고 장주님의 오십 세 생일연이었군요.”

고소명은 진정으로 알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적이 있었소?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구려. 정말 미안하오.”

“별말씀을. 당시의 저는 그저 사부님 뒤만 따라다니던 작고 보잘것없는 소년이었습니다. 고 장주께서 관심을 가질만한 존재가 아니었지요.” 

낙일방은 별생각 없이 말했겠지만, 고소명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자신의 오십 세 생일연에 종남파의 장문인이었던 임장홍이 온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 당시 고소명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서안 최고의 고수였고, 임장홍과는 제법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나 그때 그가 임장홍과 친분을 나누었던 것은 종남파가 비록 쇠퇴하긴 했으나 오랜 전통을 가진 명문정파였을 뿐 아니라, 임장홍이 사람 자체가 너무 좋았기에 사귀어 볼 만한 인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임장홍을 따라온 일개 제자에게 관심을 가졌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당금 무림을 온통 뒤흔들고 있는 옥면신권이 당시에 임장홍을 따라온 어린 제자였다고 하니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고소명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부터 낙일방에게 성원을 보내던 많은 사람들 중 일부가 좋지 않은 눈초리로 그를 향해 수군거리고 있었다.

낙일방이 그의 그런 난처함을 알았던지 자연스레 자신의 옆에 있는 동중산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본 파의 제자인 동중산입니다.”

“동중산이라 합니다.”

동중산이 포권을 하자 고소명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마주 인사를 했다.

“비천호리라 불리는 동 대협이시구려. 내 생일연에 어려운 걸음을 해 주어 고맙소.”

동중산은 비록 종남파에서의 배분은 일대제자에 불과했지만, 오랫동안 강호에서 활동해 왔기에 그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종남파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그의 역할이 적지 않았기에 그를 좋아하고 선망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동중산에 이어 유소응과 방화, 서문연상이 차례로 고소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고소명은 그들이 막내아들인 고성한의 사형제들임을 알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를 썼다.

특히 가장 나이가 어린 유소응을 보는 그의 시선은 각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 소년이 바로 신검무적에게 직접 무공을 배운다는 유일한 직전제자로군. 아직 한아(兒)보다 서너 살은 어린 듯한데, 정말 부럽구나.’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남궁세가와의 비무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남궁세가의 기재를 꺾은 적도 있다고 하니 작고 왜소한 체구만 보고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였다. 더구나 일전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부모의 원수인 노아삼수 중 한 명을 처단했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자꾸 보니 자신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장검을 품에 안은 채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조차 한없이 비범해 보였다.

‘저 검이 바로 신검무적이 직접 하사한 소문의 그 검이로구나. 견정검이라고 했던가?’

막내아들을 생각하니 유소응의 모든 부분이 탐이 나고 부러워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제일 마지막으로 고소명과 인사를 나눈 사람은 종남파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서열이 낮은 손풍이었다.

과거 파락호 시절에 보았다면 손톱의 때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을 손풍에게도 고소명은 깍듯하게 대우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와 주어 고맙네. 손 노태야께서는 강녕하신가?”

손풍은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다소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까 뵈었는데, 별일 없으신 것 같더군요.”

어찌 보면 무례하고, 어찌 보면 성의 없어 보이는 그 태도에 금륜장 사람들이 얼굴이 좋지 않았다. 하나 고소명은 별반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다행한 일일세. 자네도 좋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게.”

손풍은 별다른 대답도 없이 고개만 까닥거렸다.

고소명도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언짢았는지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때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누었던 노해광이 껄껄 웃으며 다시 일어섰다.

“하하. 오늘 본 파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금륜장의 기둥뿌리가 다 뽑혀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소. 미리 사과드리오.’

고소명은 이내 표정을 풀고 노해광을 향해 웃어 보였다.

“허헛! 이 정도로 뽑힐 기둥뿌리였다면 진즉에 뽑혔을 거요. 종남파 분들이 모두 내려와도 기꺼이 감당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고맙소. 약소하나마 고 장주의 생신을 축하하는 선물을 준비했으니 받아 주셨으면 좋겠소.’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는 노해광의 말에 고소명은 기쁜 표정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그냥 오셔도 되는데, 선물이라니 오히려 미안해지는구려.”

“말 그대로 약소한 것이오. 본 파에서 한 명도 아니고 열 명 가까이나 찾아와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어찌 빈손으로 올 수 있겠소?”

“종남파 분들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오. 그런데……”

말과는 달리 노해광이 선물을 꺼내거나 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자 고소명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노해광은 그의 의중을 짐작한 듯 이내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같은 무림인들이 한낮 신외지물을 준비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본 파의 제자로 하여금 한바탕 여흥거리를 펼치도록 하려 하오. 고소명은 귀가 번쩍 뜨이는지 눈을 크게 치켜떴다.

“노 대협의 말씀은 종남파 제자 분께서 무공을 시연하겠다는 것이오?”

“그렇소. 아직 부족함이 많은 제자이지만, 그래도 고 장주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어여삐 봐주셨으면 좋겠소.”

종남파 제자의 무공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고소명은 물론이고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이오. 종남파의 무공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다면 내 생일 최고의 선물이 될 거라 장담할 수 있소.”

노해광은 담담한 눈으로 제자들을 차례로 둘러보더니 이내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요즘 제대로 배우고 있다지? 그동안 얼마나 잘 배웠는지 오늘 보도록 하자.”

시선을 받은 그 사람은 처음에는 자신이 아닌 줄 알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노해광이 자신을 지목하고 있음을 깨닫고 어리둥절하여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 말씀이에요?”

노해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모처럼 너의 월녀검법을 보고 싶구나.”

서문연상은 노해광이 자신을 지목한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결심을 굳힌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오늘 사숙조님께 그동안 배운 솜씨를 여과 없이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그녀는 신형을 날려 무대의 중앙으로 날아갔다.

“와아!”

한 마리 제비 같은 그 표홀한 몸놀림에 장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문연상은 중앙에 우뚝 선 채 주위를 둘러보더니 우아하게 포권을 했다.

“종남파의 이십이 대 제자 서문연상이라 합니다. 오늘 부족한 솜씨를 보이게 되었으니, 모자란 점이 있더라도 예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꾀꼬리 같은 음성을 듣자, 사람들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

“종남파에서 모처럼 여고수가 나온 모양이구나. 무영낭랑 이후 처음인가?”

“한 사람 더 있잖은가? 무당산에서 형산파의 그 무서운 절영검을 꺾었던 신비의 여고수!”

“그러고 보니 종남파에는 의외로 뛰어난 여고수들이 많은 모양이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서문연상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노해광이 유독 자신을 지목해서 중인들 앞에서 무공을 시연하라고 하여 기분이 살짝 언짢았는데, 막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니 우월한 기분에 묘한 승리감이 전신을 감쌌던 것이다.

‘제자들 중 그래도 내가 제일 나아 보이니 눈이 날카롭기로 소문난 사숙조께서 나를 지명하신 거야. 이제 오늘만 지나면 모두들 종남에 새로운 옥녀(玉女)가 나왔다고 떠들어 대겠지. 아니, 신녀(神女)가 더 좋은가? 선녀(仙女)라는 별호도 괜찮은 거 같고.’

그녀는 잠시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장검을 뽑아 들었다. 일단 오늘 시연을 멋지게 마무리해야 옥녀든 신녀든 괜찮은 별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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