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44화
“난다는 말과 불을 뿜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은유적인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드래곤입니 다. 그렇다면 가장 높이 난다는 어머니는 지골레이드의 딸 시에프리너일 겁니다.”
“어째서죠?”
“시에프리너는 추락하지 않는 드래곤이잖습니까. 아, 경께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시는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말을 시에프리너의 비행 기 술이 탁월하다는 뜻으로 알고 있지요. 그게 아닙니다. 추락이라는 것은 그것이 원래 속한 땅으로 돌아온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시에프리너는 같은 드 래곤이 보기에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높이 납니다. 마치 원래부터 땅에 속하지 않은 존재인 것처럼 말입니다. 태양이나 달이 그렇듯이, 애초에 땅에 속하지 않는 존재라면 추락할 일도 없지요.”
“땅에 속하지 않는다고요?”
“예. 그래서 지골레이드는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지요. 내 딸은 추락하지 않는다. 땅에 접근할 뿐이다. 대충 그런 말이었지요. 추락하지 않는 드래곤 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재미있는 유래를 알았군요. 그런데 그 시에프리너는 잠들지 않았습니까. 우리와 발탄이 싸운 것도 단시일 내엔 시에프리너가 깨어날 가능성이 없 기 때문이었이죠. 그렇다면 이 예언은, 비록 무서운 내용이 들어 있긴 하지만 우리가 대비하기엔 지나치게 먼 미래의 이야기로군요. 시에프리너가 잠 에서 깨어나서 낳은 자식이 성장해서 바이서스를 공격한다는 말이니까요.”
“죄송합니다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시에프리너가 여성이라는 것이지요.”
“저, 교수님. 그건 학자들의 농담입니까?”
“아닙니다. 이 예언을 검토하다가 끔찍한 가능성 한 가지를 떠올렸습니다. 예. 시에프리너는………… 여성, 자손을 낳는 성이지요. 우리는 시에프리너가 수면기에………… 들어간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수면기가 아니라면, 만약 시에프리너가 임신기에 들어간 거라면…………
“예?”
“출산은 드래곤에게도 위험한 일일 겁니다. 죄송합니다. 가정형으로 말씀드릴 수밖에… 연구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임신기라면, 산모 도 약해지고………… 알도 마찬가지로 취약할 겁니다. 무방비 상태로 잠드는 수면기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마 드래곤은 그렇게 하겠지요. 임신기라면, 영토 내의 괴물들을 미리 쫓아버리고…………… 레어를 엄중히 봉인할 겁니다. 그건, 그건 그러니까, 드래곤이 잠 들어서 그 지배를 받던 괴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예. 수면기와………… 겉으로 보기엔 똑같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지금 솔베스의 지하엔…………”
“그렇습니다. 시에프리너는 깨어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이서스를 파멸시킬 아들의 출산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