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50화
“이게 구층탑이군요. 소문만 듣고 생각했던 것보단 덜 음침한데요?”
오크는 사이드카에 실어온 특수한 자재들을 조립하면서 말했습니다. 이루릴이 오크나 다른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는 현대 기술에 능숙하긴 하지 만 역시 전문 기술이 필요한 곳에서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했지요.
“여기엔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긴 하지만 저주는 없어요.”
오크 기술자는 당황한 눈으로 이루릴을 보았습니다. 이루릴은 절대로 오크에겐 해가 가지 않을 거라 말했지만 오크는 무슨 마법인지 상세히 듣기 전 엔 작업을 재개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할 수 없이 이루릴은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지요.
“마법사답게 아프나이델은 호기심이 많았죠. 개인적으로 나는 호기심을 경계해요. 그것이 조화를 깨트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하지만 경 계일 뿐이지 적대는 아니에요. 스스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한 호기심은 용인되어야 한다고, 권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호부터 하시는군요. 여기 정말 끔찍한 것이 있나 보죠?”
이루릴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크는 영리했죠.
“아프나이델은 젊었을 적 놀라운 마법이 걸려 있는 영원의 숲이라는 곳을 여행한 적이 있었죠. 그 여행의 끝에서 아프나이델은 드래곤 레이디 아일 페사스와 만나고 그 후 평생에 걸쳐 우정을 나눴지만, 그건 다른 기회에 할 이야기군요. 아프나이델은 영원의 숲에 걸려 있는 고대의 마법에 깊은 인 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것을 해명하고 싶었죠. 오랜 연구 끝에 아프나이델은 뭔가를 만들어내었어요.”
“실패작이었군요? 흔히 그렇듯이?”
“아뇨. 성공작이었어요. 지나치게 성공했죠. 아프나이델은 기뻐했고, 그 다음 끝없는 두려움에 빠졌어요. 그 물건은 너무도 성공적이어서 너무도 위 험한 물건이 되었거든요. 아프나이델은 성공에 만족하고 그것을 즉각 파괴하기로 했죠. 그가 기울인 정성과 노력을 생각하면 실로 찬사 받을 태도지 요. 하지만 아프나이델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의 온갖 노력이 담겨 있는 그 물건은 파괴할 수도 없었어요. 아프나이델은 그것을 파괴하 기 위해선 그 분야의 대가를 흉내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시간이죠.”
“시간이라니, 부서질 때까지 내버려둔다는 말입니까?”
“비슷해요. 아프나이델은 그 물건에 지속적으로 마법적 압박을 가해 스스로 무너지게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계산 결과는 좀 암담했죠. 그의 계산에 따르면 약 천 년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천 년이오? 그러면……”
“예. 아프나이델은 그만큼 살 수 없었죠. 할 수 없이 아프나이델은 자신의 탑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건물은 천 년 동안 남을 수도 있고, 또 그 내부의 물건에 마법적 압박을 가하는 마법을 걸 수도 있으니까.”
“아하.”
“예. 그래요. 이 탑은 아프나이델의 기념비가 아니에요. 자신의 호기심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아는 마법사의 기념비일 수는 있겠지만. 이 탑은 내부의 물건을 향해 지속적으로 마법적 압박을 가하고 있어요. 탑의 그런 능력은 또 다른 효과도 가져왔죠. 강력한 마법적 압박 때문에 아무도 이 탑 근처에선 마법을 쓸 수 없어요. 그런데 보다시피 원래 마법사의 탑이었던 이 탑은 마법적인 수단으로만 들어가게끔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게 외부인 들의 방해, 혹은 외부인들의 위험을 막기 좋거든요.”
오크는 창문도, 문도 보이지 않는 밋밋한 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확실히 정상적인 방법으론 출입하기 어려운 탑이었죠.
“날아들어가면? 드래곤이라면 쉬울 텐데요. 그리고 옛날에는 그리폰이나 페가수스를 타고 다닌 사람도 있지 않았어요?”
“드래곤들은 이 탑 근처에도 오기 싫어해요. 그들의 몸속엔 항상 마법이 들끓고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당신이 말한 그 동물들도 이곳을 싫어했 어요. 마법이 억제되어 있어서 정상적인 자연 상태라고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동물들도 이 근처에선 불쾌감을 느끼거나 몸이 나빠지거나 하지 요. 저주라 불리는 것의 원인은 그것이에요.”
“아, 그래서 사람들도……………”
“예.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여기에 머물면 머물수록 떠나고 싶은 기분만 들지요. 그러니 오랜 시간에 걸쳐 이 탑을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단 숨에 침입하려면 저 벽을 기어오르거나 마법을 쓰는 것뿐인데, 저걸 기어오른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아까도 말했듯이 이 근처에선 마법을 사용할 수 없지요.”
“그렇군요. 하지만 아프나이델도 이런 건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군요.”
“예. 그도 그 시대의 사람이었으니까요. 어떻게 가스 봄베에 대해서 예상할 수 있었겠어요.”
오크가 가져온 것은 커다란 봄베와 파이프, 윈치와 밧줄, 기타 부속, 그리고 특수 재질로 만든 풍선 등이었죠. 예. 그건 특수 제작된 소형 가스 기구 였습니다. 마법 없이 하늘을 나는 도구였죠.
잠시 후 가스 주입이 끝난 풍선이 이루릴의 몸에 결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몸과 지상에 고정된 윈치는 밧줄로 연결되었고요. 오크가 밧줄을 풀어주자 이루릴은 비마법적인 수단으로는 시간이 한참 걸릴 테니 침입할 수 없을 거라는 아프나이델의 예상을 무색케 하며 단숨에 탑 위로 올라갔 습니다.
이루릴이 아니라면 비싼 돈을 지불해 가며 일 인승 기구라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물건을 일부러 만들고 또 거기에 탑승까지 하는 사람은 없을 테죠. 그러니 그 방법이 다른 이들에게 전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천 년 동안 이 탑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길 바라던 아프나이델의 소망을 알고 있었기에 이루릴은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잠시 후 이루릴은 아프나이델에 대한 더 큰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큰 경악과 공포 때문에 미안함은 두드러지지 않았죠. 탑의 구 층 바 닥에 주저앉은 채 이루릴은 자신의 판단을 힘겹게 수정했습니다.
인간에겐 가시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세 이래 최악의 무기가 그들에게 넘어갔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