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8-1화 : 대교와의 결투.(1)
천우신을 뒤로하고 미령이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갔다. 방에 들어가서는 말없이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서 도와줄 수 없으면 마음이 심란할 것 같아 자리를 피한 건데, 막상 그러고 나니 괜히 더 신경이 쓰였다.
교아 자매와의 도전 3단계는 대한민국 국민 놀이인 ‘삼육구 게임’이다. 본래 삼육구 게임 외에도 다른 종목이 있다고 했지만, 지금까지의 도전자들은 모두 이 삼육구 게임에서 탈락해 다른 종목이 실시된 적이 없다고 한다. 이해가 갔던 것이, 예전에 이들끼리 삼육구 게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소교나 미령이도 상당히 잘하는 편이었지만 소령이는 정말 ‘지존’이었다.
내가 아는 소령이는 창의력이나 응용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대신 암기력과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는 숫자놀이 같은 것에 엄청나게 강한 녀석이다. 천우신도 요 며칠 연습을 시켜 보니 삼육구 게임에서 만만찮은 재능을 보이긴 했지만, 삼육구 소녀 소령이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천우신이 설사 소령이를 이긴다고 해도 당장에 둘이 신방을 차리는 식으로 일이 진행될 리는 없었다. 이 교아루가 본래 자매들을 시집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이상, 공식적으로 승부에서 이기지 못하는 자는 비공식적으로 처리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천우신 역시 이런 승부만으로 싫다는 소령이를 억지로 차지할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천우신이 이겨줘야만 소령이의 마음속에 그의 존재가 더 진하게 각인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당분간 천우신이 소령이와 자주 접촉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 정도는 도장을 찍어둬야 할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으응?”
깜짝 놀랐다. 미령이가 갑자기 눈앞에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그만큼 이 묘미미를 하찮게 여겨서 그러는 건가요?”
“훗! 그럴 리가…”
나는 꽤나 호전적인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미령이에게 약간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찮게 여기는 것과는 다르지만, 이제 이 상황이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이제 내 임무는 종료되었으니 천우신과 소령이의 삼육구 대결이 끝나는 대로 인피면구를 벗어 던지고 정체를 밝힐 일만 남았다. 아니, 지금 그냥 밝혀도 상관없으려나? 승부가 끝나기 전까지만 소령이만 모르면 되는 것이니까.
“그럼, 이 묘미미와 한 가지 내기를 하겠어요?”
“응? 내기?”
“그래요. 한공자님이 이기면 물론 저를 차지하실 수 있겠지만… 만약 졌을 경우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나 참! 이봐, 난 이미 충분한 재물을 내놓고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내가 새삼 또 뭔가를 걸 이유가 있을까?”
“그거야 제 쪽에서도 상품을 더 걸면 되죠. 후후! 공자님은 밀화원장에게도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 그녀와의 하루 밤도 함께 걸겠어요.”
얼씨구, 이 녀석이 아주 막 가는구나. 보아하니 홍초명이 동의한 것 같지도 않은데, 제 멋대로 그녀까지 옵션으로 붙이겠다니… 아무래도 한번 혼 좀 내줘야겠군.
“후후. 아까의 시합에서 내가 허를 찔린 것이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군.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걸도록 하지.”
나는 별도의 주머니에서 아까 금종을 울릴 때 썼던 진주들보다도 큰 진주 하나를 꺼내 놓았다. 물론 대교와 동생들 주려고 따로 챙겨 놓았던 대빵 진주 네 개 중 하나였다. 미령이는 본래 주인이 자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잠시 놀란 표정으로 진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떤가? 이 정도 크기와 색채를 지닌 보물은 쉽게 볼 수 없을 걸?”
“그, 그야… 흥!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에요.”
호오, 무지 아까워하면서도 잘 참아내는군.
“제가 원하는 것은 공자님의 신체 한 부분에 공자님이 이 묘미미에게 패했다는 글자를 새겨 넣는 거예요.”
거참, 여동생이 아니라면 정말 상대하기 싫을 정도로 고약한 녀석이다. 무림인에게 그런 문신을 새긴다는 건 나가 죽으라는 얘기인데… 그 놈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술래 한 번 건드렸다가 엄청난 원한을 산 셈이다.
“흠… 좋아. 그 내기를 받아들이겠어.”
내가 선선히 승낙하자 미령이는 반짝하는 기쁨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엇갈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기에 자신이 있었는지 곧 즐거운 기색으로 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남자를 불렀다.
“불노자. 가서 내가 말한 것을 가져오도록 해요.”
“아가씨, 그건 둘째 아가씨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닥쳐욧!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만…”
불노자…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란 뜻인가? 하지만…
내가 알기로 저 녀석은 엄청 성깔 있는 놈인데,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흥! 둔한 자가 말까지 안 들으니 정말 쓸모가 없어.”
불노자는 이름 그대로 미령이의 폭언에도 정말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신 나를 당장 물어뜯고 싶어하는 눈빛으로 노려본 후에야 조용히 방을 나갔다. 불노자…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였지만, 살집이 좋은 체격만은 여전했다. 전직 혈랑대 백인장 ‘백상’… 현재는 어째 미령이 전속 비서 내지는 보디가드가 되어 있는 분위기인데, 그런 것치고도 신세가 좀 썰렁해 보인다.
어쨌든, 얼마 후 백상이 들고 온 것은 두 개의 두루말이였다. 둘둘 말려 있던 걸 탁자 위에 펼치니, 그건 약간 특이한… 그림(?)이었다.
“후후~ 이건 제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재능 있는 분이 남긴 작품이에요. 이 작품에 담겨진 숨은 의미를 알 수 있겠어요? 그 의미를 밝혀내면 난 당장 당신의 여자가 되겠어요.”
미령이는 기고만장의 태도로 큰소리를 쳤고, 난 문득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나였냐?’라는 기분과 함께, 저 그림 아닌 그림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왠지 쪽팔렸기 때문이었다. 왼쪽 종이에 그려진 건 나무와 풀이 우거진 숲을 표현한 거라 좀 덜한데… 오른쪽 종이에 그려진 건… 우리나라 국민공룡(?) ‘둘리’와 그 친구인 ‘도우너’가 그려져 있었다.
보통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혼자 놀기’는 방법이 한정되어 있어서 결국에는 ‘시체놀이’가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지루한 수업시간에는 눕거나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꽤 다양한 혼자 놀기가 행해지는 편이다. 기본적인 것이 ‘낙서’일 테고, ‘교과서에서 글자 찾기 놀이’, 그다음은 아마 ‘교과서 글자 변형 놀이’가 될 것이다. ‘국어’라고 인쇄된 곳의 ‘국’자에 볼펜으로 정성스럽게(?) 선을 그려 넣으면 ‘묵’자가 되고… 계속 그런 식으로 변형을 시키다 보면 국어라는 글자가 어느 사이 별 해괴한 글이나 문장, 혹은 그림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수업이 끝난다.
이 놀이에 맛을 들이면 아무 때고 글자가 크고 글자 간에 간격이 크게 인쇄된 부분을 보면 참을 수가 없게 되는 부작용이 있기도 한데… 암튼, 나는 이 시대에 떨어진 후 대교 자매와 만나기 전까지는 이 혼자 놀기의 진수를 이용해 시간을 죽였었다. 비화곡의 내 침실 옆 방에는 원판이 그 잘난 재능을 한껏 발휘한 그림이나 서예 작품들이 쌓여있었는데, 난 그 글자들에 붓으로 이런저런 선을 그려 넣으며 놀았던 것이다. 물론 한자는 잘 몰라서 대부분 그림으로 변형시키곤 했는데… 그중 저 둘리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었다.
“호호호홋~! 그렇게 멍청히 서 있지 말고 어서 말을 해보세요.”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음~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불노자! 바늘과 먹은 준비되어 있겠지?”
“그렇습니다. 아가씨.”
윽! 추억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로군.
“잠깐! 음… 과연 이 그림들은 얼핏 조잡해 보이나, 그 속에 숨겨진 뜻이 심오하구려. 일단 이 쪽은 일견 평범한 산수화처럼 보이나 천하를 내려다보는(본래 글자는 君臨天下였다.) 오만함이 엿보이고… 또한 이 그림은 얼핏 귀여운 짐승의 얼굴들을 그려놓은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신비롭고 비밀스런 꽃의 힘이 하늘을……(본래 글자는 秘花天世였음.)”
내가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였다. 옆에서 섬뜩한 살기가 이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불노자 아니, 백상이 날카로운 단검을 내 목줄기에 들이댔다. 힐끗 눈을 돌려보니 미령이가 주춤거리며 한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대, 대체 당신은… 당신의 정체는 뭐지?”
“맙소사… 난 그저 그림에 담긴 속뜻을 풀어보고 있을 뿐인데… 대체 이게 무슨 짓들이오.”
백상이 당장 칼을 그을 것 같지는 않아서 짐짓 겁을 먹은 표정으로 반문했더니 미령이는 날 무섭게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돼! 이 그림의 뜻은 누구도 알아볼 수가 없는 거란 말야!”
나는 미령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안에 미리 쥐고 있던 진주알을 손가락으로 퉁겨 미령이에게 날려보냈다. 방심했던 미령이가 진주 알에 간단히 혈도를 찍혀버리자 예상대로 백상도 당황하여 틈을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백상의 손목을 잡으며 간단히 칼을 빼앗아 버렸다. 백상이 내 공수탈인(空手奪刃. 빈손으로 남의 칼 뺏기.) 수법에 놀라 뒤로 물러서는 순간 나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 몸을 날렸다. 예전에는 전혀 볼 수조차 없었던 백상의 공격이 내 몸을 향해 쏟아졌지만, 나는 그 것들을 간단히 막아내며 불과 몇 초 만에 백상의 마혈(痲穴)을 잡아 그를 주저앉힐 수 있었다. 거기다 추가로 말 못하게 되는 아혈(啞穴)까지 살짝 잡아주었다. 백상은 자신이 이렇게 쉽게 제압당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흐… 아무리 신분은 내 밑이라도 살벌해서 은근히 대하기 거북했던 백상을 이렇게 간단히 손봐 줄 수 있게 되다니… 연옥도에서 뺑이 친 보람이 있구먼. 후우~ 얼결에(?) 미령이는 졸도시키고 백상도 잡긴 했는데… 막상 미령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걸 보니 내가 좀 오버했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분위기 다운시켜놓고 이제 와서 ‘가벼운 장난’이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끄으음… 할 수 없군. 기왕 망가진 김에… 자아~ 일단 미령이를 침상에 올려 눕혀 놓고… 그리고 정신을 차리게 하는 해혈만 해 줄까나?
“이봐, 어때? 남자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된 기분이…”
미령이는 내 말 그대로 누운 채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처지였으므로 고개만을 간신히 보일 듯 말 듯 저을 뿐이었다.
나는 만면에 음흉하고 추접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흐흐흐~ 내가 이 방에 간단하나마 진법을 펼쳐 놓아서 앞으로 얼마간은 누구도 널 도우러 와 줄 수가 없어. 그러니… 흐흐… 이제 천천히 묘미를 즐겨 보실까?”
아아~ 나 왜 이렇게 악역을 잘하는 거야?
“뭐…야? 설마 우는… 거냐?”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여자가 어디 있는가 마는, 설마 암팡짐의 상징인 미령이도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 애처로운 표정으로 눈물을… 에구구… 얼른 수습으로 넘어가야겠다.
“하하하~! 내가 장난이 너무 지나쳤나?”
나는 짐짓 웃음을 터트리며 미령이로부터 물러나서 인피면구를 벗어 제꼈다. 그다음 혈도를 풀어줬는데도 두 녀석은 계속 약간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뭐야? 두 사람 다 벌써 날 잊어버렸던 거야?”
“진유준 하사님…? 맙소사! 살아 계셨던 겁니까? 그렇다면 지금 소령 아가씨와 시합 중인 사람은…”
“그래, 백상. 그는 그때 나와 함께 바다에 빠졌었던 천우신 이야. 그 당시 그가 우리에게 수상해 보였던 건 사연이 있던 거고… 하여간 다들 그동안 잘 있었어?”
“예. 저희들은 물론이고 아가씨들도… 아, 헌데 돌아오시자마자 이런 짓궂은 장난을 하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그건 미안하게 됐네.”
나는 아랫사람에게 심한 장난을 친 윗사람답게 정중하게…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정말 실망했네. 자네는 분명 혈랑대에서 손꼽히는 강자였거늘, 미령이가 위기에 처했다고 해서 그렇게 간단히 적에게 허점을 보이다니 말이야.”
“부,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좀 더 일의 선후를 가려 행동해 주게. 그리고… 너, 미령이!”
미령이는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망설이는 표정으로 눈가를 소매로 찍어내고 있다가 내가 부르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이런 곳을 만들어 너희를 쓴 진하연… 그 녀석을 혼내야겠지만, 미령이 너도 괘씸하기는 마찬가지야. 무릇 여자는 행실이 깔끔해야 하거늘, 정말 기녀라도 된 양 행동이 가볍기 그지없었어! 만약 내가 정말 못된 뜻을 품은 자였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그건… 그건… 전… 흑! 흐으… 와아앙~!”
어, 야아~ 그렇다고 별안간 대성통곡을 해 대냐? 난 잠시 미령이를 달래는 한편, 백상에게는 내가 정체를 밝힌 것이 소령이에게까지 알려지지 않도록 하라 하는 지시를 내려야 했다. 미령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방 안의 변괴를 알아차렸는지 몇몇 병력들이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정체를 밝힌 후 잘해야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비로소 대부분의 낯익은 이들과 재회할 수가 있었다. 혈랑대와 비연대의 생존자들은 사실 진유준인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이 극히 짧았음에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생사를 함께 해서인지 내 생각 이상으로 기뻐해 주었고, 나도 공연히 코끝이 찡-한 느낌이 들었다.
“그 가공할 폭풍우를 이겨 내 무사히 생환하시고… 더구나 무공도 되찾으셨다니 진정 경하드립니다.”
가장 늦게 나타난 소교의 정중한 인사였다. 쯧…!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녀석이 정중씩이나 해버리니까 좀 섭하군. 아니… 생각해보면 사갈새끼와 사무라이 용병 때문에 진유준+진하운이 망가진 이후부터 그 전까지의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었다.
“고맙다, 소교. 너야말로 그동안 고생이 많았을 텐데… 수고했다.”
소교에게만 새삼 ‘고생’이란 말을 꺼낸 건 원래도 가냘프고 새하얗던 녀석이 지금은 더 약하고 창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옛날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단골 메뉴인 ‘불치병에 걸려있는 미녀’ 같은 인상이랄까?
“헌데… 대교는?”
“비연대장은 현재 잠시 외출 중입니다. 오늘 밤에 돌아오기로 했으니 곧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제기. 아무리 주인공은 좀 늦게 등장하는 법이라지만 다 와서 자꾸 감질나게 이러니까 짜증이… 으… 이제 와서 안달할 필요가 뭐가 있냐 진유준. 대교 어디 안 도망간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도 이제 곧… 으~ 도망가면 어쩌지? 빌어먹을… 별 생각이 다 나네.
“그리고, 진하사님. 보고 받기로는…”
소교는 아직도(!) 진행 중인 천우신과 소령이의 대결을 왜 방해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웬지 설명하기가 좀 그랬지만, 일단 천우신의 소령이의 감정에 대해서만 얘기해 주었다. 그랬더니 소교는 살짝 표정을 찌푸렸다.
“천가장 같은 명문가의 후계자가 소령이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물론 언니 된 입장에서 기뻐할 노릇입니다. 허나 저희 자매들은 비명에 가신 곡주님의 복수조차 마치지 못한 처지입니다. 진하사님의 친우를 위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쓸데없는 수고라고 생각됩니다.”
“소교!”
“……”
“저 천우신 공자가 우리의 복수에 가장 필요한 걸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이해하겠나?”
“…과연 그랬었군요. 허면, 소령이는 그 분께 드리는 것이 좋겠군요.”
제기… 갑자기 기분이 엄청 상해버리는구만. 소교가…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