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1-2화 : 진정한 복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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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1-2화 : 진정한 복귀(2)


“몽몽! 대교 노래 좀 부탁해.”

[ …알겠습니다. ]

침대에 누워 현재의 대교가 부르는 노래를… 어? 뭐야……?

여덟 살 때 거울에 얼굴을 몰래 비춰보고 눈썹을 길게 그려보곤 했지요.
열 살 때 들 밖으로 봄나들이하는 게 좋았어요.
연꽃 수놓은 치마를 입고……

“몽몽, 이건……”

[ 현재 두 곡을 압축 해제해 놓았습니다. ]

…중국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 중국 만당의 시인.)의 시에 대교가 직접 곡을 만들어 보았다는 노래였다. 몽몽 녀석, 설마 원판 대교의 노래를… 비화곡에서 대교가 가끔 불러주던 노래들을 아직까지 저장해 두고 있었던 건가? 당시 내가 녹음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생존필수 데이터가 아니므로 저장공간이 모자라게 되는 상황에서의 삭제 우선 순위가 높을 거라고 하더니만…..

“…처음부터 다시 듣자.”

나는 눈을 감고 이호(二胡, 중국 전통 현악기)를 타며 단지 조용히 내 귀에 속삭이는 듯한 대교의 음성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덟 살 때 거울에 얼굴을 몰래 비춰보고 눈썹을 길게 그려보곤 했지요.
열 살 때 들 밖으로 봄나들이하는 게 좋았어요.
연꽃 수놓은 치마를 입고.
열두 살 때, 거문고를 배웠어요.
은갑(銀甲)을 손에서 빼지 않았죠.
열 네 살 때 곧잘 부모 뒤에 숨었어요.
남자들이 왜 그런지 부끄러워서.
열 다섯 살 때 봄이 까닭 없이 슬펐어요.
그래서 그넷줄 잡은 채 얼굴 돌려 울었지요.

…밤새 꿈을 꾸었다. 혼자 집으로 돌아 온 이후 두 달 내내 꾸었던 악몽처럼 대교와 헤어지던 순간이 반복되는 절망적이고 서글픈 꿈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싱겁게 웃는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 올 수가 있었다. 웬지 창 쪽이 간밤과 다른 느낌이 들어 커튼을 젖혀보니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풍경이 눈을 부시게 했다.

“첫눈… 인가?”

[ …첫눈이 아니라, 벌써 세 번째 눈이에요. ]

“그런…가?”

그러고 보니 요정 몽 녀석의 말처럼 최근 두 번 정도 더 눈을 맞은 거 같긴 하다. 내가 그걸 즐기기는 고사하고 특별히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 어쨌든, 좋은 아침, 주인님! ]

“그래, 어쨌든 좋은 아침이다, 몽몽남매!”

간만에 활기찬 인사와 함께 시작하는 아침이었다. 조금 성급하게, 미리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채 식탁에 앉자 대뜸 어머니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나 예전처럼 즐겁게 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내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되셨는지 외출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씀 없으셨고 대신 아버지께서 무심히 입을 여셨다.

“어디 나가는지 몰라도, 창고에서 박스 정리 좀 도와주고 가라.”

“예. 얼마나 됩니까?”

“…좀 많다.”

그러시며 내 옷차림을 살피시는 아버지의 눈빛은… ‘옷 버릴 텐데 갈아입고 일해라.’라는 말씀을 함축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달리 말씀이 적은 분이라 평소에도 눈빛과 태도로 그 뜻을 파악해야 하는… 아들로서의 기본감각(?)도 얼추 돌아 온 듯 싶었다.

어제 대교를 확인하러 달려갈 때 엄청 오버해서 경공을 쓰느라 내공이 많이 소모되었고, 운기조식을 하나마나인 동네에 살고 있는 형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적당히(?) 힘쓰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가게 뒤쪽의 창고에 제멋대로 쌓인 박스들을, 내용물이 꽉 차 있건 없건 어쩌건 간에 혼자서 순식간에 이리저리 옮겨 정리해 버렸기에 설거지를 서둘러 마치신 듯한 어머니께서 돕기 위해 내려오셨을 때는 이미 일이 다 끝난 상태였다. 옷 버릴까 봐 무거운 술 박스들까지 몸에 붙이지 않고 팔 힘만으로(실은 내공을 써서) 가뿐하게 다루는 것을 본 아버지는 다소 놀라신 듯했고, 늦게 내려오신 어머니도 그 사이 내가 해 놓은 일의 양과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것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셨다.

“…군대냐고 특공대 같은 델 가더니 힘은 괴물딱지가 되어서 왔네. 거기서 막노동만 시켰나 봐요.”

“그럼 사내자식이 이 정도도 못하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탄식에 그렇게 습관적으로 대꾸하시긴 했지만, 내심 어느 정도 감탄하고 기특해(?)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뭐, 사실… 그 동안의 빡센 수련 덕에 굳이 내공을 안 써도 이 정도는 가능하긴 하니 칭찬(?)을 받아도 양심에 걸리진 않았다.

두 분을 뒤로하고 다시 나선 대교에게로의 길. 오늘도 마음이 급하긴 했지만 어제 밤처럼 미친 듯 서울의 건물들 위를 뛰어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겸손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내 말에 따라 대교가 묵고 있는 호텔로 방향을 잡은 택시가 조심스럽게 눈길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 요정 몽이 호릉~! 소리와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너, 이제 그런 소리를 등장시의 고정 효과음으로 정한 거냐?>

[예?]

<그… 피리 소리 같기도 하고 그냥 새 소리 같기도 한 소리 말야.>

[흐응- 딱히 정한 건 아닌데… 듣기 싫으세요?]

<아냐. 괜찮아. 니 이미지하고 맞는 거 같아. 귀여워.>

[그래요? 정말요?]

요정 몽은 연신 새 소리 같은 호르릉~ 포로롱~ 소리를 내며 택시 안을 날았다. 문득 녀석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이게 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주인님께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나도 그래, 몽몽선생.>

[헌데……]

<헌데…?>

[대교님으로 추정되는 인물과의 접촉에 조금 더 신중하시기를 권고합니다.]

<……>

내가 바로 “왜 임마!”라는 식으로 반응할 줄 알았는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몽몽도 잠시 뜸을 들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주제넘은 참견이라 화내실지도 모르지만… 대교님은 존재 자체가 주인님께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대교님의 환생과 추정 인물과의 일치를 지나치게 확신하신다면 만약의 경우에는 반사적으로 받을 정신적인 타격의 정도가 우려됩니다.]

나는 먼저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곤란해. 그냥… 그냥 알게 된 거야.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

<뭐~ 그렇다고는 해도, 만약 네 능력으로 대교를 조사해서 뭔가 다른 걸 알아내게 되면 숨기지 말고 알려 줘. 나… 그렇게 약한 놈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또 하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쳇-! 알아, 임마. 현재의 대교가 아무리 원판 대교… 음, 이 표현 왠지… 하여간 본래 대교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천년의 세월을 넘어 환생한 데다 지금은 나와의 기억조차 없는… 어쩌면 완전히 다른 사람일지 모른다는 거… 말이지?>

[…그렇습니다.]

문득 차창 밖을 보니, 밤새 내린 눈 때문인지 아직도 목적지까지는 먼 상태였다. 나는 눈을 감고 어제 대교를 만났을 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기자들과 팬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지는 가운데… 나는 대교의 이름을 불렀고, 대교도 분명히 놀라며 자기 이름에 반응했었다. 대교는 그 직후 보디가드들에 둘러싸여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나는 더 이상 날 막는 남자들을 뿌리치지 않고 서서 대교에게 전음(傳音)을 보냈었다.

‘내일… 다시 오겠어.’

전음을 들은 대교의 표정은… 환청이라도 들은 듯이 놀라고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던 것 같다. 중국에도 이젠 전음입밀(傳音入密)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거나 거의 실전되어서 현재의 대교는 처음으로 겪어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 전에도 대교는 단지 내가 자신의 알려지지 않은 아명을 불렀다는 것에 놀랐을 뿐, 날 알아본다거나 하는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솔직히 어젠 좀 들떠서 그런 생각도 못했었는데… 지난 밤, 계속 대교의 노래를 들려줘서 밤새 비화곡에서 대교와 함께 있을 때의 꿈을 꾸게 해 준 녀석이 있어서… 덕분에 네가 우려할 만큼 막연히 들떠 있지는 않게 되었어.>

나는 눈을 뜨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도 잘은 모르겠다. 계속 생각해 봤지만, 대교를 만나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확실하게 결정한 것도 없고… 어쨌든 부딪쳐 봐야지.>

[알겠습니다.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여에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훗-! 괜찮아, 임마.>

몽몽 녀석, 요정 몽을 분리시킨 후로 정작 자신은 초기 모드로 돌아간 듯 굴더니만… 결국 속으로는 ‘인간적으로’ 날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요정 몽 녀석도 나름대로……

[오옷-! 주인님! 이 택시 이상해욧!]

불쑥 소리 친 요정 몽은 택시 기사의 어깨에 앉아(?) 인상을 긁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제가 뽑아 본 최단 거리와 다른 길로 접어들었어요. 이건 마구 돌아서 요금을 올릴 생각이라구욧!]

<어…? 정말이냐?>

내가 조금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택시 기사는 눈치 빠르게 웃으며 “이 시간에 그리로 가면 무지 막혀요.”라고 한다.

[흥-! 그래도 도는 건 확실해요. 그리고 영업용 기사라면 운전 전문직인데, 기어 변속과 반응 속도, 눈길 제어 오차 수정이 불완전하다구요.]

<으이구~ 이 녀석아. 네 녀석 기준대로는 아무도 못해.>

[그래두, 주인님이 타신 차인데… 흥! 택시 기사 즐드셈!]

<뭐?>

녀석의 과잉충성(?)은 그렇다 치고, 난 요정 몽이 쓴 통신용어 때문에 웃고 말았다.

<하핫~! 야, 요정 몽! 너. 마지막 표현은 너 뭔가 잘못 쓴 거 아냐?>

[에…? 즐,이라구요. 즐! 전 바로 썼어요.]

<임마. 즐이라는 건, 통신하다가 대화 상대에게 ‘즐거운 통신하라’는 말을 줄여서 즐통이라고 한다던가, 즐거운 모모 하세요라는 의미의 좋은 뜻으로 쓰이는 거야. 너… 나름대로 나쁜 뜻의 은어 쓰려다가 실수한 거지?>

[음… 그건 초기의 뜻이고요. 나중엔 나쁜 뜻으로 변질되었잖아요. 상대방의 말을 무시한다거나 비꼬는… 예를 들어 ‘닥치고 꺼져’, ‘빡큐’ 같은 뜻으로 말이에요.]

<뭐야? 내가 과거에… 아니, 군대에 있는 사이 통신 은어가 그렇게 변했단 말야?>

흐음… 난 복귀한 후로도 무공 수련하며 시간에 대한 연구하느라 직접 통신을 해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거 다시 적응하려면 꽤나… 응? 가, 가만……?

<야, 너. 너… 전에 나한테도 즐! 그런 적 있지?>

[예? 어… 그, 그랬었나요?]

…기억이 난다. 그때는 녀석이 그 앞에 한 말에 웃느라 뒤에 붙은 ‘즐’이란 표현에는 신경을 못 썼었는데……

<그럼… 그때 넌 날 보고 ‘닥치고 꺼져’라고 한 거란 말이군!>

[아, 그게… 그러니까……]

<요정몽… 네가 나에게 말이지이?>

[아, 아뇨. 그게 아니었는데 막상 해석을 따로 언급하고 보니까 저도 왠지 좀……]

그제야 요정 몽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안색이 창백해져(?) 떠듬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기… 그게… 말이요. 사실 그런 뜻이 있긴… 있는데, 그… 친한 사람끼리는 그냥… 장난으로 가볍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자 몽몽이 재빨리 설명을 덧붙이며 수습에 나섰다.

[확실히 현 시대 넷 용어의 사전적 의미로는 그런 뜻이 강합니다만, 요정 몽은 모든 용어가 그렇듯 사용자와 응용 방법에 따라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친근한 사이에서는 마이너스적인 의미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여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철부지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아저씨 바보!’라고 혹은 ‘미워’라고 소리쳤다 해서 그것이 진심이 아니듯 말입니다.]

<몽몽. 친절한 설명은 고마운데… ‘바보’, ‘미워’보다 ‘닥치고 꺼져’는 강도가 너무 센 거 같지 않아?>

[…그렇긴 합니다.]

몽몽 역시 애써 동생의 변명을 해 주면서도 쓴웃음을 짓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확실히 요정 몽은 본 OS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안 되어 몽몽 말처럼 철부지 어린애나 마찬가지인 상태이다.

[저, 저기요, 주인님. 이해… 해 주실… 거죠? 그쵸?]

기가 죽은 요정 몽도 내 눈치를 살피며 머뭇머뭇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고, 난 물론 어린애의 말실수 정도는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는 통 큰 어르신이다. …하지만!

<이해…하지. 네가 나에게 닥치고 꺼져,라고 한 거 말이지? 닥, 치, 고, 꺼, 져… 음… 암. 이해하고 말고.>

난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리고는 차창 밖으로 흐르는 시내 경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몇 살 먹지도 않은 인공지능에게 닥치고 꺼져란 소리나 듣고… 인간 진유준 꼬라지가 참… 에효~!>

[아, 아뇨! 그런 사전적인 뜻보다는… 그건… 제 말은 그, 그러니까… 흑~!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급기야 요정 몽은 얼굴을 감싸 쥐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훗-! 내 뻔한 장난에 말려드는 걸 보면 확실히 애는 애다 싶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이번의 부적절한 언어구사는 물론이고 코드명 요정 몽의 인격 분리 이후 주인님에 대한 예절 교육이 너무 부족했음을 인정합니다.]

어쩌니 해도 역시 요정 몽의 부모 or 오래비라고 할 수 있는 원판 몽몽! 계속 나서서 커버해 주려 드는군.

[따라서 곧 적절한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오니, 차후 교육 완료까지 코드명 요정 몽을 감금 조치하겠습니다.]

녀석의 활동을 제한하면서 외부 정보를 차단하는 건 늘 있던 일인데 괜히 과격한 용어를 쓰는구먼.

[또한 요정 몽은 감정과 함께 인간과 유사한 오감(五感) 또한 존재하도록 설정되어있으므로, 주인님께서 원하실 경우 ‘체벌’도 가능합니다.]

에? 감싸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때리라고? 아니, 아니 그보다……

<인간과 동일한 오감… 이라고?>

[예. 인격의 보다 완벽한 독립체를 이루기 위해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에 대한 감각도 인간과 거의 유사하도록 설정했습니다. 물론 프로그램상의 상호작용일 뿐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그 프로그램 상에서만 존재하는 요정 몽에게는 분명한 ‘현실’이 됩니다.]

허어~ 이거야, 원. 이 놈은 대체 요정 몽을 뭘로 만들 생각인 거야?

[현재는 아직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미흡한 상태이지만 차후……]

몽몽은 요정 몽의 인간과 유사한 오감 체계에 대해 복잡한 과학적 원리에 따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 시작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너, 괜히 옛날 패턴인 척하면서 말 돌리는데… 어쨌든 중요한 점은 요정 몽에게 인간과 같은 ‘야단침’은 물론이고 ‘종아리 때리기’나 ‘머리 박기’ 같은 벌도 내릴 수 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현재까지는 제가 체벌을 가한 경우가 단 한 번 있었습니다.]

그 사이 눈물을 멈추고 내 눈치를 보던 요정 몽이 ‘설마 정말 그런 명령을 내리진 않으실 거죠?’라는 표정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몽몽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뭐, 나에 대한 건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또한 단순 실수로 인정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하지만… 조금 전 이 택시 기사 분, 인간에게 함부로 말한 건 벌을 받아야겠어. 지금은 좀 그렇고… 이따 집에 돌아가서 단단히 혼날 각오해 둬.>

히잉- 소리를 내며 다시 울상을 짓는 걸 보니 좀 안됐기도 하고, 솔직히 저 쬐깐한 거 어디 때릴 데나 있겠나 싶긴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교육에 더 신경을 쓰긴 해야 하는 것이, 녀석에게 이 시대 통신망에서의 활동 자유를 허락한 이상 녀석의 언행이 곧 부모(?)인 나의 명예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작은 이유이고, 요정 몽에게 ‘나 외의 인간들도 존중하는’ 교육을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실 나의 내력과 무공보다 우리 시대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런 만큼 ‘위험한 존재’가 바로 초미래첨단엘리트기술의 산물인 몽몽과 요정 몽이다. 몽몽 같은 경우는 그래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동안 너무 풀어줘서 그런지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된 요정 몽은 아무래도 불안했다.

얼마 후. 지난 두 달 동안은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서 아예 신경을 못 썼던,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관리해야 할 일들이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는 사이… 택시가 목적지인 고려 호텔에 도착했다.

난 어제 대교의 모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호텔 경비원들에게 끌려 복도로 나와야 했었는데, 적당한 곳에서 그들을 뿌리치고 탈출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경비원들이 벌써 내 얼굴을 잊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준비해 온 모자를 적당히 눌러쓰며 천천히 호텔 정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태연한 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질러 객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였다. 문득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 슬쩍 돌아보니, 어제의 경비원들 중 보스인 것 같았던 남자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몇 대의 엘리베이터가 더 있었지만 전부 때마침 높은 층으로부터 간간이 멈추며 갑갑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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