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13-2화 : 반쪽 짜리 슈퍼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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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13-2화 : 반쪽 짜리 슈퍼맨.(2)


2-4. 반쪽 짜리 슈퍼맨.(2)

공중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는 조금 덜 한 것 같기도 했지만 여전히 충분히 차갑고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호텔의 옥상.

나는 그 한 쪽 난간 앞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오늘은 어쩐지… 대교에게 거짓말만 한 것 같다. 겨우 눈물을 그친 그녀에게 돌아간다고 말해놓고는 난 결국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 몽몽… 여옥에 대한 조사는 아직이냐? >

[ 전산 시스템 상으로 가능한 조사는 이미 끝마쳤습니다. ]

< 확장 체제… 인력 동원 쪽은? >

[ 재력이 확보된 이상, 임시 유동 인력의 운영은 상시 가능하며 현재 원하시는 정보도 상당량 수집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보관련 업계의 특성상, 안정적인 고정인력이 확보되지 못한 현 시점에서는 정보의 수집 속도에 비해 신빙성이 낮습니다. ]

< …간단히 말해서, 뒷골목 소문을 모은 것뿐이 안된다는 거군. >

[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

어느 세계에서나 뒷골목 소식통들이 더 빠르고 정확할 수도 있는 거지만… 그 정보를 팔아먹는 인간들이 얼굴도 모르고 인터넷이나 기타 통신망을 통해서만 접촉해 오는 우리에게 얼마나 성실하게 전달을 해주는가가 문제이다.

< 하는 수 없지. 일단 그거라도 먼저 보자. >

몽몽은 소위 뒷골목 소식통들이 전하는 여옥이란 여자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다. 처음 경찰 자료만을 보았을 때도 심상치 않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긴 했었지만……

< 뒷골목에서 통하는 별명이… 마녀(魔女)…? 앞에 ‘홍콩의’나 ‘강철의’가 붙는 경우도 있지만… ‘미친’, ‘목을 자르는’… 이 딴 수식어가 붙는 경우도 많고… 이건 또 뭐야? 아이를 먹는…? 설마… 식인습관까지 있다는 건 아니겠지? >

[ 말씀 드렸듯, 루머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 그렇다고는 해도…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도 있지. >

이어지는 몽몽의 보고에 의하면 삼합회… 즉, 중국마피아의 총 연합에서도 상당한 발언권을 가진 간부급 인물이며 살막파(殺幕派)라는 독립 조직을 이끄는 보스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본래는 살막파 전대 보스의 첩이었는데 그가 죽자 본처는 물론이고 다른 후계자까지 제치고 조직을 장악했다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여자 살인마는 아닌 것 같고……

  • 당신은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몰라요.

대교는 조금 전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나의 대교… 비록 지금은 천년 전과 같은 무공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해도 그 때와 같은 영혼에 상냥하면서도 강인한 심성을 가진 대교가 두려움에 떨 정도라는 건 상대가 확실히 보통의 마녀 수준이 아니라는 반증일 것이다. 대교 말대로 난 여옥이 어떤 수준의 마녀인지,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 대교… 지금의 넌, 나 진유준이란 남자도 너무 몰라! ]

< …야, 요정 몽! >

[ 후후~ 주인님 앞에서 대교 님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으니… 여옥이란 여자, 이제 큰일났다, 큰일났어! ]

< 몽몽-! >

[ 예! 즉시 활동을 제한하겠습니다. ]

[ 에? 왜요? 제가 뭘 잘못 했다고… 앗! ]

요정 몽 녀석은 억울하다는 항변 도중 강제 구금(?)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그 녀석이 불쑥 내 흉내까지 내며 까부는 바람에 이미 분위기는 어느 정도 깨지고 맥이 빠지는 기분……

< 우이 쒸~! 그 녀석 버릇 좀 어떻게 안되냐? >

[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러나 이번만은 저도 요정 몽의 행동에 따른 결과에 긍정적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

< 뭐? >

[ 요정 몽이 의도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판단하여 주인님의 명령이 없었다 하더라도 일시 활동 제한 조치를 취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정몽은 주인님의 부정적인 CPK 발산 억제에 일시적이나마 기여했다고 판단됩니다. ]

< 부정적인 CPK 발산……? >

[ 그렇습니다. 주인님은 조금 전까지 매우 드물게 높은 수치의 부정적인 CPK… 즉 살기를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

< 그거야 뭐…… >

[ 주인님께서 대교님에게 해로운 대상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이해하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주인님의 평소 신념… 즉, ‘살인은 죄악이다’에 어긋날 정도였다고 판단됩니다. ]

< 그건… 지금의 난, 정말로 그 여자를 죽여 버릴 것 같다는 말이냐? >

[ 그렇습니다. 또한… 판단 근거에 불확실성이 많아 보고를 보류하고 있었습니다만, 최근 주인님의 ‘주변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 CPK 수치가 과거의 같은 기간 평균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

누군가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정상적으로 살아 온 사람이라면 그걸 실행까지는 하지 않는다. 난 물론 무림에서 그 선을 넘어선… 이미 정상적이라고 할 수가 없는 놈이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그 때의 나를 반복할 생각은 결코 없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 왔으면서도… 조금 전에는 진심으로 여옥을 죽여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또, 요즘 내가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까지 우울하게 만드는… 뭐, 그런 류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건… 아… 그러고 보니 요정 몽이 톡톡 튀어나와 분위기를 깼던 건 대부분… 확실히 그 때마다 내가 지나치게 심각해져 있었던 때…? 그런…가? 요즘 들어 더 자주 요정 몽의 소위 ‘분위기 깨기’를 겪어야 했던 건… 아니, 아니… 요정 몽이 함부로 나서는 횟수는 오히려 예전보다 적었던 것 같다. 내가 그 때마다 전보다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 그렇다는 건… 결국 요정 몽의 잘못이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의미……!

[ 주인님의 표면적인 언행에는 과거와 큰 차이가 없으며, 저의 CPK 측정은 저희 시대의 전문적인 정신에너지 스캔 시스템을 일부 재현한 것에 불과하므로 확실성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해당 사안에 대한 저의 판단에는 오류가…… ]

< 아냐, 몽몽. >

[ …… ]

< 니 말이… 맞는 거 같아. 내가 정신적으로 뭔가좀 삐걱댄 달까…?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어. 그래서 의식적으로 더 예전처럼 행동하려고 노력도 했고… 그런데 그걸 요정 몽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난 너희들 주인이랍시고… 어린아이가 썰렁한 집안 분위기때문에 불안해서 일부로 명랑한 척 하는 것도 모르고 야단만 친… 그런 어른이었던 것 같아. >

[ 주인님…… ]

< 쯧~! 이거… 아무래도 특별한 반성의 시간을 좀 가져 봐야겠는걸? >

물론 특별이고 안 특별이고 의식적으로 반성을 한다고 해서 뭔가 간단히 바뀌거나 개선될 리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적인 부분을 스스로 손보는 게 그렇게 쉬우면 정신과 의사들은 다들 숟가락 놓고 전업해야 할 노릇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최소한의 자기 반성, 하다 못해 분석이라도 해 봐야겠지……?

하아~ 근데 정말…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비화곡에서 극악서생 노릇을 하게 되면서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혹은 낙룡파로 향하는 도중에서의 첫 살인…? 아니면 고룡포에서 복수라는 미명 하에 적극적으로 적들을 사살했을 때부터…?

나는… 언제부터 사람을 해치는 일에…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살기를 품는데 익숙해진 걸까…? 바로 그 것 때문에 더욱 무림을 떠나고 싶어했었던 건데…

난 이미 늦어 버렸던 걸까……?

난… 그래, 적어도 고룡포에서의 일은 후회하지 않는다. 난 살인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만, 복수는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놈이다. 정당한 복수… 정당한 죄악…

모순이다. 모순인 건 아는데… 그래도 내게는 둘 다 옳다. 내가 스스로도 항상 불안해하던 내 성향은…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면 살인이라는 인간으로서의 최악의 죄마저도 합리화시킬 수 있다는 점… 그래… 싫지만 인정한다. 자칫하면 나도 원판 같은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거……

그래… 그래서 오늘 더욱 원판의 ‘나와 같다’라는 말에 민감했던 거고, 그 놈과 예의 게임이란 걸 하게 된 것이 불안했다. 놈이 원하는 건 어쩌면… 자신과 같은 사람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같게 만들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 주인님! 현재 시행 중인 운기조식의 중지를 권고합니다. ]

쳇…! 심화로 인한 주화입마의 위험이 있다는 경고로군. 운기조식도 자기 반성도… 지금의 나에게는 둘 다 급한 일인데… 제기, 이러니까 내가 점점 더 삐걱대지! 삐걱대고 삐뚤어지고… 근데… 썅~! 이게 뭐야? 그렇게 뺑이 치고 기껏 본래의 시대로 돌아왔는데… 어째서 여기서도 계속 무림에서처럼, 아니 그 때보다 더 쫓기듯 쉴 틈 없이 뭔가를 해결하러 다니며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거지? 원판…? 타임씨…? 누구냐!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지?

[ 주인님! ]

으윽~! 가, 가슴이… 제기랄~! X도! 생각도, 운기조식도 안 하면 될 거 아냐, 안 하면!

생각이 어디서부터 삐끗난 건지 몰라도 갑자기 빡돌아 버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몽몽이 말릴 틈도 없이 건물 난간으로 달려가 그대로 몸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군대 제대 후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오히려 꼬여만 가는 처지를 비관하여 투신 자살을…

할 내가 물론 아니고, 건물과 내 몸에 설치한 천잠사를 아직 풀지 않았었다.

후아아아아~!

사람들이 번지점프를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렇게 정신없이 고공 낙하를 하다가 몇 번 허공에 퉁겨지고… 순간적인 스릴과 그 후의 탁 트인 허공에서의 자유로움… 조금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밤은 자기 반성이고 나발이고 차라리 번지점프나 계속하는 게 더 좋을… 에… 그럴 것도 같은데… 쯧, 뛰어내리는 장소와 천잠사의 길이를 바꾸지 않은 게 실수.

< 하이~ 나, 또 왔어. >

아까와 똑 같은 허공에 매달려 넉살 좋게 전음을 보내는 나를 바라보며, 대교는 웃어야 할 지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 가신다더니……

< 그게… 생각할 것이 좀 있어서 위에 있다가 그냥… 음- 대교 너야말로 왜 아직 잠도 안 자고…… >

  • 훗~! 저도 생각할 것이 좀 있어서요.

대교는 결국 웃어 버리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난 좀 벌쭘하긴 했지만 결국 아까처럼 다시 대교가 서 있는 창가로 이동해 마주 섰고, 조금 망설인 끝에 물었다.

<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내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

  • …그래요. 당신 걱정을 하지는 않았어요.

우쒸~ 그렇다고 그렇게 노골적으로……

  • 당신 말대로 전 당신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어쩐지…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안심해도 될 것 같은…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에… 음, 그럼 그렇지.

  • 하지만… 역시 여옥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어요.

< 여옥이란 여자가… 그렇게 두렵니? >

  • 아버지께선 그녀와 결코 싸워선 안 된다고 했어요.

그녀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아니 눈앞의 모든 사람들을 물어뜯어 그 피와 살점을 먹고 살아가며 또한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천성을 가지고 있다고……

역시 마녀, 그 것도 미친 마녀라는 얘기. 사영까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어…? 잠깐? 대교가 아버지라고 해서 무심코 사영을 떠올렸지만, 그건 천년 전 얘기고… 지금의 대교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었다고 했다.

공식적인 문서에는 대교가 세 살인가 네 살인가에 고향 마을의 홍수 때 그랬다고 나와 있다. 대교가 설마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여옥과 악연을 맺어서 대교 아버지가 서너 살 짜리 꼬맹이를 붙들고 그런 살벌한 충고를 했었나…?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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