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19-2화 : 홍콩에서 날아든 SO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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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19-2화 : 홍콩에서 날아든 SOS.(2)


결국… 캐리어 자룡대주도 마지막에는 천음마군처럼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린 다음에 물러났지만, 나는 상당히 껄끄러운 마음으로 내 자리(바위)로 돌아가야 했다. 증명이나 다른 이유는 둘째치고, 앞의 두 명을 봐서는 일백마군들이 천년의 세월 동안 맥을 이어온 것까지는 좋은데 그 세월 동안… 아무래도 결정적인 한 가지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군기! 한 마디로, 저것들… 빠졌다. 선대들은 앞에서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던 마군황과 맞먹으려 들지를 않나 꼬리를 치지를 않나…! 이거, 이거…

“초사마군…! 이런 식의 확인 작업도 나쁘진 않은데…”

난 새삼 불끈 정글도를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난 아무래도 예전의 마군황 시험을 다시 하고 싶어!”

그렇게 말하며 마군들을 스윽- 돌아봤지만, 다들 여전히 침묵하며 슬며시 내 시선을 피할 뿐이었고 초사마군도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불가합니다. 이렇게 2대 마군황의 증명이 더해진 이상, 더 더욱 그렇지요.”

젠장…! 그럼 군기 잡는 건 다른 방식을 생각해 봐야겠군.

[ 저어~ 주인님! ]

< 뭐냐, 요정 몽. >

[ 주인님은… 보통 수하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좀 화가 나신 것 같아요. ]

< 그거야, 임마.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거니까 그렇지. 특히 이 사람들은 앞으로 원판과의 싸움에서… 아, 이런… >

에구, 군기 얘기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아까 몽몽에게 대가리 박아 시켜놓고는 잊고 있었다.

< 몽몽. 이제 그만 일어나라. >

[ 예, 예! ]

< 훗~! >

미안한 마음인데도 그만 웃고 만 건, 이제야 몸을 일으키게 된 몽몽의 앞머리가 괴이하게 엉키고 눌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근데 몽몽, 이 녀석… 웬 땀을 저리 비오듯 흘리고 있는 거지?

< 저기… 미안하다. 사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

[ 아닙니다, 주인님! 전 실수에 대해 합당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

< 그건… 음, 근데 그보다. 너… 체력 설정이 너무 낮게 된 거 아니니? >

[ 외견상 나이의 인간 소년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만… 저도 따로 운동을 하고 있으니 곧 좋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

호오~ 몽몽 이 녀석, 이제 보니 그냥 형식적으로 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요정 몽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자신도 구체적으로 인간화하고 있었던 건가?

“…천주!”

응? 아… 구양명 노인, 아니 구양 대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이제 어느 정도 천주께 승복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지하무림의 부활은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며, 천주의 증명 또한 모든 이들에게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하니… 선대의 귀물이 도착할 때까지… 부디 그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 난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난 어차피 며칠은 여기서 머무를 생각이었고…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고, 더 나설 자가 없다면 오늘은 이만 물러들 가도록 해. 물론 그 귀물이란 것이 도착하기 전에라도 또 따로 나서고 싶은 자가 있으면 얼마든지 와도 좋고 말야. 단, 장소는 이 곳으로 한정하겠어.”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천주. 누구라도 다른 일행분들 앞까지 나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내 명령을 확인한 구양 대주가 먼저 몸을 숙였고, 일부 조금 망설이는 자들도 있는 것 같았지만 초사마군, 천음마군, 자룡대주 순으로… 결국 이십사인의 지하무림 후계자들 전원이 몸을 낮추어 인사를 했다.

[ 우후후~ ]

< …넌 또 왜 웃는 거냐, 요정 몽. >

요정 몽 녀석은 인사를 마치고 일제히 물러나는 마군들 위로 호르릉~ 날며 외쳤다.

[ 재밌잖아요! 꼭 이상한 교주를 모신 신도들 같아요! ]

하긴…! 제3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다.

[ 후후~ 게다가 천주라고 하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

< …사실, 나도 좀 그래. 무림 시절에는 그래도 좀 덜했는데… 이 시대에서는 ‘천주’라는 말이 나보다 더 거물에게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음, 호칭을 좀 바꾸자고 그럴까? >

[ 어, 그럼 뭘로 하시게요? ]

< 뭐… 따로 생각한 건 없으니까, 니가 한 번 지어보던가. >

[ 와아아~ 정말요? 정말 제가 해도 돼요? ]

요 녀석에게서 새로운 명칭이 나왔다는 걸 알면 지하무림 식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뭐, 아무래도 내 썰렁한 네이밍 센스보다야 요정 몽이 좀 낫겠지?

[ 으음~ 본래 마군황이 가장 좋긴 한데… 이건 막상 부를 때는 어감이 좋지 못해요. 가급적 님자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는 조합의 단어로… ]

호오~ 제법 머리를 쓰는군.

[ 마왕님! 어때요? 마군짱! 아, 영어도 좋겠다. 이블 킹! 킹 데블! 킹코… 옹…은, 좀 아닌가? ]

< 몽몽! >

[ 예, 주인님! ]

< 얘 교육 좀 시켜. 아주~ 특별한 교육! >

요정 몽을 상대로 할 때만은 기본 설정으로 안 되기 때문일까? 은발 소년 몽몽은 모 만화의 초샤이#인처럼 사삭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요정 몽의 뒤에 나타나 뒷덜미를 터억 잡아 버린다.

[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장난이 너무 심했… 아~ 몽몽 오빠! 내가 오빠 벌받을 때 웃은 건 그냥…… ]

변명을 늘어놓는 요정 몽을 얄짤없이 끌고(?) 사라지는 몽몽. 음… 저 녀석도 저 모드일 때는 감정을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하는군.
그렇게… 중간에 약간, 끝에 왕창 분위기 저하가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기분 좋은 밤이다. 나는 천천히 조금 전까지의 일을 의식의 한 구석으로 밀어 놓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분하게 운기조식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기운… 역시 이 곳에서라면 내력의 완전한 회복도, 상처의 치유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신불산 수행, 두 번째 날.
난 새벽까지 이어진 운기조식을 끝내고 지극히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섰다. 그 기분으로 무심결에 크게 기지개를 켜… 윽! 으… 어깨 부상을 깜박했다. 운기조식 과정에서는 보통 육체적인 상처의 회복도 빨라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총상씩이나 되는 게 하루아침에 회복될 리가 없는 것이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문득 과거의 그… ‘꽃이 피자마자 지는 장소’를 떠올렸다. 그 곳에서 있었던 성승(聖僧)과의 일전… 그리고… 그때 내게 한 칼 먹였던 여자 살수… 그 여자 이름이 아마… 음, 그래. ‘홍초명’.
그러고 보니 이번에 총 맞은 건 그녀, 홍초명이 찔렀던 부위와 비슷한데… 차라리 똑같은 데 맞았으면 흉터가 하나 더 늘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슷한 부위의 부상이라… 하지만 이건 그냥 우연이 아니다.

뭐… 내가 인식하는 이 세계가 실은 가상의 세계이고 내가 어깨만 다쳐주는 건 주인공이어서…라는 상상 같은 건 말이 안 되고! 실은 몽몽과 나의 새로운 무공이 제대로 운영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내가 돌발 사태에 당황하여 정신이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적의 사격 포인트와 타이밍 예측에도 실수가 없었을 것이고, 내 몸이 무의 중에 그런 차선책… 최대한 급소가 적은 부위의 희생을 감수하는 위치로 움직이지도 않았을 테지만… 음, 결국 문제는 나 자신… 흉터를 더 이상 늘려서 어머니께 깨지지 않으려면 내가 더 정진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 훗~! 너무 당연한 생각을 되풀이한 건가?
하지만 자신의 무공을 의심하기 전에 자기 반성부터 하는 게… 어, 뭐지? 난 그렇다 치고 이런 새벽에 웬……

내가 걸음을 멈춘 것은 멀찍이나마 우리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민박집이 보이기 시작한 지점이었다. 길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싶어 그쪽의 보일 듯 말 듯한 샛길로 한 번 들어가 보니, 자연적으로 형성된 작은 공터에… 미령이가 있었다.

어제 성원이에게 한 말이 씨가 되었나? 미령이가 칼 연습하는 거 봤다는 건 뻥이었는데… 미령이가 정말 새벽부터 혼자 단검술을 수련하고 있을 줄은… 어, 그런데 저건 아무래도… 중국 전통 무술이 아닌 것 같지?
현대의 특수부대에서 교육되는… 살인술. 난 예전에 맛보기만 해 봤던 그걸 저 녀석은……

크게 몸을 회전시키는 동작을 하다가 날 발견한 미령이가 어색하게 동작을 멈추더니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놀랐잖아요! 뭐예요, 대체!”

“아~ 미안, 미안! 지나가다 소리가 들려서… 근데… 훗~! 아침부터 열심이네?”

“흥~! 비겁하게 남자가 여자의 수련을 엿본 건가요?”

“야. 그냥 지나가던 중이었다고 했잖아. 그리고… 내가 네 수련을 엿볼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정글도를 손바닥에서 약간 띄운 채 휘리릭~ 돌려 보이며 반문하자, 미령이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더니 한쪽에 벗어 놓았던 점퍼를 챙기기 시작한다.

“에구, 이거… 또 내가 실수했나? 난 그냥… 에… 사실 난 너한테 미움받기 싫은데 왜 자꾸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흥~!”

“그러다 코 나오겠……”

윽, 또 말실수! 그 덕에 미령이는 더욱 험상궂은 얼굴로 변해서 칼을 쥔 손이 부르르~ 떨기까지 한다. 으음…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녀석과 말할 때 자꾸 실수 아닌 실수를 하게 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저 녀석은 어째… 저렇게 매섭게 눈을 흘길 때가 더 귀여운지 모르겠다.

“저기, 미령아!”

큰길로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 다시 불러 봤지만, 녀석은 내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그… 내가 의뢰한 건은 어찌 되었냐?”

미령이의 신경질적인 걸음이 문득 멈추어진다.

“무슨 소식 없는 거야?”

“…있어요.”

미령이는 공과 사에서 잠시 갈등하는 표정이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마녀에게 일이 생겼대요. 조금 전, 그러니까 한 시간 전의 새벽에 일어난 일인데… 사겠어요, 이 정보?”

“당연히 사야지, 임마!”

“훗~! 가혜 언니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인데도요? 우리의 정보 이용료는 꽤 비싸요.”

“그, 그래? 하지만… 으음… 그럼 뭐……”

내가 망설이자, 미령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 혼잣말을 가장한 몇 마디를 잊지 않았다.

“짠돌이! 소심남!”

으윽! 저 것이……!

[ 주인님! 정보를 사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야. 그 돈은 되도록 아껴서 나중 모든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거야. 대교 일이 아니라면 함부로 쓰지 않는게…… >

[ 대교님과는 아니라도, 다른 분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

< 뭐? >

몽몽은 미령이 말을 듣고 검색을 해 봤는지, 생방송으로 진행 중이라는 홍콩의 뉴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전쯤 발생했다는 ‘인질극’에 대한 특보였는데… 거칠고 흔들리는 영상만으로도 현장의 급박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 학…교? 웬 학교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난리야? >

무장한 홍콩 마피아 조직원들이 보스의 탈옥을 기도하다가 실패, 경찰에 쫓기던 중 근처 학교로 난입하여 인질극을 벌이며 보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벌써 인질 중 몇 명이 사살된 상태라는……

< 나참! 그 여자 조직은 부하들까지 전부 아주 막가파인 모양이군. >

[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 이 사건에서 여옥은 ‘피해자’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피해자의 가족입니다. ]

< 뭐? >

몽몽은 화면을 리플레이 시켰고 아주 순간적으로 지나갔던 장면에서 멈추더니, 그 화면의 한 구석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나는 몇 배로 확대되고 필터링을 거쳐 확실해지는 화면에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하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마, 맙소사! 얘가… 얘가 왜 여기에! >

[ 서두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인님! ]

“그, 그래! 야! 미령아!”

“…왜요? 그새 생각이 바뀌었나요?”

“그래! 그러니까 빨리 무슨 일인지 알려 줘! 정확한 상황을 모두… 어서!”

뭐라고 더 이죽거리려던 기색의 미령이가 문득 표정을 바꾸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갑자기……”

왜 갑자기 이렇게 광분해서 씩씩대느냐고? 야 임마! 니 언니! 그래 비록 전생의 얘기지만, 하여간 니네 둘째 언니 소교! 소교가 지금 더러운 놈들에게 죽게 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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