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0-1화 : 급속 출격(1)
3-1. 급속 출격(1)
어깨 부상의 치유와 내력 보충을 위해 떠난 여행의 이틀째 날. 난 신불산을 이번 여행의 목적을 이루기에 최적지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곳에서 불과 하룻밤의 수행만을 마치고는 아침 일찍 스스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비록 원치 않은 군식구(?)였다고는 해도 엄연히 일행인 친구들과 하은이를 민박집에 떨구어 놓고 말이다.
“미령아!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정말 안되겠냐?”
나는 서둘러 차에 타고 외쳤지만, 차 옆까지 따라왔던 미령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린 정보를 취급할 뿐, 밀항 따위를 알선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누가 그걸 몰라? 그래도… 젠장!”
아무리 어쩌니 해도 G.M.에게 나 하나 밀항시킬 힘이 없을 리가 없었다. 미령이가 이렇게 비협조적인 건 ‘내가 왜 대교와 직접 관계도 없는 일에 광분하는지’를 설명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일 텐데…… 제기! 그렇다고 지금 녀석에게 진상을 얘기해 준다고 해서 간단히 납득하고 협조해 줄 리도 없잖은가. 뜬금없이 ‘네 전생의 언니가 위험하다’라는 얘기를 해준다고 누가… 쳇~! 하는 수 없지!
난 더 이상 상황을 설명하거나 부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에 그대로 차를 출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몽몽! 공항까지 최적코스 뽑아 줘. 물론 가장 빠른 항공편도!>
[알겠습니다.]
몽몽이 뽑아 준 코스대로라면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까지 1시간 안으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물론 이대로 공항에만 간다고 항공사 직원들이 어서 옵쇼~ 하고 날 반기며 홍콩까지 태워다 줄 리가 만무했다.
<몽몽! 구양명 대주에게 연락해 줘.>
어제 만난 지하무림의 후계자들 중 내게 자신의 연락처를 남긴 건 보천구룡대(保天九龍隊)의 구양명 대주와 초사마군, 두 사람뿐이었다. 초사마군도 내 편일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일 처음 만났던 구양명 대주 쪽이 더 확실하게 날 믿는 것 같아 그쪽을 택한 것이었다.
“아…! 구대주?”
“예, 천주! 간밤엔 편히……”
“저기, 미안! 지금 내가 인사 나눌 틈도 없거든?”
식전부터 노인장에게 전화 걸어서 정말이지 싸가지 없다싶긴 했지만, 난 단도직입적으로 ‘홍콩으로 지금 당장(혹은 한 시간 이내에) 출발해야 한다’는 용건부터 밝혔다.
“그리고… 난 지금 여권이고 뭐고 아무 것도 준비된 게 없어. 가능…하겠소?”
“…최대한 빨리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앞으로… 다섯 시간 안에는 나도 어떻게든 홍콩까지 갈 방법이 있기는 해.”
나는 몽몽이 검색해 놓은 홍콩 행 항공편 운행시간표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난 가는 비행기만 있으면 바퀴에 매달려서라도 갈 생각이니… 만약 그보다 빠르게 날 보내 줄 수 있다면 그리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여권이고 뭐고 따로 준비할 것도 없이 그냥 홍콩 공항에서부터라도 홍콩 안 어디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라도 준비해 줘. 그건 가능하겠지?”
“홍콩에서야 얼마든지… 하지만, 설마 저희들이 천주께 그런 식의 여행을 권해드릴 리가 있겠습니까. 어떻게든 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실 수 있도록 방도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좋아, 고마워. 그리고… 어쨌든, 만나기가 무섭게 곤란한 요구부터 해서 미안하군.”
“허허~ 별 말씀을 다……”
사람 좋게 웃는 구양명 대주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좀 더 운전에 집중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약간의(?) 과속을 거듭한 끝에 30분 만에 공항까지 도착한 나는 차를 입구 부근의 주차장에 세운 다음, 몽몽을 통해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상황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사건 발생 후, 이제 두 시간… 홍콩 영화 속에서야 이런 ‘마피아들에 의한 인질극’이 뻔질나게 나오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홍콩 언론에서도 꽤나 난리인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사건 현장 가까이로는 경찰들의 통제가 심해서 취재진들도 좀처럼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지 뉴스만으로는 처음에 본 영상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나야 비싼 돈 주고 의뢰한 G.M.이 있어서 그 사이 몽몽이 전에 개설해 놓은 우리 사이트로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상황 정보가 보내져 온 상태지만 말이다.
비싼 우리 G.M.님들의 정보에 의하면… 범인들이 처음 학교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학교의 기숙사라고 해야겠군. 어쨌든 희생자가 생긴 건 대부분 거길 장악하는 과정에서 생긴 거고, 놈들이 장악을 끝내고 안정화(?)로 들어간 후부터는 특별히 추가 사상자가 나오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태의 전망은 아주~ 나빴다.
우선 범인들은 애초부터 경찰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지들 두목의 석방)를 하고 있는 거고, G.M.에서 분석한 범인들의 성향을 보면 곱게 항복하고 자수할 놈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경찰 측 현장 지휘관은… 이건 문제라고 해야 할지 어쩔지… 소위 말하는, ‘타협을 모르는 강경파’라고 할까…? 임무 수행 중의 과도한 폭력 사용으로 피해자(범죄자)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나, 범죄 소탕 성과 또한 너무나 뛰어나서 주변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인 모양이었다.
후우~ 이 정보대로라면, 정말이지 여러모로 전형적인 영화 같은 상황이로군. 이게 영화라면… 주인공 타입(?)의 경찰께서 모든 일을 해결해 주길 기대하며… 난 그냥 관객으로서 구경하며 기다려도 좋겠지만…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사건이 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과연 영화에서처럼 저 과격 성향이라는 경찰께서 범인들만을 깔끔하게 제거하며 인질들을 구출해 줄까…?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가 우리 소교를 여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이기는 할까……?
나는 G.M.에서 추가로 보내 온 사진 중에서 다른 인질들 사이에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소교를 보다가 새삼 갑갑해져서 결국 화면을 끄고 말았다.
소교는… 제기… 이 지지리 복도 없는 계집애 같으니! 천년 전… 대교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대교 이상으로 나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며 살았을 아이인데… 그 시대에서는 물론이고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라도 나 같은 놈보다 몇 배 잘난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또 바랬었는데… 어떻게… 어쩌자고 저런……
[주인님! 발신자 불명의 전화입니다.]
<발신자 불명……?>
[예. 발신지는 일본입니다.]
나는 일단 차 밖으로 나오며 전화를 받아 보았다. 뜻밖에도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자룡대주 초상희의 후계자라는 여자였고, 그녀는 약간의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양대주께 연락을 받고 제가 급히 준비해 보았습니다. 천주께서 말씀하신 시간에서 절반 정도밖에 단축시킬 수 없을 것 같지만……”
절반…? 어떤 식으로 그게 가능한지 몰라도 기대 이상이군. 이 시대의 자룡대주는 운송업계(?)의 인물인 모양이지?
“죄송하지만, 저로서도 한국의 공항에서는 특별기를 운용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됩니다. 따라서 이곳 일본까지 먼저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의 김해공항에 계시죠? 지금 즉시 그곳의 국제선 입구로 가시면 제가 보낸 사람이 이십 분 후 출발할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바로 탑승하실 수 있게 해 줄 겁니다.”
“좋아. 그럼 오키나와에서도 내가 갈아타야 할 비행기까지 최대한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후후~ 그야 물론이죠.”
음… 상관 말을 끊어 먹는 게 맘에 안 들기는 하지만,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한 것 같으니 뭐라 하기도 좀 그렇군. 하여간… 군기는 천천히 잡던지 어쩌던지 하고 지금은 얌전히 신세를 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재빨리 정글도와 기타 몇몇 장비를 챙기고 차를 떠나기 시작했을 때였다.
[주인님! 사건 현장의 상황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뭐?>
[조금 전 건물 내에서 총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아직 GM을 비롯한 어떤 루트로도 구체적인 정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경찰 측에서는 아직 진압 병력을 투입하지 않은 상태이며 범인들로부터도 상황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내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자룡대주가 말한 것처럼 국제선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 승무원이 별다른 절차도 없이 날 안내해 비행기에 태워주었기에 일반적인 승객으로서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과정조차도 갑갑할 지경이었다.
슈퍼맨처럼 내 힘으로 단숨에 날아갔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쯧! 그렇다면……
“…자룡대주, 미안해.”
“예?”
비행기가 출발하자마자 다시 전화를 해서 자룡대주에게 먼저 사과했다.
“애써 태워 줬는데 미안하지만… 나, 이 비행기… 납치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