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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20-2화 : 급속 출격(2)


“대체 무슨 말씀을……”

“암튼, 그렇게 알고 일정을 조금 더 앞당겨 줘.”

나는 전화를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VIP석은 맨 앞좌석이라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조종실로 향하는 입구가 있었지만, 낯익은 여승무원이 상냥한 얼굴로 웃으며 살짝 막아섰다. 그녀는 조금 전 공항에서 나를 안내해 비행기 안까지 일사천리로 통과시켜 줬던 여자였다. 다른 여승무원들보다 나이가 많고 복장도 다른 것이 일반 스튜어디스가 아니라 무슨… 매니저라던가? 하여간 조금 높은 직책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내가 ‘특별한 승객’이어서 그런지 따로 할 얘기가 있다고 하니 그녀도 순순히 조종실 쪽 복도, 승무원들의 공간까지 허용한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했다.

“아무래도, 기장과 좀 만나야겠소.”

“무슨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불편하다기보다… 하여간 기장에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럽니다.”

“죄송합니다. 운행 중에는 누구라도 곤란……”

“이봐요! 내가 누군지 혹시 알아요?”

“아… 아뇨. 상부로부터 모든 절차를 무시해도 좋으니 목적지까지 최대한 편안하게 모시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만, 누구신지는……”

“난……”

‘그 상부의 상부인 사람’이라는 말을 할까도 했지만, 여자는 이미 경계의 빛과 함께 ‘아무래도 짜증나는 타입의 손님이로군.’ 정도의 기색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역시… 어설픈 권력층 흉내는 관두는 게 나을 듯싶다.

“실은, 나쁜 놈이거든요.”

“예?”

“내가 좀 바빠서… 음, 하이재킹(hijacking)…이던가? 그걸 해서라도 빨리 좀 갈까 해서요.”

그녀는 순간적으로 놀라는 것 같았지만, 곧 푸웃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결국 웃어버리는 그녀와 달리 나는 새삼 심각한 기분으로 주변의 기색을 확인했는데, 이륙 직후라 그런지 다행히 모든 승무원들이 나가고 없는 것 같았다.

“저기… 농담 아닌데.”

“호홋~ 그럼 더욱 곤란합니다. 어쨌든 기장님께는 제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빨리……”

나는 더욱 미안해지는 마음을 누르며 그녀의 팔에 손을 뻗어 마혈(痲穴)을 잡았다.

“미안해요. 내가 지금… 조금 빠른 정도 가지고는 안 되거든요.”

나는 웃는 표정 그대로 굳어진 그녀를 부축해서 복도 옆의 의자에 앉힌 다음, 조종실로 향했다. 그리고 몽몽을 조종실 안으로 통하는 마이크에 대고 조금 전 매니저 여자의 목소리를 내게 했다.

비행기 이륙, 27분 후.

너무나 간단히 하이재킹에 성공했던 테러리스트(?)… 나 진유준은 기장과 부기장을 위협하기 위해 들고 있던 정글도를 다시 등에 맸다. 내 요구대로 총알 택시, 아니 총알 비행기로서 대한해협을 건너와 버린 비행기가 비로소 차츰 속도와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이, 이봐요! 저… 정말 이걸로 끝난 겁니까?”

“예. 두 분에게는 정말 미안합니다.”

나는 정중히 사과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지만, 두 사람은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그, 그러니까! 정말… 단지 빨리 오기 위해 하이재킹을 했단 말이요?”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난 비행기가 해당 지점을 통과할 때, 좀 전에 말 한 대로 할 거니까 대비하도록 해요.”

“맙소사! 정말 할 생각이요? 미쳤소?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순간적으로 많이도 묻는다만, 난 미안한 마음에 일일이 답해 주었다.

“정말 할 거고, 안 미쳤고… 그리고 난 그냥 백수예요. 본래 백수가 더 바쁘잖아요.”

나는 기막혀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조종실을 빠져나왔다.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비정상적이었던 비행기의 속도와 승무원들의 불안해하는 기색을 눈치챈 사람들을 중심으로 술렁이고 있던 승객들… 그리고 그들보다는 좀 더 알기에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날 바라보는 승무원들 사이를 통과해 가려니까 정말 악질 테러리스트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니, 저 사람들에게는 내가 악질 승객이 맞긴 하군. 게다가 마무리로 미친 짓을 한 번 더 해야 하니……

  • 아아~ 저는 이 비행기의 기장, ###입니다.

내가 출구 앞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돌아보았을 때, 미리 얘기해 준 대로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조금 전까지 ‘저놈이 혹시…?’라는 표정으로 내게 모여들던 시선들까지 일제히 거두어졌다. 다들 안내 방송대로 비상사태에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그래도 그들을 향해 사과했다.

“죄송해요! 쏘리~! 뚜에부치~! 스미마셍~!”

다국적 사과 소리를 연발하고 있는 사이 몽몽이 탈출 타이밍을 알렸고, 나는 즉시 문을 열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앗~! 예상보다 몇 배의 무서운 기세로 내 몸은 비행기 밖으로 빨려 나갔다.

으와아아아아아우우우우우~

소리로 표현하자면 결국 그런 단순 비명의 이어짐밖에 될 수 없을 것 같은…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하던 하늘이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날 삼켜 버리는 듯한 기분이랄까?

“몰~모~ 흡!”

으… 무심코 입을 열었더니……

< 몽몽…! 빨리 예상 낙하지점 파악해! >

[ 예, 주인님! 하지만 그 전에 주인님께서…… ]

< 으~ 그야 나도 그러고 싶지이~! >

나는 며칠 전 대교 앞에서 벌였던 고공쇼의 경험을 되살리며 최대한 몸을 가누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보다 더 전… 그러니까 군대 시절에도 낙하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있지만 그 땐 낙하산을 탄 거고 지금처럼 맨 몸은 아니었다.

에구구~ 그냥 낙하산 하나 얻어서 뛰어 내릴 걸 그랬나? 그랬다면… 으~ 아니지, 아니야. 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이 지랄하는 건 1분 1초라도 시간을 줄이기 위함! 사치스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 안돼! 정신차리자, 진유준! 으아아~ 그래도 이건 정말 돌아버리겠… 아니, 정말 계속 정신없이 돌고만 있잖아! 이걸, 이걸 멈춰야 하는데……

별로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며 발악을 하던 내가 간신히 몸을 가누는데 성공한 것은 몽몽이 보여주는 숫자가 3000정도를 가리킬 때, 즉 3000피트 상공에서였다. 첫 스카이다이빙에서 이 정도면 훌륭한 거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보다못한 몽몽이 지시하기 시작하는 대로 몸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뿐이었다. 난 아무래도… 스카이다이빙이란 걸 너무 얕봤었나 보다.

[ …수면과의 충돌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5초 전, 4, 3, 2…… ]

카운터의 감소와 함께 검은(?) 물의 벽이 순식간에 눈앞을 덮쳐오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결국 요란하게 쿠콰왁-!? 근데… 이 것도 또 장난이 아니다. 하늘에서보다 더 단단한 호신강기를 운용하며 다이빙 선수처럼 정확한 입수자세를 취한다고 했는데도 충격이 거의 아스팔트 바닥과의 충돌 수준이었던 것이다.

후우~ 그런데… 낙하력에 의해 깊이, 깊이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바다 속은… 이건 또 뭐라고 해야 할지…! 격렬한 괴물의 입 속을 지나 음험한 괴물의 내장 깊숙이 쳐 박히는 느낌이랄까…? 처한 상황 때문이겠지만, 꽤 멋지다고 들었던 오키나와 앞 바다의 첫 인상은 내게 그리 좋지 못했다.

어쨌든, 그 바다의 수면 위로 올라와 보니 몇 킬로 정도 떨어진 동쪽으로 수평선 대신 자룡대주가 말했던 옛 공군 기지의 전경이 보이고 있었다.

[ 목표했던 지점에서 1.4KM 정도 벗어난 지점입니다. 첫 고공낙하인 점을 감안하면 성공적이었다고 판단됩니다. ]

< 땡쓰다 몽몽. 네 도움이 아니었으면 이 것도 어림없었을 거야. 근데 이 지점을 자룡대주에게 알리는 건…… >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내가 예상했던 방향과는 반대에서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차츰 커져 가는 굉음과 함께 주변의 파도 모양이 일그러지고… 점점 더 거세게 주변의 바닷물을 밀어내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헬기 한 대…! 그 입구 쪽에 상체를 내밀고 있는 것은 자룡대주였다. 떨어지는 사이 몽몽이 낙하예상 지점을 전송하기도 했겠지만, 이렇게 빠르게… 아니 오히려 지나쳐갔다가 다시 오는 걸 보니 그녀 역시 나름대로 위치를 추정하고 마중을 나와 있었던 모양이다.

몇 분 후. 나는 헬기에서 내려트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헬기 바닥에 앉았다. 아직도 공중인 건 마찬가지인데도 어쩐지 지상에 안착한 것처럼 안도감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설마 했는데 정말 이런 짓을 하시다니!”

자룡대주는 어이없다는 듯 소리치면서도 준비해 온 대형 모포로 내 몸을 빈틈없이 감싸주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도, 이로서 약간이지만… 3, 40분 정도는 추가 단축한 셈이지?”

“그 짧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장을 협박하고… 2만 피트에 가까운 상공에서 뛰어내리셨다는 겁니까?”

2만 피트…! 그래, 지나고 나니까 새삼 아찔하군. 내가 먼 정신으로 그런 건지 원.

“그래. 그리고 이젠 당신이 능력을 보여 줄 때지. 헌데… 당신 입으로 말했던 약속을 지키려면 앞으로 30분 정도 후까지 날 목적지에 보내 줘야 하는데, 정말 가능하겠어?”

“예, 예? 30분이요? 전 본래 2시간 30분 정도를 말씀드렸잖습니까! 본래 예정대로라면 천주께서 이 곳에 도착하는데 걸렸을 시간은 1시간 30분! 그러니까……”

“이봐, 이봐! 내가 구양대주에게 시간을 말할 때는 공항에 도착하기 전이었어. 그리고 그 후 김해공항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이 30분이지. 그 시간을… 계산에서 빠트렸던 모양이군.”

“그, 그런……”

자룡대주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긴… 자룡대주가 빠트렸다기보다는 전달과정에서의 오류인 셈이겠지만 말야.”

사실, 나도 30분이란 시간은 너무 무리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도 굳이 짚고 넘어간 건 역시나 아쉬움…! 조금 전엔 짐짓 당연한 일을 한 척을 했지 만, 솔직히 팔자에 없는 하이재킹에다 2만 피트에서 맨땅, 아니 맨 바다에 헤딩하는 등 별 짓 다했는데도 단축 시간이 고작 3, 40분이라는 건… 으으음~

“거 참…! 마침 내가 단축한 시간을 빼면 결국 자룡대주의 계산대로의 일정이 되는군. 아니, 그래도 10분은 단축을… 에… 근데 10분은 하이재킹까지 안 했어도… 아니, 아니… 모든 걸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안되지. 이러니 저리니 해도 결국 처음 출발할 때 각오했던 시간보다 절반이 단축되는 건 맞는 거니……”

그렇게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며 중얼거리고 있자니, 자룡대주가 불쑥 내 눈앞으로 자기 얼굴을 디밀었다.

“뭐…야?”

“마군황 부활이 예고된 시대에 자룡의 이름을 받은 자로서… 반드시 천주의 첫 번째 명령을 온전히 시행하겠습니다!”

“그, 그러든…가.”

내가 조금 당황한 것은 그녀가 조금 전까지의 당혹한 표정이 아니라, 그 옛날 나와 맞설 때의 초상희처럼 뭔가에 불타오르는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그 사이 헬기는 벌써 기지에 거의 다와 가고 있었다. 내가 납치했던 비행기 기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 기지가 아닌 기지는 몇 년 전 부대가 이전되며 항공기 제작 회사에서 인수한 ‘옛 기지’라고 한다. 우리가 탄 헬기는,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어딘가 군의 냄새(?)가 나는 영내로 들어갔고, 곧 ‘I’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그려진 격납고 앞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닥쳐욧! 내가 전부 책임 질 테니 닥치고 당장 출발 준비하란 말예요!”

자룡대주는 헬기가 멈추기도 전부터 전화기를 들고 그런 식으로 악을 쓰고 있었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 헬기에서 훌쩍 뛰어내려서는 모습도 그렇고… 군대의 장식품 같은 존재가 아니라 당당한 전장의 지휘관 같은 분위기랄까? 그리고 그런 그녀의 기세에 밀리는 것처럼 아이맥스 영화관의 스크린만큼이나 크고 육중한 격납고의 문이 좌우로 열려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격납고 크기에 비해 상당히 작다는 느낌의 항공기 한 대…! 그러나 크기 같은 건 둘째로 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저 자태는…

“작은… 콩코드? 아니 콩코드와는 좀… 다른…가?”

초음속 항공기 콩코드…! 그건 자동차 ‘키트’ 이상으로 내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키트와 달리 현실에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현실 같지 않았었던… 그 콩코드보다 훠~얼씬 신형일 것이 분명한 기체를 직접 눈앞에서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쯧~! 지금은 그런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지.

“후후~ 외형만 조금 다른 정도로 보시면 섭섭하죠. 가칭, 화이어 드래곤(FIRE DRAGON)! 본사의 SBJT 계획에 의해 마하 2.7 까지도 가능하게 설계 된 걸작이죠! 오늘 그 0호기를 천주께 소개시켜 드릴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초음속 비즈니스용 제트 여객기 (SUPERSONIC BUSINESS JET TRANSPORT)! 세계 탑 클래스 경제인들을 매혹시킬 저 레이디가 오늘 천주님을……”

“자룡대주!”

“예, 천주!”

“대충 알겠으니까, 얼른 가자, 좀.”

자랑스러움에 가득 찼던 자룡대주의 얼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뀌게 된 것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곧 준비가 끝나는 데로……”

“미스 제이! 당신 미쳤어?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응?”

이번에 자룡대주의 말을 끊은 건 내가 아니고, 저 따끈따끈한(여러 의미로) 화룡(火龍) 아가씨(?) 옆에 서 있던 백인 남자였다. 잿빛 머리에 상당히 괴팍스런 인상을 가진 사십 대 남자였는데, 하여간 상의와 하의가 연결된 은빛 작업복을 입고 있는 그가 바로 조금 전 자룡대주와 통화한 사람인 듯했다.

“아까는 회장 전용기를 멋대로 쓴다더니! 이번엔 우리 레이디야? 내가 오늘 레이디를 다시 띄우려고 몇 주나 고생했는지 알아?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대체 최신예 기종 테스트를 뭘로 생각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상대가 아무리 여자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세로 다가오던 남자는 뒤늦게 날 발견하더니만, 마치 발동 걸리기 직전의 짐 캐리와 같은 표정이 되어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미스, 제이…? 당신 설마… 이 지저분한 일본 놈 때문에……”

쯧…! 지금 나는 바다에 빠졌다가 겨우 기어 나와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는 몰골이니 외모에 대한 표현까지야 그렇다 쳐도… 일…본 놈~? 나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모포를 던져 버리며 그에게 한 발 다가섰는데, 그 전에 남자는 이미 으윽- 짧은 비명과 함께 한 쪽 다리를 쥐고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무력까지 쓰려던 건 순간적으로 스쳐갔던 생각일 뿐이었지만, 내 대신 정말로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 버린 건 자룡대주였다. 그녀는(본명이 미스 제이?) 양손을 허리에 대고 그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브라~운! 크리스티 브라운 박사! 잘 들어요! 이 분은 형편없지도 않고, 일본인도 아니에요! 더구나 당신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신분을 가진 분이지! 알겠어요?”

“그, 그렇게 대단하시다? 이 일본 놈이?”

브라운 박사라 불린 백인 남자는 정강이의 아픔보다 기가 막힌 게 앞서는지 말끝에 핫~! 소리를 내며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자룡대주는 상체를 숙여 그의 귓가에 자신의 입을 가져가 뭐라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

“그, 그건……”

브라운은 그녀의 말이 독침이 되어 찌르기라도 한 것처럼 급격히 기가 죽더니, 곧 몸을 일으켜 화룡 아가씨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룡대주는 그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면서도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소리쳐 지시하며 출발 준비를 마무리 하는 걸 보며 피식 웃었고, 이어 내게 우아한 동작으로 상체를 숙이며 두 손을 화룡의 출입구 쪽으로 뻗어 보였다.

그로부터… 32분 후.
그 사이에도 화룡 기내에서 운기조식에 몰두해 있던 나는, 몽몽이 목적지 도착을 알렸을 때에야 눈을 뜨고 일어났다. 과연… 마하 2.7의 위력. 이젠 속도를 현격히 줄인 미스 화룡의 창 밖으로 동양의 진주라 불린다는 홍콩이 보이고 있었다.

“이 것 봐욧! 결국 몇 분 늦었잖아요!”

자룡대주였다. 그녀는 출입구 부근에 서서 브라운 박사에게 삿대질까지 해가며 화를 내고 있었다. 브라운 박사도 지지 않고 침을 튀겨가며 맞받아 치고 있었다.

“지난 전에는 분명 마하 2.5 이상 무난히 돌파했었는데 이 소심한 남자가……”

“뭐가 무난히야! 내가 그 때 말썽 난 부품들은 전부 교체해야 한다고 했잖아!”

“누가 교체하지 말라고 했나요? 다른 기술진들과 당신이 교체하자는 부품이 다르니까 문제인 거죠!”

“미스 제이! 당신 지금 그 멍청이들과 날 똑 같이 취급하는 거야?”

계속해서 오가는 소리로 보아 그가 중간에 기체의 안전을 위해 더 속도를 높이지 못하게 했던 것에 대한 논쟁… 아니, 그냥 말싸움인 듯 했다. 승객은 상당히 만족했건만 정작 승무원들이 불만인 상황이랄까? 난 결국 끝없이 말싸움을 이어갈 것만 같은 두 사람을 말릴 겸해서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 때 몽몽이 다시 사건 현장의 소식을 알려왔다.

[ 조금 전… 다행히 소교님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다시 두 명의 인질이 살해된 것으로 공식 확인되었습니다. 범인들은 그 두 명의 인질이 탈출을 시도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GM의 정보로는 범인들이 내분을 일으켜 주모자에게 반발했던 한 명이 살해되는 과정에서 인질들까지 희생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해당 사태로 인한 구체적인 정황변화는 아직…… ]

“이봐, 미스 제이!”

음성에 약간의 내력을 담아 자룡대주를 부르자 브라운 박사까지 흠칫 놀라며 말싸움을 멈추고 날 돌아보았다.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들어 양쪽으로 비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두 남녀가 재빨리 양쪽으로 물러난 출입구 앞에 서서 구양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양대주…! 다시 계획 변경이야. 공항에 대기 중인 이들에게 사건 현장으로 직접… 그러니까, 구룡(九龍, Kowloon)의 에든버러(Edinburgh) 고등학교 부근 강가로 오라고 해줘. 지금 당장!”

그런 명령을 전달하고 전화를 끊은 내가 자룡대주를 돌아보자, 그녀는 눈치 빠르게 벌써 조종사에게 항로와 고도를 변경하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후 갑자기 리모컨을 들어 가장 가까운 좌석에 세트되어 있는 TV를 켰다. 자룡대주는 TV의 속보 뉴스 화면을 바라보며 웬지 시니컬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구룡의 에든버러 고등학교…! 이제 보니 이 사건 현장에 가시려는 거였군요.”

“…그래.”

“후후~ 예로부터 남자가 앞을 보지 않고 돌진할 때는 사랑하는 애인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전설의 마군황께서도 그런 건가요?”

“…애인이 아니라 동생이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자룡대주는 내가 친동생 얘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표정과 태도가 일변하여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그런 오해를 풀어 줘야 할 필요나 여유도 없기에 난 그냥 말없이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려 버렸다. 비행기의 창을 점차 채워 가고 있는 홍콩의 전경, 그 중에서도 소교가 미친놈들에게 잡혀있는 구룡섬이 빠르게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나는 새삼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출입문 개방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몽몽이 타이밍을 알려주는 카운터 숫자가 30부터 찰칵, 찰칵 줄어들기 시작했다. 29, 28, 2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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