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7-2화 : 연옥도(煉獄島) I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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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27-2화 : 연옥도(煉獄島) II.(2)


“크게 널을 뛰기 시작한 배가 진정하기를 기다릴 틈이 없어서 자룡대주를 구양대주에게 맡기고 뱃전의 밧줄 하나를 집어들었다. 나는 방금 올라온 쪽으로 기울어졌던 배가 반대로 솟아오르는 순간 그 힘에 몸을 싣고 선장이 빠진 쪽으로 뛰었다.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패닉 상태에 빠질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선장은 그래도 바다 사나이답게 헤엄칠 정신은 있는 것 같았다.

“상어는 내가 막을 테니, 어서 올라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선장에게 밧줄을 쥐어 주었다.

여자는 안아서 구해주고 남자는 밧줄만 주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남녀차별 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여기서 흐름을 끊지 않으면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배 자체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 솔직히 남자인 선장을 안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흠! 암튼!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하면서 깊게 호흡을 들이마신 후, 수면 아래로 몸을 가라앉혔다. 바로 아래… 깊숙한 곳으로부터 지옥의 입구 같은 아가리가 빠르게 커져오고 있었다.

저렇게 크니 괜찮을 것 같기는 하지만, 몽몽을 생각해 넓게 베는 것보다는 타격 범위를 좁힌… 그래, 낙수사암결! 그걸로 적당한 곳을 꿰뚫어 잡자.

성공하면 물 속 괴물을 물의 이치를 극대화한 절기로 해치운 셈이 되려나…? 좋아, 타격 지점은……

나는 예전 연옥도에서 직접 확인한 적도 있었던 상어의 두뇌 부분을 떠올리며 그 지점을 향해 정글도를 뻗었다.

추와악~!

낙수사암결 특유의 도강이 뻗어나가는 모습은 마치 초음속 제트기가 연속으로 음속을 돌파하는 궤적과 파장을 묘사한 그림과도 같았다. 물 속이기 때문에 더욱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장관이라고 할까? 그런데……

읏! 맞았지만 조금 빗나간… 아니, 놈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움직여 직격을 피한 건가?

나는 황급히 헤엄, 아니 내력을 동원한 수공을 써서 놈의 돌진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놈의 아가리로부터 충분히 피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지만 놈은 결정적인 순간 또 교묘하게 고개를 비틀어 단숨에 나의 오른쪽 다리를 아가리 속에 넣었다.

썅!

놈의 아가리가 닫히는 것과 내가 순간적인 가속을 내며 다리를 빼낸 건 거의 동시였다. 눈으로 확인할 겨를은 없었지만 무릎 아래쪽이 놈의 칼날 같은 이빨에 긁혀진 것 같았다. 다시 놈의 아가리가 벌려지는 순간 나는 천근추로 빠르게 아래쪽으로 피했다. 이번에는 물론 멀리 달아나려는 게 아니라 공격지점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역시 낙수사암결의 초식으로 아래 턱 밑에서부터 뇌까지 관통시켜 버리… 이, 이런! 또 조금 빗나간 것 같다! 이 자식! 운이 좋은 거야, 아니면 의도적으로 피하는 거야? 으윽! 몸을 가누기가… 거리를, 거리를 둬야겠다.

치명상은 아닐지 몰라도 연속으로 낙수사암결에 몸에 구멍이 난 놈이 고통으로 요동치기 시작했고, 거대하고 강력한 몸체가 일으키는 물결은 그야말로 폭풍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더 아래쪽으로 피했다가 크게 우회하여 놈과 비슷한 높이로 올라가야 했다.

쳇! 만만치 않군. 개인적인 원한은 없으니 고통이라도 줄여주려고 했지만 이렇게 되면… 어? 또 도망치려는 건가? 젠장! 초거대 백상어 씩이나 되는 놈이 왜 이렇게 투지가 약해?

나는 급히 배로 헤엄쳐가 단숨에 갑판 위로 뛰어올랐다.

“달아난다! 다시 추적해!”

“존명!”

“좀 전의 공격으로 입은 피해는?”

“선체가 약간 손상되었지만 물이 새는 곳은 없는 등,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좋아, 하지만 엔진실 한 번 점검해 보라고 해.”

“존명!”

으음… 이런 경우에는 꼭 엔진에 문제가 생기니까 내린 지시지만, 영화도 아닌데 정말 그런 공식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엔진엔 이상이 없답니다. 연료도 아직 충분하고요.”

그래, 그래야지. 좋아. 이 정도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면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놈이라면 저 통을 달고도 심해로 도망칠 힘이 있을 법하지만, 통에 미리 몽몽보다 강력한 전파를 발신하는 발신기를 붙여 놓았으니 앞으로는 어지간한 심해까지도 추적이 가능하니……

“처, 천주! 여기 문제가……”

윽,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레이더가… 아니, 그뿐 아닙니다. 나침반이라던가 모든 계기가 이상해지고 있습니다.”

우이 쒸~! 내 이럴 줄 알았어. 엔진이 괜찮으니까 레이더가 말썽이라 이거지?

“뭐야? 역시 놈의 공격 때 상한 건가? 수리할 수 없는 거야?”

“저… 그게 아니라……”

응? 자룡대주, 이 여자… 왜 그렇게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시계…? 자기 손목 시계는 왜 보라는 거야? 어? 전자시계의 숫자가 제 멋대로 바뀌고 있잖아?

“또… 또 시계 가진 사람?”

내가 묻자 선장과 선원이 자기들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의아한 표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 여기가 무슨 버뮤다 삼각지대도 아닐 텐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거야? 어, 얼씨구-? 저건 또 뭐야? 구름…? 구름이 바다에 내려앉아 있잖아? 아, 아니 가만…? 저긴 설마……

“하늘의 구름이 내려왔다고 착각할 정도로 넓은 지역을 자욱한 물안개가 덮고 있어 수평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상어 놈은 분명 그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저기가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그 곳, ‘해신묘’라면 레이더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방향 감각도 없는 상태로 놈을 추적할 수 있을 만한 해역이 아니다. 아니, 놈을 추적하기는커녕 이 배가 먼저 그 옛날 목격했던 유령선 꼴이 되기 쉬웠다. 그렇다면……!

“속력을 최대로 올려!”

“안됩니다!”

“뭐?”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이 아까 바다에 떨어졌을 때보다도 겁을 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저 곳은……”

“알아! 해신묘!”

“예? 저는 용신전이라고… 아, 아무튼 저도 처음입니다만! 뱃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감히 용신전에 들면 무조건 죽는다고요!”

“닥치고, 속력 빨리 올려! 저기 들어가기 전에 따라잡으면 되잖아!”

“하, 하지만……”

“에이 쒸! 용 같은 게 있으면 내가 때려잡아 줄 테니 빨리 가란 말야!”

선장은 내 황당한 장담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선장을 제압해 놓고 내가 직접 배를 몰아야겠… 아, 구양대주…? 저 양반이 먼저 그렇게 해 주네? 다른 선원은 선장처럼 개겨 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 같고……

“좋아! 어떻게 든 따라잡아 줘! 저 안개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최대한!”

“존명!”

그래… 지금은 뭐라고 불리든, 저 곳이 해신묘가 맞다면 수심이 깊지 않기 때문에 상어 놈도 그 덩치로는 거의 수면 가까이 올라와서 지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놈이 저 안에 들어가기 위해 몸을 드러내는 그 순간이 유일한 찬스다.

나는 정글도를 등에 단단히 매고 갑판에 남은 통을 하나 하나 두드려보았다. 당연히 다 같은 규격과 강도의 합성수지 재질이겠지만, 그래도 기분 상 가장 튼튼하게 느껴지는 통에 내 몸을 묶었다. 그리고 그 통과 연결된 작살을 잡았다. 아까는 급히 던지느라 내력을 충분히 쓰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보다 안정적으로 최대한 끌어올리며 작살 자체에도 내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배는 점점 더 속도를 높였고 부서진 수면의 파편들이 바람과 함께 갈수록 더 거칠게 내 얼굴과 몸에 부딪쳐 왔다.

< 구양대주! 자룡대주! 잘 들어! 내가 이걸 던지고 나면 즉시 엔진을 꺼! 절대로 배가 저 안에 들어가면 안돼! >

< 존명! >

< 조, 아, 알겠습니다! >

< 그리고… 이 안개를 기준으로 반대편으로 돌아가. 배의 기능이 다시 회복되는 지점으로 돌아가서 대기하란 말이야. >

< 존명! >

< …… >

음, 자룡대주의 대답이 없다. 이번에도 안 된다고 소리칠 생각인가?

< 알겠습니다. 이제… 속하들은 해룡의 시체를 구경할 수 있겠군요. >

으, 응? 뭐야? 말리면서 귀찮게 하지 않는 건 좋은데, 이 여자가 그런 농담을 저렇게 진지하게 할 줄이야!

< 아, 알겠어. 있으면 꼭 잡아서 자룡대주에게 멋진 기념품을 선사하지! >

말이 그렇지, 정말 용이 있고 잡을 수도 있다면… 용가죽 핸드백은 당근 대교에게 줘야 쥐, 암!

마지막 농담을 끝으로 나는 모든 정신을 정면에서 달아나고 있는 놈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놈도 나름대로 우릴 유인하려는 건지 거의 직선으로만 가기 시작했고, 그로서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좋아…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그래, 지금!

한계치까지 내력이 담긴 작살이 내 손을 떠나 놈의 등판을 향해 빨려들 듯 사라졌다 싶었고, 다음 순간 나는 갑판으로부터 화악- 날아올랐다. 마치 스카이다이빙으로 구름 속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내 몸은 곧 통과 함께 바다에 쳐박혀 정신없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으으~ 이거… 크윽! 으… 생각보다 굉장한 속도감이다. 우쿠! 주위가 잘 안 보이니 더… 푸웃! 읏!

우……

너무 빠른 속도 때문에 좀처럼 자세를 잡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처음엔 멋지게 자세를 잡고 수상 스키 타는 폼을 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그건 택도 없는 욕심이었다. 꼴사납게 눕혀져 온 몸으로 물살을 가르며… 간간이 호흡할 수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다.

으으~ 물과의 마찰 때문인가? 전신에 뜨끈뜨끈한 느낌이… 젠장! 상어가 이렇게 빠른 놈이었나? 이 놈은 대체 언제쯤 지치려는 지… 어? 그러고 보니……

문득 속도가 줄어든다 싶더니 급격히 끌려가는 힘이 사라지고 있었다. 놈이 벌써 지쳤거나 내게 당한 부상 때문에 죽어 가는 것이기를 기대했지만, 서서히 선회하는 놈의 움직임으로 보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놈은 나와 불과 십여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천천히 옆으로 돌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에 맞춰 몸을 돌리며 놈의 눈을 마주 노려보았다. 보통 상어의 눈을 작고 검은 인형의 눈이라던가 감정이 없는 냉혈 살육 기계의 유리알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어쩐지 놈의 눈에서 뭔가 감정이 실린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 놈은 역시… 그 옛날 이 부근 연옥도에 살던 그 인간인가?”

  • “음… 맞다. 그럼 넌 혹시 그때 나와 천우신, 금동이… 우리 삼총사에게 잡아먹힌 상어들의 후손이냐?”
  • “아니, 난 그때 무수한 동족들이 네 놈 손에 유명을 달리하여 결국 네 놈들 배속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울분을 삼키던 상어 중의 한 마리다.”
  • “오오~ 그럼 너도 금동이처럼 천년을 묵은 요괴 상어?”
  • “그렇다! 이제는 다른 인간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건만… 설마 네 놈도 천년을 묵어 더 강한 요괴가 되었을 줄이야!”
  • “아, 아니… 난 천년을 묵은 게 아니라……”
  • “분하다~! 원통하다~!”
  • “이, 이봐. 나도 그때 일은 미안하게 생각해. 그땐 원체 먹을 게 없어 놔서… 사람이 굶으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법인지라… 크흠! 음… 암튼, 다 지난 일이니 우리 이제 이쯤에서 원만하게 끝내자고, 응? 얌전히 몽몽을 토해내면 나 역시 작살도 뽑아주고 그냥 보내줄……”
  • “흥~! 역시 가증스럽군! 자기가 찔러 놓고 생색을 내려 하다니!”
  • “우쒸…! 이번 일은 네가 먼저 몽몽을 삼켜서 그런 거잖아!”
  • “네 놈은 더 많은 내 동족 상어들을 집어삼킨 식인… 아니 식상(?) 인간이다! 식상 과거를 네 목숨으로 청산하라! 청산하라~! 청산하라~!”
  • “으음… 도통 대화가 안 통하는 상어로군. 교섭 결렬인가?”

에효~ 거대 백상어와 눈싸움을 하면서 이런 식상한 망상에 빠지다니, 나도 참 식상한 인간… 음, 그만 하자.

암튼,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계속 천천히 내 주위를 돌면서도 좀처럼 덤벼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저 놈이 지금 상어답지 않게 뭔가 생각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그저 망설이고 있을 뿐인지 아니면 빈틈을 찾아 기회를 노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응? 결국 결정을 내렸나?

놈은 다시 움직임을 시작했고, 당연히 나 역시 다시 청룡열차에 탄 것처럼 줄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아무리 상어 대가리라도 기껏 생각해서 결국 그냥 마냥 끌고 다니기만 한다는 결론을 내렸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우웃! 방금 위험했다. 조금만 더 크게 돌았어도 암초에 부딪칠 뻔… 어? 으왓! 제기! 이번엔 거의… 어?

가만? 이건 아무래도 우연이 아닌 것 같은데? 으…

이제 보니 이 자식, 주변 지형을 이용하려는 거였구나.

여기를 육지로 치면 거친 바위산 엄청나게 많은 산악지대… 줄을 휘둘러서 날 바위산에 부딪치게 하겠다… 이거지?

처음 몇 번은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하지만 놈이 계속해서 해신묘를 누비며 암초지대 사이사이를 달려가는 동안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내가 암초에 부딪칠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지는… 즉, 겨냥이 정확해지는 것 같았다.

젠장! 저 앞! 지금 저 큰 암초를 노리고 턴 한 거 맞지? 이번엔 타이밍이 맞는 것 같은데… 어쩌지? 이런 스피드로 암초에 부딪치면 호신강기를 써도 견디기가… 그, 그래!

나는 나와 함께 줄에 묶여 있는 통을 잡아당겨 끌어안는 자세를 취했고, 암초에 부딪치는 순간 몸과 함께 통을 비틀어 통을 먼저 암초 쪽으로 향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터엉!

흐윽~! 통이 완충 역할을 해줬는데도 굉장한 충격이다. 통을 앞세웠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으… 어쨌든, 그래도 견딜 만했다. 이 자식, 얼마든지 해 봐라!

후웅~! 터엉!

큭! 좋아! 괜찮아!

휘잉~! 터엉!

윽! 이번에도!

씨잉~! 쾅!

컥! 크으~ 으… 이번엔 공중에 떴다 부딪쳐서 더 충격이… 저 개 쒸키! 아니, 상어 쒸키가 정말!

후웅~! 콱!

윽, 으…! 이제 나보다 통이 한계인 것 같다. 통에 내력을 보내 보호했는데도… 썅! 이 자식,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할 거지?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그래, 줄을 당기자. 줄에 여유를 만들어서 다음 충돌 때 그 여유분을 암초에 감아 버리는 거다. 그런 다음… 응? 뭐…

야? 나 지금… 가라앉고 있는 거 맞지? 통이 깨져서 부력을 잃은 건가? 어? 아직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왜……

이유는 간단했다. 놈이 잠수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놈이 해신묘를 벗어나서 보다 깊은 수심의 해역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첫 번째 작살에 매달렸던 통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놈은 결국 자기 행동에 제약을 주는 요소 하나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통 하나와 내가 남아있는데 어째서 그만둔 거지?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다른 방법을… 그러니까, 날 ‘익사’시키려는 건가? 그렇다면 놈은 인간이 어느 정도나 물 속에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으음… 아니다.

놈이 적당한 시점에서 수면으로 향할 걸 바라고 버티는 소극적인 대처는 곤란하다. 놈은 내친김에 이대로 언제까지고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결심을 굳히고 내 몸과 통을 묶은 줄을 풀었다. 물론 물살의 압력 때문에 줄을 타고 놈 쪽으로 가는 것은 장난 아니게 힘이 들었다.

눈을 제대로 뜨기도 어려웠지만 시야가 짧은 물속이어서인지 줄 너머의 놈이 보이지 않았다.”

치이!
하늘 끝으로 연결된 동아줄을 타고 오르는 기분이다.
이렇게 느린 한 걸음, 한 손씩(?) 어느 세월에 놈에게 도착할 수 있을지…
으… 그래도 조금씩… 놈의 꼬리지느러미가 좌우로 깃발처럼 펄럭이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빌어먹을 놈. 날 이렇게 끝까지 고생시키다니……

본래 군대에서의 행군도 복귀하며 부대가 가까워질수록 힘이 나는 법이었다.
놈의 꼬리가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내 팔에도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놈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줄의 요동과 속도감이 더욱 심해져갔지만 탄력 받은 나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한 팔, 한 팔… 얼마나 반복했을까.
드디어 놈의 등판이 바로 코앞이었다.
아까 내가 던졌던 작살이 거의 밑둥만 남은 상태로 깊이 박혀있었다.
나는 왼 손으로 그 작살을 잡았고, 그 순간 갑자기 놈이 몸 전체를 비틀며 버둥대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다, 이놈아!

나는 오른 손으로 정글도를 잡고 입으로 정글도를 맨 줄을 물어 이빨로 끊어냈다.
정글도의 뭉툭한 끝을 강제로 놈의 꺼끌꺼끌한 거죽에 찔러 넣으며 동시에 남은 내력을 일시에 쏟아 부었다.

으왁! 제기…! 마지막이라고 방심했나?
최후의 발악에 순간적으로 작살을 놓치고 말았다.
으… 하지만…

방금의 공격은 분명 제대로 먹혔으니…
그래, 놈도 더이상은 견디지 못하겠지?

난 결국 놈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었지만, 녀석도 더 도망칠 상태가 아닌 듯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막상 최후의 일격을 먹이고 놈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질기긴 질긴 놈이다.
저런 몸으로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다니… 으음- 어쩐다?
이젠 속도가 너무나 느려서 헤엄쳐가도 바로 쫓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숨통을 끊어서 끝내 줘? 아니면……

내가 새삼 망설이기 시작한 것은 죽어 가는 놈의 움직임에서 어쩐지 숙연함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잠자면서도 헤엄을 친다는 상어의 본능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해신묘에서 날 떨구기 위해 지형지물을 이용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놈이니 마지막 순간에 기어이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좋아…! 통과 연결된 줄도 끊어주고…
그리고 내 숨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따라가 주지.
이것이 너의 고통을 지속시키는 잔인함일지 아니면 내 마지막 배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결국 그렇게 결정하고 실행했다.
놈은 내가 비교적 여유있게 헤엄을 쳐도 따라갈 수 있을 만큼 느린 속도로 계속 어딘가로 나아갔다.
그리고 나는 놈을 따라가며 비로소 주변의 풍경을 돌아볼 수 있었다.
좀전까지는 여유가 없어서 잘 몰랐지만 이 바다 속은 뭔가 다른 곳과 다른 것 같았다.

우선… 물 온도부터 달라.
겨울 바다답지 않게 어제 느꼈던 난류보다도 따듯한 것 같고…
물살도 다른 바다 속보다 현저히 느려서 흐림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비록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 곳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바닥의 모래알까지 생생하게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니…
으음… 물이 맑은 건 우리 나라 동해도 그러니 그리 신기한 건 아니려나?
어쨌든 이건 바다라기보다 호수 속 같은 기분인 걸?
바다 위의 호수라……

그렇게 5, 6분 정도 더 놈을 따라가며 나의 잠수 한계가 5분 정도 남았을 때였다.
놈은 자신의 몸체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법한 해저 동굴의 입구에 도착했고, 나는 놈이 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걸 보며 따라가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맙… 소사! 저 동굴 옆의 바위… 저건… 저건……!

5분 정도 남은 체내의 숨이 단숨에 소모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뛰기 시작한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상어가 들어간 동굴 안을 들여다 본 다음, 미친 듯이 수면을 향해 헤엄쳐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를 운용하여 몸을 가볍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부력을 얻을 수 있음에도 마음이 너무나 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빤히 보이던 수면까지 어렵고 지루하게 올라간 나는 머리를 물 밖으로 내민 채 얼마간을 거칠게 호흡해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거대한 그림자 같은 것을 느끼고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게 되었다.

저, 저건… 가? G.M.의 첸이 말했던 ‘환상의 섬’, ‘신(新) 연옥도’가…?
저… 저 거대한 ‘항공모함(航空母艦)’ 이……?

한 번도 실제로 항공모함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급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백 미터밖에 떠 있는 저건… 그야말로 섬. 섬 자체였다.

그래… 저 곳이 바로 세계 최고의 정보조직 G.M.의 본부로구나.

천우신…!
천년 전에 있었다는 천이단의 최대 위기에서 조직을 지켜내 오늘날의 G.M.으로 전통이 이어지게 한 인물…!
나중 은퇴하여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연옥도라는 신비의 섬으로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다는…
그러나 아직도 G.M.의 모든 이들 가슴속에 살아있다는 전설의 단주, 그리고 나의 친구… 천우신.

저 곳이 아직도 천이단의 후예들이 그를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부활시킨 연옥도라는 얘기…!
따라서 저 곳에는 그 친구에 대한 모든 기록이 남아 있다 이거지…?
내가 떠난 후 그 친구가 어떻게 살았는지…
소령이와 어떻게 행복하게 지냈는지… 그런 얘기들이……

핫~! 하고 웃음이 나왔다.
웃으면서도 웬지 찔끔 눈물이 나왔다.
당장에 저 곳으로 헤엄쳐가 두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지금은 다른 곳이 먼저다.
나와 천우신, 금동이와 소령이의 진짜 연옥도!
지금은 이렇게 바다 밑에서 잠자고 있는……

나는 깊고 길게 숨을 들이마신 후, 다시 바다 밑으로 헤엄쳐 들어가기 시작했다.
낯익은 전경을 향해…

마치 하늘에서 그 옛날 연옥도로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상어가 들어간 동굴 옆의 바위… 본래 해변가의 내 전용 연무장에 서 있던 연옥도의 간판(?) 앞에 내려섰다.
이 바위가 화산 폭발에서도 무사했던 건 그렇다 치고, 그 후의 800년 세월조차 그리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건 아마도 G.M.의 복원 사업 때문일 것이다.

바위 중앙에 크고 깊게 새겨져 있는 글자 ‘연옥도(煉獄島)’는 분명 패도광협 선배의 서체…
그리고 바위 하단에 새겨져있는 이 글귀는… 천우신, 그 친구의 서체이다.
아마도 생애를 마치기 얼마 전에 남긴 모양이고, 한자와 내가 가르쳐 준 한글이 부분적으로 끼어있는…
그가 나에게 남긴 짧은 ‘편지’였다.

나는 그런 그의 마지막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나갔다.

  • 자네라면 언젠가 이 곳으로 돌아와 볼 것이라 생각하네.
    그 곳에서도 잘 살고 있는가, 친구?
    나는 자네가 그녀와 재회하여 자네와 그녀가 그 곳에서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음을 믿고 있네.
    금동이는 오래 살 것이니 자네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녀석이 부럽기도 하네.
    어쨌든 기뻐해 주게, 친구. 나와 부인도 ‘알콩달콩’ 잘 살다 간다네. –

나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으로 오랫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천년 전의 친구가 남긴 편지에 어떻게 답장을 해 주어야 할지 안타깝기도 했고, 그냥…
그저 기쁘고 그립기도 했다.

…그래… 나도… 나도 나중에 대교와 금동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이 아래에 답장을 남기자.
그 친구가 또 어느 시대에 환생하게 된다 해도 이 곳에 와 볼 것임을 믿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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