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0-3화 : 귀물(貴物)이 귀물(貴物)인 이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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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40-3화 : 귀물(貴物)이 귀물(貴物)인 이유.(3)


5-1. 귀물(貴物)이 귀물(貴物)인 이유.(3)

삼육구 게임의 패턴 정도는 특정 시대에 국한시키기 어려운 요소니까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지……? 떠오른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내 눈동자는 다시 암호문 위를 더듬기 시작했다. 연상과정은 다소 얄딱구리 했지만…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삼육구 게임의 패턴대로 글자들을 읽어보자 드디어 제대로 뜻을 이루는 문장이 구성되었던 것이다. 369패턴이란 것이 사실 다소 단순하기는 하지만, 패턴에 따르자면 33이나 36번째 같은 경우는 글자를 두 번 연속으로 문장에 넣어야 하는데도 전체적으로 용케 문장을 만들어 놓았다.

쯧~! 이렇게 되면 오히려 그 친구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노릇인 걸? 현천기공을 의미한 문장도 그렇고 나만은 뻔히 알 수 있는 걸 이용했는데도 이렇게 시간을 끌고 버벅대고 있으니 말이야. 이제라도 분발해서 후딱 후딱 진행해야… 음… 그건 그런데… 어째 해석된 문장도 직접적인 힌트는 아닌 것 같네?

“셋이 함께 즐겼던 것을 다시 셋이 즐기네… 하나가 들면 하나가 나가고… 늘 수는 같고… 흥겨움은 여전하나… 너무나 아쉽고 섭섭한 마음도 여전하니… 이로서 다시 셋이 되기를……”

나는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며 해석된 문장을 다시 몇 번 읽어보았다. 느긋하게 수수께끼 풀이 자체의 재미를 느낄만한 주변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 탓도 있지 만… 이번 문장은 더더욱 내가 그 친구의 ‘마음’을 빨리 깨닫지 못하면 안 된다는… 그런 의무감 같은 것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를 답답하다는 듯 재촉한 것은 금동이였다. 녀석은 어느 틈에 두 번째 상자 근처에 앉아 특유의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손으로 땅바닥을 탁탁 내려치고 있었다.

그래…! 셋이란… 나와 천우신, 그리고 금동이… 내가 빠지고 나서 소령이를 얻어 다시 셋이 되고… 그런 얘기였군. 나는 천우신은 물론이고 금동이에게도 미안한 마음에 사로잡혀 두 번째 상자로 향했다. 두 번째 상자 앞에는 벌써부터 인정파 중의 한 명과(아직 소개받지 못한 자) 반대파 중의 한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각각 하나씩의 열쇠를 꺼내 두 번째 상자의 겉 뚜껑을 열어주었다. 그 안에도 역시 이중 뚜껑이 있었으며 중앙에 바둑판 모양의 틀이 장치되어 있었다. 첫 번째 상자의 글자보다 많은 숫자의 새로운 글자가 바둑판 무늬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일종의 키보드(?)에 해당되는 장치인 것 같았다. 나는 새로운 문장도 369의 패턴대로 한 번 읽어본 다음, 곧 바로 고대의 키보드를 패턴대로 누르기 시작했다.

“잠깐!”

갑자기 옆에서 날카로운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니 소군황이 엷고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젖고 있었다.

“순서를 잊으셨습니까? 암호는 푸셨는지 모르지만, 상자 안의 내용물을 먼저 밝히는 것이 먼저 아닙니까?”

“…그랬지. 깜박했어.”

“훗~! 아니면 차츰 연기하기도 지겨워서 그러십니까?”

“…뭐?”

“사실… 저희들도 당신께서 두 번째 마군황의 후손이나 어떤 식으로든 절기를 이어받은 전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닥쳐욧!”

이번에도 내 대신 끼어 든 사람은 자룡대주였다.

“이제와서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죠? 당신들도 천주께서 귀물의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내면 얌전히 인정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후후~ 그건 그 쪽에서 어떻게 나오는 가를 보기 위해서 그랬던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세상에 이런 낡아빠진 상자를 어떻게 믿습니까? 이런 암호나 잠금 장치는 현대의 기술로 얼마든지 감쪽같이 열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뭐, 뭐라고요? 당신들 설마……”

기막혀하는 자룡대주에게 소군황은 다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지래 짐작하지 마십시오. 난 다만 일반론, 상식적인 얘기를 한 것뿐이니까 말입니다. 사실… 자칭 2대 마군황께서 흘렸던 정글도를 줍는 바람에 조금 조사를 해보긴 했지만… 그 역시 천년 전의 유물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더군요.”

“다, 당신… 당신 정말 끝까지……”

그 말 잘하던 자룡대주가 더 이상 조리있게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이며 분노에 떨기 시작했다.

“하아~ 정말 실망입니다. 설마하니 구양대주나 자룡대주정도 되는 분들이 선대의 귀물까지 이용해서 자신들을 위한 독재자를 만들어 내려 들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하무림을 통합해 봐야 무슨 의미가……”

“닥쳣!”

소군황의 적반하장에 구양대주도 광분하여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네… 네 놈! 초사마군과의 오랜 우정을 생각해 참아왔건만… 끝내……!”

구양대주는 말을 맺기도 전에 성큼 보법을 펼쳐 소군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지는 구양대주의 공격에 담긴 살기와 파괴력은 내가 봐도 대단했지만… 소군황은 피식 한 번 냉소를 날리더니 여유있게 피해내며 외쳤다.

“하하핫~! 천하의 구양대주께서도 속내를 들키니 자제심을 잃으시는 군요!”

“닥쳐라 이놈! 언제까지 그런 헛소리를 내 뱉나 보자!”

구양대주는 이를 갈며 더욱 맹렬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소군황도 조금은 더 신중해진 표정으로 방어에 나서고 있었다. 구양대주는 보청구룡대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임에 틀림없겠지만… 지금은 역시 누가 봐도 구양대주의 뜻대로 흘러갈 싸움이 아니었다.
그려… 그려… 댁들은 맘대로들 하고 있어. 난 우선 이걸 열고 봐야겠으니…..
나는 둘의 싸움, 아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에서 신경을 끄고 조금 전에 멈췄던 키보드(?) 누르기를 계속했다. 모두가 싸움에 정신이 팔려있는 가운데… 나는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50CM정도 되는 높이의 청동 항아리가 들어 있었고, 그 것을 들어올리자 바닥에는 또 몇 자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한 발 물러서서 찾아보면 다른 이들의 마음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이건 세 번째 귀물에 대한 힌트인 모양이고… 아무래도 거기엔 당시의 지하무림인들이 남긴 것이 있나 보군. …이 항아리까지가 지하무림의 손을 빌어 천우신이 보내 준 선물이고 말이야.
나는 항아리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정글도를 들었다. 금동이가 항아리에 새겨져있는 금동주(金童酒)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반가워하며 낄낄대는 가운데, 나는 정글도로 단칼에 항아리의 윗 부분을 잘라냈다.

[주인님! 천년이나 지난 술입니다. 이미 성분이 변질되어 해로운 물질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나는 몽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항아리를 들고 냄새부터 음미해 보았다.

<상관없어, 몽몽. 내게는… 그 때와 똑같아.>

[에? 그럴 리가요? 1차 스캔 결과만으로도 그 술은 이미 변한 거로 나오는 데요?]

“훗~! 아니야 요몽. 이건 내가 친구들과 마시던 그 때 그 술이야. 향기도, 맛도… 우리의 마음도……”
난 잘려진 항아리의 윗 부분을 거꾸로 들어 잔처럼 거기에 술을 따랐다. 금동이에게는 그걸 건네주고 나는 항아리를 통째로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옛날처럼 크고 작은 서로의 잔을 부딪치며 마시기 시작했다.
금동이 홀짝, 난 벌컥, 천우신은… 음, 그 친구는 내가 대신……
나는 술항아리를 상자 쪽에 내미는 시늉을 한 다음 내 입에 부었다.
크으~ 좋구나-! 후후…! 금동아 화내지 마라. 자아~ 너도 그 친구 잔을 대신 받으면 되잖아! 하핫~ 오늘은 천우신, 자네가 가장 많이 취하겠는 걸? 오호~ 소령이는 왜 빼냐고? 그럼 안되지…! 자아- 소령이! 처제이자 제수씨도 한 잔!
적지 않은 크기의 항아리에 담긴 술이었지만, 셋도 아니고 넷의 입에 부어지다보니 비워지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술은 그렇게 비워졌지만… 항아리에 담긴 우리의 마음, 그리움과 아쉬움은 언제까지나 비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잔(항아리)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렸고 금동이 역시 자신의 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우린 잔을 비운 기념으로(?) 동시 에 잔을 뒤집어 흔들며 웃었다.
하하핫~! 캭캭~!
예전처럼 불콰해진 얼굴로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한참을 소리내어 웃었다. 얼마 후… 우리의 웃음이 문득 멈추어졌을 때에야 조심스럽게 자룡대주가 입을 열었다.

“…처, 천주. 대체 그건……”

빠르게 올라오는 술기운(?)으로 흐려지기 시작한 눈을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 사이 싸움을 멈춘 구양대주와 소군황은 물론이고, 자룡대주나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조용히 나와 금동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일견 기괴해 보일 뿐인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소군황 만이 득의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저런, 저런~! 우리 모두의 확인도 없이 혼자 멋대로 귀물을 꺼낸 것도 모자라, 그 내용물을 마셔서 없애버리다니! 그러한 행동은… 선대의 귀물로서 신분 밝히기를 포기했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군요.”

“선대의 귀물~?”
나는 키득거리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취하면 늘 그렇듯 웃음을 앞세운 채 말을 이었다.

“넌 너희들의 귀물이 귀물인 이유를 알기는 하는 거냐?”

“무슨……”

“네 말대로, 나의 친구와 너희들의 선대가 남긴 물건들은 애써 수수께끼를 풀 것도 없이… 현 시대의 첨단 장비와 기술로 누구나 간단히 열 수 있는… 그런 낡은 잠금 장치에… 내용물도 별 거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흥! 그러니까 최소한 절차대로 했어야… 헛!”

다시 깐죽대던 소군황의 안색이 급변한 것은 내가 아무런 예비 동작도 없이 정글도를 휘둘러 놈에게 검기를 날렸기 때문이었다. 놈은 간신히 자신의 칼을 들어 내 검기를 막아냈지만 그 충격으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크윽!”

놈은 아까 처음 받아 보았던 내 공격이 나의 전력이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대응하는 태세를 바꾸는 눈빛이었지만… 늦었다. 나는 검기를 날린 직후 공공보법을 펼쳐 이미 놈이 물러선 만큼을 순식간에 따라붙고 있었다.
나의 정글도가 차가운 푸른빛과 함께 다시 좌에서 우로 그어졌고, 놈의 칼도 착실하게 그 괘도를 막아섰다. 그러나 부딪치는 소리나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이, 이건……”

놈은 아무런 느낌도 없이 잘려 나간 자신의 칼이 믿기지 않는 듯 들여다보다가 그 시선을 나의 정글도로 옮겼다. 정글도의 날에 맺혀있는 푸르스름한 빛이 지이이이잉~하고 불길한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월광절화결(月光切花訣)의 참화지수(斬花之首)…!
그 절기의 응용편이었다고 할까…? 원거리로 날린 것이 아니고 정글도의 날 부분에 맺히게만 했어도 참화지수는 참화지수… 아니, 이렇게 보면 참화지수가 아니라 개화지수(開花之首)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어, 어? 어……?”

소군황은 자신의 얼굴에 피어난 피의 꽃을 뒤늦게 깨닫고 주춤주춤 물러나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며 경악했다.

“이, 이게 뭐야? 어, 어느 틈에! 으아아아~!”

사내자식이 얼굴에 칼집 좀 났다고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나는 놈에게서 등을 돌렸다. 시끄러운 건 소군 황 하나 뿐, 어느 사이 모든 이들이 말과 행동을 잃은 듯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그 옛날… 당시의 지하무림 인들 앞에서 처음 월광절화결을 썼을 때처럼 말이다.

“모두에게 묻겠다! 이 중에서 저 귀물들이 귀물인, 혹은 그래야 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 있나?”

질문을 던진 다음 잠시 기다려 주었지만… 인정파고 반대파에서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난… 말야. 그 동안 당신들에게, 지하무림인들 모두에게 미안했어.” 천년이나 지하무림을 떠나 있다가 지금 불쑥 나타난 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또 그 때처럼 충성을 강요해도 되는가… 그런 생각도 있었고… 그래서 곧바로 날 믿고 따라 준 사람들에게는 고맙고… 반항하는 자들이 나와도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 내가 지금까지… 마· 군· 황· 답· 지· 못· 했· 던· 건 말야.”

문득, 다시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핫~! 나도 꽤나 무책임한 놈이긴 해. 하핫~! 그래…!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하지만! 당신들은 그런 나보다 더 지하무림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어! 선조들이 남긴 귀물이 우리에게 귀한 보물인 건… 저 낡은 상자들 이 내가 진짜인지 아닌 지의 판별할 수 있는 물건 인 걸 떠나… 저 안에 그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야. 떠난 친구를, 떠난 지도자를, 자신들의 뒤를 이을 후손들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며 아끼는 마음이 담긴……”

“허튼 소리!”

등뒤의 소군황 놈이었다.

[주인님!]

몽몽의 경고는 놈이 잘려진 칼의 남은 부분을 암기처럼 던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슬쩍 상체를 옆으로 기울인 것만으로 그 것을 피했고,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그어주었다.

“크아아악!”

얼굴에 십자가 모양의 혈화를 피어 올리며 비명을 지르는 놈에게서, 다시 등을 돌렸다. 이제 잡다한 생각들을 거의 접어 버려서 인지 아니면 천우신의 술에 취한 때문인지 몰라도… 정글도를 휘두르는 팔의 감각과 나 자신의 내력 흐름, 적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훗~! 이제 아무래도 좋아. 옛날처럼 심플하게 가자!”

나는 예전처럼 다시 싱글싱글 웃으며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다.

“지금부터 2대 마군황의 복습시간! 이 산, 아니 이 지구상 모든 곳이 마군황령(魔君皇領)! 단, 지금은 스피드 시대니 기간은 일주일이면 충분하겠지? 그 동안 날 죽여봐…! 나 진유준을 죽여서 내 지배를 벗어나 봐!”

“천주, 이제 저들도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천주를 인정할 테니 그러실 필요는……”

“닥쳐, 당신도!”

구양대주는 내가 자신까지 공격할 줄은 예상 못하고 있었는지 정신없이 몸을 땅바닥에 던져 굴리고서야 간신히 내 검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가 서 있었던 자리 뒤편의 바위가 깨지며 피어오른 먼지가 가라앉는 것보다, 모두를 감싸고 있던 산 속의 공기가 얼어붙는 쪽이 빠른 것 같았다.

“인정파? 반대파? 그 딴 구분은 필요 없어. 소군황과 초사마군 말이 하나는 맞아. 마군황은 독재자야! 나… 지하무림의 마군황 진유준은 본래 독재자! 지하 무림은 내 거야! 그게 싫은 자들은… 칼! 총! 수류탄! 미사일! 군대! 핵무기! 뭐든 다 인정! 능력껏 저항해 봐!”

끝으로 규칙까지 다시 친절하게 알려 준 나는, 좌우 어느 쪽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적으로 검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나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모든 지하무림인들의 마음이 비로소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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