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7-1화 : 지하무림 VS 블러디 울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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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47-1화 : 지하무림 VS 블러디 울프.(1)


5-9. 지하무림 VS 블러디 울프.(1)

석실을 나서 몇 분 정도 걸었을 때, 어두운 동굴의 한 구석에서 스윽- 은사마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래 은사마군은 과거의 흑주처럼 내 경호 담당이지만 대교와 있느라 석실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있도록 했던 것이다.

“현재 전황은?”

“조금… 좋지 못합니다. 우선 처음 교전에 들어갔던 정부군은 불과 14분만에 격파 당했습니다.”

윽…! 천 명이 넘는 병력과 화력도 앞섰다는 부대가 간단히 격파된 게 ‘조금 좋지 못한’ 거냐?

“이후, 저희 어사조를 중심으로 한 지하무림 식구들이 방어에 나섰으나 적들은 현재 이 동굴로부터 불과 몇 백 미터까지 육박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놈들이 이 동굴로 들어오지도 못했다고?”

“그렇습니다.”

“우리측 피해는?”

“정부군의 피해를 제외한 다면, 현재까지 총 6명이 중경상을 입고 전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것…봐라? 보고하는 은사마군의 송구스러워하는 태도와 달리 이건 내 예상보다 훨씬 양호한 상황인 걸? 내가 지하무림의 전력을 너무 낮게 잡고 있었던 건가……?

“천주께서 정면 대결을 피하라 하신 시점에서 저희들은 이 일대에 부비츄랩을 설치하며 게릴라전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황마군을 비롯해 전장에 익숙한 이들을 중심으로 한 지휘가 주효하여 적에게 저희들 몇 배의 피해를 입히며 현재까지 선전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곧 한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적들이 저희의 전략에 맞춰 빠르게 공격 전술을 바꾼 것도 그렇지만… 분하게도 근본적으로 적과 전투력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나는 은사마군의 보고를 들으며 작전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자룡대주의 교전 희망을 수락하기는 했지만 역시 불안해서 내가 나서는 순간 모두 철수시킬 생각이었었다. 과거의 지하무림이 역대 마군황들 때문에 명예와 맞바꿔 현실적으로는 쪽박 차게 된 전례를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만약 이런 강적을 만나고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지하무림 자신의 손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면… 그게 최상의 결과라는 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론에게는 계속 미안하게 될지도 모르겠군.”

“예?”

“아, 아니야. 우리 측 무선 주파수가 어떻게 되지?”

나는 발걸음을 좀 더 재촉하며 통신 기능만 남은 몽몽의 하위체를 들었다.

“나다! 지금부터 전체 지휘를 내가 맡는다. 모두 계속 무선을 열어 놓도록 하고 주파수는 10분 단위로 바꾼다. 실시!”

송신을 마치자, 곧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답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자룡대주에게 미리 받아 놓았던 오늘 동원된 병력들 중 지휘관급 명단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며 명령을 계속했다.

“지금부터 내가 호명하는 순서대로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보고하라. 우선 전황마군!”

“예, 천주. 전 지금 5인을 이끌고 본부로부터 동북방 300미터 지점에서 상위로 이동 중입니다. 적과의 거리는 40미터 정도, 아직 위치를 들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좋아. 승룡대주!”

“예, 천주. 전 현재 3인을 이끌고 7부 능선을 타고 계곡 쪽으로 적을 유인 중……”

이런, 이런…! 역시 급조된 부대라 그런지 보고 양식이 제각각이군.

그런 문제가 있었고, 몽몽이 없어서 재빨리 파악하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사전에 이 부근 지리를 숙지해 놓은 덕에 어느 정도 모두의 위치며 상황을 감 잡을 수는 있었다. 내가 체크한 건 모두 10명이고 그들은 물론 모두 전장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다.

“…좋아. 지금까지 말한 자들과 그들에게 속한 자들에게 내가 부른 순서대로 숫자를 붙여 소대라 칭하겠다. 1소대부터 10소대까지를 뺀 다른 병력들은 최대한 빨리 방어선 뒤까지 후퇴해서 전열을 정비, 전 소대는 그들을 엄호하며 천천히 후퇴한다. 실시!”

여기까지 명령을 내렸을 때는 나 역시 동굴 밖으로 마악 나오는 참이었다. 동굴 안에서는 희미하게만 들리던 총격과 폭발음 같은 것들이 갑자기 화악 커지며 귀청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경공으로 몸을 날려 동굴 위쪽 20여 미터 지점의 튀어나온 부분에 올라섰고, 그런 내 눈에 전장의 전반적인 모습이 들어왔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어두운 밤이고… 숲이 우거진 곳이 많아서 잘 보이지는 않는군. 총성과 그에 따른 섬광, 기타 부분적이나마 보이는 움직임을 토대로 분석해 보자면… 역시 보고 받은 데로 인 것 같군. 놈들의 처음 공격 방식은 각자 능력껏, 멋대로 진격하는 식이었다고 했다. 우세한 전투력을 그만큼 과신하고 있었다는 건데… 시간이 갈수록 지하무림의 조직적인 게릴라 전술에 피해가 심해지자, 론도 처음의 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 놈들은 전원이 좌우로 넓게 펼친 진형으로 차근차근 전진해 오고 있는데… 이 것도 사실 상당히 단순한 진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얄팍한 포위망이 너무나 무섭고 치밀하게 우리 측 병력들을 몰아 붙이고 있는 건… 역시 놈들의 비인간적인 신체 능력 때문일 것이다.

나도 부대에서 수색작전이나 여타 훈련 뛰면서 여실히 느꼈던 바지만… 산이라는 지형 조건에서는 당연히 정해진 길과 험한 코스로 오는 병력 간의 진격 속도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거기서 헛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 놈들은 지금 길 따라 오는 놈이나 계곡을 타고 오는 놈이나 숲을 뚫고 오는 놈이나 똑같은 속도로 전진해 오고 있으니……

역시 블러디 울프… 현대의 혈랑대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저 놈들이 저렇게 단독군장 정도의 가벼운 무장에 우리 측처럼 소음기가 부착된 소총 정도도 없이 단순한 공격 일변도라는 건, 아무래도 처음부터 원판 놈의 작전 자체가 너무 안일했다는 뜻이다. 저 정도 수준의 부대를 일반 보병 식으로 밖에 활용하지 않는다는 건 원판 놈에게 그만큼 인적 자원이 넉넉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블러디 울프가 입은 피해는 원판 놈의 안일한 작전 때문이며, 그건 지금부터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전 부대는 후퇴가 완료된 시점에서부터 시간이 얼마가 걸리던 크게 우회하여 적의 후미를 점하라. 현재 중화기를 소지한 소대… 1소대, 3소대, 7소대, 8소대는 내가 지시하는 지점을 확보하여 남은 화력을 모두 동원해 적의 진격을 일시 늦춘 후, 곧바로 방어선 뒤로 후퇴하여 대기! 그 사이 나머지 소대는 동굴 안으로 후퇴하여 진법 속에서 대기!”

본부인 석실 및 동굴을 중심으로 한 농성전 및 후위 기습의 양동 작전이다. 그러나 이 역시 웬만한 지휘관이라면 곧바로 눈치 챌 법한 작전에 불과하고… 론과 블러디 울프라면 아무리 기습을 당해도 간단히 무너질 놈들도 아니다.

“…자룡대주! 자룡대주, 어딨나?”

“예, 천주! 전 처음부터 전장에서 벗어나 대기 중입니다만……”

“좋아, 잘했어. 다들 무모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별말씀을…! 다

들 그간 꾀만 늘어서 죄송합니다.”

“훗~! 그런 꾀라면 계속 부려도 돼. 내가 원하는 지하무림은 내 명령에 불구덩이 속에라도 뛰어들 수 있는 자들…! 하지만 그전에 꼭 방화복을 챙겨 입는 자들이라구!”

작게 들려오는 자룡대주의 웃음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이제 얼마 후에 후퇴한 우리 병력들이 산밑으로 갈 거야. 부상자 체크 및 후송, 무기 보충… 하여간 자룡대주가 알아서 챙겨 가지고, 다시 올려 보내.”

“복명! 당연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나는 자룡대주의 기운찬 대답을 들으며 다시 천천히 발아래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모든 움직임이 확실하게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화려한 총격전과 포격의 향연… 그런 눈에 띄이는 패턴만 보아도 나의 수하들이 내 지시대로 충실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원판이라면… 아무리 지금 다소 맛이 갔다고 해도, 현재 지하무림인들 각자의 약화된 전투력과 정비되지 않은 조직력 등을 정확하게 계산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충분한 전투력의 병사들을 남아 돌 정도로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놈도 모르고 나 역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 지하무림이 항상 ‘준비된’ 조직이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지하무림인들이 어찌 보면 어리석을 정도로 마군황의 존재를 신격화하여 후대에 전승시킨 이유는 구심점이 생기는 순간 이렇게 순식간에 하나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 자아 이제 놈이 어떻게 나올까, 몽몽…… >

이런, 이런, 무심코 몽몽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녀석을 대교 곁에 남겨 두고 온 걸 잊은 것도 아니면서 습관이란 게 참……

< 은사마군. >

< 예, 천주. >

< 너도 이제 동굴 안으로 돌아가. >

< 예? 하지만 전…… >

< 돌아가. 내가 전투에 참가하게 되면 어차피 넌 나를 따라다니지 못해. 오늘은… 석실로 돌아가서 만약의 경우에는 네가 주가혜의 안전을 책임지는 거야. 알겠나? >

< …복명. >

은사마군은 다소의 불만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곧 아래쪽으로 몸을 날려 모습을 감춘다. 그녀의 움직임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과거의 흑주 만은 못할지 몰라도 경공이며 은신술이 상당히 뛰어나서, 은신술만 놓고 보면 아무래도 현재의 내 수준보다 앞서는 것 같았다. 뭐… 그러니 역대 은사마군들, 저승의 꽃들이 어쩌다 발생하는 배신자들의 처단을 맡아왔겠지만 말이다.

[ …주인님. ]

응? 뭐야? 몽몽 목소리? …아참. 통신은 되지?

“뭐냐, 몽몽. 무슨 일 있어?”

[ 아닙니다. 걱정이 되어 연락해 봤을 뿐입니다. ]

“…걱정하지마, 임마. 그보다 원판 놈 위치는?”

[ 현재 제가 이용하는 위성들의 위치가 좋지 못해 파악이 어렵습니다. 5분 40초 정도 전, 마지막으로 확인된 지점은 약 2.7KM 정도 후방이었습니다. ]

“그래…? 알겠다. …대교는 어때? 뭐하고 있냐?”

[ 제가 비화곡 시절을 영상으로 재현해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만, 아직 특별한 감정의 기복은 보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

“…알겠다. 계속 수고해 줘. 이따 보자.”

나는 몽몽과의 통신을 끝내고 몸을 등뒤의 바위에 좀더 기대며 눈을 감았다. 신경… 쓰지 말자, 진유준. 대교가 과거의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건 그녀의 몫이고, 난 지금 수많은 수하들의 생명을 책임진 지휘관으로서 충실하자. 지하무림이 생각보다 선전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저 론과 블러디 울프들의 맹공에 끝까지 견디는 건 무리일 것이다. 결국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천천히 눈을 뜨고, 이제는 어느 정도 얼굴까지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진 블러디 울프들을 보았다. 선두인 론만이 당당한 태도 그대로이고 다른 놈들은 상당히 조심스런 걸음으로 내 발아래 동굴 입구를 향해 접근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론은 내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심통이 나지 않은… 그냥 적당히 무표정한 기색이라고 할까…? 아무래도 내 수하들과의 전투도 아주 시시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장소의 바위는 아래로부터의 시선을 거의 가려 줄 정도로 돌출 되어 있고, 내 머리 위의 더 큰 바위 때문에 드리워진 그늘은 내 모습을 더욱 완벽하게 숨겨주고 있었다. 나는… 새삼 더욱 몸을 뒷벽에 밀착시키며 살기와 기척까지 숨겼다.

훗~! 이대로 계속 몸을 숨기고 있다가 론과 다른 놈들 모두 가까워졌을 때 기습을 한다면… 놈은 날 비겁하다고 욕을 하려나…? 하지만 뭐… 내게 그럴 생각은 없고, 그렇다고 지금은 놈 앞에 나서서 정정당당 코리아식 결투를 벌일 마음도 없지. 지하무림, 나의 기특한 수하들이 예상 이상으로 잘해 주고 있어서 나도 목표를 바꾸기로 했거든. 오늘 밤 내가 노리기로 한 건 론 같은 눈앞의 말단 지휘관이 아니라… 적의 총사령관, 즉 원판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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