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50-2화 : 잠시의 평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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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50-2화 : 잠시의 평화(?).(2)


으흑! 이 무슨 끔찍하고 억울한 누명이란 말인가!
내가 자룡대주나 소교 같은… 나로서는 관심을 받는 건 고사하고 만나는 것조차 로또 복권 당첨보다도 어려운 킹카들을 과감히 거부해 온 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근데 이제 와서 대교에게 이런 추궁을 당해야 하는 건 너무 억울… 어… 가, 가만? 소, 소교?

<몽몽! 너, 대교에게 소교 얘기도 다했냐?>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에 대한 기억을 우선시하여 환생자들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과거의 가족 관계조차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 드리지 않았습니다. 대교님께서 알고 계신 것은 소교님이 전생에서 친동생이었다는 사실뿐입니다.]

<그, 그래?>

뭐…야? 그럼 대교는 지금 자룡대주만 가지고도 이런 소리를 한 거란 말야? 대교도 생각보다 독점욕이……

“왜… 아무 말도 없죠?”

응? 아, 아닌가…? 내가 바로 반응하지 않고 있자 이제야 정말 샐쭉한 표정이 되는 걸 보니… 에고, 아무래도 장난으로 한 말이었던 모양인데 내가 너무 민감했었나 보다.

“인정하신다는 뜻이로군요. 그러고 보니 은사마군이란 여자도 그렇고, 우연치고는 너무 예쁜 여자들만 측근으로 삼으셨네요.”

“아, 아냐. 그게 아니라……”

“흥~! 제가 너무 감정에 휩쓸려서 실수할 뻔했나 봐요.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요.”

“어, 야아~”

대교는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짐짓 새초롬한 태도를 취했지만, 입꼬리는 삐질삐질 웃음을 참고 있는 기색이 여실했다. 나도 내 자리에 앉으며 짐짓(사실은 거의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몸짓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야! 난 정말 억울하다구. 내 쪽에서 뭘 어쩐 것도 아닌데……”

“흥! 남자들의 변명은 늘 그렇다고 하죠. 하지만, 당신이 여자들에게 잘해 주지 않았다면 어찌 그런 결과가 나왔겠어요?”

“뭐…야, 그럼. 앞으로는 여자들에게 무조건 잘 대해주지 말라는 거야?”

“그래요! 당신은 이제부터 저 이 외의 여자에게는 친절해선 안돼요! 알겠어요?”

윽…! 이거 정말 장난이야, 진심이야?

“아, 알았다, 알았어. 이제부터는 모든 여자들에게 불친절하겠어! 그럼 되는 거야?”

“정말… 그럴 수 있겠어요?”

“그래. 너와 우리 어머니 빼고… 어, 아니… 우리 형수님들도 빼주면 안 될까?”

“음… 좋아요. 그 정도는 양보해 줄 수 있어요.”

“고마워. 아, 참. 여동생은? 하은이라고 사촌 여동생이 최근에 미국에서 귀국했거든? 걔한테도 불친절할까?”

“우웅~ 사촌 여동생이라… 그 경우는 생각 좀 해 봐야겠네요.”

“여하간 친척들까지는 좀 봐 줘.”

“쿡~!”

대교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잠시 소리 죽여 웃는 것 같았던 대교는 문득 고개와 한 손을 들더니 투정 부리듯 그 손으로 내 팔을 툭 쳤다.

“왜… 이렇게 됐어요.”

“뭐, 뭐가?”

“모든 사람 앞에서 그렇게 당당했던…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인 남자가 왜 제 앞이라고 이래요.”

지금의 대교는… 뭐랄까, 기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는… 간단히 말해서 좀 복잡한 기분인 듯했다.
쳇…! 오랜만에 생각났지만, 과거 대교의 이상형이었다는 패도광협 유운일 선배는 청명신니 앞에서도 본래의 모습을 보였을까? 아니면 그도 자기 연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지금의 나처럼 팔불출이었을까…….?

“그거야… 다 니 잘못이지.”

나는 농담 반 진심 반을 섞어 길게 한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전부 대교 네 잘못이야. 니가… 좀만 덜 이뻤어도 내가 이러진 않을 텐데 말야. 넌 어쩌자고 이렇게 하나 하나 전부 지나치게 이뻐서 나를 바보로 만드는 거냐?”

으으으-! 술기운과 농담 식의 말투를 이용하긴 했어도… 나 정말 왜 이러냐? 아깐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젠 좀 브레이크, 브레이크를 걸자!

“피이~ 정말 바람둥이인가 봐. 그렇게 낯간지러운 얘기만 하고……”

제, 젠장! 입술을 삐죽이며 눈을 흘기는 모습까지도 왜 이렇게 돌아가시게 이쁜 거냐! 아, 안 되겠다. 자체적으로는 브레이크가 안 걸릴 것 같으니 주의를 좀 다른 데로 돌려서라도… 어…? 다들 언제 이렇게 우리 주위로부터 멀찍한 자리로 피해 있었던 거지? 배려도 좋지만 이거 오히려 부담이… 아-! 그래도 마침 자룡대주가 이쪽으로 오기 시작하는군. 다행… 응…? 다행…이 아니잖아, 자룡대주는!

“오호옹~”

에고. 자룡대주의 웃음소리가 왜 이러냐? 어지간히 취한 모양인데… 설마 그렇다고 내 앞에서 행패를 부리는 건……

쾅!

자룡대주가 들고 온 술 항아리를 내 앞의 탁자에 내려놓는 소리였다.

“흐응~ 두 분만… 분위기가 노무 좋으신 거 같아서… 방해하러 왔쏘요~”

이런, 이런….! 어쩐다? 이거 다른 사람 불러서 데려가라고 해, 말아?

“후후- 마침 잘 왔어요.”

응? 대교 얜 또 무슨 소리야?

“안 그래도, 저 역시 아까처럼 자룡대주님과 한 잔 마시고 싶었거든요.”

“그, 그래요……?”

“예. 여기 있는 멋없는 남자는 이런 자리에서 술 한 잔 권하지도 않더라구요.”

으~ 야 임마. 그건 다 널 위해서 그런 건데……
내가 배신(?)당한 충격에 잠깐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대교는 태연하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술 항아리에 자신의 잔을 넣어 술을 펐다. 자룡대주도 곧바로 같은 짓을 하더니 두 여자는 아까처럼 ‘나만 빼고’ 건배를 한다.

“어, 이봐. 이제……”

내가 조금 당황해서 입을 연 것은 자룡대주가 연이어 자신의 술잔을 채우는 걸 말리기 위함이었지만 결국 끝까지 말리지는 못했다. 대교가 먼저 한 손으로 내 팔을 살짝 잡아 그러지 말아달라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의 건배에도 대교는 자룡대주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자룡대주는 그런 대교에게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보기보다… 술이 쎄신 거… 같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취하기 전에 승부를 걸 걸, 그랬죠?”

“……”

“저도 같은 여자로서 자룡대주님 기분은 이해해요. 하지만… 너무 기죽지 말아요. 아까 제가 한 말은 아주 거짓말도 아니었어요. 전 정말 아직 이 분을 기억하지 못해요. 게다가… 천년이란 세월도 무한한 미래에 비해선 별거 아닐지도 모르는 것…! 전 단지 천년 먼저 이분을 만났을 뿐이죠. 그러니… 자룡대주님도 승부를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말아요.”

뭐, 뭐야? 대교 이 녀석! 아까 날 바람둥이니 뭐니 매도한 건 장난이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너 정말 진심으로 연적(?)을 격려씩이나 하고 싶은 거냐?

“어때요. 오늘밤은 마지막으로 한 잔만 더 건배……?”

대교는 다시 웃으며 자기가 먼저 술 한잔을 채워 자룡대주에게 내밀었다. 자룡대주의 흐릿했던 눈동자가 조금 본래대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룡대주는 잠시 말없이 대교와 그녀가 내민 술잔을 바라보며 서 있더니 결국 그 술잔을 받아 들었다.

“당신도… 그런 스케일이라니……”

자룡대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번에는 대교와 건배하지 않고 혼자서 벌컥벌컥 잔을 비워 버린다.

“크으- 정말 싫다, 싫어!”

건배한 모습 그대로 하늘을 향해 외친 자룡대주는 별안간 잔을 내려놓고 자세를 바로 하며 대교에게 포권으로 인사했다.

“실례가 많았어요. 오늘은… 제가 졌어요.”

처음부터 보기보다 취했던 건 아니었던 건지, 아니면 대교의 태도와 말에 술에 깨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자룡대주는 처음 올 때의 기세나 태도와 달리 나름대로 깔끔한(?) 마무리 멘트와 함께 몸을 돌려 휘적휘적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군요.”

“응?”

공연히 벌쭘해서 제대로 참견도 못하고 있던 내가 돌아보니, 대교는 낮게 한숨을 쉬며 잔을 내려놓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대교의 압승 분위기였지만… 역시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대교는 주변을 새삼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 파티는 본래 승전 축하의 자리였다고 들었어요. 전 오늘 모든 분들과 초면에 불과한데… 여러모로 방해만 되었던 것 같네요.”

“아니, 그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대교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술병을 들어 내 잔을 채워 건네주었다.

“제 걱정은 마시고 이제 다른 분들과 승전을 만끽하세요.”

내게 있어 오늘밤의 의미는 그렇게 딱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난 결국 술잔을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대교의 눈빛이 ‘그게 저도 더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 시대에서 처음으로 대교에게 받은 술잔을 들고 모두를 향해 외쳤다.

“모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계속 이렇게 눈꼴신 모습을 참아 줘야 말이야!”

사방에서 쿡, 쿡, 참아가며 내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허허허~ 괜찮습니다! 천주께서 일껏 납치한 미녀에게 채였으면 우리도 민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사이 전에 없이 불콰해진 목소리의 구양대주가 외치자, 하나 둘 다른 이들도 소리치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더 눈꼴시어도 좋습니다!”

“다들 뭐 하는 거요? 빨리 신방을 차려 드립시다!”

윽, 이 인간들이…… 말뿐이 아니라 정말로 몇 명이 우리와 석실 쪽으로 나누어 움직이기 시작해서 나는 황급하게 두 손을 저었다.

“어이~! 그만둬!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야!”

“하하핫~! 지하무림은 한 가족이니! 부끄러워하실 것 없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이 인간들아! 정말 가족이라면 가족이 이렇게 나오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그리고… 소, 솔직히 말해서 언제고 나도 그렇게 되는 걸 바라마지 않는다고 하기는 좀… 어, 어쨌든! 그건 아직 이르다. 내가 정말 악당에 산적 두목 같은 것도 아닌데… 신방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조금 전까지의 여유 있던 표정이 사라져 안절부절,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듯한 표정이 된 대교를 정말 어쩔 수도 없고…….

“에이 참! 하여간 오늘은 아니래두! 조, 좋아! 다른 건 몰라도, 술이라면 마군황도 쓰러트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덤벼!”

나는 그렇게 외친 후 먼저 잔을 비웠다.

“하하핫~! 그렇다면 감히 제가 먼저 선공을 취하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천음마군이 먼저 잔을 들고 덤벼오기 시작했다. 중상을 입은 천음마군 정도야… 했지만 그의 등 뒤로도 앞다투어 몰려드는 지하무림인들을 보니… 이거 내가 아무래도 실언을 했구나 싶기도 했다.

<몽몽! 금동아!>

나는 결국 지원 병력을 부르며 주전(酒戰)에 돌입해야 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그 어떤 전투 때보다 기분 좋은 달빛과 적군이자 아군인 이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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