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3-1화 : 프리메이슨의 실수.(1)
7-5. 프리메이슨의 실수.(1)
[ 에…? 그런 거였어요? 주인님의 적들이 사실은 저희들을 노리고 있는 거라고요? ]
요몽은 마치 악당들의 납치 예고를 들은 소녀처럼 몸을 움츠리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 어머? 그러고 보니, 패티 방의 문을 닫지 않고 나왔었네?
주인님, 죄송. 저 들어갈게요! ]
넌 가든지 말든지… 쯧, 이젠 ‘외부 채널이 열려있었다’ 같은 말도 ‘방문을 열어 놓고 왔다’로 표현하는구나.
서둘러 돌아가는 걸 보니 심약 인공지능 소녀 패티 녀석이 또 찔찔 짜기 시작한 모양이고… 나 참.
“…나왔던 건가?”
“예?”
“말하다 말고 시선의 움직임이 이상해지는 걸 보니, 요정몽…이라고 했던가? 그 소녀형 인공지능이 영상으로 나온 거 아닌가 해서…”
“아, 예. 실은 그랬어요.”
“몽몽과 요정몽, 그들도 이제 좀 소개시켜 주지?”
“어… 그게, 요몽… 아, 요정몽은 이제 줄여서 요몽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여간 그 녀석은 지금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고… 음… 몽몽!”
뷰웃- 은발 소년 모드의 몽몽이 나와 닥터 제이 사이의 공간에 떠올랐다.
[ 안녕하십니까, 코드 명 몽몽입니다. ]
“흐음~ 이거 반갑네, 몽몽군. 이 시대에 와서는 자네도 동생처럼 구체적인 용모를 선택한 모양이로군.”
닥터 제이 같은 과학자에게 있어 홀로그램쯤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몽몽의 모습은 곧 몽몽 본체를 상징하는 거라 그런지, 닥터 제이의 표정에는 지극히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상당한 미소년인 걸? 인터넷에 공개되기라도 하면 엄청난 소녀 팬들이 생길 것 같아.”
닥터 제이의 말에 몽몽의 은발 머리 아래의 뺨이 살짝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녀석은 곧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 주인님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기체의 운영 프로그램으로서 몇 가지 질문 사항이 있습니다. ]
응? 몽몽이 어째 처음부터 딱딱하게 나오네?
[ 닥터 제이, 당신은 완성도 높은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실행함으로서 현재의 상황을 이끌어 냈습니다. 또한 그 과정을 재검토해 본 결과, 주인님의 전투력을 더욱 상승시키기 위한 ‘학습’의 의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또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사용하는 말 중에는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
호오~ 뉘집 아들래미… 아니 뉘시스템 인공지능이 이리도 똘똘하누?
[ 인간이 아무리 완벽하게 일을 꾸며도 성사됨은 하늘에 달려있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오늘 작전도 당신이 생각하지 못한 돌발요인으로 인해 실패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습니까? ]
“그야 당연히 그랬다네, 몽몽군.”
[ 그렇다면 만약… 저의 주인님께서 그 실패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면, 그럴 경우에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었습니까? ]
흐음. 나대신 내가 묻고 싶었던 걸 잘도 심문(?)해 주는군.
“이번 작전의 실행 과정 중, 어느 부분에서 실패했을 경우를 묻는 건가. 상황별로 질문해 주겠나?”
[ 알겠습니다. 이번 작전의 시작은 최소한 ‘카디아나 정’의 파견에서부터라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실패했을 경우 주인님의 신변에 즉각적인 위협이 될 정도의 상황 위주로 체크 하겠습니다. ]
“그러시게나, 몽몽군.”
[ 당신은 LA공항에서 주인님의 수하가 준비해 놓은 헬기들을 파괴함으로서 주인님의 수하가 동원할 수 있는 용병부대, 즉 주인님께서 당신이 보낸 헬기부대를 만나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정도의 부대 편성이 가능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또한 적절한 시점에 이 곳에 SFV가 존재함을 알려서 더욱 주인님의 행동이 일관성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결국 주인님은 극히 불합리한 격차의 전투력을 가진 헬기부대와의 전투를 선택했으며, 만약 그 전투에서… ]
“이봐, 이봐 몽몽군. 그 때의 전투 상황에서는 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유준군이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어. 사막에 뛰어내려 지둔술(地遯術)을 쓰는 것만으로도 동원된 헬기들에 장착된 어떤 무기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을 거야.”
[ 주인님께서 수하들을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수하를 비롯해서 가까운 사람들의 안전을 포기하지 않는 성향이 있습니다. 주인님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해 왔다는 당신이 그런 기본적인 사항을 계산에 넣지 않습니까? 또한 난전 상황에서는 주인님의 능력과 저의 기능으로도 놓칠 수 있는 유탄에 적중될 가능성도… ]
으음. 나대신 하나하나 따져 주는 건 좋은데 좀 지나치게 꼼꼼하다는 생각도 드는군. ‘시비 걸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그래도 계속 가만히 몽몽과 닥터 제이의 문답을 들어보았다.
[ …거미형 로봇들의 습격 때, 당신은 주인님의 전투력과 저의 서포트 능력까지 계산하여 결국 주인님께서 거미형 로봇들을 모두 수중에 넣는 결과를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측의 사소한 문제로 인하여… ]
심약 소녀 패티의 문제는 평소라면 분명 사소한 거긴 한데, 지난번과 같은 상황에서는 좀… 심각했지.
[ …타이밍을 놓쳐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돌발 상황 말고도, 전투 과정에서 주인님의 수하 중 절대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게 할 대책이 있었습니까? ]
“유준군의 수하들 문제부터 말하자면… 처음부터 그들을 유준군이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인질’로 규정함으로서 오히려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했지. 하지만… SK의 프로그램에 나중 드러날 만큼 노골적인 보호 코드를 넣을 수는 없었기에… 음, 솔직히 그들 중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은 어느 정도 감수했음을 인정하네.”
[주인님께선 당신과 달리 수하들의 생사에 많은 영향을 받는 타입입니다. 희생자가 나왔을 경우, 그 이후 주인님의 의식과 행동 변화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신과 달리’…라, 몽몽 녀석 정말로 닥터 제이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특별한 대책은 없었어. 일단 유준군은 수하들의 희생과 같은 일에 급격한 감정 변화를 느끼고, 그것이 약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것이 오히려 전투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성격이야. 무엇보다 ‘분노’라는 감정을 생산적으로 이용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거든. 어렸을 때부터 … 그랬지.”
흐음. 닥터 제이는 또 나의 어렸을 때를 언급하면서 ‘난 너 보다 진유준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를 강조하는군. 은근한 신경전도 그렇고, 이거… 나의 심리분석까지 도마에(?) 오르니까 듣고 있기가 조금 껄끄러운 걸?
“다만 문제는… 그로 인해 전투력의 저하는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유준군 표현처럼 빡 돌아 버려서 나의 숨은 의도를 무시해 버릴 가능성… 그게 문제였지. 그래, 그 부분에 있어서 불확실성이 많았음을 인정해. 사실 그 때는 몽몽군이 말한 성사재천의 결과가 나와서 나도 크게 안도했었다네.”
닥터 제이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자 몽몽도 조금은 수그러드는 기색으로 물었다.
[…작전에 허점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강행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그래. 무엇보다 이 시대에 복귀한 이후, 유준군 자신의 성장과 GM과의 만남, 지하무림의 장악… 모든 진행이 너무나 빨랐어. 그 때문에 유준군에 대해서 나와 하운군에게 맡겨 두고 있던 프리메이슨들도 빠르게 참견을 시작했지. 더 지체 하다가는 그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서 유준군이 위기를 느끼기도 전에 위험해질 우려가 있었어.”
으음. 하긴… 처음 두 달 정도를 수련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대교를 만난 이후로는 정말 정신없는 하루하루였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골든 차일드. GM의 상징이자 마스코트… 유준군이 금동이라고 부르는 그 원숭이로부터 시작되었어. 그 원숭이는 완벽하게 우리의 계획 밖에서 등장한 존재였지. 하은이가 골든 차일드를 만나 그 길로 가출을 감행해 버린 돌발 사태 … 그런 중대한 문제가 한동안 내게 보고조차 되지 않았지 뭐야. 골든 차일드를 못 알아 본 자들이 하은이의 가출을 가벼운 해프닝으로 여기고 자신들끼리 적당히 처리하려 들었던 거라네. 물론 본래 유준군을 감시 관찰하는 팀이 따로 존재했지만, 그 팀은 그 때 ‘패턴 2’… 간단히 말해서 멀찌감치 떨어져 원거리 관찰만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유준군의 고수답게 민감한 이목과 자네의 강력 한 스캔 기능… 특히 ‘예상 밖의 조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
예상 밖의 조심성…? 아, 혹시 그 일을 말하는 건가? 내가 무림에서 복귀한 후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나에게 온 ‘복학 안내장’이 든 우편물이 우체국 소인이 찍힌 후에 재개봉 되었던 흔적이 있음을 몽몽이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물론 나와 몽몽을 노리는 적이 있음을 생각도 못했었기에 우체국에 항의 전화를 한 통 거는 정도로 끝내고 잊고 말았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은이를 담당한 팀의 방심, 관련된 GM의 특기인 은밀한 움직임… 결국 우리가 유준군과 하은이의 만남을 막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지. 그리고 그로부터 모든 일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거야. 유준군은 우리의 예정보다 빨리 하은이를 만남으로서 너무 빨리 DP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GM과의 접촉으로 그들과의 옛 인연도 되살리기 시작했어.”
내가 생각해 봐도 금동이와의 재회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지. 거기다가…
“유준군의 친구들, 이준엽군과 강성원군으로부터 시작된 지하무림과의 빠른 재회 또한 계획 밖이었지. 20년이 넘게 유준군을 기다리며 세워 놓았던 치밀한 계획들이 단 두 번의 돌발 상황에 의하여 삐걱대기 시작했던 거야. 그야말로 성사재천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전개였어.”
닥터 제이가 또 몽몽이 인용했던 한자성어를 도용(?)하며 바라보자, 몽몽은 공연히 살짝 얼굴을 붉혔다.
“뭐, 참고삼아 말하자면 그 때 하은이 감시를 맡고 있던 팀과 유준군의 주변 인물들 체크를 맡고 있던 팀은 현재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심해 고기들과 노닐고 있다네.”
VIP급인 하은이의 감시 및 보호임무를 소홀히 한데다 일을 멋대로 처리하려던 팀은 그래도 조금 이해가 되지만, 내 친구인 성원이와 준엽이가 구양대주의 후계자로 찍혔다는 걸 몰랐다는 이유로 태평양에서 인어놀이를 하게 된 팀은 상당히 억울했겠군.
“그리고… 자네와 골든 차일드의 만난 후 보인 서로간의 태도에서 짐작은 하고 있네만, 골든 차일드는 정말 천년 전의 그 금동이와 동일한 개체인 건가?”
..어? 아, 이번에는 나에게 묻는 거구나.
“…예. 사실입니다. 그녀석이 맞아요.”
내 대답에 닥터 제이는 고개를 저으며 얼마간 작게 웃었다. 짐작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역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이거야 원… 그게 설마 진짜였다니…! 내가 연구에만 몰두해 있을 때였다면 어떻게 해서든 확보하여 연구해보고 싶었을 거야.”
아… 그런 측면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우리 일과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앞으로 골든 차일드는 가급적 자네 곁에 두고 보호하게.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GM에 돌려주어야 할 거야. GM에게 있어 골든 차일드는 매우 특별한 존재이니 그 곳이라면 그나마 안전할 거야.”
“금동이의 생명력을… 불로불사(不老不死)의 꿈에 이용하려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군요.”
“그렇지. 뭐… 단순 무식하게 잡아먹으려고 드는 자가 있지는 않겠지만… 아니, 그 것도 장담은 못하겠군.”
에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원숭이 골요리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은 판국인… 윽, 갑자기 마녀 여옥이 떠올라 버렸다. 그 재 수없는 여자가 금동이의 정체를 알게 되면 소교가 말리거나 말거나 미친 듯이 잡아먹으려고 들겠는 걸?
“…예. 앞으로는 그 문제도 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네요.
근데 그게…”
나는 고개를 들어 금동이가 있을 지상 방향을 막연하게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금동이는 천년 전부터 자유롭게 살아왔습니다. 새삼스럽게 자유를 구속해 가면서 보호해 준다고 하는 것도 좀… 음, 암튼 좀더 신경을 쓰긴 해야겠네요.”
그래. 금동이는 천년이 넘도록 자기 힘으로 자유롭게 살아 온 녀석이다. 함부로 보호해 주네 어쩌네 하는 건 오히려 실례일 지도 모르지.
“그건 그렇고… 몽몽. 이제 터치하자.”
[ 예? 아, 알겠습니다. ]
몽몽은 내가 내민 손바닥에 자신의 작은 손바닥을 착 부딪친 후 나와 닥터 제이 사이의 공간에서 물러나서 내 옆의 허공에 섰다.
“거미 로봇 군단과의 싸움을 끝내고 나서 말입니다, 전 그 때 그대로 다른 루트를 통해 이 곳을 찾아 올 생각이었습니다. 지하 동굴 안에 대기 중이던 수송팀과 닥터 우디라는 사람을 찾아낸 건…”
GM의 챈과 소령이, 미령이가 도와줬다는 얘기까지 해야 하려나…? 아니, 혹시 챈도 결국 닥터 제이의 사주를 받은 …
“음. 그 때는 자네의 ‘운’이 작용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닥터 우디가 사고를 쳐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고 말았을 거야.”
다행…이다. 그 친구와 소미령 남매의 일은 ‘작전’이 아니었어.
“…그럼 닥터 우디도 이쪽 편이었던 건가요? 그럼 험하게 대한 게 좀 미안하네요.”
“아니, 닥터 우디는 물론 과학자로서는 쓸만한 친구지만 신뢰성 높은 동료로는 적합하지 않아. 나는 단지 그에게 첫 실전 투입인 SK부대와 그 수송대의 지휘를 맡기며 부담감을 지워주었을 뿐이지. 자네의 수하들이 먼저 수송대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십중팔구 닥터 우디가 나서서 SK부대를 되찾으려는 시도를 했을 거야. 물론 대체 어떻게 SK부대의 통제권을 빼앗긴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도 그를 부추겼을 테고.”
“흐음. 역시 우리가 개조해서 전파 증폭기로 쓴 장비도 일부로 그런 사람에게 맡긴 거였군요.”
“그래. 그리고 닥터 우디가 자신도 모르게 맡은 임무(?)는 또 하나있지. 앞으로도 계속 자네의 ‘포로’가 되어 있는 거 말이야.”
“예? 그건… 어, 혹시…”
“후후- 그래. 앞으로 자네가 적에 대해 갑자기 더 많은 것을 알고 적의 공격에 대비한다 하더라도 적들은 그 정보가 ‘이미 죽은 닥터 제이’보다는 살아있는 닥터 우디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겠지.”
하아- 이 사람 참…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음. 가급적 잘해 주게. 과학적인 재능에 비해서 너무 마음이 약한 친구거든.”
“훗~! 알겠습니다.”
“음…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묻기로 하지. 유준군, 자네는 자네가 조담놈이란 별명을 붙여 준… 그 적수와의 대결에서 뭘 느꼈지?”
뭘 느꼈느냐고…? 그야 물론 느낀 건 많지만 막상 말로 하려니까 좀…
“내가 자네를 조담놈과 대결시킨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닫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네.”
“두 가지… 중요한 거요?”
“그래. 아직 모르겠나?”
“그, 글쎄요. 그냥… 전… 앞으로 근원진기를 가급적 써서는 안 되겠다는… 쓰고 싶지 않다는…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인데요?”
에구. 갑자기 내가 심문받는(?) 입장으로 역전되니까 상당히 부담스럽네. 이 양반에게 바보 취급받기도 싫고…
“훗~! 그래. 바로 그게 첫 번째 정답이야.”
“예?”
“자네는 비록 조담놈에게도 승리했고, 그 전에도 수많은 위기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근원진기를 사용해서 그걸 극복해 왔어. 하지만 앞으로는 그래선 안돼.”
“아, 예. 그거야 저도 그러고 싶지만… 근데 그게 어디 말처럼 되나요? 게다가 앞으로도 적들이 제가 더 강해지기를 손가락 빨고 기다려 주지 않을 테고요.”
“그래.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까지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해. 그 것이 자네가 두 번째로 깨닫고 실천해야 할 문제이지.”
“근본적으로 바꿔요? 뭘… 말입니까?”
“무공에 대한, 무공을 사용하는 방식과 인식…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네는 앞으로 자네가 알고 있는 모든 잡다한 무공을 버리고 오직 생사금마도결 하나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거야.”
“…글…쎄요. 저도 물론 생사금마도결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제일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역시 자네는 아직도 생사금마도결을 잘 모르고… 얕보고 있군.”
“예?”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제가 생사금마도결을 얕보고 있다고요? 생사금마도결은 제가 아는 한… 아니 다른 무공과 비교할 필요도 없죠. 생사금마도결은 본래 최강으로 알려진…”
나는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닥터 제이의 찌르는 듯한 시선도 시선이지만, 나 스스로 내 말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난… 생사금마도결이 천하제일무공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최강으로 생각해 왔었던 건가…? 아니면 몽몽이 그렇다고 검증을 해 줘서…? 그건… 그랬다 해도 특별히 잘못된 게 아닌 듯 한데… 그런데 어째… 막상 그걸 남에게 ‘주장’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찜찜하고 창피…한 거지 …?
“난 비록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지만, 자네보다 훨씬 오랜 세월동안 생사금마도결을 연구해 왔고, 자네의 싸움을 지켜봐 왔어. 자네는 생사금마도결을 주공격 수단으로 쓰면서 거기에 다른 무공을 적절히 섞어서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내가 장담하네만, 생사금마도결을 ‘완성’하게 되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가 없을 거야.”
“생사금마도결의 완성…이요?”
“그래. 자네는 생사금마도결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자네는 생사금마도결을 능가하는 무언가를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어. 생사금마도결이든 뭐든 자신이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그렇지 않나?”
“그… 그건…”
아니라고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자네의 자부심과 자유로운 정신은 그 자체로도 크나큰 재능이지. 하지만… 그런 건 생사금마도결을 ‘완성’한 다음에나 추구하게.”
‘기본도 안 된 놈이 까불고 있어’라는 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훗~! 지는 무공도 못하는 것이 별소리 다하네…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아, 아뇨… 전 그냥…”
언제나 고집해 오던 나의 근본적인 성향을 뒤엎어야 한다는 말에 간단히 수긍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 양반이 무공을 익히지도 못하는 체질이라는 점에 반발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마음속으로 사부님으로 인정한 연옥서생 사부가 바로 그런 체질이었다. 그리고 원판 역시 천재의 기본 핸디캡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런데도 원판의 무공에 대한 이해도는 극히 높고 깊어서 비화곡의 모든 마인들이 자주 가르침을 청했다고 했었다.
그… 뭐냐, 최고의 권투 코치가 꼭 세계 챔피언일 필요는 없는 것처럼… 최고 선수였던 차범근 선수가 최고의 감독이 아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양반은 감독으로도 꽤 하시지…? 그럼 다른 사람, 다른 비유를, 박찬호, 박찬호가… 뭘? 에이 쒸- 나 또 왜이래?
[ 어머? 골치 아픈 무공 토론을 하고 계셨네? ]
요몽이었다. 녀석은 오빠인 몽몽이 닥터 제이에게까지 보이는 형태로 구현되고 있으니까, 지도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호오~ 자네가 요정몽… 아니, 이젠 요몽이라고 했지? 내가 재현시켜 봤던 모습보다 실물(?)은 훨씬 더 귀여운 걸?”
[ 호홍~ 초면에 별말씀을 다… 어쨌든, 반가워요, 닥터 제이! 전 요몽! 대교님 보호협회 산하 인터넷 감시 및 쫄따구 양성 특별부서의 미소녀 요정부장…겸, 후진양성 특별 위원회 단독수장 겸 강사에 레크리에이션 부장과 전투시 후방지원 최고참모 산하 특수 해킹 돌격대 대장과 현장 특공 임무 수행 요원을 겸직하고 있으며… ]
으음. 이 녀석, 처음으로 나와 대교가 아닌 인간과의 접촉이라 그런지 다소(?) 흥분한 것 같군.
닥터 제이는 요몽의 요란스런 인사와 자기소개를 들으며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는 이미 조금 전 나를 다그칠 때의 분위기가 사라져 있었지만, 당연히 내 기분도 그렇게 금방 바뀔 리가 없었다.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고 몸을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생,사,금마…도결…! 다른 모든 무공을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리고… 생사금마도결만을… 생사금마도결의 완성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나도 물론 내가 생사금마도결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조담놈과의 대결에서 여실하게 드러났듯,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당분간(?)은 다른 무공의 응용도 어쩔 수가 없는 거… 아닐까? 현재의 상황에서 완성도 안된 … 쳇. 막상 계속 말하니까 왠지 열 받는… 음, 하여간 연옥도에서 수련할 때도 아니고, 전투의 연속인 현재의 상황에서 생사금마도결에만 매달리는 건 역시 비효율적인 거 아닐까…? …하아아- 그렇지만 현재까지의 방식으로도 분명히 해결되는 건 없고… 이대로… 이대로 툭하면 근원진 기를 쓰다가는 언젠가 대교 보다 먼저… 그렇게 되면 대교는 또… 제기, 그건 안돼. 또 그녀를 홀로 남겨두고…
나도 모르게 두 손에 힘이 들어갔고, 그와 함께 오른손의 손아귀에 쥐고 있던 서늘한 쇠붙이가 더욱 굳건하게 느껴졌다.
정…글,도. …그래. 난 한 때 이 정글도와 현대 병기를 병행해서 쓰는 것을 연구하고 또 수련해 왔지. 하지만 난 결국… 나는 원판의 한국 아지트에서 다시 정글도만을 선택했던 때를 떠올렸다.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결정적인 위기에서 나를 구해 주었던 것은 결국 이 정글도였고, 나는 결국 정글도와 함께, 이 녀석과 함께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끝까지 가보겠다고 결심했었다.
나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그래서 어중간하게 내 곁에 단지 ‘있기만 했던’ 건… 생사금마도결도 마찬가지였을까 …? 그래서 완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하고… 단지 수단으로서 겉돌고 있었던 걸까…? 생사금마도결을 위한, 생사금마도결밖에 없는 싸움… 한 번…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