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7-1화 : 봉인(封印) 깨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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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67-1화 : 봉인(封印) 깨기.(1)


7-9. 봉인(封印) 깨기.(1)

마녀 여옥, 오랜 세월 대교를 옭아매고 있던 그 사슬은 드디어 끊겼다. 대교는 여옥의 집을 떠나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교 또한 그런 것을 바라지 않은 듯 스스로 눈물을 멈추고 닦아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대교는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창밖 쪽으로 돌린 채 입을 열었다.

“…분해요. 그리고 창피해요.”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우리 대교지.

“한 발만… 단 한 발만 저 스스로 내딛었더라면… 그럴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나도 대교가 지금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교가 단지 ‘이 사람 곁에 있으면 안전하겠구나’ 정도의 생각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여옥 이모도 저렇게까지…”

…뭐?

“저렇게 어리석은 길을 택하지 않았을지도…”

대교, 이 녀석…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앞서가 주는 건가…?

대교는 진심으로 여옥을 이모라 칭한 것을 끝으로 얼마간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뭔가 구체적으로 묻고 싶지는 않아서, 느긋하게 양손을 머리 뒤에 깍지 끼고 베개 삼아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댔다.

우리를 너무나 넓고 편안한 뒷좌석에 실은 차가 여옥의 집을 떠나고도 거의 20분이 지났을 때, 대교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맙다는 말… 안 할 거예요.”

“훗~! 당연하지. 그딴 소리 듣자고 그런 것도 아니고…”

“죄송하다고… 못나고 바보처럼 굴어서 죄송하다고… 그런 말도 안 할 거예요.”

“음. 그야 뭐…”

“그러니까, 감사의 키스…를 한다거나… 그런 짓도 안 할 거고요.”

“어, 야아~ 그건 좀 아쉽다.”

내가 본능적으로(?) 불만을 표하자, 대교는 한 손을 들어서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하고 쳤다.

“됐죠?”

“뭐, 뭐가?”

“그냥, 뭐… 역시 고맙다고요.”

“넌 고마우면 사람을 때리냐?”

“피이- 누가 때렸다고 그래요? 천하의 마군황께서… 아프지도 않으면서.”

“야.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서…”

실은 쬐금 아팠다. 난 지금 상당히 심한 부상 상태인데다 대교의 공격(?)에는 호신강기도 작동을 안 해 버리니… 어? 뭐야? 얘, 왜 이래?

“후후~ 정말 이상한 사람…”

대교는 스윽 내게 자신의 상체와 머리를 기대오기 시작했지만, 그건 감사의 키스 같은 걸 하려는 태도가 아니었다.

“천년이나 전의 기억 같은 거… 이제 생각해 낼 수도 없는데… 그래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인데… 그런데도 이 주가혜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대교의 작은 이마와 머리결이 내 가슴에 기대져… 슥슥 문질러(?)졌다.

“어리광을 부르고 싶어지게 해요, 당신은…”

으윽! 대교의 내면에는… 이런 신세계(?)도 있었단 말인가…? 어, 어쨌든 이건… 어떤 의미에서는 키스보다 더한 감사 표시 같다는 생각이…

나는 나도 모르게 대교를 안기 위해 손의 깍지를 풀고 있었다.

“후후~ 이런 건 본래 소…”

응? 이 녀석 왜 갑자기 말을 흐리며 몸을 굳히지?

혹시 소교를 떠올리고 그 아이의 안쓰러운 상황을 상기한 건가…? 하지만 그런 연상작용이 있을 수 없을 만큼, 그 녀석은 얘보다 더 이런 타입이 아니잖아?

“이상…해요. 뭔가, 뭔가가…”

대교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몸을 바로 하여 내 팔을 무색케 하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뭔가 생각해 내려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교가 아니라… 다른 이름이… 누군지 다른 이름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런데 그게… 분명 낯선 이름인데도 이상하게 친근한 느낌이… 게다가 그렇게 친근하고 그리운 존재는… 어쩌면 또 한 명… 너무나 앙증맞은… 인형 같은…”

이것…봐라?

“소령이?”

“예?”

“소령이와 미령이! 그 아이들을 기억해 낸 거야?”

대교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으로 멍하니 날 바라보았지만, 곧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 기색이었다.

“또… 있었어요? 그런 거예요?”

대교의 물음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지난번 지하무림의 석실에서 몽몽이 대교에게 알려 준 천년 전의 일들은 주로 나와 관련된 일들이었다. 현재도 대교와 자매로 태어난 소교에 대한 것만 더불어 알려졌을 뿐, 아직 대교는 천년 전의 자기 동생들이 셋이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스스로 기억해 냈다는 건… 마녀라는 정신의 족쇄 하나가 풀렸기 때문인 건가…?

< 몽몽… 보안은 확실하지? >

[ 그렇습니다. 현 차량 탑승 시 주인님께서 직접 작동시키셨던, 이 앞뒤 좌석 사이의 칸막이는 방음과 방탄까지 가능하며 점검 결과 이상 없이 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

“대체 누구죠? 어디 가까이, 제 가까이에 있었나요? 예?”

“…좋아. 보여 줄게.”

몽몽은 즉시 대교 앞에 현재의 소령이와 미령이의 모습을 입체 영상으로 내보내 주었다.

“이 아이들이… 천년 전에는 네 자매였던 너희들의 셋째와 막내야.”

대교는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소령이와 미령이를 쳐다만 보고 있더니 천천히 손을 뻗기 시작했다. 마치 실제의 헤어졌던 동생들을 만나기라도 한 듯, 대교는 소령이와 미령이의 영상에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을 대보고 있었다.

“소령이…? 이 아이가… 어리광쟁이 소령이…?”

평소의 소령이는 무뚝뚝해 보일 정도로 감정 표현이 적고 어쩌다 한다 해도 그나마 서툴지만, 대교와 소교처럼 마음을 트고 지내는 언니들에게는 막내 미령이보다도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고 한다.

“미령이… 앙큼한 새침떼기… 그래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막내…”

역시 정확하게 소령이와 미령이를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기억도 조만간… …아니, 아니… 진정해라, 진유준. 성급하게 기대하지 말자. 아직 기억봉인… 정신의 족쇄는 하나밖에 풀리지 않았다.

“이, 아이들… 지금 어디에 있지요? 이건 과거의 모습인가요? 아니면 현재의… 아, 그렇구나 요즘 복장을 하고 있어.”

“훗~ 그래. 가장 최근의 모습이야. 하지만 예전과 똑같아, 너처럼 말야. 그런데… 음.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 워낙 신출귀몰한 조직에 속한 녀석들이라…”

“예? 그러면 이 아이들도 평범하게 태어나지 못했다는 건가요? 설마… 삼합회?”

“아니, 그건 아니고… 음. 그러고 보니 대교 너 역시 내 뒷조사를 한 적이 있다고 했지?”

“아… 그럼 GM…? 그런 정보 조직에 이 아이들이 있다고요?”

“그래. 나와는 금동이 녀석 때문에 만나게 되었는데, 아직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GM에서도 상당히 지위가 높은 사람의 양녀로서 잘 대접받고 있는 모양이니까 안심해도 될 거야.”

“금동이, 전 한 때 에릭이라고 불렀었던… 그 금동이가 이 아이들과도 알고 있었나요? 그리고 양녀요? 그럼 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교야. 우리, 차근차근 가자구,”

“아, 죄송해요. 제가 그만…”

“훗. 죄송할 건 또 뭐냐. 빨리 모든 걸 알고 싶은 건 당연하지. 음.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짧게 개요만 얘기해 주고 자세한 건 나중에… 아니, 아예 직접 소령이와 미령이를 만나자.”

내가 갑자기 시간이 없다고 하는 건, 여옥의 저택…이었던 곳에서 인사도 없이 헤어진 CR들과 재 접선 (?) 하기로 한 장소가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정을 먼저 대교에게 알려 주었다. 그런 다음에 어떻게 소령이와 미령이를 만나게 되었는지, 금동이가 GM에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소령이와 미령이가 전생의 기억이 없음에도 아이돌 스타 주가혜로서의 대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런 얘기들을 최대한 압축하여 들려주었다.

“미안. 이런 얘기는 좀더 여유있게 해 줘야 하는데 말야.”

“아뇨. 당신이야말로 미안해 할 일이 아니잖아요.”

대교는 말뿐이 아니라, 진짜 동생들의 얘기를 대략이라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 꿈꾸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서 그랬나봐요. 전 어렸을 때, 항상 그랬대요. 소교와 함께 소꼽놀이를 하고 놀면서 ‘동생이 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예쁜 인형 둘을 가지고 와서 동생으로 삼고 놀았었대요.”

“훗~! 니들 정말 끔찍이도 사이좋은 자매다, 진짜.”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사실 언제든 가능할 지도 몰라. 내가, 그러니까 중요한 의뢰인이 요청한다고 꼭 녀석들이 나타나리란 보장은 없는 거지만… 음.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리의 상황이 문제야. 무슨… 뜻인지 알지?”

내 말에 대교는 흠칫 잠에서 깨어나듯 웃음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결코 어두운 표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소교를 만나야죠. 그리고… 함께 아버지를 찾아 갈 거예요. 대체 과거에 우리 부모님들 사이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건지… 왜 지금까지처럼 살아와야 했는지, 꼭 알아내야겠어요.”

나는 대교의 단호한 음성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 네가 더욱 홀가분하게 과거를 털어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소교도… 그 녀석도…”

소교에 관해서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건, 나도 솔직히 과거를 알기에 앞서 오늘 당장 일어난 일조차 그 여리디여린 아이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지금까지 여옥을 치지 못했었던 거고 말이다. 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소교는. 그 아인… 보기보다 강해요. 전 그렇게 믿고 있어요.”

대교는 확신에 찬 어조로 그렇게 말했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걸 진심으로 간절히 빌 수밖에 없었다.

[ …주인님. 포인트 지점 도착 직전입니다. ]

< …은사마군. 준비하고 있나? >

< 예, 천주. >

“…대교, 아무래도 이제 가봐야겠다. 금방 다녀 올게.”

“예, 다녀오세요. 조심하시구요.”

길 건너 시장 다녀오겠다는 정도로 보이는 인사를 주고받은 후, 뒷좌석의 나와 앞좌석 운전석의 은사마군은 거의 동시에 차 문을 열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 내렸다. 특수 제작된 차라 열린 차 문까지 운전석에서 스위치 하나로 닫을 수 있기에 대교가 있음에도 한 짓이었다. 나는 길가의 어둠 속에 착지한 후, 잠시 대교가 탄 차가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 본 후에 몸을 일으켰다.

닥터 제이는 분명, 내가 시간여행을 끝내고 몽몽과 함께 돌아 온 후로는 감시에 대한 대응력이 너무 높아져서 프리메이슨도 그리 철저하게 감시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최소한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비밀스런 움직임 분위기가 나지. 암.

< 은사마군. 내 뒤를 놓치지 마. >

< 예, 천주. 천주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나는 현재 내력의 반 이상을 상처가 벌어지거나 하지 않도록 육체를 안정화하는데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그랜드캐년 전투 이후 꾸준히 운기조식만 하고 지냈기에 나머지 내력으로도 공공보법의 7, 8성까지는 무난하게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 간다. >

짧은 알림과 함께 몸을 날릴 때가 2성, 그리고 곧바로 3성, 4성… 기어를 올린 스포츠가 탄력을 받듯 점점 더욱 빠르게 나무 사이를 달렸다.

호오- 제법인데, 은사마군. 공공보법을 7성까지 펼쳤는데도 따라잡고 있잖아? 음… 결국 힘겨운 듯 약간씩 멀어지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대단해.

은신술과 경공은 분명 일백마군 중 최고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내심 은사마군을 칭찬하며 그녀가 눈치채지 않도록 아주 조금씩 속도를 줄여 주었다.

그나저나 닥터 제이가 지정해 준 장소는 이쯤이 맞는데… CR 녀석들은 왜 이렇게 하나도 안 보이는 거야?

닥터 제이는 적들이 나나 몽몽의 대응 능력을 속이기 어려운 지형, 적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인공 위성의 위치 등등 모든 것을 감안해서 가장 안전한 장소를 선정했다고 한다. 오늘은 나 혼자 잠적하는 것도 아니고 무지하게 많은 자들과 만나야 하는 거니 말이다.

[ …주인님. 조금 전부터 인간의 가청 범위를 넘어선 음역의 음이 숲의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

< 개피리에서 나오는 소리 같은…? >

[ 그렇습니다. 아마도 CR들 간의 연락 수단인 것 같습니다. ]

< 흐음… 그런 것도 가능하면 나름대로 편리하기도 하겠… >

어, 전방의 나무 위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데?

[ 주인님! 주의하십시오! ]

살기? 근데 왜?

반사적으로 정글도를 잡는 순간, 너무나 거대한 그림자가 나와 내 부근의 공간 전체를 덮고 있었다.

BB형제…? 제기…

상대의 정체를 알자 오히려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정글도를 멈추느라 진기가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래도 무조건 속도를 더 높여서 간신히 BB형제의 공격권에서는 벗어날 수가 있었는데…

꽈릉-

몇 톤의 쇳덩어리가 땅에 내려꽂히는 듯한 소리와 진동이었다. 공공보법을 멈추고 신형을 가누면서 돌아보니, BB형제가 어디선가 뛰어내리면서 양손으로 동시에 내려친 구역의 땅에 거짓말처럼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흙먼지가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구덩이 안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오는 BB형제를 보고 있자니, 마치 괴수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야황 녀석, 대체 왜 BB형제에게 암시를 걸어 놓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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