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0-1화 : 사영회주(死影會主) 주성후.(1)
8-2. 사영회주(死影會主) 주성후.(1)
내 전용 차량은 뒷좌석이 매우 넓어서 나와 대교, 그리고 소교까지 같이 타고 있어도 널널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 안의 공기는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이었다.
서로 각자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 말도 없이 멀뚱하게 앉아서 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사영에게 가는 거 자체가 그렇게 유쾌한 용건이 아니어서이기도 했지만, 사영을 통해 알아 낼 과거의 사연에 미리 암울해 하기에는 사실 그게 너무 막연했다.
현재의 분위기는 당연히 현재의 상황 자체 때문인 것이다.
나야 당연히 소교의 어머니를 작살내고 온 사람이니 소교에게 미안해서 그럴 수밖에 없고, 소교는 소교대로 나와 대교의 사이를 신경 써서…
아, 그거 아직 안 물어 봤다.
“대교야. 소교에게 소교의 전생까지 얘기해 줬니?”
내가 건너편의 소교 눈치를 살피며 전음으로 묻자 대교는 내 손등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서 대답했다.
- 예.
그건 나도 미리 허락한 바가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소교는 이미 자신의 전생에 대한 기억을 약간이지만, 그리고 비록 아득한 꿈의 형태일지라도… 분명히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그… 예전에 소교가 날… 쬐끔… 좋……”
- 아뇨.
“에… 흠. 그래. 그런 과거는 모르는 게 좋지. 자신이 기억해 낸다면 할 수 없겠지만……”
어쩐다…? 이것도 지금 물어 봐야 하는 건지 어떤지 모르겠네.
하지만… 어차피 넘어야 할 산.
“어떤 거 같아…? 그게… 소교가 혹시… 혹시 이번에도 날……”
윽! 대답 대신 꼬집는다.
- 바람둥이.
“어, 야아~ 내가 뭘 어쨌다고……”
- 설마.
설마?
- 소령 미령.
소령이와 미령이 이름을 쓴 뒤에 톡톡 두 번 두드린다.
“…의문형, 물음표 붙이라는 거니?”
- 예.
뭐야, 그럼. ‘설마 소령이와 미령이도 당신을?’이란 뜻인가?
“글쎄. 확실치는 않지만… 윽, 야아- 말을 끝까지 들어 봐야지.”
- 죄송.
“어… 소령이 같은 경우는 알다시피 과거에는 내 친구와 맺어졌고, 이번에는… 내 생각에는 같은 GM의 ‘챈’이란 친구가 소령이에게 마음이 있는 거 같아. 하지만 아직은 뭐랄까… 거리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챈은 나와 천우신의 일화를 동경하고 있으니까, 그 때문인지도 모르지.”
- 무슨 뜻(톡톡).
“소령이란 이름. 자신보다 상급자의 양녀. 정보 조직답게 비교적 사실적으로 전해졌을 천우신의 부인 소령의 용모와 행동 패턴… 뭐 이런 것들을 조합해서 현재의 소령이를 과거의 소령이와 어느 정도 동일시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 확실(톡톡).
“아니. 그냥 내 생각이야. 하지만 요전에 보니까 챈은 내가 과거 인물의 환생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자 누구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긍정해 버리는 것 같았어. 그만큼 전설로 내려온 과거의 우리들 얘기에 빠져 있다는 얘기지.”
- 좋은 사람(톡톡).
“음… 지금까지 본 바로는 그래. 의식적으로 그렇게 노력해 온 건지는 몰라도, 성향이 과거의 내 친구 천우신과 상당히 비슷한 것 같아. 치밀하고 빈틈없지만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기본적으로 그런 스타일이지. 만약 다른 부분까지 닮았다면, 한 여자에 대한 일편단심에 굉장히 자상함까지 갖추고 있겠지.”
- 좋은 사람.
“그래. 정말 괜찮은 놈이었지. 적어도 오리지널 천우신… 그 친구는.”
- 미령(톡톡).
“미령이… 미령이가 문젠데… 윽! 야! 그 문제가 아냐!”
이젠 죄송하다는 대답도 없어서 슬쩍 표정을 보니, 대교 이 녀석… 정말 질투를 하는 게 아니라 장난을 친 것 같았다.
그래도 꼬집혔을 때 아픈 건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에이- 생각 다시 할까 보다. 이제 보니 바가지 엄청 긁는 스타일 같아.”
나도 슬쩍 농담을 걸었더니 대교는 잠시 대답 없이 웃고만 있었다.
호오- 그렇게 나왔다 이거지?
“…좋아. 이제 미령이 얘기해 주지. 걔… 잘 먹고 잘살아. 끝.”
내 전음에 대교의 표정이 짐짓 샐쭉해지고 있었다.
- 끝(톡톡).
“그렇지, 뭐. 달리 뭐 있나?”
- 진짜(톡톡).
중국어는 이제 몽몽이 해석 안 해 줘도 회화하는 게 불편이 없지만… 이런 필담(?)은 좀 난해하군.
이걸 ‘진짜예요?’ 정도로만 해석해야 할까?
아니면 ‘진짜 이러기예요?’로 해석하는 게 맞으려나?
…으음.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두 번째 해석이 맞을 것 같군.
“실은 그 애… 매일 잠도 잔대. 잘.”
어흑~! 이번엔 정말 아팠다.
“저어~”
갑자기 조용한 소교의 목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나와 대교는 화들짝(?) 놀라서 후닥- 서로로부터 멀어졌다.
그래봐야 같은 차 안이라 멀어지려는 몸짓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아직 멀었나요?”
“어, 그게… 아직 20분 정도는 남았을 걸?”
“…너무 하시네요. 저만 따돌리고……”
“으응? 우, 우리가 모얼.”
“흥!”
소교는 그녀답지 않는 콧소리를 내며 자기 쪽의 유리창을 톡톡 두드려 보였다.
“비, 비치디? 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뭐 특별한 걸 한 게 아니라……”
“알아요. 유준 오빠는 전음이란 걸 썼을 테고, 대교 언니는 손등에 글을 써서 대답했겠죠.”
으음… 역시 영특한 우리 소교. 다 눈치 까고 있었구나.
“너-어무 하세요! 아무리 두 분이 서로 좋아도 그렇지. 저에게는 말도 안 걸어 주시기예요?”
‘너 정체가 뭐냐?’라고, 무심코 물어 볼 뻔했다.
처음의 ‘흥!’도 그렇고, 저 뾰로퉁한 표정과 말투가 너무나 소교 같지 않은 모습이라 그렇다.
달리 생각하면 이건 이거 나름대로 신선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하지만……
“아니, 저, 그게, 우린, 그……”
“소령이와 미령이, 그 아이들 얘기하고 있었어.”
버벅대는 나를 대신해서 대교가 침착하게 대답하자, 소교는 더욱 입술을 삐죽이며 불만을 표했다.
“그럼 왜 두 분만 얘기해요. 저도 듣고 싶어요.”
아무래도 우리의 염장 방화질에
‘아- 쓰바 빡도네’ 모드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대교는 원인이 무엇이든 모처럼 적극적인 태도가 된 소교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잠시 후, 차 안은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당연히 소교가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지만, 그녀 무릎 위의 금동이까지 가끔 끽끽대며 훈수를(?) 두는 바람에 더욱 어색함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원숭이 알레르기는 완전히 없어진 모양이구나.”
짐짓 묻자 소교는 잔잔하게 웃으며 다시 금동이를 안고, 녀석의 금빛 털에 얼굴을 한쪽 뺨을 묻고 눈을 감았다.
“다른 원숭이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아이, 금동이는 예외예요.”
소교는 천천히 전에 ‘달빛이 하늘 그 자체’라는 꿈을 이야기할 때의 표정이 되어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만나고 난 후… 전 매일 어렸을 때의 꿈을 꾸었어요. 후후, 처음엔 그 누군가 때문이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금동이… 이 아이야말로 제 꿈속의 요정… 저의 외로운 꿈속을 지켜주는 황금빛 요정…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소교의 그런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기라도 하듯 금동이는 평소와 달리 조용히 소교의 품에 안겨 있을 뿐이었다.
“금동이는… 저에게도 온 적이 있어요.”
대교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전 에릭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었는데… 정말 생각할수록 신비한 원숭이예요.”
신비… 하긴 신비한 녀석이지. 나도 저 녀석이 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곳을 다니며 뭘 보고, 뭘 했으며, 또 누굴 만났는지 짐작도 안 가니 말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계속 찾아 다녔던 건지도 모른다.’
오늘 소교와 함께 있는 금동이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는… 섭섭하지만 확실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결국 금동이의 최종 소유자 내지는 친구가 될, 그래야 마땅한 사람은 나나 소령이, 하은이… 그 누구도 아닌 소교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금동이는 그렇게 간단히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런데 그 금동이는 현재 GM의 마스코트…랄까? 그런 존재야. 결국 그곳에서 데려가고 싶어 할 거야.”
내가 말함과 동시에 소교의 눈이 번쩍 뜨여졌고, 대교는 내게 원망의 시선을 던져왔다.
하지만 이건 모른 체하고 대충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만약 금동이의 불사에 대한 사실이 불사의 욕망을 가진 자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 또한 위험요인이 될 거야.”
소교는 반사적으로 더욱 꼬옥 금동이를 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금동이를 지키고 금동이는 절 지켜 줄 테니까요.”
소교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했고, 금동이는 그저 조용히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친한 소령이나 하은이의 품에서라도 너무 꼭 안기면 약간의 불편함을 드러냈던 금동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 그렇겠지. 아무도 너희들을 건드릴 수 없을 것 같구나.”
나는 그렇게 말해주며 웃었고, 대교도 함께 미소지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할 리가 없다.
나는 우선 GM과 어떤 식으로 ‘협상’을 해야 할지, 그것부터 막막할 정도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 자룡대주. 자룡대주… 들리나? 들리면 차로 신호를 보내라. >
나는 뒤차의 자룡대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자룡대주는 아직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전음을 보내는 건 무리여서 그녀가 탄 차는 곧 차의 깜박이를 켜 보였다.
< 아홉 마리의 용 중에서 하나를 다른 하늘에 보낸다. 준비해 둬. >
안 그래도 실연자 때문에 아홉 마리가 다 있는 것도 아닌 보천구룡대 중에서 한 개 부대를 통째로 빼버리면 프리메이슨과의 싸움에 상당한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마 소교의 방패가 되어 주던 마녀의 성을 무너뜨려 버린 것이 바로 나니까 말이다.
< 어떤 용을 보낼지는… >
< …천주. >
< 뭐냐, 은사마군. 지금 자룡대주에게 전언 중이다. >
< 죄송합니다, 천주. 저희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
뭐지? 은사마군이 사소한 일로 날 찾을 리는 없잖은가.
< 은사마군. 무슨 일이지? >
< …환영하는 자들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
환영하는 자들?
< 상대는? >
<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곧 전투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
쯧, 갑자기 어떤 놈들이지? 원판? 아니면 설마…
“놀라지마. 별일 아니니까.”
나는 대교와 소교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지만, 그녀들은 이미 놀라고 있었다.
별안간 양쪽 창문 바깥으로 지잉- 검은 장갑 판이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장갑 판이 닫히기 직전의 틈으로 언뜻 보인 것은 검은 색의 오토바이에 검은 옷, 검은 헬멧을 쓴 무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