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0-2화 : 사영회주(死影會主) 주성후.(2)
[ 현재의 지하무림 병력으로도 대처가 가능한 전력이라 판단되어 주인님의 담소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
< …그래? 좋아. 하지만 변수 가능성을 계속 체크해줘. >
현재 나를 뺀 우리의 전력은 이 차의 두 명과 후위의 차량 한 대와 그 안의 탑승자들, 이게 전부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교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서 다른 수하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최대한 단출하게 출발했던 것이다.
“정말 별일 없을 거야.”
내가 다시 대교와 소교에게 웃으며 말하는 순간, 총소리가 울리며 총알이 차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관총의 총성이나 타격 음도 실내에서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장단 맞추는 소리만도 못할 정도였다. 이 차는, 몽몽은 고사하고 DP의 기술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현 시대 기술로는 최고만이 동원되어 탱크 같은 장갑과 온갖 첨단 기술이 집약된 차라고 했다. 단점은… 더럽게 비싸다는 거.
“봐. 별일 없잖아.”
태연한 나의 말을 들으며 쓴웃음을 짓는 대교와 소교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본래 총질을 당하는 거 자체가 별일이잖아요’라는 항의였지만, 나는 슬쩍 무시해버렸다.
[ 헬멧 위의 작은 글자로 보아, 적은 흑영(黑影)으로 불리는 사영회 산하의 돌격대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
< …모니터 해봐. >
몽몽은 곧 바깥의 상황을 내 눈에 그대로 영상 중계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마치 타고 있는 차의 차체가 투명해지면서 바깥이 훤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그 순간에도 내 자리 쪽 가까이 접근해 있던 한 대의 오토바이는 끊임없이 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과연… 그 놈의 헬멧에는 작지만 분명한 흑(黑)자가 새겨져 있었다.
[ 사영회에는 표면적으로 흑과 백, 두 개의 돌격대가 존재하며 대부분의 경우에 적의 타격을 맡고 있다 합니다. 그 이면에 사영 자신과 같은 암살부대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직 정확한 정보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
흑백… 거기에 더 빨주노초파난보… 뭐가 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영이 자기 수하들 관리도 못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 흑영이라는 오토바이 폭주 자객들을 보낸 것이 사영 자신일 거라는 점이 문제인 거다. 다름 아닌 자기의 딸까지 탄 차에 총질을 지시하다니… 과거의 비밀이 이렇게까지 지켜야 할만큼 중대한 것인가?
[ …주인님. 로켓탄 공격입니다. ]
갈수록? 이 양반 정말……
도로 전방의 좌우에서 불꽃 꼬리를 매단 놈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 천주, 충격을 대비해 주십시오. >
은사마군이 다급한 전음을 보내 옴과 동시에 급격한 기어 조작과 핸들링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어진 것은 스르르~ 요트를 타고 잔잔한 강물 위를 흐르듯 움직이는 느낌뿐이었다. 이어서 느껴지는 쿠쿵-하는 폭발음과 진동도 차안에 설치된 스피커로 발라드 음악을 듣는 수준이었다.
[ 총 일곱 발의 로켓탄이 현 차량에 네 발, 후위 차량에 세 발 포격되었으나 모두 무산되었습니다. ]
나도 직접(?) 보긴 했지만… 그런 공격을 피하는 움직임을 했는데도 조금 전처럼 별다른 느낌도 없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역시 최고의 운전자(은사마군)가 최고의 차를 모니 환상의 플레이가 나오는 것 같았다. 자룡대주가 탄 후위 차량 역시 전쟁터의 지존 전황마군(戰徨魔君)과 그의 직속 전마부대(戰魔部隊)의 대원들이 동승하고 있으니 계속 걱정할 거 없겠고……
오토바이를 탄 공격조의 기관총 공격에 이은 도로 양쪽의 매복조가 로켓탄 공격…! 전형적이지만 꽤 효과적인 공격패턴이로군. 하지만 보통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곤 하던데……
< 몽몽. 전방에 장애물이나 함정 같은 것이 감지되지는 않나? >
[ 현재의 이동속도에서는 직접적인 사전 감지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위성 사진 촬영 결과, 통과 예정의 도로상에서 특별한 구조 변경이나 장애물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현재의 도로가 종료된 후에 시작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
몽몽은 약 5분에서 7분 정도 후에 끝날 현재의 한적한 외곽도로가 시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으로 접어드는 곳의 현재 상황을 보여 주었다.
흐음~ 사영, 이 양반…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 양반이 생각하는 것이 뭔지 이제야 알 것도 같군.
< …은사마군. 나, 트렁크의 짐 좀 써야겠어. >
“대교야. 미안하지만 자리 좀 바꿔 줄래?”
대교가 영문도 모르면서 고분고분 따라 주어서, 가운데 자리로 이동하자 등뒤의 시트 일부가 지잉- 열려졌다. 나는 그 공간을 통해 트렁크 속에 있던 내 배낭을 빼냈고, 다시 그 안에서 지난번에는 깜박 잊고 갔었던 내 활을 꺼냈다. 둥글게 말려 있던 철궁을 펴서 원상복구 시키자 대교가 내 팔을 잡아 왔다.
“…괜찮아. 이 정도 움직임은.”
대교는 더 말려야 할 지 어떨지 잠시 갈등하는 것 같더니 결국 조용히 손을 거두었다.
< 천장 개방. >
< 복명! >
스르륵. 천장이 열리자마자 나는 그 곳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지금까지 몽몽을 통해서 보던 전경이 엄청난 바람의 충격과 함께 실제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좌측 대각선 방향에서 달리는 오토바이 한 대를 겨냥했다.
< 금동아! 보조! >
나는 그렇게 금동이를 부르며 활시위를 놓았다. 자유를 얻은 강철 화살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오토바이의 바퀴 쪽에 틀어박히고 있었다. 중심을 잃은 오토바이가 순식간에 아스팔트 도로 위로 나뒹굴며 우리 차 옆으로 요란스럽게 스쳐갔다. 나는 오른 손을 아래로 내려트렸고, 곧바로 다른 화살 하나가 손에 잡혀왔다.
금동이 녀석, 그 옛날 잠깐 훈련했었던 것도 잊지 않고 있었군. …좋아.
나는 계속 화살을 보급해 주는 금동이의 도움을 받아 연속으로 사방의 오토바이들에게 강철 화살을 날려댔다. 물론 활은 기관총과 같은 현대 무기에 비해 단점이 엄청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대신 나의 화살은 ‘원 샷 원 킬’……!
내가 해치운 건 총 일곱 대. 그 전까지 전황마군 팀이 먼저 해치운 놈들도 많았기 때문에 이제 얼추 정리가 된 것 같은데……?
< 천주! 전방을! >
은사마군의 경고는 전방에 나타난 적의 차량 두 대 때문이었다. 우리 차의 30여 미터정도 앞에서 가로막는 식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아까 매복지에서 로켓탄을 쏜 놈들인 듯했다. 두 대 모두 천장을 열고 각각 한 명이 나처럼 상체를 내밀고 있었다. 단, 나와 달리 놈들은 모두 로켓탄을 들고 있었다.
< 천주! 제가 돌파하겠습니다! >
< …잠시 대기! >
< 예? >
나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의 긴장감을 새삼 음미하며 그 옛날의 ‘고려 무사 신정안’을 떠올렸다.
당신이라면… 이 정도는 우습게 가능하겠죠?
그런 생각과 함께 시위를 놓았을 때, 차의 속도를 압도적으로 능가하며 날아간 화살은 적의 로켓탄 발사기의 구멍 속으로 빨
려 들 듯 사라져가고, 다음 순간, 콰쾅~! 적의 차체 위로 불꽃이 수놓아 지는… 그런 광경이 떠올랐다.
신정안은, 그 뿐 아니라 날아오는 로켓탄도 화살로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나도… 아니, 나는 못해! 아직은……!
나는 결국 재빨리 차 속으로 쏙- 숨어 들어갔다.
< 미안, 은사마군. 너에게 맞길 게. >
< 별말씀을! 속하에게 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응? 어째 평소답지 않게 격앙된… 아, 그렇지. 은사마군은 운전대를 잡으면 사람이 변하지?
슈-앙!
대교와 소교의 몸과 고개가 살짝 뒤로 젖혀지고 있었다. 웬만한 급가속은 느껴지지도 않는 차가 그야말로 초급가속을 단행한 것이다. 은사마군의 차는 가아앙- 도로 위를 날아 적의 로켓탄 포격을 머리위로 흘려 보냈다. 순식간에 적의 차량들이 코앞이었다.
< 감히, 천주의, 내 앞을, 막아? >
내게 보내려던 전음이 아닌 것 같았다. 광분한(?) 은사마군이 혼잣말을 전음으로 흘려 버린 것이다. 이거, 이거… 설마 우리가 위험한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쓸데없는 기우였다. 이어진 것은 은사마군의 놀라운 운전신공이었다.
쿠쿡…! 쿡!
은사마군이 모는 차가 가로막고 있는 차 두 대의 중간쯤으로 전진하며 범퍼를 동시에 들이받았다. 아니, 들이받았다기보다는 속도를 줄이며 그냥 살짝 가져다 댔다고 할 수 있었다.
크극! 크극!
달라붙은 상태에서 힘 겨루기를 하는… 그런 느낌이 양쪽에서 거의 비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몽몽을 통해 낱낱이 보면서 모든 감각을 열고 있자니까, 내가 직접 전투를 할 때 못지 않게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은사…마군, 이 아가씨 설마… 정말 내가 지금 생각하는 그런 걸……
반신반의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순간적으로 차의 뒤쪽이 들리는 느낌이 들었고, 그 직후 다시 그와 앙- 초급가속이 이어졌다.
“핫! 하하~!”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바싹 붙어있던 전방의 차들이 양쪽으로 홀랑? 발라당? 하여간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뒤집어졌던 것이다. 가만있는 차를 달려가서 들이받아 뒤집는 것도 아니고… 이건, 이건 마치……
< 하하핫! 은사마군! 언제 씨름이라도 배운 거야? >
< 예, 옛? 아, 예, 천주! ‘내(內)몽고’에 있을 때입니다! >
미치겠네. 정말로 그런 거야? 정말 차로 차에 ‘뒤집기’기술을 쓴 거란 말야?
< 나참. 야, 몽몽. 이런 게 정말 가능한 거냐? >
[ 현재 탑승 중인 차량은 전후방의 바퀴 모두를 따로 구동할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전상황에서 조금 전과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경우는 0%에 가깝습니다. ]
몽몽이 말하는 가능성도 가능성이지만… 이건 내 분야가 아니라서 그런지 더욱 감탄이 나왔다. 무공처럼 깊이가 있는 새로운 세계를 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 …천주. 목적지인 ‘황금 사자 거리’가 보입니다. >
은사마군의 음성에 어쩐지 아쉬움이 담겨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 와간다는 군.”
대교와 소교에게 알려주며 활과 배낭을 도로 트렁크에 넣고 정글도만 챙겼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들을 보니, 둘 다 뭐라 규정짓기 어려운 표정으로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이미 창문의 이중 장갑판은 아래로 내려져 있었고, 차는 속도를 줄여 예의 황금 사자 거리의 입구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었다.
저 작은 마을(?)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뛰쳐나온 듯한… 화려하고 북적대는 축제 분위기…! 하지만 이 시기에는 홍콩 어디서도 이런 축제가 없다. 당연히 대교와 소교도 그걸 알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맞죠?”
대교가 곧바로 물어왔다.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이 없자 그녀 역시 씁쓸한 표정이 되고 있었다.
“조금 전도… 맞죠?”
“…그래. 그런 거 같아.”
“저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설마 이렇게까지 나오실 줄은……”
“…꼭 그런 거만은 아닐 수도 있지.”
“무슨… 뜻이죠?”
“사영은 너를, 아니 너희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 나 때문에 이러는 건지도 몰라.”
“당신… 때문에요?”
“훗! 모르지. 그냥 내가 맘에 들지 않아서인지……”
나는 그 사이 멈춘 차의 문을 열고 먼저 나오며 말을 이었다.
“…사위감 테스트인지……”
나의 에스코트와 함께 대교가 내리고, 반대편의 천음마군이 열어준 문으로 소교가 내렸다. 우리가 시기와 시간대, 둘 다 맞지 않아 보이는 황금 사자 거리의 축제를 잠시 보고 있는 사이, 한 발 늦게 자룡대주와 전황마군 일행의 차가 우리 뒤로 도착했다. 자룡대주와 전황마군이 황급히 차에서 내려 달려 와서 몸을 숙였다.
“늦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천주!”
“아니, 괜찮아. 우리 뒤에서 유탄이며 차 뒤집힌 거 피하느라 고생했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다.
“저희가 길을 열겠습니다, 천주!”
전황마군이 머신 건을 움켜쥐고 수하들과 함께 앞으로 나서려해서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잘 봐. 저 사람들은 대부분 민간인이야. 함부로 행동하지마. 특히……”
나는 천음마군을 돌아보았다.
“천음마군! 댁이 제일 문제야!”
“예, 예? 제가 무슨……”
천음마군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내게 지적 받기 이전의 천음마군 표정은 그야말로 으르렁거리는 야수와도 같았었다. 아마도 조금 전까지의 전투를 차안에서 갑갑하게 구경만 해서 그랬겠지만… 암튼, 여기서부터는 무조건 힘으로 뚫고 나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