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0화 : 시그마의 영역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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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10화 : 시그마의 영역 속에서


10 시그마의 영역 속에서

난 지붕 위의 놈들을 더 살피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며 몽몽을 호출했다.

“몽몽. 너… 역시 저놈들이 안 보이냐?”

「인체의 시각 시스템으로는 보입니다. 그러나 현재로는 스캔 분석이 불가능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놈들은 신형 스텔스 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얘기로군.

꼬마 초롱이와 자니라는 불꽃 인간은 여기로 오기 전까지 그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어린 꼬마와 가벼워 보이는 언행 의 인물…………! 결국 녀석들이 ‘미끼’였던 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놈들이 낚으려고 한 건 당연히 조담놈이 아니라… 이렇게 쌈 구경하러 따라올 것이 뻔한 이 몸일 테고 말이지.

“나란 놈도 참・・・・・・.”

“왜 웃는걸까?”

웃!

나는 소름이 끼치는 걸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미 순간이동 능력자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음에도 기척 같은 건 고사하 고 아무 존재 자체가 없던 바로 옆의 공간에 불연듯 뭔가가 존재해 버린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상대가 아직도 모잔지 망토인지 모를 회색 천에 가려 창백한 얼굴의 코 아래만 보이는 기분 나쁜 여자라면 말이다.

“그야 뭐… 이런 식일 줄은 몰랐어도, 어쨌든 뭔가 함정 같은 게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어. 그런데도 기어이 스스로 뛰어든 나 자신이 웃겨서 “그래.”

친절하고(?) 솔직하게 말해 주자, 기분 나쁘게 창백한 여자도 새액- 웃는다.

“우리 에레보스를 상대로 그만큼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정도의 강자라고 듣기는 했습니다.”

어째… ‘듣기는 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조금 아닌 것 같은데?’ 라는 뉘앙스가 풍겨서 쪼까 껄쩍지근하군. 프랑스어로 얘기 하는걸 보면 그 나라 출 신인・・・ 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려나?

…여하간.

“난 보기보다 느긋한 성격인데다, 머리까지 나빠서 말이야. 정리 좀 하고 넘어가야겠어.”

나는 멋대로 그렇게 말해 버린 다음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여자로부터 등을 들렸다.

“먼저. 너, 꼬마 초롱이. 넌 한국사람이냐? 아니면………….”

“닥터 제이.”

기분 나쁜 순간이동 능력자 여자가 초롱이 옆에 팟! 하고 나타나며 대신 대답을 한다.

“그 사람이 이 아이에게 한국 이름을 붙였습니다. 실제의 인종은 아무도 모릅니다.”

“딱 보기에 우리 쪽 앤데 뭐. 이쁘잖아~”

“저 봐 산드라 언니. 저질 아저씬데 보는 눈은 있어.”

“다만 교육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음? 저 산드라라는 여자의 지금 미소는… 어째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걸?

“교육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아이의 체질이 문제겠지요. 갓난아기 때부터 타인의 의식이 직접 머리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에 지나치게 감 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식과 인식능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죠. 닥터 제이가 아니었다면 현재처럼 평범에 가까운 아이가 되지는 못했을 “거예요.”

닥터 제이가 저 어린 초롱이를 대체 어떻게 교육시켜서 자신의 힘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전에 닥터 제이는 분명 자신과 원판 도 에레보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었지, 아마? 하지만 이 초롱이를 보면 아무래도………….

“그 양반은 에레보스와도 친했었던 모양이군.”

“아뇨. 그 사람과 우리 에레보스는 특별한 관계가 없어요. 그 사람은 아마 지금 이 아이 초롱이가 우리의 일원이 되어 있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그・・・ 이 몸 진유준 버금가게 사악음흉한 양반이 과연 그럴까 싶기는 한데… 어쨌든 지금은 닥터 제이의 의혹과 비리(?)를 수사할 때가아니지. “초롱이 얘긴 일단 됐고………….”

몽몽이 체육관 안의 상황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이런 조담놈이 불리하게 밀리고 있는 전황………? 저 자식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건가?

물론, 적은 이 커다란 체육관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거대한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자다. 하지만 내가 아는 조담놈은… 비록 귀신을 무서워 하고 단순한 구석도 많으나, 분명 생사금마도결을 나 이상 펼칠 수도 있는 특급 고수인 것이다.

불꽃보다도 빠르게 상대를 베어버릴 수 있는 놈이 어째서… 음? 저건… 저 자니란 놈은 지금 불꽃을 압축? 하여간 마치 불꽃의 밀도를 높여 방 어에 쓰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공격 또한 불꽃이라기보다 용암 덩어리로 보일 정도로 응축된 열기의 덩어리 같은걸 날리고 있고… 가, 가만!

나는 잘못된 상황의 너무나 간단한 모순을 뒤늦게 깨닫고 어이없는 웃음을 흘려야 했다. 저런 비상식적인 수준의 전투만으로도 체육관이 난장판 되는 건 당연하지만… 만약 정말 내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정도의 광범위한 불꽃이 분출되고 있는 거였다면, 이미 이 체육관 전체가 불타 사라 졌어야 했다.

꼬마 초롱이 녀석을 돌아보니 녀석이 날 보며 배시시 웃고있다.

“탈진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동조(同調. conforming)’에는 간단하게 걸려들었네요.”

역시… 내가 체육관 안의 열기를 ‘난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라고 느낀 건 저 앙큼한 꼬마 초롱이 때문이었구나. 예의 사념파를 이용한 일종의 최면 같은 것인 모양이다.

「…코드명 초롱의 뇌파와 주인님의 뇌파간 싱크로율이 높을 경우 의도적인 동조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미리 경고 드리지 못해… 면목이 없 습니다. 저들의 신형 장비는 스텔스 기능과 함께, 아니 스텔스 기능을 응용하여 착용자의 외부방출 에너지를 왜곡하여 저의 정보 체계에 혼란을 주 는 기능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도 곤란해지기는 했다만, 몽몽너… 은근히 약오르겠다.”

「’약오르겠다’에 포함되는 건지 모르겠으나, 분명 저의 감정 회로에 비정상적인 진폭의 그래프가 그려진 상태이긴 합니다.」

“몽몽. 파이팅!”

나는 몽몽과 프리메이슨 연구진 사이의 ‘초첨단 오버 테크놀러지 경쟁’에서 우리 몽몽이 끝내 승리하기를 기원하면서 고개를 산드라 쪽으로 돌렸 다.

“거기 당신은 말야. 순간이동 능력자인 모양인데, 그럼 지금 아직도 지붕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저 친구는 어떤 능력자인 거지?”

계속 과묵함을 자랑하며 온갖 똥폼, 분위기 다 잡고 있는 녀석보다는 이 여자가 더 쉽게 말해 줄 것 같아서 물은 거였는데… 어째 별로 입을 열 생 각이 없어 보이네.

“……음. 그럼 내 생각을 말해 볼까? 내 보기에 말야, 이 공간 차단인지 뭔지 하는 술수는… 일반적인 초능력이 아니야.”

초능력이란 말이 벌써 일반적이지 못한데 거기에 일반적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뭔가 이상… 아, 몰라!

“전에도 겪어 본 적이 있어서 이제 조금은 낯익어. 기분 나쁜 이질감이랄까? 분명 최근 겪어 봤는데… 그 전에는 평생 느껴 보지 못했던 기운. 혹은 에너지? 뭐가 되었든, 이건 인간이 쓸 수 있는 초능력이 아니란 거야. …맞지?”

몽몽 선생 대타로 실시한 나의 분석이 얼추 맞았다는 것은 또 꼬마 초롱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감탄하는 얼굴을 보임으로서 증명해 주었다. 「…코드명 시그마에 대한 코드명 초롱의 발언 중 ‘영역’ 에 대한 검색결과……………」

으흠. 역시 아무리 열 받아서 연구할 일이 있어도, 눈앞의 일까지 손 놓아버릴 몽몽이 아니지.

「현 공간차단 상황과 일치하는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가 검색 되었습니다. 출처는 세계정화재단의 공개 자료실입니다.」

역시… 또 거긴가?

「해당 자료실 원문에는 ‘이계(異界)를 근원으로 하는 현 세계 토착종 중 특정 공간을 임의로 자신만의 영역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밤의 권족 뱀파 이어(Vampire) 뿐이며, 또한 뱀파이어 중에서도 진조(眞祖)의 가까운 직계 혈족만이 가능한 것으로……………」

음. 음… 그렇군. 뱀파이어. 뱀파이어였어. 근데 아아- 싫다 싫어. 이제 이런 일에 별로 놀라지도 않게 된 내가 싫어. 나를 이렇게 만든 타임 씨… 당신 두고 봐.

나는 새삼 매우 착잡한 기분이 되어 고개를 들어야 했다. 지붕 위의 시그마, ‘공간의 지배자’라 불린다는 놈은 아직도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조용 히 날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살짝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서 아까부터 희미하게 들려오던 ‘어떤 소리’ 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확인한 다 음에 다시 눈을 떴다.

그나저나, 늑대 인간의 선조라는 라후의 혈족에 이어 이번에는 드라큐라 백작 사돈의 팔촌쯤 되는 놈인 건가..? 가만, 혹시… 순간이동의 산 드라가 지나치게 창백한 얼굴인 것…

“넌, 설마… 네놈 동료의 피까지 빠는 새끼냐?”

처음으로 시그마 놈에게 말을 건다는 게 시비였다. 그리고 그 직후.

우왓!

어떻게 놈의 엄습을 감지하고 어떻게 피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제까지 그렇게도 조용히 허수아비처럼 움직임이 없던 놈이었다. 그런 놈이 느 닷없이 순간이동과 맞먹을 정도의 스피드로 날아들어 공격을 가해 온 것이다.

제기랄!

나는 땅을 몇 바퀴 구른 끝에야 간신히 신형을 가누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나의 어깨로부터 가슴까지는 몇 줄기의 골이 패인 후였다. 지 금 망토 아래로 드러나 있는 저 뱀파이어 시그마 놈의 비정상적으로 긴 손가락과 손톱이 저지른 짓이었다.

상처는 얕아. 그러나 놈이… 움직일 때 움직이는 순간에 마치 콰쾅하는 로켓 발진 소리가 터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렇게 폭발 적인 스피드였어. 뱀파이어란 이렇게나 빠른 괴물이었던 건가?

“에~ 에이. 저질 아저씨 실수했어요. 그런 말은 시그마 오빠 앞에서 금기사항이에요.”

“으~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아냐? 게다가 ‘과묵은 나의 삶’인 것처럼 굴던 자가 갑자기 흥분하는 걸 보니……

아아- 나 왜 이러니?

“그 여자의 피를 빨긴 한 모양이지?”

나는 이를 악물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긴장시키며 놈의 공격에 대비했다.

썅! 역시 더럽게 빨・・・ 엉? 뭐, 뭐야!

십여 미터밖에서 샥- 사라지는 것 같았다가 순간적으로 내 코앞에 나타났던 뱀파이어 시그마. 그리고 놈을 향해 맹렬하게 발도 했던 나까지 벌쭘 한 상황이었다.

지금 저 순간이동의 산드라가 시그마 놈을 잡아서 강제로 함께 순간이동을 해버린거지? 싸움을 말린 건데… 왜?

“죄송합니다, 마스터.”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산드라가 시그마에게 한 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저희가온 것은 어디까지나 저 진유준이란 인물의 기본적인 탐색입니다. 섣불리 저자를 자극하여 불의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캡틴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겁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분노에 찬 것이 역력한 뱀파시어 마스터 시그마는 산드라의 말에 억지로 자신을 억누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넘버 투가 뱀파이어 마스터면.. 넘버 원, 캡틴은 대체 어떤 놈이란 걸까………? 그리고… 나란 놈은 대체 왜 이러는가 몰라. 온몸의 산발적 쥐꼬리 내공을 정글도에 전부 모으고 영력까지 집중하면 과연 어느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저런 강적을 상대로 테스트 해볼 생각을 하 다니… 내가 미쳤지, 미쳤어.

나는 나의 무모함에 새삼 한숨이 나왔다.

멀쩡하다가도(?) 전투 때 종종 광분하는 이노무 버릇은 좀 고쳐야 하는데… 게다가 으으. 쪽팔려라. 칼 한 번 맘먹고 휘둘렀다가 이게 무슨 꼴이 람?

난 지금 정글도를 쥐고 있는 것조차 힘에 겨운 상태였다. 오른팔의 팔꿈치는 확실하게 삐었고, 어깨도 정상은 아니었다. 현재 가능한 최고 공격력 의 위력을 실전 테스트 해보려다가 그런 공격 시의 후유증만 체험하게 된 것이다.

“진유준님?”

끝까지 과묵한 시그마를 대신해서 다시 산드라가 입을 열었다.

“들으셨다시피 오늘 우리는 단지 ‘인사’ 를 위해서 온 것뿐이었습니다.”

“인사 두 번만 받았다가는 뼈와 살이 분리되겠네.”

“훗!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엄연히 암살단, 사전 인사라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이지요. 그건 물론… 상대가 당신 진유준님 이기 때문이지만요.”

천지파멸식 임팩트…………! 그래. 그 효과가 그렇게 쉽게 사라지면 섭하지, 암.

“근데 ・・・・・・.”

지들 멋대로 와서 깽판치고, 내 상태 확인하고 나중에는 몰래 와서 천지파멸식이 발동될 틈도 없이 불시에 암살해버릴 생각이면서……

“가려고? 이렇게 그냥?”

“이번엔 진유준님 쪽에서 뭔가 용건이 있으신가요?”

“당연히 있지.”

“…우리 에레보스가 지켜야 할 유일 가치는 12인의 사도의 영생………! 그 위대한 영혼들의 존폐마저 위협할 정도의 거대한 힘이 당신 한 몸에 있다 는,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우린 결코 간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보기에 당신의 그 힘은 당신 자신도 통제하기 어려워 함부로 쓰지 못하는 것 같군요. 게다가 아마 그런 과도한 힘을 무리해서 쓴 탓이겠지만 지금은 본래 저 13호 정도는 되던 능력마저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얄밉도록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군. 아니, 어쩌면 저 꼬마 초롱이 녀석이 내가 방심했을 때 내 머리 속을 얼추 읽고 꼰지른 건지도 모르겠다. 이 거, 앞으로는 좀더 정신 배리어에 신경을 써야겠는걸?

“그런데도 굳이 우리의 철수를 막을 생각입니까? 아니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게, 이제 올 때가 되었거든.”

“…예?”

“사실 올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 말야. 아마도 병원에서 예정 밖의 일이 있어서 늦어지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 녀석 성격에 가게로 ‘늦는다’는 전 화를 했을 테고, 은사마군이 받았겠지. 이런 상황을 알게 되는 시점을 본래의 귀가 예정시간으로 잡고, 그때부터 병원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를 전력 의 공공보법 스피드로 주파하면… 음. 카운트다운 시작! 10, 9, 8, 7, 6······.”

꼬마 초롱이는 물론이고 똑똑한 척하는 산드라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감도 못 잡고 있는 것 같았다.

“5,4,3,2…….”

카운트를 하는 나의 음성에도 긴장이 감돌았고, 에레보스의 암살자들도 영문을 모른 채 함께 긴장하는 것 같았다.

“1,0~!”

제로 카운트 소리로 목청을 높인 순간, 초롱이는 물론이고 산드라, 시그마까지 움찔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무 일도 없었다. “아, 미안. 뭔가 오차가 좀 있었나 봐.”

쭛! 계산은 몽몽이 다 했는데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군. 보스의 비애라고나 할까……?

“모하는 거예요. 지금?”

“아니, 본래 이런 일은 변수가 많아서 계산이 어려워서… 음, 암튼.”

괜히 폼잡고 분위기 띄웠나…? 하지만 이미 시작했으니 밀고 나갈밖에!

“어쨌든, 그럼 다시… 10, 9, 8, 7・・・・・…”

으음. 이젠 다들 시큰둥한 표정이 되어 듣는 둥 마는 둥.. 어? 이 소리의 패턴은 와, 왔다!

“6, 5. 0!”

내가 약간의 (?) 반칙으로 카운트를 마치자 어이없어하는 에레보스들. 그러나 이번에는 곧바로 표정들이 일변한다. 뱀파이어 마스터의 힘으로 차 단된 이 공간에 뭔가 변동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앗!”

꼬마 초롱이가 먼저 놀라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의 공간, 바로 나의 옆으로 스윽- 대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새깽이 늑 대 라프가 캉! 캉! 소리를 냈다.

역시 빙고!

아무리 선조와 가까운 혈통의 뱀파이어라고 해도 우리 세계에서 몇 번 세대를 교체했다면 본래의 마력을 온전히 지니고 있을 리가 없지. 그에 반해 우리 라프는 마계의 현역 귀족이 보낸 그들의 분신…………!

난 이 차단된 공간 속에서도 아까부터 요 녀석의 캉캉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단 말이야. 그건 라프가 평소처럼 나와 가까운 곳에 앉아서 날 보 고 있었다는 거고… 라프에게 마력으로 차단된 공간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

라프가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며 살벌하게 영특한 우리 대교는, 라프가 혼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자 곧바로 상황을 감 잡고 라프를 이용해서 이 차단된 공간으로 들어 온 것이다.

“오오.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대교.”

난 웃으면서 다소 장난스럽게 대교를 맞았지만, 어째 대교는 받아줄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어, 이거? 보기엔 출혈이 좀 있어 보이겠지만 별로 큰 상처는 아니… 읏!”

실수!

무심결에 손을 들려다가 정글도를 놓치고 말았네. 통증보다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 암튼. 이건 정말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다. 근 데 결과적으로 난 그만 ‘엄청난 부상을 입어 피 줄줄 홀리며 수족과도 같은 병기조차 들지 못하는 상태’를 대교 앞에서 열연해(?) 보이고 만 셈인… 그런 에고고~ 일났다.

천사 대교 급속 봉인. 그리고 그 대신 어떤 존재가 강림했는지 나는 감히 표현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저기, 대교야. 난 사실 그리 ………….”

패액~ 대교는 내게서 등을 돌렸다.

“가까이 오지 말아주세요. 지금의 제게.”

“아니… 넵.”

나는 결국 얌전히 찌그러져야 했고, 아직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꼬마 초롱이는 울먹울먹하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설마… 아무리 빡 돌았어도 대교가 저런 애까지 어쩌지는 않겠지?

그래도 혹시나 해서 여차하면 뛰어들어 말릴 각오를 하며 다시 정글도를 집어들었다. 순간이동의 산드라가 예상대로 사라졌다 싶은 다음 순간, 그 녀는 이미 대교의 등 뒤를 점했다.

쨍-!

종소리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건 대교의 청명검 못지않게 산드라가 망토 밑에 감추고 있던 단검도 명품이라는 얘기였다. “신족통(神足通)…인가요?”

대교의 말을 산드라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교 역시 굳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번득!

산드라가 사라지는 공간을 청명검이 갈랐다.

“으흑!”

몇 십 미터 떨어진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산드라가 가슴을 움켜쥐며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 산드라가 순간이동을 시작한 타이밍이 한 박자 늦었던 것이다.

당연히 대교를 믿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나도 좀 놀랍다. 순간 이동 직후 공격까지의 틈 같지도 않은 틈에도 가볍게 방어가 가능하고, 다시 사 라지기 전에 반격을 해버리니… 순간이동 능력자도 별 수가 없네. 앞으로는 우리 대교・・・ 신경 거슬리면 안 되겠지?

“음?”

대교의 몸이 순간적으로 멈칫 했다.

꼬마 초롱이의 탈진………? 에효. 저 꼬마, ‘무시무시한 뭔가 강림 모드’의 대교와 시선이 마주치자 제풀에 놀라서 주저앉아 버리네.

간단히 초통이의 탈진까지 와해한 대교가 천천히 뱀파이어 마스터 시그마를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대교의 걸음이 다시 멈칫한 것은 산드라 가 시그마 옆에 나타났기 때문이라기보다, 산드라 가슴의 검상이 이미 거의 치유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저 여자는 시그마에게 물려 뱀파이어가 된 모양이로군. 하여간, 지난번 라후의 혈족들도 그렇고… 저런 녀석들은 당췌 쉽게 죽어주지를 않는 단 말야? …어? 가만?

“저 여자의 방어 에너지 벽이 너무 강해서 가까운 거리의 공간에 워프하기가 힘듭니다. 반경 2미터 안쪽은 리드하기도 어려울 만큼 공간의 왜곡이 심해요. 조심하세요, 마스터.”

산드라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다는 모르겠다만. 나 방금 생각났다. 왜 잊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전 세계인의 상식(?)이!

“대교. 심장! 심장이야! 저 녀석들, 뱀파이어의 약점은.”

내가 훈수를 두자 놈들에게서 움찔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다시. 전진을 시작하는 대교.

쯧. 뱀파이어들도 피곤하겠어. 이렇게 약점이 전세계적으로 다 까발려져 있으니 말야. 물론 웬만한 적을 상대로는 쉽게 약점을 공략 당할 놈들이 아니긴 하지만. 우리 대교는 웬만한 적이 아니지.

“초롱아. 패턴 3.”

뭐?

초롱이에게 뭔가 명령하고 난 산드라는 곧 사라졌고, 같은 순간에 다시 대교의 바로 정면에 나타났다.

이런, 근접 순간이동을 하기 어려우니까 대교가 걸어오는 걸 이용해서 거리를 좁히려고? 어? 하지만 대교와 정면대결을 한다는 건 자살행위・・・ 응? 대교의 반응이 뭔가 이상… 왓!

시껍했다고 할까…………? 내가 보기에 조금 전의 대교는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기라도 한 것처럼 걸음과 다른 동작 모두가 어색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대교는 끝내 산드라에게 일 검을 날렸고, 산드라의 창백한 얼굴은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

툭- 투욱. 툭. 드르르르~

잘려진 산드라의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것을 보며 꼬마 초롱이는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부, 분명히… 동…조…했는데… 다른 거… 보여… 줬는데…”

에구ᅳ초롱아. 이 녀석아. 나처럼 타고난 더러운 성격 때문에 악다구니로 정신방어가 가능한 놈도 있지만 말야. 저 대교는… 자그마치 천년 동안 면벽 수련(?)을 해버린… 엄청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단다. 어설픈 환상을 보여줬다고 해서 실제의 적을 놓칠 리가 없다구.

“우오오오오오~.”

처음으로 들어보는 시그마의 목소리는 지금 아예 포효에 가까웠다. 그가 아까 내게 선보였던 폭발적 스피드로 달려들며 날린 공격을 대교는 몸 전 체를 앞으로 던지며 피했다. 대교의 몸이 땅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한 순간, 번득- 하나의 검광과 쌕! 쌕! 두 개의 파열음이 대기를 가르며 솟구쳤다.

…대교의 독문절기 뇌전검식(雷電劍式)의 뇌전일식(雷電一式)…………? 뇌전검식은 본래 대부분의 초식이 필살일검이고 뇌전 일식은 특히 그런 성향이 강한데 저걸로 뱀파이어 마스터의 두 팔을 동시에 잘라버리네…………..?

“…몽몽. 세계… 경처가 명단에 내 이름 좀 올려줘.”

내가 놀란 가슴을(?) 시덥지 않은 말로 얼버무리는 사이, 다시 대교의 청명검이 시그마의 목을 치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그마의 몸이 무릎을 꿇었고 그의 머리는 아까의 산드라처럼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비로소 검을 멈춘 대교의 시선이 문득 초롱이에게로 향했다.

초롱이 녀석, 목이 잘렸는데도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인 산드라의 머리를 들고 살금살금 산드라의 몸 쪽으로 가다가 딱 걸렸군. 물론 동료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어린것이 무서워 떨면서도 사람은 아닌지 몰라도 하여간 머리통을 들고 나를 정도라면, 산드라와 상당히 친한 것 같은데… 으음. 대교는 웬일인지 곧바로 초롱이로부터 관심을 거두고 있었다. 그런데 뱀파이어를 죽이는 방법을 내게 들은 거 말고도 ‘주가혜 였을 때의 기억’을 검색해서 찾아낸 건지, 이제 목을 잘랐으니 심장에 나무 말뚝을 박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초롱이 저 녀석, 대교가 주변에 나무 말뚝으로 쓸 만한 것이 있는가 두리번거리는 사이 계속 산드라의 몸 쪽으로 가야 하나 어쩌나 망설이느라 머뭇거리고 있군. 하지만 네가 망설이는 사이에 대교가 나무 말뚝은 포기하고 청명검을 들어올리네 그려.

꼭 나무 말뚝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는 건지, 나도 그건 좀 궁금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초롱이'(?)가 너무 가여웠다. 아무리 날 탈진시켜 짜 증나게 하고 시건방지게 환상 같은 걸로 내 소중한 쌈 구경을 방해했던 녀석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애는 애다.

“대교! 멈춰!”

내가 크게 외쳐 부르자 비로소 대교의 폭주 모드에 살짝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대교는 청명검을 치켜든 자세 그대로 천천히 날 돌아 보았다.

“미안!”

나는 짧게 사과하며 대교를 향해 정글도를 날렸다.

청!

나름 기세 좋게 회전하며 날아간 정글도를 대교는 가볍게 쳐올렸고, 하늘로 솟구쳤던 정글도가 떨어져내리자 대교는 그걸 왼손으로 가볍게 잡았 다. 나는 두 손을 모아 비는 자세로 웃으며 말했다.

“미안, 정말 미안해! 달리 내가 멀쩡하다는 걸 보일 방법이 마땅찮아서………….”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그렇대도! 이거 정말 피부만 살짝 긁힌 수준이란 말야. 내가 어디 그렇게 쉽게 당할 놈이냐?”

계속 내가 멀쩡함을 강조하자 비로소 대교에게 강림했던(?) 무언가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대교의 두 눈에서 방울방울 샘솟는 눈물이 천사 의 봉인이 풀렸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대교는 내게 정글도를 돌려주는 것과 동시에 내 품을 파고들었다.

“제발! 제발 다치지 말아줘요! 제발… 아프지 말아줘요!”

아아~ 대교! 대교 너, 너어……………

“저도 아프잖아요. 제가… 더 아프잖아요.”

아아아아~ 대교, 대교야아~ 상처에 머리 좀 비비지 마. 아파 디지겠다아!

나는 차마 말을 못하고 이를 악물고 대교가 진정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실제로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내게는 좀… 길게 느껴졌다.

“으음. 하지만 역시 이 서양 강시들은 이 기회에 없애두는 것이……….”

또 깜박했다. 천사 대교의 봉인이 풀려도 그건 나에게만 해당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 그게. 나도 솔직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저 꼬마 녀석 앞에서 친구들을 죽이는 건 좀 그래서 말야.”

“아~”

대교는 새삼스럽게 초롱이를 돌아보았다. 폭주 중일 때는 애써 외면할 수 있었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역시 쉽게 눈을 떼지 못하며 안쓰러워하는 기색을 떠올리고 있었다.

「주인님! 주의하십시오!

「코드명 시그마의 잘려진 머리에 비공인 에너지, 예의 마력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뭐시라? 머리에?

스텔스 장치와 떨어진 머리 쪽이라서 스캔이 가능했던 모양이었다. 잘려진 머리뿐임에도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만 같은 시그마의 머리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주로 이성을 홀려 사냥한다는 요괴라서 그럴까…? 이제 보니 거의 원판 수준까지 넘볼 정도로 아름답고 재수 없는(!) 미청년의 얼굴이었다. 왠지 그게 더 소름끼쳤다.

“끄어어어어어어어~”

잘려진 머리가 대체 어떻게 소리를 낼 수 있는지가 궁금했지만, 당장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공간이… 저놈이 만들었다는 이 공간 전체가 뭔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물결처럼 일렁이며 그 파장에 실제적인 느낌까지…?

물리적인 힘이 있다는 거다! 저놈, 너무 순식간에 당하는 바람에 쓰지 못했던… 자신의 특기인 ‘공간 자체를 활용한 어떤 공격’을 하려는 건 가…………? 제기, 뭔지 알아야 제대로 대처를 하지!

내가 인상을 긁는 사이. 대교는 다시 청명검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녀도 시그마의 머리와 초롱이를 번갈아 보며 갈등하는 것 같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시그마의 괴성이 더욱 커지는 순간, 대교도 결국 결심을 굳히고 시그마의 머리를 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아

시그마의 괴성보다 작고 위협적이지도 않은 라프의 울음소리였다. 하지만 저 그리 크지도 않은 라프의 하우링 소리는 신기하게도, 그리고 어이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공간의 이상현상을 잠재우고 있었다. 거의 발검 직전까지 갔던 대교가 다소 벌쯤한 표정으로 슬며시 검을 거두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ᅳ”

“아오오오우~”

하나가 파장을 일으키면 하나가 잠재우고…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었다.

라프………! 저 녀석, 어째 상황을 인식하여 날 도우려고 저러는 게 아니라.. 그냥 ‘혼란’을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도 주변의 일에 무관심 하던 녀석이 마력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흔들리자 기분이 나쁘다는 듯 저렇게 본래대로 안정시켜 버리다니…………!

내 생각이 맞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하하간 우린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결국 공간을 조작하는(?) 괴성을 멈춘 시그마의 머리도 그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략 15분정도 후.

전에 본 라후의 혈족만큼 빠르지는 못해도 결국 잘려진 머리와 팔까지 다시 붙여 부활한 시그마 일행과 우린 정답게(?) 마주 서 있었다.

“…마스터는 밤의 귀족이 되기 전부터 말을 하지 못하는 분이 었니다;

산드라가 대표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권속인 저와, 그리고 초롱이만이 마스터의 생각을 알 수가 있지요.”

그렇겠군. 그래서 요 멤버로 파티를 이룬 것이겠지.

“헌데.. 저 작은 마물은 대체 무엇이기에 마스터가 자신의 공간을 이용하는 것조차 막을 수가 있는 걸까요?”

산드라가 이미 겪어보고도 믿기 어렵다는 시선을 라프에게 던졌다. 그러나 라프는 내 어깨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이었다.

“으음. 사실은 나도 잘은 몰라. 라후의 혈족이 내게 준 그들의 분신이기는 한데 대체 어떤 놈인지는 설명을 못 들었거든.”

“라후의 혈족…………! 마계의 귀족들 중에서도 최상급이라는…………! 과연 마스터가 힘을 쓸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군요. 같은 계열의 마력을 가지고 있 다면 보통 힘의 질량보다 서열이 우선시 되는 법이니………….”

“같은 계열………? 거 뭐… 난 이런 쪽 얘기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보통 늑대인간과 뱀파

이어는 사이가 되게 안 좋다는 걸 책에서 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전설이 와전된 것뿐입니다.”

“음… 그런 얘기는 나야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그보다 …초롱아.”

산드라에게 안겨 있는 초롱이가 이젠 적대감이 사라진 얼굴로 동그랗게 눈을 떴다.

“너 인마. 쬐끄만 게 탈진이니 뭐니… 이젠 함부로 그런 장난 치고 다니면 못써. 알았어?”

잠깐 망설이는 듯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초롱이. 어이구~ 귀여운 거.

“…그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이제 초롱이는 진유준님에 대한 임무에서 제외될 것입니다.” 초롱이는 항의하듯 산드라의 품에서 몸을 흔들었지만 산드라는 그냥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마스터와 전 다시 진유준님을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땐… 모쪼록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오~ 오늘은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했었다는 말인 것 같은데?”

“완패한 자의 변명으로만 듣지 마십시오. 저는 물론이고 마스터야말로 아. 알겠습니다.”

흠. 아무래도 지금 시그마 녀석이 동족끼리만 통하는 텔레파시 같은 걸로 산드라의 말을 막은 거 같지?

“뭐,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여기 대교도 마찬가지일 테고 말야. 뭣보다, 우리도 아직 밑천을 다 보인 건 아니거든?” 

“하긴……! 제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입니다.”

훗! 이거야 원. 암살자들이 목표를 걱정씩이나 해주고… 음. 근데… 아무리 분위기 좋아졌어도 할 일은 해야겠지?

“그건 그렇고 말야. 정말 이대로 그냥 돌아갈 생각인 겨?”

“예?”

나는 새삼 산드라와 시그마를 지긋이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난 아직 너희들에게 대가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든?”

“우린 대교님에게 대가를… 아, 그렇다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우리를……………!”

엉뚱한 상상을 했는지 질린 표정이 되는 산드라와 새삼 겁을 먹는 초롱이.

“아니, 그런 거 말고.”

나는 고개를 체육관 쪽으로 돌렸다. 그쪽에서는 이제 현저하게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느 정도 위력이 느껴지는 산발적 폭발음과 불꽃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쟤네 둘 다. 참.. 질기네. 뭐. 암튼. 우리가 그 동안 니네 프리메이슨하고 싸우느라 들어간 돈이며 피해가 장난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내!”

산드라는 황망한 표정으로 내가 내민 손바닥과 다 쓰러져 가는 체육관을 번갈아 보았다.

“저 체육관 수리. 아니 재건축 비용까지 달라는 거 아냐. 다음엔 가급적 니네 시설물에서 싸우는 걸로 하고, 그걸로 퉁치기로 해. 하지만… 아까 저 녀석, 자니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우리 가게 비품하고 상품까지 좀 태워 먹었어. 최소한 그거 손해 보상은 좀 받아야겠어.”

“아… 우린 현금은 별로 가지고 다니지를 않는데……….”

“어허- 그래도 카드 안 받아. 현찰 박치기. 그리고 초롱이는 어리니까 얘만 열외.”

뱀파이어 마스터 시그마와 그의 권속, 공간의 마녀 산드라는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망토 속의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난 지겹게도 싸움이 끝날 기미가 없는 체육관 쪽을 한 번 더 본 후 다시 산드라에게 말했다.

“성의껏 내, 성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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