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1화 : 사영 부활
1. 사영 부활
12인의 사도 직속 암살단 에레보스의 정찰대를 물리쳐 보낸 후, 나는 이틀 정도를 더 별다른 일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대교 네가 무서워서 안 올라나보다.”
엄연히 칭찬이었지만 대교는 공연히 얼굴을 붉혔다.
“그나저나. 검은 예수회 놈들도 당분간 우리한테 쳐들어 올 형편이 못된다고 하더라.”
“아. 조금 전의 전화가 그럼……….”
“응. 세계정화재단에서 온 전화였어.”
나는 조금 전 대교가 내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재단, 그것도 지부장의 비서인 마신일과 통화를 했었다.
“하하핫~ 제가 출장 나간 사이에 저희 재단 사람과 접촉이 있었다면서요?”
그는 여전히 꾸민 듯이 밝았고, 그러면서도 어째 별로 거부감이 들지 않는 묘한 남자였다. 그와 나눈 통화 내용은 대략 이랬었다.
“남장군(南將軍), 그리고 그가 모시고 있는 몸주… ‘남이 장군’도 진유준 씨에게 상당히 놀란 모양이더군요.”
“에? 그 사람이 모시고 있는 조상신이… 남이 장군님이었다고요?”
교과서와 위인전에서나 봤던 인물의 영혼을 직접 접했었던 거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상당히 알딸딸(?)해졌다.
“후훗! 뭐 그런 걸로 그리 놀라십니까? 닥터 제이에게 듣자니, 최근 천년 전의 연인과 재회하셨다고 하던데 그런 분이 새삼스럽게………
“…닥터제이?”
“아아ᅳ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와 닥터 제이의 연락망은 안전합니다. 뭐. 역시 듣자니까 닥터 제이의 ‘가짜 죽음’을 프리메이슨 측도 이미 어느 정 도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고는 하지만요.”
닥터 제이의 생존을 ‘확신했던 건 그 양반의 ‘은근 팬’이었던 ‘엘’ 뿐이었지만, 다른 자들도 의심은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저기, 근데 갑자기 나한테 연락은 어쩐 일로………….”
“라후의 혈족에 관한 일로 재단에 전화번호를 남기셨길래 그냥 안부전화를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만, 어제는 다른 용건도 생겼답니다.”
“…궁금하긴 한데. 그 전에 먼저 하나 물읍시다.”
“말씀하시지요.”
“전에 댁은 나에게 ‘재단과 인연이 없을 거라고 지부장이 말했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그랬지요. 하지만 그건 진유준 씨가 우리 재단에 소속될 일이 없을 거라는 뜻이었죠. 이렇게 친하게 지낼 일도 없을 거란 얘긴 아니었답니다.”
‘별로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댑쇼?’ 라는 말을 참은 건 아무래도 예의상이었다.
“여하간… 이번에 ‘검은 예수회’라는 곳에 속한 사람들에게 위협을 받고 계시는 걸로 압니다.”
“…위협인지 어쩐지, 걔들이 집적거릴 것 같기는 하네요.”
“이런… 그렇게 여유 있게 나오시면 생색내기도 어렵겠군요.”
“생색……?”
“예. 이제 그들은 당분간 진유준씨에게 ‘집적댈’ 여유가 없어졌거든요. 바로 우리 재단의 사원 한 명 때문에.”
“에? 혹시 당신이…………….”
“아니요. 주혜원이라고. 아주 당돌하고 제멋대로인 사원이 있지요.”
몽몽이 전해주는 대화 내용을 듣던 대교가 문득 의문을 표했다.
“주…혜원?”
성뿐만 아니라 ‘혜자까지 같으니까 남 이름 듣는 거 같지 않았나 보다.
“응. 근데 ‘주씨’는 아니라나 봐. 이유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그 아가씨를 만났을 때 ‘미스 주’, ‘주 양’ 그런 식으로 부르면 화를 낼 거래. 무조건 ‘주혜원’이라고 풀 네임을 불러야 한 다나?”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네요. 그런데 그녀는 왜 검은 예수회와 아니 그보다, 아직 젊은 여자인 모양인데 그녀와의 싸움으로 검은 예수회가 활 동불능의 상태가 되었다고요?”
“그게, 검은 예수회가 그 재단에 방문한 건 바로 우리 일 때문이었나 봐. 마신일에 이어 옥환 같은 인물과 내가 접촉한 걸 어찌 알았는지 몰라도, 나 와 재단과의 관계를 확인하려고 했었던 모양인데… 재단에서 문제의 주혜원이란 아가씨와 딱 마주쳐 버린 거지. 그 아가씨는 본래 종교 관계없이 ‘신을 섬기는 자’는 무조건 싫어한다나? 거기에 ‘광신도’ 씩이나 되면 ‘무조건 혐오 + 증오’의 대상으로 생각한데. 그래서 바로 시비가 붙어 버렸다 는데…………….”
주혜원이란 정체불명 아가씨의 전투력에 대한 마신일의 증언을 그대로 소개하자면… ‘일단 폭주한 주혜원은 저도 못 말립니다. 자칫 저도 죽을까 봐’ …였다.
“하여간, 그노무 재단은 뭔 놈의 괴물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라.”
“확실히 보통 조직은 아닌 모양이네요.”
우리는 말하다가 문득 서로를 마주보며 찔끔,했다. ‘우리가 과연 누굴 괴물이라고 부를 처지일까?’ 라는 자각 때문에 잠시 좀 민망했다.
“크흠. 음… 어쨌든 이제 당분간은 한시름 던 것도 같으니까. 이럴 때 가자.”
나는 대교에게 새삼 씨익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장인어른한테 인사하러.”
대교의 얼굴에 급방긋과 급쑥쓰의 표정이 동시에 떠오르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의 중국행을 간단하게 허락하셨다.
“상견례는 근데 보통 남자 쪽에서 준비하고 초대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묻자 아버지는 짐짓 태연. 어머니는 씨이익 웃으신다.
“요즘 세상에 딱 정해진 규칙이 어딨겠니. 다 서로 편하게 정하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이번에 대교 아버님 만나면 그쪽이 편하신 데로 결정하시라 해라.”
요즘 좀 삐치셨다 싶었던 어머니의 표정이 전에 없이 밝다. 쬐금 불안할 정도로.
“우리가 중국에는 벌써 몇 군데 가보긴 했다만… 대교가 그러는데, 비화곡(秘花谷)이란 곳이 그리 좋다며?”
에?
「제가 어머님과 얘기하다가 무심결에 자랑을……………」
하긴. 대교에게는 그곳이 바로 고향이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저기, 두 분. 거긴 홍콩이 아니라 중국이고 좀 멀거든요? 상견례는 서로 편한 곳에서 하는 거라면서요?”
“어디서건 상견례하고 나서 우리끼리 가면 되지 뭐. 절대 쉽게 움직이지 않는 니 아버지도 이번에는 웬일인지 가신다고 하지 뭐냐?”
나는 아버지께 ‘설마 피해 보상금 때문에…………….’ 라는 시선을 보냈지만 아버진 슬쩍 외면하신다. 지난 번 체육관 싸움 이후, ‘현금은 별로 없다’던 시 그마와 산드라가 주머니를 탈탈 털더니 의외로 많은 달러를 내 놓았었고, 난 그걸 환전해서 가게에서 불장난하고 튀었던 놈들을 잡아서 보상받았 다’며 아버지께 전액 드렸었던 것이다.
으음. 좀 예상 밖의 상황이다. 비용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지만, 비화곡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딱히 막아야 할 이유가 없기는 한 데… 왠지 기분이 묘하네.
“예. 뭐… 그러시던가요.”
난 결국 그렇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대교 같은 아이도 들어오고… 올해부터는 우리 집에 뭔가 운이 트이는 것 같구나.”
…하긴. 두 분도 최근까지 상당히 속이 상해 계셨을 거다. 형들이 남들 보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게 사는 것 같아도 여러 가지 문제가 끊이지 않아서 아직까지도 두 분을 제대로 모시기는커녕 오히려 경제적으로 집에 도움을 청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제일 모범생이었던(겉으로는) 막내인 나까지 제대 후 한동안은 제정신이 아닌 놈처럼 굴었으니 말이다.
“니 큰형 회사가 사실 많이 어려웠다.”
저도 알지만 모른 척 했죠.
“그런데 얼마 전에 니 큰형 배신하고 달아났던 망할 놈이 이찌된 건지, 스스로 돌아와 백배 사죄하며 모든 보상을 했다지 뭐냐.”
그놈이 큰형 회사의 기밀을 훔쳐 달아난 곳이 바로 중국이었다. 당연히 ‘구양대주’가 내 명령을 받고 하루가 되기 전에 놈을 찾아내서 약간의 교육 을(?) 시켜서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둘째도 정신 차리고 열심히 일했지만 그래도 한동안 힘들어했는데 결국 다니는 회사 사장님 눈에 든 모양이더라. 그저께 전화 와서 이 제 금방 과장, 부장 달 거라고 아주 큰 소리를 치더라.”
둘째형의 탁월한 재능(주로 세일즈 방면)을 질투하고 괴롭히며 모함하여 앞길을 막던 상사는 다른 회사의 달콤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냉큼 회사 를 배신했다나? 그러나 스카우트한 회사는 소위 유령회사였다는 훈훈한 미담을 보고 받았었다.
“우리 가게도 요즘 갈수록 잘 되는 것 같고…………….”
이건 새삼 이유를 언급할 필요도 없는 얘기고.
“또. 집에도 묘하게 운 좋은 일이 많았지.”
웬만하면 이쯤에서 ‘별 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이라는 소리를 하실 법한 아버지도 조용히 듣고만 계셨다.
“한 달쯤 전이었나? 니 아버지가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일이 있었는데 웬 용감한 청년이 나서서 소매치기들을 모조리 때려잡더란다. 마침 잠복 중이던 형사였다나?”
실온 보천구롱대(保天九龍隊)정예멤버였으며, 소매치기들은 유치장이 아니라 바로 병원 중환자실행이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오래 전에 외상 잔뜩 가져갔다가 떼먹고 이사 갔던 자들이 뜬금없이 와서 갚고 가는 일도 몇 번 있었고……….”
그런 일까지 참견하는 건 좀 오버다 싶어서 앞으로는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려야 했었다. 내가 가게 볼 때 새우X 두 봉지하고 주스 큰 거 하나 가 져간 다음 잠적한 초딩은 조만간 내가 직접 검거할 예정이지만 말이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언제부터인가 시장 보러 가면 사려고 했던 것들이 다 세일 중일 때가 많은 것 같고… 심지어 웬만한 작은 일에는 신경도 안 쓰시는 니 아버지도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운 좋은 경우가 많았다고 하신다.”
“음・・・ 그건 그래. 최근 들어서 어딜 가든 줄을 서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병원에서 접수할 때고 약수터에 물 뜨러 가서고……………”
갈수록 정말 오버인 것 같아서 이제 대부분 자제시켰다. 철저한 경호만 지시했었는데 아무래도 충성 경쟁이 좀 과열된 듯싶었다.
“이게 다 막내 유준이 네가 특히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와서 자비로운 부처님께서 주시는 북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거실 벽에 걸린 달마도(達磨圖. 수맥 차단에 좋다는 광고에 혹한 아버지께서 구입한) 속의 달마대사가 ‘착하게는 결단코 아닌 것 갈지만, 그래 도 인생이 불쌍해서 내가 좀 돕기는 했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리 열심히 살고… 대교에게도 더 잘 해주고… 알겠니?”
“지당하신 말씀에 이 아들, 기꺼이 충심으로 따르겠나이다.”
약간의 장난기가 섞이긴 했지만 정말 진심으로 어머니 말씀에 따라 ‘열심히 살면서 대교에게 더 잘해주기’를 맹세하면서… 그렇게 나는 대교와 여 행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 중국, 아니 홍콩행 비행기는 최근까지 내가 한국을 떠나야 했던 그 어떤 때보다 흐뭇한 분위기로 가득해 있었다.
당연히 전부 따라나선 대교의 동생들도 지들 전현생의 아버지 사영을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고, 대교 또한 엄청 기뻐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 다.
“근데. 현재의 대교 너를… 사영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역시 그… 음. 장인어른께는 크흠. 니 동생들이 알고 있는 만큼은 알려줘야 겠지?”
“예. 하지만… 애들에게 몽몽에 관한 것은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몽몽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 좋을 건 없을 듯해서요.”
“그래. 소미령이 애들이야 지난 번 섬에서 이미 프리메이슨과의 싸움에 참전해 버렸던 셈이지만, 그 외의 누구도 몽몽에 대해서 아는 건 오히려 위험요소가 될지 모르니까.”
“아버지께서 이렇게 변해 버린 저를 보고 어떻게 나오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요.”
“그 양반은 어쩌면 ‘어이구 우리 이쁜 딸, 며칠 못 본 사이 몰라보게 많이 컷네’라고 하며 넘어갈지도 모르지.”
“후후- 정말 그러실지도………….”
우린 사영의 전문살수답지 않은 ‘두루뭉실 적당히’ 성격을 떠 올리며 마주 보고 웃었다.
-주인님.
“…몽몽. 웬만하면 지금은 좀 참아주지?”
—예?
“왠지 별로 안 좋은 보고가 나올 타이밍 같아서 그래.”
-죄송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여간 이놈의 팔자는 내가 좀 잘되는 꼴을 못 본다니까?
•예향원(譽院)’이란 장소를 기억하십니까?
뭐? 예향…원?
나는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대교는 다른 것 같았다.
“…그곳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니?”
대교의 표정은 이미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예. 약 20분 전, ‘신해식’이란 자가 그곳을 습격하여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곧 패티의 위성 사정권에 들어올 예정이니 현장 상황 중계가 가능합니다.
신・・・ 해식? 어? 가만? 혹시 그놈 말하는 건가? 대교가 주가혜였을 때 콘서트를 깽판 치러왔다가 나한테 걸려서 지옥전(地獄戰) 스페셜 고문법 분근 착골(分筋骨)을 풀코스로 맛보았던 놈! 그렇…다면?
“예향원은… 옛날에 제가 소령이와 미령이를 맡겼었던 고아원의 이름이에요. 그래서인지 기억이 봉인된 후에도 왠지 신경이 쓰여서… 주가혜로 살면서도 자주 그곳의 아이들을 찾아가고 후원을 해왔었던 기억이 나요.”
오호— 그래서 신해식 놈이 그때 ‘예향원 폭파’ 운운하며 ‘오삼숙’을 협박했었던 거였군.
“신해식 그놈은 나한테 분근착골로 당했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나……………? 갑자기 뭔 짓이래?”
아직 사건 현장에는 지역 소규모 언론들뿐이지만, 신해식의 요구 조건인 ‘주가혜를 데려와라’ 때문에 사건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젠장…………..! 여하간 거기부터 가이겠군. 그놈 입 막으러라도. …응? 근데… 대교 녀석, 전에 한 말과 달리 주가혜 때의 기억이 ‘감정’까지 함께 일으키 기라도 하는 건가? 지금 표정은 얼마 전 체육관에서와 근접한… 음. 신해식 그 양아치 자식, 일 났군.
서둘러 날아온 홍콩에서 재빨리 헬기로 갈아탄 우리 일행은 광장 예향원으로 향했다.
“자룡대주.”
“예, 천주. 언론 통제는 이미 효과적으로 진행 중이며, 현장에는 청천마군(靑天魔君)의 제자이자 2대 청천마군 예정자인 ‘전경하’가 투입되었습니 다.”
전경하라면 소교가 처음으로 인질이 되었었던 ‘에든버러 고교 사건 때 활약했던 경찰 특공대 대장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건 주모자 및 지휘관은 신해식이란 인물로서………….”
자룡대주는 꽤 길게 놈의 범죄 약력과 성향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요점은 전에 내가 직접 만났을 때 느꼈었던 그대로… ‘독종에 비열하기까지 한 놈’이라는 것인 듯싶었다.
“유준 오빠. 신해식의 수하들은 총 5명으로, 모두 오래 전부터 놈을 추종하여 따르던 의동생들이래요.”
몽몽보다 한 발 늦기는 했지만, GM도 당연히 만만치 않아서 벌써부터 ‘예향원 출신’ 소미령이들에게 정보를 알려오고 있었다.
-주인님. 확인 결과, 해당 인원들은 모두 지하무림(地下武林) 어사조(御使組) 평균 전투력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로 추정되나, 그 중 1인은 폭발물 전문가로 판명되었습니다.
쯧. 전에 지껄여댔던 ‘폭파 협박’은 역시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군.
“천주, 조금 전, 예상밖의 인물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아, 유준 오빠! 큰일이에요!”
―주인님. 약 10분 전 중요인물의 예정밖 이동이 확인되었습니다. 에구구. 정보망이 다양하고 빨라서 좋기는 한데 좀 정신이 없네. 잠깐! 자룡대주부터 다시! 누군데 그래?”
“그게, 저…….”
응? 지통대주가 왜 보고를 망설이는 거지? 그러면서 소교를 본다? 게다가 소미령이들의 시선도 소교에게 모인다는 건……….
“소교님의 의모(義母). 과거의 마녀 여옥이 사건 현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제기. 그 아줌마는 또 왜 그래?
“소교언니……!”
약간 충격을 받는 듯한 소교에게 소미령이가 달라붙어 위로를 하기 시작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천주. 뇌룡대(雷能隊)에게 지시를 내려서……….”
“됐어. 일단 그냥 둬.”
소교 경호는 물론이고 겸사해서 여옥의 감시 및 관리도 맡고 있는 뇌룡대에게 명령을 내리면 여옥을 막는 건 쉽다. 하지만 여옥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소교도 완전히 본래 가족들에게 돌아오지 못한다. 무조건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몽몽. 너도 같은 보고였냐?”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 사건 현장으로 향하기 시작한 또 다른 인물은, 오늘 주인님 일행이 만날 예정이었던 코드명 사영, 현 사회주 ‘주영 후’입니다.
뭐시라고라?
하아~ 이거야 원. 우리들도 그렇고, 아직 앙금이 잔뜩 남았던 멤버들이 전부 집합하고 있다는 얘기로군. 어째 또 운명적인… 아니 그 얄미운 타임 씨의 농간이라는 기분이 드는구먼.
지금까지의 온갖 황당무계한 전투 경험들 때문에 신해식이라는 뒷골목 양아치가 벌이고 있는 사건 자체에는 별로 큰 위기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 만 나는 또 교묘한 ‘타임 씨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새삼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천주. 도착했습니다.”
헬기의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한 예향원은 3층 원룸 건물인 우리 집과 비슷할 정도로 작은 규모의 고아원인 것 같았다. 게다가 이렇게 공중에서 보 니 다른 사람들의 주거지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흐으음. 건물 주위로는 변변한 담도 없고 거의 허허벌판이라…………!
신해식 놈이 첨부터 의도했든 어쨌든, 인질극을 벌이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군. 전경하가 이끄는 경찰 특공대도 멀찍이 거리를 두고 포위한 자 신들의 차량 외에는 몸을 숨길 만한 은폐물조차 없을 정도이니.
―주인님. 코드명 사영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한참 늦게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었건만, 사영 저 양반도 참 대단하다.
패티 녀석이 위성으로 촬영해서 보내 준 화면에 의하면… 저 양반이 지금 타고 온 화려삐까한 붉은 색의 오토바이는 예의 ‘사회주의 거리’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평균 200KM 이상의 속도를 유지했으며 지름길을 이용할 때는 거의 곡예 수준의 묘기를 보여 줬었던 것이다.
복장과 헬멧까지 오토바이에 맞춰 세련된 올 레드!
웬만한 젊은 매력남이라도 소화하기 힘든 패션일 것 같은데 이미 중, 아니 장년에 접어든 양반이 잘도 어울려버리네 그려.
난 ‘우리 장인어른 킹왕짱’ 이라는 요몽스런 대사가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걸 참아야 했다.
“와아~ 울 옛날 아빠, 킹왕짱!”
음. 소령이 녀석이 대신 해버리는군. 여하간.
“몽몽. 여옥은… 음. 저 찬가?”
-그렇습니다.
예비 장인 사영께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경찰 특공대에게 검문을 받는 사이, 예비 장모 동생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여옥이 탄 차도 예향원 부근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자룡대주님! 제발 빨리 착륙해 주세요!”
소교의 다급한 음성이었다. 소교는 뒤늦게 사영이 여옥을 직접 만나게 되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소교! 아버지는 그럴 분이 아니잖니. 네가 여옥 이모를 인정했으니 아버지도 쉽게 살수를 쓰지는………….”
대교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차에서 내리는 여옥을 발견한 사영이 즉각 헬멧을 벗어 오토바이에 걸어 놓고는 여옥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던 것 이다. 애써 변호해 주던 대교가 민망하게도 이렇게 아직 꽤 먼 거리에서 봐도 느껴질 만큼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
분명 저 양반 성격에 아내의 원수를 앞에 두고 참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설마 소교를 생각한다면……….
나와 대교는 조금 우려하는 정도였으나, 소교는 나름 서둘고 있는 헬기의 하강 속도마저 너무나 더디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결국 소교가 안타까 운 얼굴을 뇌룡대주(雷龍務主)에게 돌렸고, 다음 순간.
꽝-!
헬기의 문이 반쯤 부서지며 열렸다. 어이없어하는 나와 일행들을 뒤로하고 뇌룡대주의 신형은 쏜살같이 헬기를 뛰쳐나갔다. 뇌룡대주는 아직 10 여 미터 정도 남았던 지면에 가볍게 착지 하더니, 곧바로 사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소교. 너, 저 친구한테 무슨 약 먹이니?”
“예?”
“아니, 그냥 한소리야.”
헬기가 안전하게 착륙했을 쯤, 여옥의 2, 3미터 앞까지 거리를 좁히고 있던 사영은 뇌룡대주의 갑작스런 기습을 받고 있었다.
짜각~!
뇌룡대주의 9단 봉과 사영의 연검(劍)이 만나 독특한 파찰음이 연주(?)되고 있었다. 순식간에 몇 번의 불꽃이 더 튀긴 후, 사영이 눈살을 찌푸리 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뭐냐, 넌. 마녀의 수하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날 공격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소교님께서 어르신의 행보에 불안을 느끼고 계십니다.”
“소・・・교?”
사영의 고개가 비로소 우리들 쪽으로 돌려지고 있었다. “허허허~.”
최감 동안 장국영 비스무리 얼굴에서 묵직한 장년의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이채로웠다.
“대교, 소교・・・ 너희들이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이구나. 난 비록………….”
다시 사영의 날카로운 시선이 자신을 향해오자 여옥은 바로 겁을 먹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가증스런 여자를 용서하지 못하나, 사랑하는 딸들의 바람을 함부로 저버리고 싶지도 않다. 난 다만… 이 여자가 그동안 얼마나 더 얼굴 가죽이 두터워졌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어.”
쓴웃음을 짓는 사영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저 양반이 여옥에게 근접하여 뇌룡대주의 공격을 받기 직전까지도 칼을 꺼내들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난 손을 들어 전경하에게 신호하여 뜬금없이 발생한 칼부림 현장으로 몰려들고 있던 경찰 병력을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그 사이 소교가 먼저 사영 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아버지.”
“허허 괜찮다, 소교. 쓸 만한 경호원을 두게 된 모양이구나. 여옥에게 저런 인재가 있었을 리 만무하니 아마도 저 친구가……….”
이제야 제대로 날 향하는 것 같았던 시선이,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내 옆의 대교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사영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는 것 같 았다.
처음 거리가 있을 때는 대충 이미지만 확인했었다가 이제 가까워지니까 확실히 알아보는 것 같군. 과연 어떤 반응이……………
“뉘신지요?”
윽. 이 양반 하여간.
“아버지, 저・・・ 대교예요.”
“안다. 내 딸 대교가 맞다는 걸. 그런데 대체 누구냐, 넌?”
상당히 극단적인 반응을 동시에 표출해 버리는군.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설명해 드릴게요. 하지만 지금은 우선……….”
대교는 침착하게 여옥을 한 번 본 후, 다시 예향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옥 이모의 마지막 잔해………! 저 추하고 아둔한 자들의 바보짓을 막아야 해요. 예향원의 어린아이들이 다치기 전에.”
흐음. 아직 대교의 변모에 대한 의혹의 표정이 가득하면서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군. 확실히 이 양반의 정신세계는 꽤 독특하면서도 합리적이 란 말야?
“아무래도 자네에게 물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군.”
“예, 뭐. 얼마든지요.”
나는 다소 어색하게 웃으면서 예향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와 가까워지자 경찰특공대 대장 전경하의 입가에 굵직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의 절도 있는 경례와 나의 가벼운 답례가 있은 후. 전경하는 예정대로 수하 대원들에게 외쳤다.
“철수!”
순식간에 일제히, 그러면서도 질서 있게 철수해 버리는 특공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자들이 아직 꽤 많이 있었다. 우리가 오기 전까지 신해식 놈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그냥 두라고 했었던, 기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자룡대주가 다가가 뭐라고 나직하게 말하며 명함 같은 걸 돌리자 그들 역시 우르르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몽드폰을 들며 여옥을 돌아보았다.
“댁은 어쩌실 거요? 안으로 들어가 신해식과 합류한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 것이며, 그냥 간다 해도 상관하지 않겠소.”
나의 제안에 여옥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크게 한 번 망가진 이후, 소교까지 납치당해 버리 자 완전히 맛이 갔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 마녀 버전은 고사하고 완전 얼이 빠진 사람처럼 지냈다고 하는데… 최근 다시 소교의 보살핌을 받아서 그런지 많이 나아진 것처럼 보 이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정한 표정과 시선으로 날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다.
“누님~! 여옥 누님~! 들어오지 마세요-!”
예향원으로부터 간만에 듣는 신해식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서 지켜보고 계세요! 제가 어떻게 누님의 복수를 하는지! 어떻게 저 년놈들을 파멸시키는지 말예요!”
그놈 참 포부 한 번 커서 좋다. 의외로 의리가 있는 놈이었던 건지, 아니면 혹시 여옥에게 남몰래 순정이라도 품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 간 저놈은 지금 여옥을 망가트린 나와 대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자폭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아예 무조건 그럴 생각이라고 봐야 하려나………………
“주영후! 당신은 빠져! 난 저 주가혜와 자칭 팬클럽 회원이라는 놈에게만 볼 일이 있으니까!’
“감히!”
사영, 아니 현 시대의 사영회주 주영후가 발끈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옛 수하, 그것도 아주 까마득해서 보이지도 않았을 놈이 아무렇 지도 않게 자기 이름을 불러제끼는 것에 빡돈 것 같았다.
“아버지.”
낮게 부르며 다가서는 대교와 소교 때문에 사영이 일시 진정하는 기색이 되는 사이, 나는 몽드폰으로 신해식 놈의 휴대폰을 호출했다.
“어떻게 이 번호를………….”
“내 수하들 중에는 인재가 많거든. 네놈이 며칠 전 새로 산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는 거야 우습지.”
“쳇! 그때도 평범한 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지하 무림의 보스였을 줄이야…………!”
“으음. 그래. 이젠 그걸 알게 되었음에도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니… 죽을 각오가 된 모양이지?”
“흐흐흐~ 그렇다. 그러니 아무리 전설의 조직 보스라고 해도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걸?”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냐? 우선 네 놈이 불러 모은 기자들은 모두 돌아가 버렸잖아.”
“흥~! 그 따위 돈만 밝히고 권력에 아첨하는 쓰레기들은 애초에 믿지 않았어. 하지만 요즘에는 웬만한 언론보다 무서운・・・ 신세계의 언론이 존재하 지.”
인터넷 말하는 거군.
“크흐흐ᅳ 이미 현재의 모든 상황이 전세계의 네티즌들에게 중계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당근 알지. 내게는 그 신세계의 먼치킨 몽몽 선생이 있거든.
“고아를 자처해 왔으나 사실은 악명 높은 사영회주의 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범죄조직 지하무림의 보 스와는 연인 사이! 하하핫~! 이 정도만으로도 홍콩을 빛내는 슈퍼스타, 세계로까지 발돋움 하던 주가혜는 끝장이 나고 말걸?”
“맘대로 하셔. 주가혜, 아니 우리 대교는 벌써 은퇴했거든.”
“…뭐? 칫! 웃기시는군. 잠정 활동 중단이라는 뉴스는 나도 봤어.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런 눈부신 자리를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어허 진짜 때려 쳤대도 그러네.”
-…주인님.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놈들이 인터넷에 접속한 노트북에 버그를 침투시켰으며 그와 연결된 카메라 등의 장비 를 통해, 보다 자세한 폭탄 설치 정보를 수집 중입니다.
“맞아요. 전 이미 은퇴를 했어요.”
음. 대교가 가세해 주는군.
“전… 이분과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스타의 자리는 필요 없어요. 신해식. 당신이 꾸민 일은 헛수고였다고요.”
“뭐? 익, 너, 너어-.”
반응 좋고~! 이제 조금만 더 약올려서 놈이 우릴 직접 괴롭히다 죽이려는 생각에 스스로 우릴 가까이 끌어들여 주기만 하면..
“그게 무슨 소리야? 대교가 은퇴를 해?”
윽…………! 사영, 이 양반아. 댁이 반응해 버리면 어쩌자는 거요.
“아버지. 전……”
“안 돼! 네가 너무 간절히 원하기에 허락했거늘, 이제 와 그런 놈 때문에 너의 꿈을 포기한다고?”
그, 그런 노옴?
“아버지! 저의 꿈은 주가혜로서의 꿈은 오직 이분을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제 노래를 이분께 들려 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망할! 딸자식은 키워놔야 소용없다더니!”
에구~ 이 부녀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무리 별 거 아닌 놈이 상대라고 해도 그렇지, 건물에 폭탄으로 도배를 하고 지 몸에까지 옷처럼 폭탄을 걸치고 있는 놈을 앞에 두고 이 무슨………….
“빌어먹을! 뭣들 하는 거냐? 당장 이 예향원과 아이들이 모두 사라져도 좋아? 그런 거냐?”
음? ‘나한테 관심을 가져달라’는 애절한(?) 외침…………? 이런 식의 상황이 더 약올림 효과가 좋았던 건가?
“당장… 너희 두 년놈은 이 안으로 들어와라. 내가 지금 바로 모두 날려버리기 전에!”
“몽몽.”
-…건물 내의 폭탄 배치와 설치 방식의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첨단 기폭 장치가 적용된 폭탄들은 저의 출력범위 내에 들 경우 즉각 무력화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코드명 신해식과 또 한 명의 몸에 장착된 폭탄은 수동식 기폭장치를 채택하여 제 기능 바깥인 것으 로 판단됩니다.
“대교. 너도 들었지?”
나는 먼저 걸음을 떼기 시작했고, 대교도 즉시 따랐다. 그런데
“대교! 이 애비와 얘기하다 말고 어딜 가느냐!”
저 양반, 성질내면서 그냥 막 따라온다. 이거 어째………
“뭐야! 당신은 오지 말라고 했잖아!”
“닥쳐! 부녀간의 대화에 끼어들지 마라!”
신해식의 고함 소리에 맞고함을 지르는 사영 어르신.
“빌어먹을! 당신까지 죽는 건 여옥 누님이 원치 않으실 텐데………
인질 자살 폭탄 테러범 신해식의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사영은 우리를 따라오면서 씩씩댔다.
“자네! 난 이 결혼반댈세!”
“아버지!”
“대체 넌 이런 자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그러는 거냐!”
“전부요! 이 분의 전부가 좋다구요!”
“뭐가 전부 좋아! 넌 눈이 어떻게 된 게냐?”
“흥~! 아무리 아버지라도 이분을 모욕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이거, 이거. 이 부녀 아무래도… 상당히 오버하고 있는 것이지…?
나는 차츰 처음의 우려와 달리, 이 부녀가 상당히 손발이 잘 맞는 연기파 부녀라는 걸 깨달았다.
실내로 들어오자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넓은 마루 한 가운데에 모여 있는 십여 명의 어린아이들과 예향원 운영자 및 직원으로 보이는 성인 남녀 몇 명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씨익-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어 보여 주었다.
날 별로 믿어 주는 표정은 아닌 것 같지만… 뭐, 암튼. 저들 바로 아랫마루 바닥에 설치된 폭탄이나 사방의 폭탄은 몽몽 선생의 몫이고… 우리가 직 접 처리해야 하는 건 양아치 여섯 명의 총과 두 명의 몸에 장착된 폭탄……!
에효. 생각해보니 현재의 내가 직접 맡을 수 있는건・・・ 이 놈 하나 정도려나?
“여어- 오랜만이군.”
내가 짐짓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며 시선을 맞추자, 문가에 서 있다가 내 정글도를 내놓으라고 손을 내밀던 놈이 흠칫 놀라며 동작을 멈추었다. 전 에 신해식을 따라 주가혜 콘서트에 왔다가 이해식과 함께 사이좋게 나의 분골착근에 걸려서 버벅대던 놈이다.
“분골착근의 추억을 벌써 잊었나?”
“무, 무슨・・・ 그따위 꺼. 벌써 잊었………….”
훗! 애쓰는군. 애써 부인하면서도 기억해 버린 분골착근의 악몽 때문에 손끝을 떨면서 말야.
나는 문제의 독종 신해식을 돌아보았다. 신해식은 그래도 두목이라고 한 손을 폭탄 스위치에서 떼지 않은 채 주의 깊게 우릴 경계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문제는 그 경계의 대상이 나와 사영뿐이
라는 점이었다.
“흥! 예전의 주영후, 당신은 정말 엄청난 남자였는데 지금은 그저 ‘평범한 아버지’가 되어 버린 것 같군.”
“평범한 아버지라…….”
으음. 역시나 목표물이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급격히 조금 전까지의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사라져 간다.
“정말 그랬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
이미 짐작하고 있던 나조차 순간 놓쳐 버렸을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럽고 잔잔한・・・ 그리고 단호한 어떤 일이 일어났다.
…쳇! 조금 놀라서 하마터면 내 몫의 일까지 잊을 뻔했네.
나는 내 정글도에 베여 쓰러지고 있는 신해식의 부록(?) 양아치 녀석을 힐끔 한 번 본 다음 다른 녀석들에게 시선을 돌려보았다.
분명 나에게 당한 놈보다 먼저 대교와 사영의 칼에 당했음에도 그들 모두 한 박자 늦게 스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이 무서운 부녀는 적을 베면서 꼼 꼼하게도 수동식 기폭장치의 선까지 함께 잘라버렸기에… 말 그대로 모든 사태종결이었다.
대교가 세 명, 사영이 두 명이라고는 해도 사영이 방금 펼친 살수는 대교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이었어.
그 옛날 ‘거절할 수 없는 죽음’의 현시대 재현…………? 혹은 부활…………? 이거, 이거… 나 빨리 무공을 되찾지 않으면 자칫 대교 없을 때 예비 장인어른 한테 칼 맞아 죽게 생겼네.
“누・・・ 구? 가혜…가… 아냐?”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신해식이 천장을 올려다보는 자세로 쓰러진 채 간신히 입을 열어 마지막 말을 홀리고 있었다.
“…영후… 회주… 우리… 누님… 불쌍…….”
이렇게 되고 보니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독종 신해 식의 허무한 최후였다. 하지만 사실 나도 그리 안전한 상황은 못 되는 것 같았다.
“난・・・ 자네를 믿었건만, 내 딸 대교가 손을 썼군. 칼을 제대로 쥐어본 적도 없는 아이였거늘……….”
사영 본래의 서늘한 안광이 내게 날아와 꽂히고 있었다.